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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은주 Aug 19. 2023

갑자기 말 울음 소리가?

제주 밤산책 일기_819

밤 8시. 

매일 밤 산책을 나서는 시간입니다.

걷기 운동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이젠 하루 일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어버렸어요. 

동네 순찰하듯 이 골목 저 골목 마음 가는 대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신기한 건 언제부턴가 매일 같은 길을 가고 있는데 단 한 번도 같은 느낌인 적이 없었어요. 똑같은 밤길을 걷는데 어젠 고양이가 말동무가 되어주고, 오늘은 말이 마중을 나와주었죠.

바닷가 포차에도 사람들이 많았어요. 해변에 닿기도 전에 웃음소리가 먼저 들려왔답니다. 열대야도 가시고 바람이 잔잔하게 불어와 야외에서 한 잔하기 좋은 날씨였죠. 멀리 어선들이 불을 밝히고, 커다란 파라솔 아래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즐거워 보여 사진에 담아 보았어요. 도시의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겐 한여름 밤의 로망 같은 풍경이겠죠? 유쾌한 웃음 소리에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웃음과 행복은 전염되는 거라는데, 진짜 단 1초도 걸리지 않더라구요. 


늘 걷던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갑자기 개가 짖어대 깜짝 놀랐습니다. 

"너, 오늘 나 처음 보는 거니? 너희 집에 가는 거 아니야. 내 갈길 갈테니까 그만 좀 짖으렴."

개가 짖어대서 그런지 항상 있던 자리에 고양이가 없었습니다. 요즘은 한 집에 개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기도 하지만 야생 고양이가 많은 시골에선 이 둘은 상극입니다. 고양이만 나타났다하면 컹컹대며 마을이 떠나가라 짖어댑니다. 겁 많은 아기 고양이는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지만 연차가 된 녀석들은 개가 짖던지 말던지 태연히 제 할일을 하곤 합니다. 대부분 개들이 묶여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개보다 고양이가 훨씬 영악한 것 같아요. 


오늘따라 유난히 별이 많다며 혼자 감탄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푸르르르~~~" 하는 소리에 또 깜짝 놀랐답니다. 어두워서 몰랐는데 골목 한 귀퉁이에 말이 서 있었네요. 말 울음 소리가 너무 가까이 들려 얼른 옆으로 비켜섰지요. 혹시라도 말이 발로 차버릴까 무서웠거든요. 말은 다리를 앞 뒤로만 움직일 수 있어서 옆에 서 있으면 안전하답니다. 돌연변이가 아닌 이상 갑자기 돌려차기를 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마을에 말을 키우시는 어르신이 계시는데 오늘은 집 바깥에 묶어 놓으신 모양입니다. 가끔씩 말을 타고 동네 한 바퀴 다니시는데 언제나 위풍당당해 보이십니다. 말이 몇 번 더 푸르르 거리더니 잠잠해집니다. 흠... 잠을 자는 건가. 말은 서서도 자고, 누워서도 자고, 앉아서도 잡니다. 어디선가 봤는데 하루에 절반 이상은 잠을 잔다고 하네요. 

"그럼, 오늘은 이만 안녕! 다음에 또 보자."

고양이 대신 말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합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하늘에 별이 한 가득.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내일 하루도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라봅니다. 굳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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