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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Dec 16. 2021

300년 전 마을과
4km 백사장을 거닐다

300년 된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 집들이 담을 나누고 골목을 이루었다. 300년 전 겨울 어느 날 마실 나섰던 누군가도 이 마을 돌담길 모퉁이를 돌아섰겠지.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 마을 골목과 숲을 걸었다. 괴시 마을 북쪽 고래불 해변은 4km 솔숲과 백사장이 이어져, 겨울바다의 낭만으로 가득하다.


괴시마을 풍경


목은 이색이 태어난 괴시마을


괴시 마을은 고려 말에 함창 김 씨가 터를 잡으면서 처음 생겼다. 함창 김 씨는 고려 말 학자 목은 이색의 외가이며 이색의 외조모가 지금 괴시 마을 이루고 사는 영양 남씨다. 마을 뒷산에는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이 태어난 집터가 있다.


괴시마을 구계댁. 1805년에 지었다 하니, 정조대왕이 승하한 뒤 5년 후에 지은 건물이다. 1910에 한 번 고쳤다고 하니 조선 후기 영남지역 건축의 전형이라고 봐도 되겠다.


괴시 마을의 원래 이름은 ‘호지촌’이었는데 목은 선생이 중국에서 보았던 괴시 마을 풍경과 ‘호지촌’의 풍경이 닮아 마을 이름을 ‘괴시’로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괴시마을 기와집과 골목
괴시마을은 고려말 함창 김씨가 처음 터를 닦았다. 지금은 1630년에 자리 잡은 영양 남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산다.


목은 이색 선생은 고려 말 유학자로서 고려의 과거는 물론 원나라 과거도 합격했던 인재였다. 500년 가까운 왕조를 이어온 고려, 그 시대의 말엽에 태어나 새로운 나라 조선의 개국까지, 선생은 역사의 격동기에 살았다. 이미 널리 알려진 시 한 편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했던 당시 그의 마음을 담아 지금도 전한다.
 

괴시 마을 뒷산으로 가는 길. 바람이 불면 대숲 전체가 일렁인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온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엿는고
석양에 홀로 셔 이셔 갈 곳 몰라 하노라.

흰눈 녹은 골짜기에 구름만 무성하구나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괴시리 전통마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호지마을1길 11-2



마을 뒷산 목은기념관


기와지붕이 물결치고 황토빛 흙돌담이 골목을 이룬 마을에 겨울 오후의 햇볕이 아늑하게 고였다. 마을 뒷산으로 가는 길에 바람이 쉬지 않고 분다. 대숲이 일렁인다. 대숲을 지나는 바람이 댓잎을 흔들고 지나가며 싸르락 싸르락 소리를 낸다. 대숲을 지나자 소나무 숲이 나왔다. 마른 솔 향이 그윽하게 퍼진다. 솔숲 길을 걸어 목은기념관에 도착했다.


울창한 솔숲을 지나면 목은기념관이 보인다.
목은 이색 선생이 태어난 집터를 알리는 푯돌 / 목은 선생 동상


목은 이색 선생이 태어난 집터를 알리는 푯돌이 있다. 기념관에서 목은 선생의 생애와 사상 등을 알아본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서남향으로 들어앉은 마을에 오후의 햇살이 가득하다. 그 햇살이 고인 어느 집 추녀 아래 곶감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목은기념관에서 마을로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에 암자가 하나 나오는데 그 암자 문 앞에 서면 저런 풍경이 보인다.


목은이색선생유적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341



  300년 전 한옥 뜰에 서다


마을로 내려와 제일 처음 들른 집이 1805년에 지은 ‘구계댁’이다. 1910년에 한 번 중수했다. 구계댁 말고도 영양 남씨 괴시파 종택, 물소와 고택, 경주댁, 주곡댁, 천전댁, 해촌 고택, 대남댁, 영감댁, 영은 고택 등 200~300년 된 한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영양 남씨 괴시파 종택


영양남씨괴시파종택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마을의 여러 집을 돌아보았는데 그 중 마음에 남는 집이 두 채다. 하나는 영양 남씨 괴시 파 종택이며 또 하나는 물소와 고택이었다.

물소와 고택은 조선시대 좌승지로 추증된 물소와 남택만 선생의 증손인 남유진 선생이 세운 집이다. 남자의 생활공간인 사랑채와 여자의 생활공간 사이에 담을 만들어 남녀의 공간을 엄격하게 분리해 놓았다. 괴시파 종택은 약 300년 전 남붕익 선생이 건립했다.


물소와 고택. 조선시대 좌승지로 추증 된 물소와 남택만 선생의 증손 남유진 선생이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황금 싸라기 같은 오후의 햇살이 툇마루에 내려앉았다. 그곳에 앉아 바람 잦아든 겨울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한옥의 지붕, 처마, 기둥, 서까래, 벽, 툇마루 등이 만들어 내는 곡선과 직선의 절묘한 조화가 오후의 햇살 아래 푸근했다.


괴시동물소와고택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고래불 해변의 4km 솔숲과 백사장


마을에서 나와 대진항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면 대진해변과 고래불해변이 차례로 나온다. 대진해변 갯골을 건너는 ‘고래불 대교’를 지나면 고래불해변의 남쪽 끝이다. 이곳부터 고래불해변의 북쪽 끝까지 약 4km다. 4km 내내 백사장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며 소나무 숲도 방풍림처럼 백사장과 나란히 이어진다.


괴시마을에서 시작한 여행을 고래불해변에서 끝낸다.


고래불해변에 도착해 백사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고운 모래가 바람에 휩쓸려 다닌다. 바람은 그렇게 나부끼며 백사장 위에 물결을 닮은 무늬를 만든다.


고래불해변. 갈대와 모래, 바다가 어울린 풍경. 오후 햇볕이라 색온도가 따듯하고 풍부하다.
고래불해변. 바다 건너 검은 띠처럼 보이는 게 4km 송림이다.


고래불해변의 겨울 낭만을 즐기고 돌아가는 길, 대진항을 지나 축산항으로 차를 달린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해안도로로 달려 도착한 곳은 영덕 해맞이 공원과 풍력발전소였다. 거대한 풍차가 있는 언덕까지 올라가서 풍차 아래 섰다. 풍차 날개가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훙훙’ 돌아간다.

먼데 있는 풍차와 풍차 사이로 오솔길이 났다. 그 길을 넘으면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 같았다.


강축해안도로 풍력발전소. 거대한 풍차가 바다를 향해 서 있다.
고래불해변


고래불해수욕장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병곡리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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