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이로움 Apr 02. 2022

아직 꿈을 찾는 중입니다.

선생님의 꿈은 회사원이었나요?

    나에게 일주일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교회 주일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을 만날 때인  같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어른인 척하면서도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에  터지기도 하고,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는 아이들의 사랑에 감동을 받기도 하고, 아이들의 솔직한 나눔이 울림이 되기도 한다.  날은 그런 날이었다. 아이들의 나눔이 울림이 되는  말이다.


    어느 날, 처음 들어본 생소한 유튜브 스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외모에만 관심을 갖던 우리 반 아이들이 달라졌다. 맨날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으로 모이자고 하면 자기들끼리 왁자지껄 나는 모르는 브랜드, 스타 이야기로 떠들어 아이들 집중시키는 데만 10분, 15분이 걸렸었는데, 아이들이 사뭇 진지해졌다. "너희 선생님 적응 안 되게 갑자기 왜 이래?"라고 물으니 아이들이 "이제 저희도 고1이잖아요."라고 말한다. "고1이잖아요"라는 말에는 이제 사뭇 자기네들도 고민이 많아졌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 날 아이들과 기도제목과 고민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분위기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17세 인간극장’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렸다. 지은이는 꿈이 명확했다. “저는 컴퓨터 공학 전공하고 싶어요. 지금 코딩 배우는 게 너무 재밌어요. 00대 컴공과 가고 싶어요. 그리고선 카카오 같은 데 가서 개발자 될 거예요. 교육 선교도 나가서 하고 싶어요.” 지은이는 나름의 계획을 세운 것 같다.


    그 다음은 주아가 이야기했다. "전 공부를 잘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재밌어하지도 않아요. 근데 이제는 진로 고민을 해야 되는데,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전 공부로는 영 아니거든요.” "주아 너는 하고 싶은 게 있어? 꿈같은 거 말이야."  "잘 모르겠어요. 잘하는 것도 없고…" "왜 주아는 영어도 잘하고, 선생님이 볼 땐 패션감각도 뛰어나서 그런 쪽 일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주아는 그냥 다 모르겠단다. 대학교를 갈지도 잘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한 가지 분명한 건 대충 25살 때쯤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나야말로 일찍 결혼하고 싶었다고, 이왕이면 학교 다닐 때 한 사람을 진득이 만나서 주아가 말한 25살 때쯤 하고 싶었다. 친구들, 그리고 회사 동기들 모두 하나같이 내가 제일 일찍 결혼할 거라고 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더라. 제일 늦게 안 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첫사랑뿐만 아니라 n번째 사랑에 실패하고, 그냥 바쁘게 삶을 살아가다 보니 다른 건 다 잘하는데 연애에는 영 젬병인 내가 되어버렸다. 선생님이 선생님의 삶을 돌아보니, 그리고 주변 친구들을 만나보니 결혼은 ‘대충’할게 아니라고, 나 혼자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니,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지금부터 기도하라고 말해주었다.


    수진이에게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봤더니 수진이는 학교를 관두고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 반에서 가장 낯을 많이 가리고 가장 내향적인 아이인데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한 것은 조금 의외였다. 왜 유튜버가 되고 싶은지, 콘텐츠는 뭐로 하고 싶은지 물으니 그냥 돈 많이 벌고 싶단다. “음 콘텐츠는 뭐 대충 먹방?” 이러면서. 성공한 일부 유튜버들만 보고 아무래도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돈 버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란다 얘야. “음… 수진아 유튜버는 나중에라도 할 수 있으니까? 뭐 다른 거 하고 싶은 것이나 관심 있던 것 없어?” 수진이가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순간 나 자신에게도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꿈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잣대로 아이들의 꿈을 내 마음대로 평가하고 있었다.  


    "음 그럼 그냥 회사원이요. 선생님, 선생님도 지금 회사 다니시잖아요. 선생님도 원래 꿈이 회사원이셨어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어보는 수진이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내 꿈이 회사원이었나. 17살, 고등학생 때 나는 뭐가 되고 싶었었지? 분명 꿈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꿈은 뭐였었지? 이제 기억조차 희미해진 내 꿈. 나도 분명 꿈이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나의 17살로 돌아가 봤다.


    17살, 그 당시 나의 꿈은 UN본부에서 일하는 국제 협력 전문가였다. 그래서 전공도 그쪽으로 택했고, 방학 때 쉰 적 없이 꽉꽉 채운 나의 이력은 모두 그런 계열이었다. 그러다 4학년 마지막 학기에 경제 과목으로 학점을 채우다 ‘자본의 중요성’에 눈뜨게 되었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 돈을 모으자며, 딱 3년만 기업에 들어가서 일해보자, 그리고 했던 것이 어느새 10년 가까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나는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굳이 그 분야를 공부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의외로 내가 그런 학구적인 부분보다 신변잡기에 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이 회사원이셨어요?” 물론, 어찌 보면 UN에서 일하는 국제협력 전문가도 UN에 속한 회사원일 것이다. 회사원의 의미는 매우 포괄적이니까. 내 친구 디자이너 윤희도, 제약회사 연구원인 지혜도, 패션 MD인 지은이도 우리 모두는 회사원이다. “기억이 안 난다. 선생님도 아직 꿈을 찾고 있어. 진로 고민은 평생이야. 선생님이랑 같이 우리 비전을 찾아보자.” 그렇게 웃으며 멋쩍은 듯 대답했지만 그 아이의 질문이 나의 마음에 며칠 동안 남아있었다. 물론 10년 동안 달려와서 지쳐 있기도 했고, 지금 이곳에서의 커리어 패스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아 고민하던 때였는데 수진이가 쏘아 올린 자그마한 질문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지금 와서 다시 꿈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면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무모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계속 품고 며칠을 보냈다.


    아이들과의 대화를 한 그 며칠 후, 머리를 식히려고 바실리 칸딘스키와 앨리스 달튼 브라운 전시를 보러 가서 그 생각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그들의 작품에서가 아닌 벽에 붙어있던 그들의 연대기에서 말이다. 칸딘스키는 법률을 공부하다 미술을 30세에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갔고, 40세에 첫 대표 작품을 완성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역시 아이들을 낳고 기르다 아이들 장난감에 비친 그림자를 그리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적어도 미술 문외한인 나도 아는 최고의 미술 작가들이 되었다.


    나는 미술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물론 내 이름을 전 세계에 떨칠 생각도 없다. 아,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니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십수 년 차이나는 우리 17살 친구들과 같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회사 밖에서 경험하면서 찾고 있는 중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또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꼭 꿈이, 내 비전이, 어마어마한 돈벌이가 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하루하루 행복한 일을 찾으면 되는 것 아닌가. 혹시 누가 알아? 나도 5년 후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거나, UN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거나, 그 꼰대들이 득실거리던 오피스 이야기를 푼 웹툰 작가가 되었을지? 설령, 꿈을 못 찾고 이대로 꼰대 이 과장으로 살아도 나는 괜찮다. 그 어린 시절 나도 무언가 되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 것을, 그리고 그 꿈으로 가는 중에(3년이 10여 년이 되어버렸지만) 있었다는 잃어버렸던 열정을 되찾았으니 말이다.


이미지 출처:unsplash.com


#꿈 #아이들 #장래희망 #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