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에 놓고 온 것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내 마음을 두고 왔어요. 언덕 위 높은 곳에, 그것이 나를 불러요. 작은 케이블카가 별까지 반쯤 올라가는 곳이죠(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High on a hill, it calls to me. To be where little cable cars climb halfway to the stars).”
부드러운 선율의 피아노 연주와 잘 구운 와플 같은 ‘토니 베넷(Tony Bennett)’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몇 년 전 떠났던 샌프란시스코 여행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재방(再放) 된다. “그 높은 언덕이 나를 부르네. 별까지 반쯤 올라가는 조그만 케이블카” 아, 기억난다! 그 높은 언덕을 느릿느릿 오르던 케이블카. 내가 상상했던 케이블카가 아니었더랬지. 전차처럼 생긴 빨간색 트램. 가파른 언덕 위에 서면 태평양과 금문교가 한눈에 들어왔었다.
디즈니 영화처럼 음악이 점점 더 선명한 환영으로 바뀐다. 지글지글 익어 가던 ‘소살리토 햄버거’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던전 크랩과 아이리시 커피, 그리고 노트북 도난 신고를 받아 주던 중국계 경찰관의 미소까지도. 음악에 이렇게 취할 일인가,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란 노래 제목처럼 내 마음도, 노트북도 샌프란시스코에 놓고 왔다. 싱숭생숭해진 마음에 나의 AI 스피커 ‘제시카’를 통해 몇 곡을 더 신청했다. 물론 죄다 여행과 관련된 노래다.
뉴욕 사는 영국인을 모방하는 한국인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1967년 ‘스콧 매킨지(Scott McKenzie)’가 발표한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라는 노래를 재생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좋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여름에는 사랑을 나누게 될 것이란 ‘덕담 투성이’ 내용이다. 그런데 가만있자, 머리에 꽃을 꽂으라니. 난 머리카락이 전혀 없으니 꽃은 압핀으로 고정해야 하는 건가? 따갑겠지만 그곳에 보내 준다면 기꺼이 해보리라.
대륙을 횡단해 뉴욕으로 가야겠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뉴욕 뉴욕(New York New York)’을 틀었다. “빰빰바~바” 트럼펫 소리로 시작하는 1977년 곡이다. “이 잠들지 않는 도시에서 깨어나고 싶어요”라는 가사는 뉴욕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다. 숨죽여 한 번 더 노래를 들었다.
“소문 좀 내 주세요. 난 오늘 떠날 겁니다. 뉴욕의 일부분이 되고 싶어요(Start spreading the news, I’m leaving today I want to be a part of it New York, New York).”
뉴욕을 좀 더 여행하고 싶어졌다. ‘스팅(Sting)’의 ‘뉴욕에 사는 영국인(Englishman in New York)’을 재생했다. 비록 빨간색 영국 여권도, 뉴욕에 원룸 한 칸도 없지만, 한쪽만 구운 토스트와 홍차를 마시며 맨해튼 노천카페에 앉아 있는 상상을 했다.
“내가 5번가를 따라 걷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내 옆에는 지팡이가 항상 있지(See me walking down fifth avenue a walking cane here at my side).”
5번가를 걷기 위해선 지팡이를 하나 사야 하나. 누구나 억양을 보고 눈치챌 테지만, 내가 영국계 악센트를 사용한다면 누구에게나 난 중국계 인도인으로 보일 테고, 지팡이는 흉기로 인식되겠지? 무엇보다 영어 자체가 서투르니 어설픈 영국인 억양 놀이는 관두기로 했다.
삐딱한 사람을 말랑하게 만드는 방법
차라리 대서양을 건너기로 했다. 볼륨을 조금 높였다. 어디로 가지? ‘런던보이스(London Boys)’의 ‘런던의 밤(London nights)’, 음악이 좋긴 한데 너무 신이 난다. 런던이 언제부터 떠들썩한 도시였던가. 짙은 밤, ‘트라팔가 광장’이 거대한 롤러장이 되고 ‘빅 아이’가 사이키델릭한 조명에 휩싸여야만 어울리는 음악이다. 당장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관절이 좋지 않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토끼 춤을 선보이리라. 비싼 맥주와 터무니없는 가격의 택시를 타더라도 모두가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런던의 밤이 될 것 같기는 하다.
런던에서 파리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언뜻 생각나는 게 없다.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은 거룩한 성가와 캐럴 위주라 망설여진다. 아 참, ‘비 내리는 파리(Paris in the rain)’가 있었다. 번역하니 왠지 장마철 파리가 들끓는 하루가 떠오르지만, 노래는 파리의 이미지에 걸맞게 감성적이고 촉촉하다. 그래, 생각났다. 난 2016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샹젤리제 인근 ‘스머프 반바지’만 한 호텔에 묵고 있었고 그날 온종일 비가 왔다. 내 유일한 가죽 재킷이 비에 젖어 쭈글쭈글해졌지만 낭만적이었다. 조용하면서도 끈적한 이 노래에 축축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아래쪽은 또 다른 대륙이다. ‘토토(ToTo)’의 ‘아프리카(Africa)’. 토토의 노랫말처럼 세렝게티 위에 솟은 올림푸스처럼 당당히 뭔가를 해야 한다고 했었지. 뭔가를 하려면 가야 하잖아? 이젠 아프리카 여행에서의 황열병 예방접종 따윈 문제도 되지 않아. 진작 콧구멍을 수도 없이 찔러댈 테니 말이야. 차라리 가까운 곳, 그래 중국이 좋겠다.
중국 도시에 관련된 노래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금사향’의 ‘홍콩 아가씨’ 정도?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이런 분위기는 조금 아닌 것 같고, 잠깐 그런데 앞으로 중국 여행을 할 수 있으려나? “오! 당신은 현재 35차 부스터샷을 맞으셨군요, 미안하지만 중국 정부는 화이자 백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시노팜을 접종한 후 창문 없는 방에 열흘간 갇힌 후 2주 후에 오시면 심사해 볼게요!” 이럴 것만 같다. 일본이라면? 에이 차라리 하와이에서 엘비스를 추억할까? 세계 곳곳 노래 탐험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절정은 태국 방콕이었다. ‘머레이 헤드(Murray Head)’가 1984년 발표한 ‘방콕에서의 하룻밤(one night in Bangkok)’. 1946년생 개띠 아저씨가 흥겨운 타악기 리듬과 퉁소 소리에 맞춰 랩과 코러스를 절묘하게 엮어 낸 노래는 나를 당장 방콕 시암스퀘어로 이끌었다.
“방콕에서의 하룻밤은 완고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one night in Bangkok makes a hard man humble).”
서머셋 스위트룸까지는 아니더라도 방콕에서 오늘 당장 하루 묵을 수 있다면 요즘의 나처럼 삐딱한 사람도 말랑해질 것을. 같은 노래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오토리버스(auto reverse, 테이프형 유선 카팩 A면 재생이 끝나면 자동으로 B면으로 재생시키는 것)라고 아는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단 몇 곡을 크게 틀어 놓은 것만으로 떠나온 세계여행은 급작스럽고도 흥미진진했지만 진하게 아쉬웠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셀룰라이트처럼 이 여행 또한 나와 함께 오래오래 남겠지.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인스타 playeatlab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