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이로움 May 10. 2022

안 올 줄 알았지. 나에게는.

그렇게 코로나 막차를 타다.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꽉 차게 잘 논 황금연휴 기간을 마무리하는 일요일 밤, 잘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목이 따가웠다. 편도선, 기관지가 워낙 예민한 편이라 살짝만 건조해도 목이 잠기거나 따가운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느낌이 싸했다. 그리고 항상 이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마치 남자 친구의 이별 통보를 예감한 아침과 같은 느낌, 싸하고 이상하게 기분 나쁜 그 느낌이 새벽 내내 계속되었고, 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마침 집에 자가 진단 키트가 없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내 키트를 보시고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하시는 모습을 보니 더욱 불안해졌다. 진단 키트를 보니 정말 아주 희미하게 두 줄이 보였는데, 이 희미한 줄을 판단하시기에 좀 시간이 걸렸다고 하셨다. 역시나 그 싸한 느낌은 틀리지 않는다. 아, 코로나바이러스! 나는 비껴간 줄 알았는데, 역시나 피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난 그렇게 코로나 막차를 탔다.

보건소에서 온 문자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휴일 동안, 동생과는 거의 접촉할 일이 없었고, 부모님도 부모님 일정이 따로 있으셔서, 가족들이 집 안에서 동선이 겹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나 한 명이 걸림으로 다들 PCR 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리고 출퇴근 외에 기존에 있던 외출 계획도 최소화해야 한다. 어머니는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비즈 공예 수업과 컴퓨터 강좌를 일주일 동안 쉬셔야 한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동생은 나름대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핑계로 거리두기 완화 이후로 이틀 건너 있는 회식을 빠질 수 있으니 말이다.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한 뒤, 회사에 연락했다. 코로나에 걸리면 일단 격리 해제일까지 유급휴가이다. 오늘 상무님이 마침 출장에서 복귀하시는 날이고, 다음 주에는 중요한 행사가 있는데 마음이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우리 팀원들에게 매우 미안하다. 다들 괜찮다고 하지만, 한참 6월과 8월에 있는 행사로 바쁜 시기인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자리를 비우게 되니 속만 상한다.


    휴일이라고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떨었던 친구들에게 다 연락했다. 일요일 점심을 친구들과 같이 먹었다. 정말 그날 저녁까지는 내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컨디션이 좋았다.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혹시 모르니 오늘 검사해보고, 수요일에 한 번 더 해봐. 진짜 너무 미안해”. 나도 어디서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죄스러운 마음만 든다.


    가족, 회사, 친구들 이외에 내가 연락을 취한 곳은 헌혈의 집이다. 난 주기적으로 헌혈을 하는데, 금요일에 마침 쉬는 날이라고 오랜만에 헌혈을 했다. 얼른 헌혈의 집에도 연락드렸고, 헌혈의 집에서 해당 혈액은 폐기하신다고 했다.


    격리 이틀째, 어머니는 식사를 내 방 앞에 놓으시며, “밥 먹어!” 노크하시고 사라지신다. 나의 행동반경은 가로세로 네 폭의 작은 방 안이다. 회사에서 매일 모닝커피를 마시며, 선배들이랑 수다 떠는 낙, 점심 뭐 먹을까 고민하는 낙도 없고, 목이 아프니 전화로 수다를 떨 수도 없다. 이번 주 금요일은 처음으로 야구 관련 독서 모임을 하는 날인데, 한 달에 한 번 있는 이 모임을 참여할 수가 없다. 토요일에 오랜만에 친한 동생들과 서촌에서 보기로 했던 약속도, 주일날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피자를 먹으러 가기로 한 약속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오랜만에 생긴 소개팅도 미뤘다. 답답한데, 창문을 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나마 집이 2층이라 내 눈높이의 나무를 보고, 새소리와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는 게 행운이다.

방 문 앞에 놓여진 저녁식사. 나의 소울푸드 육개장도 보인다.

    공식적으로는 휴가이기는 하지만, 컨디션이 괜찮을 때마다 업무 메일을 확인하고 있다. 목 안에서 불이 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약 기운 탓인지 축 늘어지고 몽롱한 기운이 있다. 목이 너무 아파서 전화 통화를 하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옆 팀 책임님께서 “아, 코로나 걸리셨다면서요. 저도 4월에 걸려봐서 압니다. 에고, 몸조리 잘하시고요! 근데 다음 주 회의 자료는 내일 근무 시간 전까지 취합해서 공유해주시고요. 각 팀 팀장님들께 전달 좀 부탁드려요” 라며, 업무 관련 전화를 계속 주신다. 걸려 보셨다면서요… 아는 놈이 더 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빨리 일주일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어쨌든 일주일 동안 증상이  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업무에서  발짝 떨어져, 쉬면서 책도 읽고,  때리며 글감도 생각해  계획이다. 몸은 아프지만,  영과 마음은 더욱 건강해지는 일주일이 되기를 소원해본다.


배경이미지 출처: unsplash.com/@glencarrie

매거진의 이전글 아직 꿈을 찾는 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