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밤산책 일기_820
밤 8시.
오늘도 어김없이 산책을 나섰습니다.
아직 마감하지 못한 일이 있어 잠시 고민했지만 짧게 다녀오기로 하고 신발을 신었죠.
현관문을 연 순간 샛노란 초승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머, 무슨 초승달이 저리 날렵하게 생겼담.'
눈 높이에 걸려 있는 달이 며칠 전 깎았던 손톱처럼 보였습니다.
아래쪽으로 배를 볼록 내민 달이 너무 예뻐 산책가는 것도 까먹을 뻔했네요.
언젠가 '사람들이 빈 소원이 가득 쌓여 무거워진 달이 제주에 떨어졌다'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테마파크를 가본 적이 있는데 그 때 만난 달도 참 크고 아름다웠죠. 그리고 보니 달님에게 소원을 빌어 본게 언제였던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어릴 적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런저런 소원을 구구절절 읊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소원이 어디 빈다고 이루어지겠어' 하며 현실적인 생각만 앞세우고 있네요. 단지 나이를 먹은 탓일까요. 꼭 이뤄야 하는 강박적인 마음이 아닌 지금도 무언가 꿈을 갖고 있다는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건데 말이죠.
달빛이 미처 도달하지 못한 빈 공간엔 별이 가득 흐르고 있었죠.
수많은 별들이 소리 없는 반짝임으로 마치 합창하는 것 같았어요.
"네 소원을 말해봐~"
그래서 골목을 돌고 돌아 다시 집을 향해 갈 때까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죠. 지금 나는 어떤 소원을 빌고 싶을까. 갑자기 머릿속이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한라산을 거뜬히 오르내릴 정도로 튼튼했으면 좋겠고, 통장에 숫자가 많이 찍혔으면 좋겠고,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살아보면 좋겠고...
누가 들으면 지니의 램프라도 줏은 줄 알았겠어요.
혼자만의 소원 놀이에 한참 신이 나서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물이 콸콸 솟아나오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응? 왜 땅 속에서 물이 솟아나고 있지?'
난데 없이 용천수가 터진 것도 아닐테고 이상한 일이었죠. 여긴 물이 터져나올 만한 곳이 아니거든요.
문득 집을 나서기 전 수돗물을 틀었을 때 푸르르 거리며 나오다 멈추다를 반복했던 것이 떠올랐어요.
혹시... 상수도가 터진 건 아닌지. 만약에라도 상수도 공사를 하게 된다면 큰일이에요. 이 더운 날 물이 안 나온다고 상상하니, 정말 안 될 말이죠.
"달님아, 별님아! 내 소원은 말이지..."
내일 아침이 되어 보면 알겠죠?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아닌지.
일단 걱정은 접어두고,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