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역을 대표한다는 것은 다른 지역과 구별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역 고유의 장소, 건물, 경관에 따라붙는 랜드마크라는 수식어는 다소 ‘뻔하다’ 싶으면서도 여행자에게는 이정표가 되어 주는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헬싱키의 랜드마크로 손꼽히는 곳은 어디인가? 헬싱키 중심가에서 단박에 눈에 띄는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 만큼 역사적 장소, 그리고 핀란드의 자연과 핀란드 사람들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압축됐다. 그리하여 요새와 성전을 넘나드는 헬싱키의 랜드마크 세 곳을 소개한다.
헬싱키 대성당 Helsinki Cathedral
어디서 이렇게 포근한 미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나 하고 고개를 돌렸을 때 유리창을 낸 돔 천장과 파이프 오르간과 말쑥한 차림의 소년 합창단이 한 프레임에 들어왔다. 트램이나 버스를 타고 헬싱키 도심을 오갈 때 몇 번이고 지나치게 되는 헬싱키 대성당이다.
헬싱키 대성당은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낯설 수도 있는 루터교의 대성당이다. 러시아의 자치령이었던 1852년에 완공되었는데 당시에는 러시아 정교회의 대성당이었다가 독립 후 루터파 교회의 총본산으로 전환됐다. 2018년 기준 핀란드 인구의 약 70%가 루터교 신자인 만큼 국가적인 종교 행사가 열리는 상징적인 장소다.
건축 양식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봐도 ‘멋지다’ 감탄이 나올 만큼 화려한데, 고대 건축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온 신고전주의 양식이다. 그러고 보면 전체적인 생김새가 ‘오, 그리스 신전을 닮았다’ 싶은 구석이 눈에 들어온다. 한편, 눈이 부실 정도로 뽀얀 외벽과 에메랄드 빛깔의 돔으로 빚어낸 순수성은 바로 앞 시대의 장식적 로코코와 바로크 양식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성전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배가시키는 요소로 이해가 된다.
언제나 열려 있는 곳이지만 여행하기 좋은 여름 6~8월에 한정하여 방문객들을 위한 가이드 투어를 제공하고, 대성당 지하에 마련한 카페도 운영한다. 종교와 관계없이 성전의 분위기만으로도 위안을 받고 잠시 쉬어갈 수 있으니 여행자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헬싱키의 랜드마크다.
헬싱키 대성당
주소: Unioninkatu 29, Helsinki, Finland
사이트: https://helsingintuomiokirkko.fi/
수오멘린나 요새 Sea Fortress Suomenlinna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비둘기는 세계적 흐름인 것인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동안 도착했다. 헬싱키 항구 선착장에서 페리로 15분 거리의 섬. 비둘기들이 줄지어 뒤뚱뒤뚱 걷고, 그 곁으로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 춤추고 떠드는 아이들, 벤치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노부부가 어우러지는 이곳은 뜻밖에도 요새다. 그것도 스웨덴이 건설한 요새. 이름도 스웨덴어로 요새를 뜻하는 스베아보리(Sveaborg)라 했다. 핀란드어로는 같은 뜻으로 비아포리(Viapori)라고 불렀다.
핀란드는 1155년 스웨덴 십자군에 정복되어 줄곧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스베아보리 요새는 스웨덴 통치하에 있던 18세기 중반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해 헬싱키 앞바다에 있는 여섯 개의 섬을 연결하여 만든 해상 군사기지다. 그러나 요새 건설 후 스웨덴과 러시아가 핀란드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러시아가 승리하면서 100년이 넘게 러시아의 해군기지로 이용됐고, 1917년 핀란드 독립 이후에는 포로수용소로 이용되다가 1972년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민간 행정부로 이양됐다. 이때 명칭도 현재의 수오멘린나로 바꿨다.
수오멘린나는 핀란드어로 ‘무장해제’라는 뜻. 유럽의 군사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이고도 독특한 역사적 기념물로 인정받아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나들이 장소, 관광 명소로 외부 방문객도 많지만 8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기도 한 수오멘린나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요새가 됐다.
수오멘린나
주소: Suomenlinna C1, Helsinki, Finland
홈페이지: https://www.suomenlinna.fi/en/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Temppeliaukio Church
한적한 교외 어디쯤이었으면 그럴 만하다 싶을 수도 있겠는데 헬싱키 도심 주택가에서 마주하니 입이 떡 벌어지고 만다. 원래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 언덕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단단한 암석을 쪼아 파내고 그 자리에 교회를 만들었으니 바로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다.
‘암석교회’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1961년 루터교에서 교회를 짓고자 실시한 건축 공모전에 티모 수오말라이넨, 투오모 수오말라이넨 형제가 낸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실은 당시 관련 조례상 도심에는 교회를 지을 수 없었는데 이때 쓸모없이 방치된 바위 언덕을 활용하여 자연친화적인 교회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1969년 완공된 교회는 바깥에서 보면 성벽 유적 또는 거대한 돌무지무덤을 연상케 하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노아의 방주 안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을 만큼 깊고, 너르고, 동시에 신비로운 예배당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동굴 속에 들어온 것처럼 천연 암석이 둥근 내벽을 이루는데 구리 선을 엮어 만든 돔 천장과 벽 사이를 유리로 마감하여 낮 동안 따사로운 볕이 그대로 예배당에 스며들고 있었으니 자연을 차용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된 공간을 경험하게 된달까. 장식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소재를 다듬어 제단을 구성하는 등 절제된 생활을 지향하는 루터교의 원칙과 자연친화적인 핀란드의 미감을 두루 확인하게 된다.
Temppeliaukio Church
주소: Lutherinkatu 3, 00100 Helsinki, Finland
홈페이지: https://temppeliaukionkirkko.fi/
글·사진 서진영 트래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