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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움 May 03. 2022

나의 월요병

야구 경기 없는 월요일은 어떻게 버티나

    직장인이라면 흔히 월요일 아침 출근을 걱정하며 다른 날보다 피로를 느끼는 월요병을 겪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월요병은 다른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작년에는 이 월요병이 7월 말 즈음 시작하여 12월 초까지 계속되었는데, 올해는 이 월요병이 4월부터 시작되고 말았다.


    벌써 올해 프로 야구 시즌이 개막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작년 12월 초 시즌이 끝나고 한 일주일 정도는 마음이 헛헛하였지만, 그 후에는 마치 내 삶에 야구가 없었다는 듯 없이도 잘 버텨왔었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다시 시작되니, 야구 중계나 하이라이트를 보지 않으면 하루가 다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다.


    특히나 경기가 없는 월요일의 퇴근길은 너무 허전하다. 이것이 나의 월요병의 원인이다. 오늘과 같이 응원하는 팀이 주말 연승, 그것도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나면 증세가 더욱 심해진다.

   

    야구 경기를 처음 접한 건, 십여 년 전 신입 사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입사하자마자 선배 언니의 제안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사내 야구동호회에 매니저로 가입했다. 도루, 안타, 병살타는 커녕 투수와 타자도 겨우 구별하는 정도의 야구 문외한이었던 나는 사실 사내 네트워킹을 위해 그 해 8번 정도 응원을 하러 간 것이 다였다. 동호회 사람들, 혹은 친구들과 직접 경기장에 가기도 하였지만, 그 뜨거운 분위기와 치맥을 즐기러 간 것이었지 야구에는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이후 만났던 남자 친구가 야구를 보러 가자고 해도 차라리 영화를 보겠다며 심드렁하게 대꾸하던 나였다. 룰을 하나도 몰라 야구를 볼 줄 몰랐고, 두 시간 반이 넘는 9회까지의 시간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몇 년간은 야구는 내 인생에 없었다.


    그랬던 내가 야구의 매력에 푹 빠진 건 사실은 오래되지 않았다. 작년 도쿄 올림픽 때, 사람들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무기력함을 욕하는 것을 보고, "아니 도대체 어느 정도로 못하길래 그러는 거야!" 하며 한번 프로야구 경기를 챙겨봤던 것이 시작이었다. 왜 하필 몇 년 만에 본 야구 경기가 9회 말 1사 만루의 희생 플라이 끝내기 경기였을까? 그 이후로 나는 야구라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었다. 퇴근길에도 퇴근 후 집에서도 야구 중계를 시청한다. 어쩌다 저녁 모임이 있을 때면 아무도 모르게 중간중간 스코어를 확인하기도 한다. 몇 개월 만에 바뀐 저녁 루틴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이전에는 야구의 재미를 왜 몰랐을까? 지루하게만 느껴졌었던 야구가 경기 규칙과 선수들 특징을 알고 나면 9회까지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패전 투수가 될 뻔한 투수가 6회 말 타자들의 득점 성공에 결국 승리 투수가 되는 경우도 있고, 다 잡은 경기를 세이브 상황에 역전패당하는 경우도, 넘어갔다고 생각했던 타구가 담장 바로 앞에서 외야수에게 잡히는 경우도, 패색이 짙은 9회 말, 2타점 역전 안타로 희비가 교차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몇 개월간 야구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야구는 우리의 인생과 닮은 묘한 매력이 있어 끊을 수가 없다. 출루한 타자를 지속해서 견제해야 하고, 때로는 고의 사구로 어려운 상대를 넘겨야 하며, 쓰리 볼 투 스트라이크의 풀 카운트처럼 긴장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9회 말 2사 만루에 만루 홈런이나 역전 안타를 터뜨릴 때도 있고,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기도 하며, 끝까지 스윙을 참고 볼넷을 얻어내기도 한다. 괜하게 인생을 2사 만루, 9회 말 2 아웃 등으로 빗대는 게 아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게 야구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너무 닮아 우리는 야구에 열광한다.


    퇴근길에 습관적으로 야구 섹션을 눌렀다가 20시간 후에 경기가 시작된다는 문구를 보고,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야구 경기가 없는 오늘은 지난 주 놓친 경기들 하이라이트를 보며 아쉬움을 대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열하고 다이내믹할 남은 한 주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월요병을 이겨 내본다.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Caitlin Co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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