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떠나보낸 계절
작고 예쁜 우리 집 강아지 여름이는 이름처럼 여름에 왔다 여름에 갔다.
17년 전 12 월 무척 더웠던 그 해 여름.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꼬물대던 여름 아기는 강아지용 우유를 두 시간에 한 번씩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자곤 했다. 너무나도 예쁜 생명체가 잠만 자고 있는 것이 야속해 나와 동생은 자고 있던 여름이를 만지고 쓰다듬고 결국 귀찮음에 눈을 뜰 때까지 그 옆을 떠나지 않았다. 털은 부드러웠고 윤기가 흘렀다. 만지면 부드럽고 폭신한 발바닥에서 나던 꼬릿 한 냄새조차도 좋았다.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 몇 시간이고 앉아있었는데, 그 따스한 온기가 너무 좋아 겨울이면 여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이는 이 무릎, 저 무릎 옮겨 다니며 우리 가족에게 자신의 온기를 나눠주었다.
여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쯤 되었을 때,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소식을 듣고 빈 집에서 혼자 울고 있던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얼굴을 비비고, 손등을 핥아주던 그때 나는 여름이를 온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단순히 귀엽기만 한 애완견이 아니라 나와 감정을 공유하는 가족이 되었다.
학업을 위해 잠시 집을 떠나던 때에도, 오 년 뒤 다시 돌아와 짐을 풀 때에도, 결혼을 하고 두 번의 이사를 할 동안에도, 여름이는 내 삶의 중요한 모든 순간에 함께 했었다. 지유를 낳으러 가던 날에도 자꾸만 뭉치는 배를 부여잡고 내가 마지막으로 한건 여름이를 산책시켜주는 일이었다.
시간은 흘러 여름이 가을이 되고, 또 겨울, 봄, 다시 여름이 되었다. 더 이상 털에는 윤기가 흐르지 않고 귀는 어두워졌다. 눈은 백내장 때문에 하얗게 변해 잘 보이지 않았고, 다리는 휘어 구부정한 자세로 걸음을 걸었다. 다시 어릴 적으로 돌아간 듯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잠을 잤다.
우리는 열일곱 번의 여름을 함께 했고, 수 없이 많은 추억들을 공유했고, 그렇게 여름이는 갔다. 우리에게 처음 왔던 바로 그 계절에.
여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모습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 눈으로 확인하면 그때엔 죽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차라리 보지 않고 그냥 여름이가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살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싸늘하게 식은 여름이를 대면했을 때 나도 모르게 빨리 나의 온기를 나누어 주어야겠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토록 따뜻했던 여름이에겐 더 이상 온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동생과 함께 여름이를 양지바른 곳에 묻으며 오래 살아주어 고마웠다고 이야기했다.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했다고도. 일생을 다 바쳐 온기를 나눠주고 간 여름이 덕분에 많이 웃었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죽음의 다섯 단계라고 했던가. 부정과 분노, 타협을 거쳐 아직은 우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완벽한 수용의 단계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마지막 길을 오래도록 함께 해주고 싶다.
2019년의 12월은 슬픈 여름으로 기억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