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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Jun 05. 2017

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에서 만난 3개의 섬


115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에서 마헤, 라디그, 프랄린 등 세 개의 섬을 살피고 돌아왔다. 마헤섬에 숙소를 두고 나머지 두 개 섬을 오가는 일정이었다. 처음 가 본 나라, 짧은 여정. 조력자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는데, 젊고 영민한 택시 기사 파나가라씨와 동행한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콘스탄스 에필리아 리조트의 힐사이드 빌라에서 바라본 해변 풍경
라디그의 앙스 수스 다정 해변. 커다란 화강암 때문에 독특한 느낌이 난다


세이셸에서 만난 첫 번째 택시 기사는 나이가 지긋한, 언뜻 봐도 경력이 상당한 인물이었다. 소박한 2층 건물인 마헤(Mahe)국제공항에서 첫날 숙소인 카라나 비치 호텔(Carana Beach Hotel)까지 데려다 줬다. 생각보다 차량이 많은 도로 위를 요령껏 달리며 그는 라디오 국회방송에 집중했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다급했다. 알아들을 수 없어 물었더니 “새해 예산안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라디오 속 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크레올(Creole)어였다. 프랑스인들이 아프리카 노예들과의 소통을 위해 간소화한 언어다. 사실 서인도제도에 정착한 유럽인의 후손 혹은 유럽인과 흑인의 혼혈을 의미하는 크레올은 인종, 언어, 음식, 음악 등 세이셸 전반에 걸친 ‘혼성 문화’를 상징하는 단어다. 

1498년부터 프랑스인이 정착해 살기 시작했고,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탓에 크레올어 이외에 영어와 프랑스어도 통용된다. 밀리는 도로에서 주저 없이 핸들을 꺾어 옆길로 빠진 노회한 기사는 “아무래도 크레올이 가장 대중적인 언어”라며 “세이셸 속에 영국과 프랑스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라디그에서 가장 흔하고 유용한 교통수단은 자전거다.
주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전거를 자유자재로 부린다. 관광객들도 선착장 주변의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다
길가에서 좌판을 차리고 열대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행상
몸무게가 엄청날 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오래 사는 알다브라 자이언트 육지 거북


La Digue
라디그


집채만 한 바위들이 지키는 해변 


세이셸의 올망졸망한 섬들 가운데 마헤, 라디그(La Digue), 프랄린(Praslin)이 ‘삼대장’으로 일컬어진다. 가장 큰 섬이자 수도인 빅토리아(Victoria)를 품고 있는 마헤를 본격적으로 돌아보기에 앞서 이웃 섬 라디그로 건너갔다. 라디그는 명백한 자전거의 섬이었다. 주민과 관광객들 대부분이 두 바퀴에 의지했다. 한 손 놓고 달리며 옆 자전거의 친구와 수다 떠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혼자서 자전거 3대를 모는 무심한 표정의 아저씨도 눈에 띄었다. 선착장 부근에 위치한 여행정보센터에서 연신 손부채를 해대는 직원이 알려 준 정보는 단호하고 단순하고 명료했다. “자전거를 타고 앙스 수스 다정(Anse Source d’Argent) 해변으로 가라.” 곧장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해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메고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 입장에서 자전거 여행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래 써서 남루해진 안장은 딱딱하고, 브레이크는 뻑뻑했다. 결국 주행 5분 만에 길을 되짚어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자전거 탄 풍경’도 물론 좋았지만 속도가 줄어들자 섬의 나른한 일상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자유로운 두 손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한몫했다.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사내는 길가에 좌판을 차리고 열대의 과일과 채소를 팔았다. 그 앞에서 두 명의 아낙이 신중하게 지갑을 열었다. 세 명의 인부들은 신축 건물의 지붕 공사를 감당하고 있었다. 부부로 보이는 두 중년은 아트 스튜디오라는 간판을 내건 건물 앞에 막 자전거를 세운 참이었다. 프라이빗 해변임을 강조하는 어느 리조트의 ‘Hotel Guest Only’라는 팻말이 작지만 완강해 보였다. 토요일 오전, 초록 지붕과 노란 외벽의 성당에서는 성가가 울려 퍼졌다.


항구에서 남쪽으로 약 2.7km 떨어진 앙스 수스 다정 해변에 닿으려면 입장료 100세이셸루피(한화 약 8,400원)를 내고 유니언 이스테이트(Union Estate)를 지나야 했다. 몇 가지 볼거리를 지닌 유니언 이스테이트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휘어잡은 건 단연 알다브라 자이언트 육지 거북이었다. 다 자라면 몸무게가 300kg이 넘고, 수명이 무려 100년에서 300년에 달한다는 이 거북은 멸종 보호 동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었지만 거북들은 주말 오후의 낮잠이나 잘 마르고 있는 빨래처럼 한가로워 보였다. 관광객이 주는 먹이를 덥석 물거나 얕은 물에 아랫도리를 담근 채 두 눈을 껌뻑거렸다. 한쪽에는 해독 불가능한 괴성을 내며 교접 중인 한 쌍의 거북도 있었다.


라디그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앙스 수스 다정 해변에 섰다. 썰물 때인지 수심이 얕았다. 수십 미터를 걸어 나가도 물이 성인 남자의 허리께에서 찰랑거렸다. 바다는 속내를 드러낼 만큼 투명했고, 한 가지 색으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웠다. 하지만 세이셸의 해변을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지위에 올려놓은 것은 물빛이 아니라 화강암이다. ‘집채만 한’ 화강석들이 해변 곳곳에 놓여 있었다. 그동안 이집트, 페루 마추픽추,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미국 유타 등을 방문하며 거석문화와 초대형 암석이 만들어 낸 그림에 압도당한 적이 있었는데 해변에 이처럼 거대하고 육중한 돌무더기가 놓여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세이셸관광청에서 ‘태초의 풍경’이라며 자랑할 만했다. 한데, 두 가지가 아쉬웠다. 미리 정해진 일정에 쫓겨 이 아름다운 해변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점, 그런데 날씨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날씨가 화창해진다는 것은 다음 일정, 즉 프랄린섬에서 더 좋은 날씨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이런 열매 보신 적 있나요


라디그를 출발한 페리는 약 15분 후 프랄린섬에 닻을 내렸다. 관광청 직원 주니아 주버트(Junia Joubet)씨와 그녀의 아들 가엘이 마중을 나왔다. 프랄린 태생의 그녀는 자신이 10살 때도 있었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레스토랑부터 안내했다. 
세이셸을 대표하는 맥주인 세이브루. 맛이 준수하다
프랄린의 해변 레스토랑에서 맛본 새우구이와 문어카레. 세이셸 음식에는 카레를 비롯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향신료들이 많이 들어간다

  

섬 북서쪽의 앙스 라지오(Anse Lazio) 해변에 자리한 전망 좋은 식당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 맥주로 목을 축였다. 세이셸에는 세이브루(Seybrew)와 에쿠(Eku)라는 이름의 두 가지 맥주가 있는데, 매번 일행의 선택을 받은 쪽은 세이브루였다. 

에쿠보다 맛이 조금 더 진하다. 오늘의 메뉴인 문어카레를 비롯해 역시 카레와 코코넛밀크에 버무린 크랩, 갈릭버터를 곁들인 새우구이, 해산물파스타 등이 속속 테이블에 올랐다. 주버트씨는 문어카레가 너무 맵다며 연신 입술을 훔쳤지만 매운맛에 이력이 난 한국인에게는 만만했다. 

크레올 음식은 우리에게도 잘 맞는다. 카레를 비롯해 고추, 후추, 생강, 마늘 등을 잘 쓰기 때문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며 생선 요리를 즐긴다는 점도 익숙하다. 빵나무(Breadfruit), 카사바, 고구마 등이 쌀을 대신하기도 하는데 특히 굽고, 튀기고, 찌고, 볶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할 수 있는 빵나무 열매가 효자 식재료다. 빵나무를 먹으면 세이셸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생김새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열매로 일컬어지는 코코 드 메르
발레드 메이 국립공원에서 마주친 작은 도마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발레 드 메이


앙스 수스 다정이 라디그를 찾는 목적이라면 프랄린이 준비한 최고의 흡인력은 발레 드 메이(Valee de Mai)다. 우리말로 풀면 5월의 계곡.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국립공원인 발레 드 메이에는 6,000여 그루의 코코 드 메르(Coco de Mer, 바다의 코코넛)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직 세이셸에서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코코 드 메르는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열매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믿기지 않지만 25kg에 육박한다. 

모양 또한 범상치 않다. 수나무 열매는 남자의 바깥 생식기관을, 암나무 열매는 여자의 엉덩이를 닮았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열매’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렇다고 열매만 볼 일은 아니다. 

1억5,000만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나무의 높이가 24~35m에 달하는 원시림의 위용이 대단하다. 숲의 최초 발견자인 영국의 고든 장군은 지상낙원 에덴동산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국립공원에는 코코 드 메르 이외에 6가지의 다른 야자수가 존재하며, 다양한 조류와 파충류도 발견할 수 있다.


발레 드 메이의 정상까지 다녀오려면 3시간 30분가량이 걸린다는데, 마헤로 돌아가는 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중간쯤에서 산책을 마치고 출입구로 되돌아왔다. 아쉬움은 프랄린섬 선착장 매점에서 60세이셸루피(한화 약 5,000원)를 지불한 맥주 한 병으로 달랬다. 

바닷길을 한 시간여 달려 마헤섬의 인터 아일랜드 부두(Inter Island Quay)에 도착하니 이날 아침 이미 안면을 튼 택시 기사가 대기 중이었다. 그의 이름은 말론 파나가리(Marlon Panagary). 아버지도, 형도 택시를 운전하는 이른바 교통 가족이다. 

파나가리씨에 따르면 세이셸에는 개인택시밖에 없다. 저녁 8시 이후 버스가 끊겨 관광객 입장에서 택시는 마헤섬에서 가장 유용하고 실질적인 교통수단이다. 참고로 마헤에는 단 3개의 신호등이 설치돼 있다. 실적과 평판이 좋은 개인택시 기사 중에는 파나가리씨처럼 관광청과 계약을 맺고 일하는 이도 있다. 부지런하고 해박한 그는 마헤섬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 일행의 성실한 눈과 귀가 되어 주었다. 덕분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세이셸의 속살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었다. 

프랄린을 찾는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인 앙스라지오 해변


지난해 세이셸을 방문한 사람은 약 30만명이다. 그중 한국인은 1,900여 명. 신혼여행지로 서서히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까지는 유럽인들이 방문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그중에는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과 데이비드 베컴 부부 같은 화제의 인물들도 있다. 

베컴 부부는 파나가리씨와도 인연이 있다. 3년 전 결혼한 그의 아내가 여행사에 근무할 당시 베컴 부부의 예약을 맡아서 처리한 적이 있다.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해 매번 성(姓)을 바꿔 리조트 등을 예약했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파나가리씨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은근하면서도 명확했다. 

“언젠가 모리셔스가 최고의 여행지라는 광고를 본 적이 있어요. 이런 말이 좀 그렇지만 세이셸 해변이 한 수 위죠. 프라이버시 보장만 해도 차이가 납니다. 세이셸의 인구는 고작 9만3,000여 명인데, 모리셔스는 400만명이나 되거든요.”




흐린 날에도 아름다운 섬


세이셸 전체 인구 중 90% 가까이가 거주하는 마헤섬 투어에 나섰다. 대표적인 해변은 빅토리아에서 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보 발롱(Beau Vallon). 물살이 잔잔하고 보드라운 모래사장을 갖추고 있어 물놀이에 적합하다. 
마헤의 동북쪽 해안가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해변. 사람이 많지 않아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빅토리아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시계탑.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03년 설치됐다
빅토리아의 셀윈 클라크 마켓. 빅토리아 시민들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넉넉한 재래시장이다

 

지난 2월26일에는 보 발롱 해변을 따라 이어진 도로에서 제10회 세이셸 에코-프렌들리(Seychelles Eco-friendly)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경기 시작 전 세찬 비가 쏟아져 출발이 예정보다 지연됐지만 스타트라인에 선 참가자들의 열기는 꺾일 줄 몰랐다. 세이셸 마라톤은 경쟁보다는 축제에 방점이 찍힌다. 각자의 실력과 체력에 맞게 5km, 10km, 하프코스, 풀코스 중 선택해 뛰면 된다. 

해마다 참가자 수가 늘어 지금은 정부 주요 인사들이 참석할 만큼 세이셸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고백하자면 빗속을 질주하는 건각들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지만 마라톤 출발점이자 골인 지점 부근의 포장마차에서 판매하는 소시지구이가 더 매력적이었다.


몸집이 작은 나라의 수도답게 빅토리아의 체격도 왜소하다. 걸어서 반나절이면 살뜰하게 살펴볼 수 있다. 도시의 상징물인 시계탑(Victoria Clocktower)도 귀엽기 짝이 없다. 가장 번화한 거리 교차로에 5m 높이로 세워졌다. 영국 런던의 걸물인 빅벤을 본떴기에 ‘스몰벤’으로 통한다. 

이름에서 눈치챘겠지만 영국 빅토리아 여왕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03년에 제작됐다. 늘 그렇듯이 전통시장에도 가 봤다. 1840년에 첫발을 뗀 셀윈 클라크 마켓(Selwyn Clarke Market). 생각보다 규모가 컸는데 생선, 향신료, 과일, 채소 등이 빚어내는 총천연색이 눈부셨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시장 2층의 허름한 식당에 앉아 수더분한 현지 음식을 청하고 싶었다. 마헤에서 가장 우뚝한 존재는 섬 중앙에 버티고 선 해발 905m의 몬 세이셸루아(Morne Seychellois)일 것이다. 

몬 세이셸루아 중턱에 자리한 차 제조 공장 앞에는 주전자와 찻잔 조형물이 놓여 있다


산 중턱에는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녹차 밭이 조성돼 있고, 조금 더 위쪽에는 차(茶) 제조 공장도 있다. 얼마간의 돈을 내면 생산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특별하지는 않다. 공장 옆 가게에서는 바닐라나 레몬 등이 가미된 여섯 종류의 차를 구입할 수 있다. 다시 파나가리씨의 말을 빌려 보자. “수출 물량 감소로 예전만큼 많은 양의 차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품질 하나만큼은 여전히 빼어납니다.” 차 만드는 공장을 뒤로하고 다시 택시에 올라 느릿한 속도로 내려오는데, 산 중턱의 어느 도로변에서 세차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차에 끼얹는 물은 몬 세이셸루아가 내려보낸 청정 약수였다. 

사실 세차를 해선 안 되는데, 그냥 모른 척했다. 파나가리씨는 그 약수를 ‘Breaking Teeth’라고 지칭했다. 물이 너무 차가워 이가 시리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실제 마셔 보니 이가 깨질 것 같지는 않았다. 파나가리씨는 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공짜 물”이라며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마헤의 카라나 비치에서 감상한 세이셸의 바다. 날씨가 화창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푸른색이 섞인 바다는 매혹적이었다
콘스탄스 에필리아 리조트 주변에 펼쳐진 해변
세이셸의 116번째 섬으로 불리는 에덴. 인공적으로 조성된 섬이다. 세이셸 최고의 비즈니스호텔로 통하는 에덴 블루가 이 섬에 있다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 그러니까 실질적인 세이셸 체류 마지막 날 오후, 첫날 묵었던 숙소가 있는 카라나 비치를 향해 다시 길을 잡았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 파나가리씨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예닐곱의 사내들이 길 건너편에서 붉고 푸른 생선들을 놓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눈에도 싱싱해 보였는데, 남자들은 그다지 장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들은 오전에 배를 몰고 근해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오후 3~5시 사이에 생선 좌판을 차린다. 일반적으로 오전 9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세이셸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것이다. 실제로 상점들도 4시부터 철수를 서두른다. ‘거리의 어부들’이 올리는 수입은 쏠쏠하다. 그런데, 가진 돈이 별로 없단다. 버는 족족 술 마시는 데 탕진해서다. 쉽게 벌어 쉽게 쓰는 셈이다. 세이셸의 바다는 무한정의 생선을 공급하는 화수분이지만 그들의 게으름을 방조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부들 곁을 떠나 카라나 비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잠시 경치를 감상한 다음, 계속 노스 코스트 로드(North Coast Road)를 따라 마지막 날 숙소인 피셔맨스 코브(Fisherman’s Cove)로 차츰차츰 접근했다. 찾아가는 도중 다소 낡아 보이는 어느 리조트의 해변 바에 앉아 한갓진 시간을 보냈다. 역시 세이브루를 주문해 마시며 저녁노을을 하마하마 기다렸다. 

기대와는 달리 비를 한껏 머금은 듯 구름이 무거워 보였고, 바람은 점차 거세졌다. 야멸찬 석양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방식대로 해변과 바다를 만끽했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방을 나서는데 굵은 비가 듣기 시작했다. 비 내리는 밤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해산물 뷔페와 화이트 와인으로 호사를 누렸다. 

다음날 아침,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여전히 억셌다. 체크아웃 전 잠시 호텔 주변을 거닐었다. 실질적인 취재는 4일에 불과했던 턱없이 짧은 스케줄. 그나마도 우기라 하늘이 흐린 적이 많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세이셸의 풍모는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니 쾌청한 날씨와 넉넉한 일정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더 말해 무엇할까. 다시 가야 할 강력한 이유를 남긴 채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   




▶travel info


Airline
바로 가는 직항편은 아직 없다. 에티하드항공을 이용,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를 거쳐 마헤로 들어간다. 비행시간은 인천~아부다비 약 9시간 50분, 아부다비~마헤 약 4시간 20분이다. 에미리트항공을 타고 두바이를 경유할 수도 있다. 에미리트항공은 두바이~마헤를 주 14회, 에티하드항공은 아부다비~마헤를 주 12회 운항한다. 에미리트항공은 인천~두바이 구간에 ‘하늘을 나는 호텔’로 불리는 A380기를 투입하고 있다. 


Navigation 
세이셸은 아프리카에 속하지만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우선 아프리카 대륙 동쪽 해안으로부터 1,600km 이상 떨어져 있다. 인도양의 섬나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서아프리카의 에볼라 발생 지역으로부터는 약 1만1,000km나 격리돼 있다. 그래서 예방접종이 전혀 필요 없다. 정치 분쟁이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고, 치안도 매우 안정적이다. 


Time 
한국보다 5시간 느리다. 


Currency 
세이셸루피(SCR)라는 자국 화폐를 사용한다. 달러와 유로도 통용된다. 물론 유니언 이스테이트의 입장료처럼 루피만 받는 경우도 있다. 1세이셸루피는 한화로 약 84원. 


Weather 
언제 찾아도 따뜻하다. 기온이 연중 24~31도를 유지한다. 7월부터 9월까지가 건기,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우기에 해당한다. 


Ferry
페리를 이용하면 마헤에서 프랄린까지 약 1시간, 프랄린에서 라디그까지 약 15분이 걸린다. 마헤에서 라디그를 간다면 프랄린에서 배를 갈아타야 한다. 


Taxi 
차를 렌트하지 않은 자유 여행객에게는 택시 관광이 편리하다. 반나절이나 종일 혹은 시간을 별도로 정해놓고 함께 움직일 수 있다.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파나가리 씨처럼 세이셸관광청과 일하는 기사를 추천한다. 단순한 이동뿐만 아니라 가이드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 예약 문의는 이메일(wildnae6@gmail.com)을 통해 하면 된다.




Hotel 


카라나 비치

카라나 비치는 문 연 지 반년 조금 지난 신생 호텔이다. 동명의 해변에 면해 있다. 전망이 활달한 객실 테라스에는 앙증맞은 수영장이 딸려 있다. 

 www.caranabeach.com  


에덴 블루
에덴 블루는 87개의 객실을 보유한 세이셸 유일의 비즈니스호텔이다. 시설이 럭셔리하다. 호텔이 둥지를 튼 에덴섬은 인공적으로 조성됐다. 세이셸의 116번째 섬으로 불린다
 www.edenbleu.com  


콘스탄스 에필리아
콘스탄스 에필리아는 엄청나게 큰 부지에 들어선 세이셸 최고의 리조트다. 단지 곳곳에 셔틀 정류장이 마련돼 있다. 주니어 스위트, 시니어 스위트, 힐사이드 빌라 등 다양한 종류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5개의 레스토랑이 투숙객들의 입맛을 책임진다. 
 www.constancehotels.com  


르 메리디앙 피셔맨스 코브
르 메리디앙 피셔맨스 코브의 객실은 크게 오션 뷰와 가든 뷰로 나뉜다. 두 개의 레스토랑과 두 개의 바가 있다. 
 www.lemeridienfishermanscove.com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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