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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Nov 28. 2021

영화 <카모메 식당>의 온기가 자박한 그곳 '헬싱키'

커피에 시나몬롤을 먹으러 갔다. 헬싱키로. 이 무슨 팔자 좋은 소린가? 동네 카페에서도 파는데 굳이 헬싱키까지, 왜? 누가 물어올 때면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카모메 식당> 봤어?”라고. 아는 사람은 두 손 깍지 끼고 환히 웃어주었다. 그게 뭐냐는 사람에겐 대꾸 없이 웃어 보였다.


카모메식당 스틸컷 (출처 daum 영화)


‘여기’라면 나도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는 사치에, 어디든 떠나고 싶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세계지도를 펴놓고 아무 데나 찍은 곳이 ‘여기’라는 미도리, 고된 내 삶과는 달리 ‘여기’ 사람들은 느긋하게 사는 것만 같았다는 마사코. 영화 <카모메 식당>은 저마다의 이유로 ‘여기’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다다른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 함께 지내는 동안의 이야기다.


카모메식당 스틸컷 (출처 daum 영화)


황홀한 오로라, 동화 같은 산타마을… 북유럽 또는 핀란드 하면 떠올리게 되는 장관이나 명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줄곧 동네 작은 식당 안팎을 비추고 주인공들은 기껏해야 항구 옆 노천카페, 서점, 시장을 오간다. 영화 <카모메 식당>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낯선 이국으로 떠나왔지만 여행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나도 몰랐던 나를, 내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조금씩 발견해 가는 이야기. 이렇다 할 명소 하나 검색하지 않고도 헬싱키로 떠날 수 있었던 이유다.



라빈톨라 카모메 Ravintola Kamome


영화 <카모메 식당>은 헬싱키의 조용한 동네 골목에 있는 작은 일식당을 배경으로 한다. 애인지 어른인지 모를 자그마한 여자가 홀로 바삐 움직이지만 한 달째 찾는 손님 하나 없는 이 식당이 동네 아주머니들에게는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대표 메뉴는 일본식 주먹밥 오니기리인데 가게 문을 열고 한 달 만에 들어온 첫 손님 토미에게는 너무 반갑고 고마운 나머지 언제든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해버렸네. 그렇게 매일 공짜 커피 손님만 드나드는 사치에의 작은 식당. 좀 투박하긴 해도 일본에서 먹는 것 그대로 내놓고 싶지만 이러다 곧 망하지 싶다. 핀란드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재료를 사다가 퓨전을 시도해 보는데 영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시나몬롤을 만들어볼까 해서 빵을 굽는데 그 빵 굽는 냄새가 동네 사람들을 가게로 이끌고, 서로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라빈톨라 카모메, 영화 <카모메 식당>을 촬영한 바로 그 식당 자리에 문을 연 레스토랑이다. 원래도 식당 자리였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도 카빌라 수오미(Kahvila Suomi)라는 캐주얼 레스토랑으로 운영됐다. 현재의 식당은 2015년 핀란드에 오래 거주한 일본인이 인수하여 핀란드의 제철 식재료와 일본의 음식 문화를 접목해 영화에서처럼 기분 좋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단장했다. 이름도 ‘카모메 식당’이라고 바꿨다. 라빈톨라가 핀란드어로 식당이라는 뜻.



아쉽게도 시나몬롤은 없었다. 반갑게도 오니기리는 있었다. 한여름에도 긴팔 겉옷을 입고 다녀야 할 정도로 선선한 북유럽 날씨는 본능적으로 든든하고 따뜻한 것을 찾게 했다. 더군다나 백야가 계속되고 있었다. 고민할 것 없이 오니기리를 주문했다. 맛은 오묘했다. 비트를 넣은 오니기리는 분명 낯설었다. 한 입 오물거리다가 미소된장국을 그릇째 들고 마시는데, ‘아, 뜨끈해라.’ 속이 풀리는 온도. 그제야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대 식당 안을 둘러본다.

해가지지 않는 밤을 나누는 사람들. 미소된장국만큼 따뜻한 기운. 그래 이 맛이지. 맛은 혀에만 달려 있는 게 아니지. 나는 다시 그 색다른 맛의 오니기리를 집어 들었다. 5분 컷이면 충분한 오니기리지만 천천히 꼭꼭 씹는데,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Ravintola Kamome
주소: Pursimiehenkatu 12, 00150 Helsinki, Finland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ravintola_kamome/




아카테미넨 서점 Akateeminen bookstore & 카페 알토 CAFE AALTO


일본 만화에 푹 빠져 있는 공짜 커피 손님 토미가 사치에에게 <갓차맨> 노래 가사를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멜로디가 입안을 맴돌지만 도무지 가사가 떠오르질 않는다. 그러던 차에 서점에 간 사치에는 카페에서 일본어판 무민 책을 보던 미도리를 발견하고 대뜸 <갓챠맨> 가사를 아냐고 묻는다. 갑작스럽지만 “네, 알아요.” 가사를 써 주게 되고, 이내 주변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만화 주제가를 부르는 두 사람. 사치에는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눈 감고 손으로 지도를 찍었는데 알래스카가 나왔으면 알래스카로 갔을 거란 미도리를 집으로 초대하고, 별다른 계획 없이 떠나온 미도리는 사치에의 식당 일을 돕기로 한다.


아카테미넨 서점
아카테미넨 서점
아카테미넨 서점


사치에와 미도리가 처음 만난 서점 안 카페는 아카테미넨 서점 2층에 위치한 카페 알토. 먼저 서점 이야기를 하자면 아카테미넨 서점은 헬싱키 중심가에 자리한, 규모면에서도 헬싱키에서 가장 큰 서점이기도 하지만 핀란드 건축 거장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손길이 깃들어 헬싱키를 대표하는 명소로 손꼽힌다. 서점 자체도 1969년 알토가 디자인한 건물이거니와 알토가 디자인한 건축물 가운데 경영 악화로 존폐 위기에 놓였다가 핀란드건축협회에 의해 영구 보존이 결정된 라우타타로(Rautatalo)의 일부 자재를 사용하고 당시 카페에서 사용한 가구들을 가져와 더욱 의미가 있다.


카페 알토
카페 알토


사실 라우타타로 카페 가구들은 경매에 부쳐졌는데 스톡만백화점의 오너 스톡만이 모두 매입해 알바 재단에 기부했고, 이후 재단에서 다시 스톡만백화점에서 마련한 서점 내 카페에 내어주게 된다. 카페에 알토 이름이 허락된 것도 오래도록 서로 훈훈한 관계가 이어졌기 때문. 아카테미넨 서점 건물은 스톡만백화점 별관에 해당한다.



건물 가운데를 비워 1층에서도 천장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느끼게 하는 보이드(void) 건축 기법이 사용되어 파란 하늘 아래서 책을 볼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다. 곳곳에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의자와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어 어딘가 도서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보는 누군가와도 눈이 마주치면 찡긋 인사를 건넬 수 있을 만큼 어딘가 느긋해지는 구석이 있다. 혹여나 누군가 <아기공룡 둘리> 노래를 아느냐 물어올까 싶어 코리아 가이드북이 놓인 서가를 한참 서성였다는 건 안 비밀. 영화 같은 일은 좀처럼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지.
 

Cafe Aalto
주소: Academic Bookstore 2nd floor, Pohjoisesplanadi 39, 00100, Helsinki, Finland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cafeaalto/


Academic Bookstore

Keskuskatu 1, Pohjoisesplanadi 39, 00100 Helsinki, 핀란드




카페-레스토랑 우르술라 Cafe-Restaurant Ursula


손님은커녕 개미 한 마리가 기어가도 그저 반갑겠다 싶었던 사치에의 식당에 점차 손님이 늘어갔는데 이상한 손님도 있었다. 들어오지는 않고 가게 안을 살벌하게 노려보는 묘령의 여인. 며칠을 노려보기만 하다가 마침내 가게에 들어선 여인은 술을 주문했다. 그러고는 말없이 잔을 내밀었다. 그 잔을 받아 든 건 가방을 잃어버려 의도치 않게 헬싱키에 오래 머물게 된 마사코. 대작이 시작됐다.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위태로워 보이던 여인이 이내 쓰러졌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어느 날 갑자기 혼자이고 싶다고 홀연히 떠난 남편 때문에 상심한 여인. 핀란드 사람들은 조용하지만 친절하고 언제나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실은 어디에 가든 슬픈 사람도 있고, 외로운 사람도 있는 법.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는 그렇게 새로운 이웃들과 서로를 보듬게 된다.



이방의 땅에서 친구가 된 여인들이 가게를 벗어나 카페테라스에서 볕을 쬐는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웠나 몰라. 그 장소가 바로 카페 우르슬라다. 바다와 면한 카이보 공원 끝자락의 카페 우르슬라는 헬싱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다. 공원 내에 위치한 데다 해 질 녘 석양이 아름다워 가족 단위 방문객은 물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도 많고, 1952년에 개점한 전통 있는 가게답게 단골로 보이는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까지 세대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실내 공간이 꽤 넓고 쾌적한데 해가 있으나 없으나 야외 테라스가 확실히 인기가 좋다. 그렇지만 친구 없이 혼자라 그랬는지 하트 모양의 예쁜 연어 샌드위치를 앞에 두고 요리조리 사진을 찍으며 나름의 시간을 보내는데도 영 외롭다. 입에서 루시드폴의 <사람들은 즐겁다> 가사가 맴돌았다.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겁다.’ 세상에!
 


Café Ursula

주소: Ehrenströmintie 3, 00140 Helsinki, Finland
홈페이지: https://www.instagram.com/cafeursula/



글·사진 서진영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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