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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움 Sep 21. 2022

마감없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어느 4년 차 사원의 외침

지난 10여 년간의 회사 생활을 회상해보면, 무엇보다 업무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판매팀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면역력이 약해져서인지 손가락에 사마귀를 달고 살았고, 코피도 자주 났었고, 방광염도 자주 걸렸었던 3년간의 그 시절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왜인지 그 때 기억이 제일 머릿 속에 선명하다.


나는 숫자에 약한 편인데, 매달 20일경 마감 판매량을 예측하고, 다음 달 판매량까지 예측하고 거기에 따른 판촉 예산을 계획하는 일은 매달 고문이었다. 그리고 이 일이 점점 손에 익고, 항상 엇나가던 판매량과 예산 실적이 어느 정도 맞추어나갈 때쯤, 마감이 없는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때가 그 팀에 발령난지 3년이 되던 쯤이었다.이제는 마감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만, 내가 정말 "남의 돈"을 벌고 있구나라는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마감이 어떤 때는 조금 아쉽다.


그 3년동안 나는 마감일이 다가오면 집에서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해서 회사에 5시 30분까지 갔다. 회사와 조금 더 집이 가까웠던 내 사수는 항상 새벽 3시 30분에 출근하곤 했다. 한 번은 4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탔는데, 무면허 승합차와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눈을 떠보니 나는 응급차에 타고 있었고, 응급차는 회사 근처 병원에 도착했다. X-ray를 찍고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다는 소견을 받고서 회사에 출근하니 새벽 6시 30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팀에 와서 21번째 마감을 하고 퇴근을 했다. (이 에피소드에는 우리 팀장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만, 다음 글을 위해 잠깐 아껴두어야겠다.)


마감날 오후 5시 30분만 되면 모두가 신경이 곤두서서 극에 달하는데, 그때마다 아마 우리 팀 사람들은 나와 나의 사수인 과장님의 매달 어김없이 루틴처럼 이어지는 신경전이 볼 만했을 것이다.

"야, 너 빨리 안 해! 이거 지금 틀렸잖아. 빨리 고치라고! 선은 이게 뭐냐고. 야 3.4%? 장난해? 똑바로 안 봐?"

"지금 하고 있습니다. 자꾸 그렇게 옆에서 소리 지르시면 제가 더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마감날은 온 곳에서 고성이 오갔다.

우리 둘 뿐 아니라 평소에는 존재감 없이 조용하던 팀장님도 고성을 질렀다.

"마감 숫자 더 만들라고, 00 본부에 전화해봐!"

"더 할 수 있잖아! 안 그래? 다음 달에 그런 더 힘들어진다고!"

처음에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적응이 힘들어, 화장실에서 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적응이 되자, 매번 짜증을 내는 과장님의 잔소리를 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매 달 더 잘해보려고 노력했다. 막상 고성이 오가다가도, 8시 마감 후 시원하게 맥주 한잔하며,

"아까 소리 지른 거 미안해. 잘 해보자. 다음 달에는!"

"저도 더 잘해볼게요. 죄송해요 과장님"

이렇게 술과 함께 화해를 하며, 우리의 n번째 마감을 마감하던 그 시절이 가끔 생각난다.


Photo by Towfiqu barbhuiy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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