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차, 내가 겪은 끔찍한 성희롱, 성차별 이야기 2
입사한 지 1년째 되었을 때, 조 대리와 비슷한 실장이 새로 부임했다. 내가 처음으로 모셨던 최 실장님은 참 젠틀하시고 따뜻하신 분이었는데, 역시 호인들은 정글 같은 회사생활에서 오래가기 어렵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지금은 퇴임한 새 실장은, 그 이후 승승장구해서 다른 조직에 있을 때 또 만나게 되었고, 조 대리도 조 차장으로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새 실장이 오고 나서부터는 부서 전체가 조 대리 스타일로 바뀌었다. 실장 역시 이상한 사람이었다. 틈만 나면 커피를 찾았다. 그가 찾는 커피는 커피인지 보리차인지 맨눈으로 보기에는 모를 정도의 아주 묽은 커피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묽게 타 달라고 나에게 직접 말하면 될 것을, 부임 후 회식 날 모든 사람 앞에서 내게 면박을 주었다. “미스 리는 커피를 사약처럼 타 와. 나 죽으려나 봐! 허허”. 그다음 날부터 나는 커피를 아주 묽게 탔다. 그 후 내가 다른 팀으로 발령 날 때까지, 그는 항상 내가 제일 자기 취향을 잘 안다면서, 미스 리가 타 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회식은 이전보다 더 자주 있었다. 회식 날이 다가오면 회식 3일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아 몸이 아팠다. 실 회식 날이면, 나와 6개월 후배인 옆 팀 지영이가 항상 실장의 좌우로 앉아 고기를 굽고 술 시중을 들어야만 했다. 항상 실장의 좌와 우는 나와 지영이 자리였다. 어느 회식 날이었다. 치마를 입었던 나의 허벅지에 바닥을 짚고 있던 실장의 손이 닿았다. 실장이 하는 말이 “오우! 젊은 여성 허벅지가 닿으니 찌릿찌릿하네!”라며 껄껄 웃었다. 그에게는 나와 동갑인 딸이 있었다. 아버지뻘인 그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딸도 어떤 공기업에 취업했다고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그의 딸도 이렇게 상사한테 당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 옆 실 실장님이 회식에 합류했다. 노래방에서 블루스를 같이 추자며,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그 아저씨와 춤을 추었다. 그 역시 나와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었다. 아빠가 생각났다. 나는 아빠가 여직원이 없는 3인 사무실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엉엉 울었다. 사실 그날만이 아니다. 회식 날은 언제나 지옥이었다. 회식 날만 되면, 그래 사회생활은 다 똑같이 힘들다고, 남의 돈 벌고 살기는 힘든 거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며 심호흡을 하고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이런 지옥 같은 회식이 반복되었지만, 부모님께 말하면 속상해하실까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다. 간혹 다른 본부의 동기들을 만나면, 서로 본인들 팀 이야기를 하는데, 마치 누구네 회식 자리가 더 상식 밖이고, 어이가 없는지 내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다른 본부의 미주는 아저씨들 따라서 룸살롱도 가봤고, 자기 옆에 앉은 언니랑 도란도란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 언니가 “참 거기도 인생 힘들게 사시네요.”라고 했다고 했다.
입사 3년 차, 그동안 부서에는 4명의 남자 후배들이 들어왔다. 그런데도 신문 배달과 커피 타기는 계속 나의 몫이었다. 남자 후배들은 커피를 대신 타 주고는 “선배, 제가 이거 들고 가면 혼나요. 제가 타 놨으니까 선배가 들고 가 주세요.”하고 미안해하며 눈치를 볼 때도 많았다.
한 번은 아침 회의에 해장한답시고, 나에게 딸기 바나나 스무디 12개를 사 오라고 시켰다. 나 혼자는 들 수 없으니 새로 온 남자 인턴과 같이 갔다. 그 인턴은 이 팀의 분위기를 아무것도 모르기에, 쟁반에 딸기 스무디 12개를 담아 호기롭게 회의실로 가지고 올라갔다. 회의가 끝나고, 김 부장님이 나에게 나무라는 투로 내가 쟁반 심부름을 그 친구에게 시켰냐고 물어봤다. 왜 남자는 쟁반 서빙을 하면 안 되는 건지, 여자가 하는 건 맞고 남자가 하는 건 잘못된 법이라도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자 후배들이 나의 눈치를 보고 미안해하곤 했지만, 나는 그들이 더 안쓰러웠다. 여자 직원들이 집에 가고 나면, 그들은 더 한 것도 경험한다고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남자 후배들과 현장에 나와서 실습하고 있는데, 실장이 격려한답시고 점심을 사준다고 했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실장이 해준 이야기는 가관이었다. 여자 직원들이 모두 다 간 후, 남자들만 간 2차 노래방에서 남자 후배들에게 상의 탈의를 시키고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실장이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남자 후배들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괴상하고 이상한 부서에서 입사한 지 약 3년 후 난 탈출을 했다. 사실 그 팀에서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사람들이 주도하는 성희롱과 차별이 힘들었지, 내가 맡은 일도 나름 재밌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들 따뜻하고 좋은 분들이었다.
그렇게 다른 부서로 옮긴 첫날, 나는 습관처럼 신문 배달을 하고, 커피를 탔다. 부서원 모두가 이 팀에서는 커피는 각자 타는 거고, 신문은 선임들이 가져오는 거니 앞으로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나를 여직원이 아닌 3년 차 직원으로 동등하게 대해주었다. 나에겐 그것이 문화충격이었다.
회사생활을 한 지 10년째, 많은 부서를 옮겨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조 대리와 그 실장과 같은 사람들은 만난 적이 없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분명 그 둘을 신고했을 것이다. 제발 딸 가진 부모들이여, 딸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기 바란다. 남의 집 귀한 딸들에게 당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 딸도 직장에서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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