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첫 동네 메락 마을
라다크를 여행하면 꼭 가보는 호수가 있으니 바로 판공초다. 판공초 호수는 <영화 세 얼간이>에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인도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이 거대한 호수는 중국 국경에 접해 있어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곳곳에 있는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퍼밋(여행 허가증)을 보여줘야 한다. 라다크를 여행하려면 퍼밋은 필수품이다.
현지인들은 로컬버스를 이용해 판공초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주로 여행사를 통해 지프차를 이용한다. 비용은 로컬버스가 훨씬 저렴하지만 버스 특성상 여러 마을 경유하기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보통 레에서 판공초 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8시간 정도다.
판공초 가는 길은 매우 험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좁은 비포장길을 달리는데 그 아래는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다. 그 절벽을 보고 있으면 절로 오금이 지린다. 만약 재수없이 사고로 추락한다면 시신 찾는걸 포기해야 한다. 다행인건 이 지역 운전기사들에게 이런 길은 일상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매우 능숙한 운전 실력으로 절벽길을 가볍게 통과하는데 그들의 운전실력 보고 있으면 연신 감탄만 할 뿐이다. 판공초 여행에서 운전기사들은 우리의 안전을 책임질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다.
험한 길도 힘들지만 그보다 여행자들을 더 괴롭게 하는 것은 역시 고산증이다. 중간에 ‘창라(해발 5300m)’라는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한다. 5000m 정도면 산소가 지상의 절반밖에 안된다. 5000m급에서 뛰어다니는 행동은(고산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은 5000m에 올라가도 쓰러질 수 있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5000m 넘는 고산지대는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라다크는 고산지대다. 3500m인 레를 시작으로 4000m 넘는 지역이 수두룩 하다. 판공초만 해도 해발 4300m. 그래서 일반인들이 판공초에 도착하면 대부분 고산증세를 보인다. 이래나 저래나 라다크 여행은 고산에 얼마나 잘 적응하냐에 따라 여행의 질이 달라진다.
레를 출발한 지 8시간 정도 흘렀을까. 드디어 판공초의 파란 호수가 보인다.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에 이처럼 거대하고 짙푸른 호수가 있다니… 눈으로 보고도 실로 믿기지 않을 만큼 판공초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과거 판공초는 원래 바다였다. 우리가 지구과학 시간 때 배웠겠지만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이 충돌하면서 생긴 것이 바로 히말라야 산맥이다. 이 히말라야 산맥이 융기하면서 바닷물의 일부가 남아 생성된 호수가 판공초다. 그래서 판공초 물은 짜고, 호수에서 잡히는 물고기들이 바다에서 잡히는 어종이라고 한다.
판공초 호수 주변으로 수십 개의 캠핑시설과 호텔이 들어섰다. <영화 세 얼간이> 흥행 덕분이다. 이처럼 미디어의 힘은 무섭다.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이런 오지에까지 캠핑장과 호텔이 생길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낼 숙소는 이곳은 아니다. 여기서 1시간을 더 들어가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바로 메락 마을. 하늘 아래 첫 동네다. 메락 마을은 수십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밭농사를 하고, 요즘처럼 외지에서 여행자들이 찾아오자 이들을 상대로 숙박업도 하고 있다. 사실 사람이 살기 힘든 이런 곳에 마을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놀랄 따름이다. 역시 사람처럼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생명체는 지구 상에 찾기 힘들다.
이 동네 이장쯤 돼 보이는 할아버지 집에서 숙박을 했다. 2박 3일간 판공초 일정에서 우리는 이 집에서 숙박하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환영의 인사로 짜이 한잔을 타서 나눠줬다. 그 짜이는 판공초까지 왔던 험난한 여정을 눈 녹여주듯 피로감을 풀어주었다. 이장 할아버지는 이 동네 터줏대감이자 동네 유일한 의사다.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여행자들을 봐준다. 이장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센스가 있고 여유가 넘쳤다. 영어도 곧 잘해 의사소통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 밭일을 나가 오후 4시쯤 들어오는데 농사일을 마치고 올 때면 우리에게 꼭 짜이 한잔씩 만들어 줬다. 할아버지가 만든 짜이는 유독 맛이 좋았다. 지금도 가끔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짜이가 그립다.
이장 할아버지 집은 판공초라는 특수환경에 맞춰 건축된 집이다. 천장은 낮고 열이 잘 빠지지 않게 설계되었다. 구조를 살펴보면 주방과 거실 있고, 방은 4개쯤 된다. 그중 2개 방은 손님 전용 방이다. 화장실도 2개나 갖췄는데 놀라운 건 좌식변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푸세식 화장실을 예상했던 나는 변기 화장실을 보고 깜짝 놀랐을 정도. 물어보니 최근에 좌식 변기로 교체했다고 한다. 여행자들을 배려한 할아버지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 손님들 묶는 방은 카펫이 바닥에 깔려있다. 두툼한 이불과 비개가 한쪽에 준비돼 있고 추위를 막기 위해 창문에는 야크털로 만들어진 커튼이 한기를 막아준다. 주방은 거실과 함께 이용되는데 가스레인지 대신 난로를 이용해 음식을 만든다. 난로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은 주로 티베트 음식이다. 땜 뚝(수제비), 뚝밧(칼국수), 탈리(백반)가 제공된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분은 할머니인데 영어를 전혀 못해 말이 없지만 할머니의 인심으로 음식을 항상 후하게 주신다. 가끔 할머니한테 무엇인가 부탁할 때 그대로 준비해주시는 것을 보면영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으곡, 메락 마을에서 마지막 날 밤이 왔다. 이장 할아버지는 내일 아침 떠나는 우리를 위해 특별요리를 준비하셨다. 손수 닭을 잡아 그날 저녁 구운 통닭 요리를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장작나무를 모아서 불을 지펴 캠프파이어를 진행했다. 추운 밤이지만 별이 엄청 많았던 판공초의 하늘, 통닭 요리와 맥주, 모닥불, 같이 여행 온 사람들과 마지막 날 추억을 선물해주는 이장 할아버지까지.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던 판공초 메락 마을의 마지막 밤이었다. 시간이 흘러 3년이 지간이 지났다. 지금도 가끔 메락 마을에서 추억을 생각하면 그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