고등학생 때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가족, 작은아버지네 가족, 삼촌이 모두 함께 중국으로 여행 가기로 했다. 대가족이 해외여행이라니. 요즘에도 보기 드문 일일 것이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이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과 껴서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우리 11명만 가는 것이었기에 거금이 들었다. 명절 때에만 잠깐 며칠 보는 친척들과 시골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설렜다.
달력을 보며 여행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이미 꿈속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중국 천안문과 만리장성을 보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아마 조부모님께서도 자식, 손주들과 여행 가는 것이 신나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셨으리라.
드디어 여행 가는 날이 되었다. 인천공항에 가서 친척들을 만나니 반가웠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삼촌과 함께 먼 전북 익산에서 오셨다. 대가족이 여행을 가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우리는 여행사 직원을 만나 설명을 듣고, 입국심사를 받으러 갈 준비를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여권이 단수 여권이었던 것이다. 복수 여권을 발급받으면 다른 나라를 정해진 기간에 여러 번 오갈 수 있지만, 단수 여권의 경우 외국에 한 번 나갔다 오면 재사용이 불가능했다. 조부모님께서는 이미 다른 나라에 다녀오느라 그 여권을 사용하신 상태였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에 누군가 물을 쫙 뿌린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에이, 그래도 해결할 수 있겠지.’
당시 어렸던 나는, 어른들이 이 문제를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부모님과 삼촌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여행사 직원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항 내에 긴급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우리가 온 날이 주말이라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여행사에 전화를 넣어서 이 문제에 대해 따지셨다. 여권을 보냈는데 왜 확인도 하지 않고 비행기 발권을 하고, 여행을 그대로 진행했냐고. 사실 여행사뿐만 아니라 우리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긴 했다. 조부모님, 삼촌, 아버지 모두 여권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상도 못 할 일이 발목을 붙잡을지 몰랐다. 여행지에서 소매치기나 바가지 당할 것을 걱정했지, 여권 문제가 생길지는 꿈에도 몰랐다. 비극이었다.
결국 할아버지, 할머니는 같이 가지 못하셨다. 두 분은 다시 전북행 버스를 타셨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나서 면세품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어머니는 계속 여행사와 통화하셨고, 우리는 모두 침통하게 앉아 있었다. 삼촌은 끝내 눈물까지 보이셨다. 마음이 아팠다.
중국 여행을 가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보며 다양한 체험을 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으며 마음을 짓눌렀다. 착잡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개운치 않았다.
그 날 이후 여행사에서 보상의 의미로 할아버지, 할머니께 중국 장가계 패키지여행 상품을 제공했다. 그때는 비록 모든 가족이 다시 갈 수는 없었지만, 삼촌이 가족 구성원들을 대표해 조부모님을 잘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다.
아직도 그 순간만 생각하면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해외여행 갈 기회가 이제는 영영 사라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