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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n Voy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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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피 Jun 24. 2022

네? 22시간이 걸린다고요?

시드니에서 파리까지

시드니에서 유럽을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다.

한 번 이상의 경유를 거쳐야 하는데, 짧은 여행 시간이 주어진 만큼 최소한의 경유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된 시드니 발 - 두바이 경유 - 파리 행 비행기

시드니에서 두바이까지 14시간 30분

두바이에서 파리까지 7시간 20 분

22시간 가까이 달하는 기나긴 비행이다. (맙소사)


심지어는 이것이 최단 거리, 최단 시간 비행이다.

'호주는 왜, 왜 이렇게 멀리 혼자 뚝 떨어져 있는 거야!!!'

티켓팅 할 때마다 반복되는 구시렁 레퍼토리는 말해 뭐해.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22시간이라는 숫자를 보고도 이젠 크게 놀라지 않는다.

잦은 실망과 좌절로 인해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단계에 까지 도달한 것이다.

주말 껴서 일본이나 홍콩 다녀오는 한국 사는 친구들 이야기,

당일치기로 영국에 뮤지컬 보러 다녀오는 독일 사는 친구 이야기는 꿈만 같은 저 세상 이야기다.

섬이자 나라인 동시에 대륙인 이 큰 땅 덩어리에선 도시 간의 이동도 비행기를 타야 한다.

동쪽에 위치한 시드니와 서쪽 도시인 퍼스 사이엔 두 시간의 시차와 다섯 시간의 비행거리가 존재하는데,

이는 대략 영국 런던에서 이집트 카이로에 가는 시간이다. (무려 대륙간의 이동 시간과 맞먹는 것이다.)

이쯤 되자 해외여행은 정말 어지간한 결심으로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의 여행을 결심할 때 최우선 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밤 비행을 택하는 것인데,

낮 밤이 거꾸로인 두 나라에 어디를 기준으로 밤 시간대를 정해야 할지 모호했다.

하지만 어차피 하루 온종일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어느 쪽도 큰 의미는 없다고 판단, 비행시간이 긴 첫 비행을 밤으로 선택했다.


밤 아홉 시 출발 비행기를 타면, 과연 저녁밥을 줄까?라는 왠지 물어보기 부끄러운 궁금증부터

자리가 많이 남아서 누워갔으면 좋겠다, 라는 간절한 소망까지.

착석과 동시에 흔들리는 눈빛으로 이리저리 빈자리를 스캔하며 혼자만의 눈치게임을 시작하는 어딘가 찌질한 모습까지 상상해본다. 혼자 떠날 땐 크게 상관없던 사소한 것들이 신경이 쓰인다는 것은 첫(?) 장거리 여행에 대한 불안감 내지는 눈앞의 아이들에 대한 불신, 뭐 그 비슷한 것들 때문이리라.


꼼수를 써보겠다며 좌석을 퐁당퐁당, 선택했더니만 (가운데만 비워두고 양쪽 자리를 두 줄 예약했다)

가운데 자리까지 누군가의 예약으로 채워졌다.
역시 잔머리도 때를 봐가며 써야 한다고, 설마 비행기가 만석일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아니, 지금 코시국 아니었어?'

하기사, 우리 같은 조무랭이(?) 여행자들이 다니기 시작한다는 것은, 본격적인 코로나와 함께 하는 삶의 시작을 알리는 것과 같다. 할 수 없이 공항에 일찌감치 도착해 사정을 얘기하고 네 좌석이 함께 붙어있는 좌석을 겨우 배정받았다. 그래 코 시국은 이제 끝났어.


사람이 꽉꽉 차 있는 비행기에서 마스크를 쓰고 아이들과 장시간을 비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그동안 차곡차곡 응집되어있던 기대감과 그리움이 불안감과 불편한 감정들을 희석시켜 주었다.  

다닥다닥 붙어서 옴짝달싹 못하고 앉은 채 불편한 자리에서 잠을 청한다 한들,

이런 불편함 조차 사무치게 그리웠던 지난 이 년 간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편안한 차림으로 캐리어를 끌고 체크인 카운터 번호를 확인하는 승객들,

출국장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나누는 마지막 입맞춤과 포옹,

탑승 전에 항상 들러줘야 하는 공항의 맥도널드와,
말도 안 되게 비싼 커피 (이지만 구시렁대면서도 마시게 된다.)

전자책을 이미 챙겼지만 왠지 한 권 사고 싶어 져 훑게 되는 공항 내 서점에 진열된 책 들,

게이트로 향하라는 안내가 뜨고, 하나씩 탑승권을 스캔하고 걸어가는 길,

좌석 번호를 눈으로 빠르게 확인하며 좁은 통로를 지나 본인의 자리에 착석하는 사람들,

시원하다 못해 잘 때가 되면 추워져 오들오들 떨 정도인 기내 온도 때문에

한 번도 빨지 않아서 더럽다는 담요를 어느새 목 끝까지 끌어안고는

'역시 가볍고 따뜻한 비행기 담요만큼 좋은 게 없어' 생각하며 잠을 청하던 시간들.



물론 현실은 사뭇 달라,

허둥지둥 카운터를 찾아서 줄을 서고,
기다리기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온갖 재롱을 (우리가) 부리고,

좁은 좌석에서 이리 꿈틀 저리 꿈틀 몸을 베베 꼬다가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고,

기내식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하면 아직 내 차례가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한껏 귀를 쫑긋 세워 메뉴를 귀동냥하고,

다 먹고 나면 언제 치워가나, 빨리 테이블 접고 싶은데, 자고 싶은데,

아이들의 온갖 투정에 참을성이 바닥을 드러내다가도

앞 뒷사람 눈치가 보여 최대한 인자한 웃음으로 비위를 맞춰주는,

아름다움과는 다소 동떨어진 여행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현실 가족 여행의 신호탄은 역시,

탑승도 전에 바닥난 체력과 무릎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 아니겠는가.


얼마만의 출국장인가


출국 전 맥날은 호주 국 룰


어쩌다 보니 네 시간째 공항


굿나잇, 이렇게 저물어 가는 여행 첫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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