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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움 May 10. 2022

조 대리님, 이젠 정신 차리셨죠?

사회 초년차, 내가 겪은 끔찍한 성희롱, 성차별 이야기 1

    어쩌면 퇴사할 때까지 두고두고 묵혀두고 있었을 이야기이다. 이 글은 항상 사내에 성희롱 징계가 뜨면, 지금까지도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화자가 되는 어떤 사람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적은 것이다.


    며칠 전, 내가 입사했던 첫 부서의 선배로부터 단체 이메일이 왔다. 거리두기 완화로 오랜만에 같이 근무했던 몇몇 사람들과 한번 모였다는 글과 사진과 함께, 당시 부서원들 모두의 안부를 물어보는 이메일이었다. 선배가 같이 보낸 사진에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한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몇 분 후, 그 이메일에 또 다른 단체 이메일이 왔다. 아직도 이름 세 글자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그 사람의 이메일이었다.


    10년 전,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영업부서에 배치되었는데, 그 부서에 여성 공채가, 그것도 신입 사원이 배치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회사 나름의 새로운 시도였다. 첫 사회생활에서 맡게 된 업무도 재미있었고, 실장님, 팀장님을 비롯해, 많은 선배가 모두 나를 따뜻하게 잘 챙겨 주셨다. 조 대리 그 사람만 빼고는 말이다. 당시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의 그는 나이가 지긋하신 실장님보다도 꼰대였으며, 그 누구보다 성차별과 성희롱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아직까지도 혐오하는 이유다.


    다른 팀 경리 여직원이나 나의 유일한 여자 동기였던 세라를 보고는, “하드웨어가 죽여줘!”라고 소리치며, 손짓으로 팔자를 그리며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자신이 담당하는 업체 여자 직원과 술자리에서 19금 진실게임을 한 이야기, 안마방에 갔던 이야기를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내 앞에서 자랑하듯 늘어놓곤 했다. 나에게는 “살 좀 빼야겠다. 그래야지 남자가 달라붙지”, “남자를 알아야 해. 남자를 안다는 의미가 무슨 말인지 알아?”라고 물으며 혼자 기분 나쁜 웃음을 짓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내가 잘 못 들었나 싶었다. 내가 들었던 의미가 그 의미가 맞는지 속으로 곱씹어 보며 생각했다. 처음 몇 번은 그냥 세상에 별별 사람 다 있구나, 미친놈인가 보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입사하고 첫 분기의 마감 회식 날이었다. 음식을 먹고 있는데, 그가 그 음식을 성행위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지금도 그때 그 장소, 그 말투,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그 사람이 그 한마디를 뱉자마자 난 자리에서 헛구역질했다. 옆에 있던 최 과장님이 조 대리에게 입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가 표현한 그 단어가 자꾸 생각나서, 화장실에서 먹은 음식을 다 게워냈다. 그 단어는 차마 글로 조차 옮겨쓸 수 없는 단어다.


    그는 성차별에도 당연 1등이었다. 영업팀 특성상 업체에서 많은 손님이 사무실로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커피를 타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입사하고 6개월이 지나고, 나도 맡은 업무로 바빠졌다. 그리고 남자 후배들도 들어왔다. 어느 날, 내가 업체와 통화하고 있는데, 실장님의 손님이 찾아왔다. 나의 통화가 길어지자, 눈치 빠른 남자 후배들이 대신 커피를 타고 있었는데, 박 대리가 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야! 이걸 남자애들을 시켜? 이런 건 여자가 타는 거야. 여자가 타 줘야지 더 맛있어”하며 나를 다그쳤다.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그러나 그때 남자 직원들 중에서 아무도 그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옆 팀 여자 대리님이 나중에 듣고는 나를 꼭 안아주셨을 뿐이다.


    어떠한 성장 과정을 겪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는 차별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경리 직원들에게 반말하기 일쑤였고, 술 먹으러 가자며 추파를 던지기를 밥 먹듯이 하며, 뒤돌아서면 그녀들을 무시하는 험담을 내 앞에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또 경리 언니들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주무르고 했다. 나에게 “야, 너는 왜 맨날 밥을 경리들이랑 먹냐? 넌 공채야. 줄 잘 서라!”라며, 내가 따르던 경리 선배들을 무시했다. 혐오스러웠다. 그가 멀리서 다가오면 온 신경이 그의 발걸음에 집중되었다. “제발 내 쪽으로 오지 마! 제발 나에게 말 걸지 말아줘” 이런 주문을 쉴 수 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그는 강한 사람한테 약하고, 약한 사람한테 강한 사람이었다. 자기보다 밑 직급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대하면서, 임원들이나 자기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변 사람 민망할 정도로 깍듯하게 대했다. 역겨웠다. 모두가 그가 이상한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뒤로는 그 사람 흉을 봐도,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다. 그가 위험 수위를 왔다 갔다 하는 발언을 해도, 적당히 하라는 말 정도로 그를 제지했다. 이것이 모두가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이었다.


    나의 동기 오빠들, 그리고 유일한 여자 동기였던 세라, 우리가 모이면 항상 조 대리 이야기를 했다. 동기 오빠들에게도 그의 언행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우리였기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몇 개월 안 된 직장생활에서 이런 것을 공론화해야 할 것인가 아무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어디에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때는 지금처럼 성희롱, 성차별에 엄격하지도 않아서, 사내에 그러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일이 생기면, 별것 아닌데 여자가 유별나다는 식으로 여론을 여직원에게 안 좋은 쪽으로 몰아갔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몇 번을 감사팀 사내 신문고에 글을 썼다 지웠다 했었다.


    같은 사무실 안에서도 최대한 그와 마주치는 것을 경계했다. 한 일 년 반 정도가 지나고, 조 대리는 다른 조직으로 옮겨갔다. 나 역시 직장 내 여러 팀을 옮겨 다니며 근무했고, 이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시대가 변해서, 이 사회가 또 회사가 더이상 성차별, 성희롱에 관대하지 않다. 요즘 같은 시대에 지난날 나에게 했던 발언들을 똑같이 하면 해고감인데, 이제 그도 정신을 차렸나 보다. 지금까지 다른 계열사에서 잘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후에 서술할 다른 에피소드까지 합치면, 내가 처음 3년 동안 한 팀에서 겪었던 일들은 참으로 어메이징 하다. 10년이 지난 지금, 많이 후회한다. 용기 내어 신고할 걸, 당당히 사과를 요구할 걸, 면전 앞에서 욕이라도 할 걸, 뺨이라도 때릴 걸… 하고 말이다. 어쩌면, 업무상의 이유로 조 차장이 된 조 대리를 곧 대면할 상황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그전까지 더 기막힌 복수의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나는 꼭 그에게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당신 참 소름 끼쳤다고… 이제는 나이도 드실 만큼 드셨으니, 제발 각성하시고 여직원들에게 그러시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때처럼 그러면 당신은 당장 해고감이라고 말이다.


배경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cg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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