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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은주 Dec 07. 2023

제주를 지켜온 버팀목 '해녀'

제주 해녀이야기

제주는 해녀의 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도가 잔잔한 날이면 섬 어디서나 바다 위에 무리지어 뜬 주홍색 테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해산물로 가득 찬 커다란 망사리를 등에 짊어지고 철벅이며 파도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해녀들은 오랜 세월 제주를 지켜온 버팀목이다.   

   

해녀(海女)는 바닷속을 잠수해 소라나 전복, 해삼, 미역 같은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제주에서는 해녀를 잠녀, 잠녜, 잠수(潛嫂) 등으로 호칭하며 바다에서 전복이나 소라, 미역, 해삼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은 물질이라 부른다. 보통 잠수 시간이 1분 내외로 오로지 자신의 호흡에만 의지해 맨 몸으로 바닷속과 수면 위를 오가며 작업한다. 제주의 해녀 중에는 2분 남짓까지 잠수가 가능한 이들도 있는데 아무런 호흡 장치 없이 수심 10m에 이르는 바닷속에서 채취 활동을 이어간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어릴 때부터 헤엄과 물질을 배우며 오랜 시간 바다에 적응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주의 여성들은 7~8세가 되면 물헤엄을 배우기 시작해 15~18세 무렵 애기 해녀로 인정받았다. 30대 중반쯤 물질에 능숙해지면 상군 해녀 정도의 기량을 갖추게 된다. 해녀들은 연령이나 물질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는데 이에 따라 해녀들 간에 위계질서가 세워진다. 해녀들의 안전과 공정한 작업을 위해 이 같은 위계질서는 무척 중요하다. 바다는 다함께 가꿔가는 풍요로운 밭인 동시에 언제든 위험해질 수 있는 불안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물질 작업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며 공동이 정한 규칙과 약속 안에서 함께 지켜가는 형태로 이뤄져 왔다. 제주의 바닷가 어촌 마을마다 어촌계와는 다른 독립적인 해녀회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 같은 공동체적 질서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제주 해녀의 고된 삶

제주에서 해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다. 전통적으로 제주의 해녀들은 반농반어 형태로 생업을 이어왔다. 물질이 가능한 시기엔 바닷일로, 그 외의 시간은 밭을 일구는데 쏟아 붓는다. 그러다 보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한시도 편하게 쉬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물질이 가능한 날이면 해녀들은 어김없이 테왁 망사리를 끼고 바다로 나선다. 그녀들의 모습에는 옛적 배를 타러 나간 남자를 대신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 왔던 제주 여성의 강인한 생활력이 강하게 묻어나온다. 

사실 해녀들이 1년에 물질을 할 수 있는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기상 상태로 인해 보통 한 달에 10~15일 정도 물질을 하며 소라 등 어패류의 산란기 기간에는 어장 보호를 위해 오랜 시간 물질이 금지된다. 물질 만으로 생계가 어려우니 해녀들은 밭으로 발걸음을 할 수 밖에 없다. 

물질 작업도 만만치는 않다. 바다에 들어간 날이라고 늘 망사리를 가득 채워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바람 많은 날이면 바닷속도 요동을 친다. 이런 날은 바닷속에서도 멀미가 난다. 해녀들 가운데는 바다에 들어가기 전 미리 멀미약 등을 먹기도 한다. 고령의 해녀들은 끊임없는 잠수 생활로 인해 잠수병을 얻기도 한다. 어릴 적부터 단련해 왔다 하지만 해녀들에게도 물질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녀들이 잠수 후 물 밖으로 가쁘게 숨을 내뱉을 때 나는 소리를 ‘숨비소리’라고 하는데 수많은 경험을 통해 터득되고 전수되어온 해녀들의 호흡법이다. 바닷속에서 참고 있던 숨을 한꺼번에 내뱉고 몸 안에 신선한 공기를 빠르게 받아들이며 짧은 휴식에도 물질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숨을 고르는 해녀들의 입에서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처럼 ‘휘오이, 휘오이’하는 소리가 난다. 숨비소리는 오랜 시간 축적되어 내려온 해녀들의 삶의 메아리이자 힘차게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소리다.  

    

인류가 지켜가야 할 제주 해녀 문화

제주 해녀의 기원은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 선사시대 유물 가운데는 전복껍질을 이용한 칼 등이 발견돼 이 시기에 해녀와 같은 활동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제주 해녀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도 나타나 있는데 1629년 이건이 쓴 ‘제주풍토기’에는 해녀들이 바다에서 전복을 채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는 용두암 근처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같은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제주의 해녀는 점점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1만5,000여 명에 이르던 해녀 수는 현역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가 수 천명에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급격히 줄었다. 게다가 절반 이상이 60~70대 이상 고령자이고 20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해녀’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행인 것은 긴 세월 이어져 내려온 제주 해녀 문화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 제주 해녀가 전 세계적으로 보존하고 지켜나가야 할 인류의 문화가 된 만큼 국가 차원의 지원 정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성산일출봉 해녀 물질 공연

“이어도 사나, 어이, 어이~” 푸른 바다 너머로 수 십 년간 물질을 해온 그녀들의 애달픈 노랫소리가 퍼져나간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제주의 어머니. 기나긴 세월을 이어온 해녀들의 이야기가 철썩이는 파도 속에 켜켜이 쌓여 간다.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지인 성산일출봉 절벽 아래 해안가에서는 매일 오후 해녀 물질공연이 열린다. 관광객들이 가까이서 해녀들을 만나고 교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푸른 바다와 성산 일출봉을 배경 삼아 해녀 몇 분이 물질하러 나설 때 불렀던 노랫가락 몇 마디 들려주는 것이 전부인 공연이지만 왠지 그 울림이 크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해녀들이 바닷물에 입수해 물질하는 과정을 시연한다. 바닷속에 들어간 해녀들이 문어나 소라, 생선 등을 건져 올리면 관람객 사이에서는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해녀들이 잡아온 해산물을 구입해 즉석에서 맛볼 수 있다. 

공연시간 : 13:30, 15:00 1일 2회      


해녀박물관

제주 해녀를 주제로 만든 전문 박물관으로 영상관과 더불어 4개 전시관에 해녀의 역사, 문화, 생활 모습 등을 자세히 전시하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은 전통적인 해녀의 집을 비롯해 해녀들의 물질할 때 쓰는 도구와 해녀복의 변천사, 역사 속에 나타난 해녀들의 모습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해녀항일운동에 관한 기록과 출가해녀들에 대한 자료들이 눈에 띈다. 이 밖에 제주도 전통 고기잡이 배인 테우도 실물 크기로 전시되어 있다. 


관람시간 : 09:00~18:00 

관람요금 : 어른 1,100원, 청소년 500원

휴관일 : 1월1일, 명절 당일, 매월 첫째, 셋째 월요일 휴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길 26

문의 : 064-782-9898 / 

www.haenye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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