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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May 10. 2022

해발 3,454m 융프라우요흐에는
난방기가 없다

산악관광의 역사를 개척해 온 융프라우의 역사는 ‘생태와 관광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고난도의 등반이었다. ‘유럽의 정상’이라는 명성 이면에는 이미 110년 전부터 실천해 온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있었다.


해발 3,454m에 위치한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는 하루 4,000여 명이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올라와 반나절 이상 머무는 작은 마을이다. 전망대, 기상관측소, 레스토랑, 얼음 터널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자연에서 얻는다. ©Jungfrau Railways



친환경 에너지로 작동되는 융프라우요흐


“여기 거주하는 사람은 없지만, 성수기에는 매일 4,000명이 넘게 방문하니까,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 시설 책임자의 말이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은 레스토랑, 전시관, 얼음 궁전, 상점, 기상관측소, 회의 시설, 우체국 등 다양한 시설이 있는 복합단지다. 수천 명의 방문객은 적어도 반나절 가량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를 경험하며 여기 머문다. 지상에서와 다를 바 없이 3코스 식사 후에 커피와 디저트, 멀티미디어 쇼를 감상하고, 기념품 쇼핑도 했다. 모든 것이 일상적이라 잊을뻔 했지만, 여기는 해발 3,454m, 대기압이 낮아 조리 온도를 맞추는 일조차 쉽지 않은 곳이다. 호흡이 가쁘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고산 증세를 흔히들 겪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극한의 환경은 에너지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 작은 마을을 작동시키는 친환경 에너지의 비밀에 접근하기 위해 금단의 구역인 통제구역 안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난방 시설이 필요 없는 이유


해발 3,454m 지점인 융프라우요흐에 난방기가 없다고? ‘그런 재앙’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4월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창밖 풍경이 비현실적인 정도로 실내는 내내 쾌적하고 따듯했었다. 융프라우요흐의 난방과 환기 시스템은 자연의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지혜의 산물이다. 만년설 가득한 설원의 찬바람은 이곳의 가장 흔한 자연 자원이다.


에어 시스템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별다른 장치가 없다. 외부에서 이물질이 들어오지 않도록 설치한 느슨한 철망 안에서 거대한 송풍관이 시작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로 들어온 찬바람을 정화해 실내 공기를 환기한다.


얼음 궁전


특히 융프라우요흐에는 인근 마을 출신의 산악인 2명이 1934년에 만든 얼음 터널이 있는데, 지금은 얼음 조각을 포함해 다양한 전시와 볼거리가 있는 명소(얼음 궁전)로 운영되고 있다. 방문객들의 체온에 얼음벽이 녹지 않도록 항시 –2℃ 이하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데,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방문객의 체온으로 데워진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대신 탱크로 이동시켜 온수를 데우고, 그 온수가 난방에 사용되는 선순환 구조다.


영하 10도에 가까운 바깥 온도에도 불구하고 내부 공기는 따듯하다. 태양열과 기계에서 발생하는 열, 체온 등을 모아서 실내를 난방하는 시스템이다. 빙하 아래 위치한 얼음 궁전(터널)이 녹지 않도록 영하 2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Jungfrau Railways


해가 나지 않아 외부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더라도 추가 난방은 필요치 않다니, 인간이 그토록 뜨거운 존재라고 믿을밖에(실제로 성인의 체온을 전기 에너지로 환산하면 약 116W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체온만으로는 부족해 태양의 복사열과 기계에서 발생하는 열도 활용하고, 야간에는 영상 18도를 유지하기 위해 자체발전소에서 전기를 공급받아 난방을 한다.



물과 불을 다루는 태도


온수 이야기나 나왔으니 말인데, 융프라우요흐에서는 매년 1,000만 리터 이상의 물을 사용하는데, 이 물의 50% 정도는 근처 바위와 지붕에 쌓인 눈과 얼음으로 충당한다. 물탱크 사이에 있는 기계실로 들어서니 굵은 파이프와 밸브, 펌프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소방 시스템과 식수 시스템으로 연결되는 장치들이다.



눈을 녹인 물은 대부분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로 사용하지만, 일부는 깨끗하게 정수 처리 후 미네랄 성분을 첨가해 식수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대부분의 식수는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기차로 올라오고, 사용하고 난 하수는 클라이네 샤이텍까지 9.4km에 이르는 하수관을 통하여 내려보낸 후 그린델발트(Grindelwald) 마을에서 정화처리를 한다. 더불어 모든 쓰레기는 압축기로 부피를 최소화해 지상으로 운반한다.


융프라우요흐의 시설 관리자와 함께 통제 구역을 넘어 융프라우요흐를 작동시키는 워터시스템, 환기시스템 등을 견학할 수 있다. 눈과 얼음을 녹여서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로 사용한다.


소방 시스템 이야기에서 전해진 오래 전 화재 에피소드 하나. 레스토랑에서 치즈 퐁듀를 먹던 한국인 아이의 장난으로 불이 났지만 다행히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불을 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레스토랑은 엉망이 되었지만 융프라우요흐의 화재 방지 시스템이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시설 책임자는 무한 긍정의 엔딩 멘트를 했다.


알레취 빙하 ©Jungfrau Railways


하지만 이미 1972년의 화재로 1910년대에 만든 산장과 호텔 시설이 전소되었던 경험이 있는 융프라우에는 무척 아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눈을 만끽하되, 물은 아끼고, 불은 단단히 조심할 것. 이곳은 알프스에서 가장 긴 빙하로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22km의 알레취 빙하(Aletsch Glacier)가 지나가는 곳이다.



이래서 ‘클린 에너지!’였네


융프라우요흐에서 내려와 물길을 따라 마을에 가 닿았다. 빙하가 깎아내린 협곡 안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뤼첸탈 마을이었다. 슈바르체 뤼취네(Schwarze Lütschine) 강에 바짝 붙어 있는 뤼첸탈 발전소(Lütschental power station)는 1908년에 가동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발전’을 하고 있다.


뤼첸탈 발전소


융프라우철도가 개통된 110년 전만 해도 나무나 석탄을 때는 증기 열차가 일반적이었지만 융프라우철도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전기 기반으로 설계했다. 현실적으로 터널 속에서는 증기 운전이 불가능하기도 했고, 매연도 문제였으며, 급경사를 오를 때 무게의 하중을 줄일 필요도 있었다. 융프라우철도는 지역에 수량이 풍부하니 자체 발전소를 운영해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고 정부 허가를 얻어 발전소를 만들었다.


110년 전부터 가동 중인 뤼첸탈 발전소. 융프라우철도 운행에 필요한 전기는 이곳에서 수력발전을 통해 자급자족하고 있다. 공해가 없는 클린 에너지 시설답게 심플하고 단정했다.


그중 한 곳인 뤼첸탈 발전소는 ‘클린 에너지’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공해와 오염 없이 단정하고 심플했다. 계절별로, 해별로 수량에 따라 발전량은 들쑥날쑥하지만, 매년 약 35~55GWh의 전기를 생산해 기차에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고 남으면 인근 지자체에도 전기를 공급한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몇 개의 모니터에 간단한 조작만으로 전체 발전소를 통제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발전 설비는 현대화 되었지만 발전소 외부는 114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세련됨과 단순함 그리고 이미 검증된 지속 가능성에 놀랐다.



융프라우철도의 오래된 미래


“요즘 다들 친환경, ESG에 관심이 많죠. 근데 융프라우철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운영해 왔어요. 수력발전소도 외에도 내려가는 열차 3대당 올라가는 열차 1대꼴의 전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융프라우철도 한국총판 송진 이사의 말이다. 진짜로 몰랐다. 에너지를 쓰는 줄만 알았던 열차가 전기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브레이크 제동 때 발생하는 전기는 회생 브레이크를 통해 메인 시스템으로 전달되어 다시 송전 시설로 전송되고, 이는 다시 다른 열차를 움직이는 전기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융프라우철도는 전체적으로 15~20%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있다고.


폭설을 뚫고, 계곡을 건너며 달리는 융프라우철도. 눈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산악 지대의 조건 속에서도 자연 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하려 했던 융프라우철도의 노력은 이제 선도적인 ESG 경영의 사례가 되었다.


지구상에 한 평의 오지도 허락하지 않는 여행자들의 열정이 지구에 폐가 되는 건 아닐지, 무척 원론적인 고민을 할 때, 융프라우 같은 곳이 고맙다. 내 체온이 빙하는 녹이는 대신 레스토랑의 따뜻한 공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는 것은 얼마나 안심이 되는 일인가. 에너지를 얼마나 쓰는가도 문제지만, 어떻게 쓰는가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최대한의 지혜를 발휘한 노력의 결과로, 우리의 여행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Jungfrau Railways


TIP▶ 융프라우 ESG 여행


융프라우철도 한국총판을 맡고 있는 동신항운을 통해 융프라우철도 ESG 투어 신청이 가능하다. 융프라우요흐의 제어 시스템, 상하수와 냉난방 시스템 등 일반인이 볼 수 없는 시설들을 책임자의 설명을 들으며 견학할 수 있다. 최대 15명까지 가능하며 30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www.jungfrau.co.kr
 


글 사진 천소현, 취재협조·사진제공  융프라우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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