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하는 우당탕탕 여행기 - 그 서막 (The Prologue)
부제: 나에게 여행이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나만의 이야기)
이민 1.5세대의 자녀로서, 이미 이십오 년 전 살던 곳을 떠나 지구 저 아랫 편으로 건너왔으니
삶의 최초 여행은 그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의 없는 선택이었지만 떠나왔고, 머물렀다.
그리고 아직 난 여행 중이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가 속한 곳이 예전 그곳인지, 지금 이곳인지 잘 모른다.
어디에서도 나는 이방인이고, 비주류의 삶을 산다.
당연히 돌아가야 할 곳도 미정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간절하게 주류이길 원했던 적도 없다.
적당한 거리감은 내 쪽에서 항상 유지해 왔다.
처음부터 그들과 같을 수 없다는 전제를 두고.
한 곳에 머물러야겠단 의지가 크지 않았던 것치곤,
전혀 떠돌 수 없는 직업의 길로 들어서 버렸다. (아이코)
아이러니하게도 진로가 정해진 그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떠나기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
사실 그 시작은 이민이 아니라,
중학생 때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지구별 여행자'라는 류시화 시인의 책을 빌리게 되면서 부터이다.
한인 밀집 지역에 위치한 도서관에는 한쪽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 대여 가능한 한국 도서들이 꽤 있었는데,
별다른 기준 없이 우연히 골라든 책이 훗날 삶의 많은 것을 바꿔놓게 되었다.
그 후에 접하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 소리' 역시 큰 울림을 준 책이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 딱지가 붙자마자
공부하지 않는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이 모이면 비행기 표를 끊었다.
긴 여름 방학이 찾아오면,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떠났다.
누군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했었지.
어린 나에게 적어도 세상이 넓은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직장인이 되고의 삶은 더욱더 단순해졌다.
오 개월 하고도 일주일 일을 하면, 삼 주를 떠났다.
그렇게 두 번을 반복하면 한 해가 지났다.
삼 주의 꿈같은 시간을 위해서라면 오 개월쯤은 아깝지 않았다.
꿈꿀 수 있는 시간이라, 돌이켜보면 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
나에게 여행은 충동이다.
꽤나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어느 정도 계획된 충동이라는 게 특이점이랄까.
시기는 미리 정해두고, 장소는 미정으로 남겨둔다.
'충동의 여지를 갖는 것'
이 것이 설레는 여정의 출발점이다.
어디갈지 고민하는 순간만큼 설레는 시간은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장소가 정해지는 순간부터 여행은 현실이 된다.
세계와(?) 동떨어진 남반구 끝자락에 위치한 호주의 지리는 고려(심려) 요소이다.
여행하고 싶은 나라들이 밀집한 북반구와는 반대인 계절,
긴 비행시간과 편리하지 않은 동선, 값비싼 비행기 표.
그 외에도 날씨와 환율, 세계적 이벤트,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을 적당히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은 최대한 나중까지 미뤄둔다.
행복한 꿈을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
+
호주 여러 도시와 비교적 가까운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서유럽 일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와 진입장벽이 낮은 한국과 일본, 조금 더 무대를 넓혀 동남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를 거쳐 인도와 네팔, 파파 뉴기니, 홍콩, 칠레, 페루 볼리비아를 돌아 다시 네팔과 뉴질랜드, 바누아투, 발리 그리고 이탈리아.
행복한 설렘의 시기를 거쳐, 청춘의 한 자락이 머문 공간들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 한 사람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여행을 앞두고 있다.
여지껏의 여행관을 뒤 흔드는,
만 35세, 34세, 6세, 4세의
코시국 끝 자락 여행
지금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