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천지에 좋은 사람만 사는 것은 아니다. 하인리 힘러(Heinrich Himmler, 나치의 SS친위대장)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도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같은 전쟁광도 있게 마련이다.
이집트 뮤지움 빌런, 뮤지움 뮤지움
이집트에선 ‘이브라힘’이라는 꽤 근사한 이름을 가진 가이드를 만났다. 아침이고 늦은 밤이고 그는 언제나 웃었다. 처음엔 그 웃음이 고대문명의 후손들이 가난한 동양인 여행작가를 환대하는 최고의 표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구, 이 멀리까지 호구를 보내 줘서 반가워요’라는 뜻이었다.
이브라힘은 과연 그의 동명이인(유대인 아브라함과 같은 인물이다)처럼 굳건한 믿음을 기반으로 나를 이끌었다. 열정이 넘쳐나는 그는 나를 수많은 박물관으로 데리고 다녔다.
“날씨가 좋으니 나일강변을 둘러보고 싶어요.”
짧은 일정이라 취재 기간이 부족했던 나는 야외 동선을 원했지만, 영국에서 유학했다던 그는 유독 그때만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척을 했다.
“오~ 뮤지움 뮤지움!”
옛 물건에 집착하는 그의 진정성 있는 표정은 거의 채찍 없는 인디아나 존스 박사였다. 그는 나를 시내에 있는 보석 박물관으로 안내했다. 얄궂은 진주와 사파이어 같은 것들이 쇼케이스 안에 들어 있었고, 다른 쪽에는 보석보다 더 현란한 원색 캐리어백이 잔뜩 있었다. 그 아래에는 스핑크스 열쇠고리 따위가 한가득 있었다. 보석은 내게 큰 감흥거리가 되어 주지 못했다. 이브라함은 크게 실망한 듯했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말했다.
“넥스트 뮤지움 뮤지움!”
수고스럽게 30분 이상 차를 몰고 또 다른 박물관으로 이끌었다. 무형문화재 격인 ‘카펫 장인’이 있다는 박물관 겸 학원. 카펫 장인은 호메이니옹(과거 이란의 종교지도자)을 빼닮았다. 폐교 같은 건물엔 정성껏 짠 값비싼 카펫 두루마리가 양쪽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문과 후문에는 카펫보다 훨씬 아름다운 원색 캐리어백이 잔뜩 놓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스핑크스와 투탕카멘 열쇠고리가 판매대에 걸려 있었다. 몇몇 카펫은 마음에 들었지만 타고 날아가지 않는다면 저걸 어떻게 파주시 동패동까지 들고 갈 것인가. 무엇보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고개를 가로젓고 나와서 담배를 피웠다. 무형문화재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브라힘이 달려 나와 내게 뭐라뭐라 하는 듯하더니 다시 평온을 되찾고 말을 걸었다.
“뮤지움 뮤지움!”
파피루스 박물관은 호텔과 그리 멀지 않았지만, 매우 어두운 골목에 있었다. 밤이 늦었기에 나는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나오는 브래드 피트의 집처럼 생긴 건물에 들어가기를 무척 망설였다. 기대와는 달리 철문 안에는 벽면마다 밝은 색상의 파피루스가 걸려 있는 전시공간이 펼쳐졌다. 이브라힘은 내게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좋아 보이네!” 사실 대답과는 달리 딱히 볼 것은 없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와 다이어리가 반복적으로 펼쳐졌다. 코너를 돌자 반가운 것이 나타났다. 현란한 원색의 캐리어백과 낙타 모양의 열쇠고리….
이브라힘은 이번엔 화가 단단히 난 듯 보였다. 호텔 안으로 안내도 하지 않고 조수석에 앉은 채 그대로 돌아갔다. 나일강의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 왔고 호텔 로비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이브라힘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나타났다.
“뮤지움 뮤지움, 티(tea) 뮤지움!”.
독일 발성 빌런, 카흐하트크뢰하
이번에는 독일인 빌런을 만났다. 잊을 수 없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오펜바흐암마인역 방향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만난 그 인종주의자 말이다. 슈퍼마리오 옷차림을 한 2명의 늙고 젊은 검표원은 그 수많은 승객 중에 나를 포함한 동양인 일행만 콕 집어 표를 보여줄 것을 명령했다.
“야(Ja).”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운 나는 자신 있게 표를 내밀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뭔가를 찾아냈음을 표시하는, 약간의 실룩임이 서렸다. 오미크론 훨씬 이전인데도 인후통이 있었는지 가래 끓는 소리로 나를 다그쳤다. 용각산을 소개하고 싶을 정도의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크으하흐트 크흐타크”
‘넌 불법 무임승차야’라는 내용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프뤼타흐 카흐하트크뢰하”
이 말은 ‘넌 지금 정차하는 오펜바흐암마인역이 아니라 바로 전역인 오펜바흐역까지만 끊었으니 60유로를 내야 한다. 아니면 즉각 추방당할걸?’로 알아들었다. 그 악마는 마침 오펜바흐역을 지날 때 우릴 잡아냈던 것이다.
“빌어먹을, 그 다루기 어려운 키오스크에는 오펜바흐암마인역이 없었다. 그 오펜바흐가 이 오펜바흐인 줄 알았단 말이다!”
침착하게 항변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젊은 빌런이 늙은 빌런에게 아마도 “얘들이 잘 모르고 끊은 것 같으니 봐주자”는 듯한 말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늙은 빌런은 여권을 요구했고 이윽고 독일어로 가득한 서류에 사인하라고 명령했다. 내 고등학교 독일어 선생님 ‘게슈타포’는 내게 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당케(Danke, 감사합니다)’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파파고’로 독어 욕을 검색하는 그 짧은 순간에 그들은 플랫폼 너머로 유유히 사라졌고, 난 다음날 시내 관광일정 대신 60유로를 내기 위해 DB(Deutsche Bahn) 본사에 찾아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했다. 프랑크푸르트와 DB의 풍요에는 이처럼 어리바리한 동양인 여행자가 일부 기여했음이 틀림없다. 플랫폼 비즈니스란 과연 여행객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었을까.
세월이 꽤 흘렀지만 난 아직도 독일어를 들으면 뭔가 당장 해명해야 할 것 같다.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집트와 독일에 코로나 감염자가 그리도 많다는데, 그 빌런들은 병에 안 걸리고 잘 살고 있을까. 다시 만나 보고 싶다. 문득 내게 유럽에서 가장 비싼 군밤을 판 자그레브의 노인 빌런도 생각난다. 이집트 인디애나 박사에겐 커다란 캐리어백을 사다 주고, 독일인 슈퍼마리오에겐 용각산을 하나 사다 주고 싶은 결말.
*이우석의 놀고먹기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인스타 playeatlab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