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을 불며 걷는 옛 고갯길
상당산성옛길
고갯길 아래 시작시점부터 구불거리는 고갯길 따라 고갯마루까지 약 1.7km 정도, 직선거리로는 약 850m 정도, 고갯길이 끝나는 곳까지 합쳐서 총 거리 약 2km 정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옛 명암약수터와 산성동 산성교차로를 연결하는 옛 고갯길 이야기다.
고갯길 아래 시작지점인 옛 명암약수터 입구에서 고갯마루까지 해발고도 차이가 약 200m, 그 고도차의 직전거리가 약 850m 정도다. 구불거리는 길의 거리는 약 1.7km, 이 수치만으로도 고갯길 경사도와 구불거리는 정도를 가늠할 수 있겠다. 고갯마루에서 고갯길이 끝나는 산성교차로 전까지 약 300m 정도는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이 고갯길로 옛날에는 차가 다녔다. 지금은 청주시와 청원군이 합쳐져 청주시가 됐지만 옛날에는 청주시와 청원군 낭성면을 잇는 고갯길이었다.
옛 고갯길 옆에 새 도로가 났다. 옛 고갯길은 차가 다니지 않는 산책로가 됐다. 옛 명암약수터 입구에서 시작하면 약 1.7km 정도 걸어서 약 200m 정도 해발고도를 높여야 하는 등산에 가깝지만, 산성교차로 부근 고갯길 시작지점에서 걷기 시작하면 휘파람을 불며 걷는 기분 좋은 산책길이다.
산성교차로 부근에 옛 고갯길을 알리는 비석이 있다. 비석에 ‘상당산성옛길’이라고 새겨졌다. 비석 뒤로 솟대가 보인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정령 같다.
비석을 지나 차가 다니지 못하게 막아놓은 곳에 도착했다. 안내판에 따르면 2009년에 새 도로가 생기면서 이 길은 산책길이 됐다. 차는 물론 자전거도 다닐 수 없게 했다. 약간의 오르막길이 이내 끝내고 고갯마루가 나왔다. 고갯마루 위 공중에 것대산과 상당산성을 잇는 출렁다리가 보인다. 이제부터 전부 내리막길이다. 길은 포장된 도로지만 주변은 다 산이고 숲이다. 구불거리는 고갯길이 시작되는 곳에 상당산성과 것대산 등으로 갈 수 있다고 알려주는 등산로 이정표도 보인다. 우뚝 선 장승,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은 삿된 기운이 이 길에 범접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상징이다.
숲은 길 바로 옆에 있고 도시는 아득하다. 멀리 아득한 도시 풍경이 숲 위에 떠있는 것 같다. 전망이 트이는 곳에서 본 풍경이다. 금낭화, 구절초, 낙상홍, 꽃무릇, 고비, 맥문동, 박태기나무, 은방울꽃, 백철쭉, 원추리... 발치에서 길을 빛내는 생명들이다. 아주 작은 종을 닮은 이름 모를 꽃을 무릎 굽혀 앉아 보았다. 꽃의 얼굴을 보려 더 낮게 엎드렸다. 이 길에 피어난 생명들은 그런 힘을 지녔다.
산굽이를 휘감고 도는 물줄기처럼 길은 굽이쳐 돌며 아래로 흘렀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떠 있어 하늘은 더 파랬다.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면 햇볕은 숲 밖에서 나뭇잎 하나하나를 비춘다. 그렇게 형광빛 초록이 길을 밝히는 ‘숲터널’을 걷는다.
가지가 갈라졌다 다시 만나는 소나무 앞에 만남과 인연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써놓은 안내판 글귀를 읽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던 한 집안의 딸이 갖은 노력에도 병이 낫지 않자 범밭골에서 100일 동안 정양하라는 한 스님의 말을 듣고 범밭골로 들어갔다. 훗날 딸을 찾아간 사람들은 건강해진 딸을 만날 수 있었다. 딸은 범밭골에서 나는 약수를 먹고 병이 나은 것 같다고 했다. 범밭골 약수가 명암약수다.
아쉽게도 명암약수터의 약수가 말라 약수터의 기능을 잃었다. 명암약수는 톡 쏘는 맛에 철분 맛이 강했다. 약수가 흐르는 주변은 철분 때문에 붉게 물들었었다.
산성교차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명암약수터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301-43
우암산 산허리를 걷다
우암산 걷기길
청주시 상당구와 청원구의 여러 동네를 거느리는 우암산. 우암산 산허리를 도는 도로를 사람들은 삼일도로라고 불렀다. 그 도로 한쪽 진입로 초입에 3.1공원이 있어서 그랬나보다. 반대쪽 진입로는 청주랜드 정문 주변에 있다.
현재 그 길의 이름은 ‘우암산로’다. 우암산로에 붙은 다른 이름은 ‘우암산 걷기길’이다. 청주랜드 정문 옆 우암산로 초입에 ‘우암산 걷기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우암산 둘레길’ 조성사업을 올해 말까지 진행한다는 플래카드도 길 옆에 붙어있다. 지금 조성하고 있는 ‘우암산 둘레길’이라는 이름이 세 이름 가운데 가장 낫다 싶다.
청주랜드 정문 옆 ‘우암산 걷기길’ 이정표를 보고 출발. 500m 정도 걸으니 도착지점인 3.1공원이 3.6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왔다. 그러니까 우암산 산허리를 도는 ‘우암산 걷기길’은 4.1km다.
차가 다니는 도로 옆 인도를 걷는다. 오가는 차 소리가 호젓한 산책길의 분위기를 깨뜨리지만 청주의 상징인 우암산 산허리를 걷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우암산은 청주시 상당구와 청원구의 여러 마을을 아우르고 있어 산으로 들고 나는 마을길도 많다. 아침 먹고 산책 나온 아줌마 아저씨들 걸음은 느긋하고 여유롭다. 걷기 운동으로 체력을 다지는 사람들 걸음은 힘차고 빠르다.
간혹 마라톤 경주 하는 것처럼 뛰는 젊은이들도 보인다. 오후에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오후에 이 길에서 만난 어떤 아줌마는 운동 삼아 산책 삼아 이 길을 걷다가 마을로 내려가 식구들 저녁밥상에 올릴 찬거리를 살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이 길은 우암산 아랫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되기도 한다. 마을 뒷동산이기도 한 것이다.
율량동으로 내려가는 길을 가리키는 안내판을 지난다. 나무들이 도로 위를 덮었다. 초록의 ‘숲터널’이다. 오가는 차가 없을 때는 초록의 ‘숲터널’ 속으로 구불거리 이어지는 길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곡선의 부드러움과 길이 품은 상징 같은 서사가 초록 ‘숲터널’ 속에서 꿈틀대는 것이다.
사실 이 길 최고의 매력은 겨울에 볼 수 있다. 겨울 숲, 겨울나무 엉킨 빈가지 사이로 커다란 보름달이 떠오르는 풍경을 달리는 차 안에서 보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차에서 흐르던 음악의 주파수와 그 겨울 풍경이 만든 공간의 주파수가 하나 되는 경험을 오래 전에 했던 것이다. 옛 생각을 하며 도착한 곳은 3.1공원이었다.
이 길의 도착지점인 3.1공원은 일제강점기 3.1만세운동 등 광복의 염원으로 살다 간 의암 손병희, 동오 신홍식, 우당 권동진, 청암 권병덕, 은재 신석구 선생을 비롯한 충북의 항일독립운동 유공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기고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다.
우암산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우암동
삼일공원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산4-40
백성의 골목에서 서민의 골목으로
남주동 골목길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의 흔적은 남주동소공원에도 남아있다.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 637-2, 남주동 소공원에 가면 일제강점기 청주에서 일어났던 3.1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과 푯돌을 볼 수 있다. 푯돌에는 ‘1919년 민중들 만세소리 드높던 옛 쇠전거리 이 자리에 시민들의 뜻을 모아 이 표지석을 세운다’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곳은 쇠전, 우시장이었다. 이곳이 옛날에 우시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건 3.1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푯돌에 새겨진 문구가 전부다.
구남주동사무소소공원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주동 637-2
그리고 남주동소공원에서 약 100m 정도 걸으면 ‘남주동해장국’집이 나온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사진이 눈에 띈다. 옛날 우시장과 그 주변 풍경이 사진에 담겼다. ‘남주동해장국’은 우시장 주변에 있던 해장국집이었다. 식당 다른 쪽 벽에 걸린 ‘남주동 해장국 Since 1943’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숱한 서민들이 한 끼 식사로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헛헛한 마음을 따듯하게 달래줬을 80년 세월이 마음으로 밀려왔다.
남주동해장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무심동로304번길 10
이곳은 조선시대 청주읍성의 남문에서 500m도 채 안 되는 거리다. 당시 남문 밖에 시장이 있었다. 현재 청주약국 앞 사거리 부근에는 옛날에 청주읍성 남문이 있던 자리와 남문 밖 시장이 있었던 자리를 알리는 푯돌과 안내판이 있다.
육거리종합시장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석교동 131
현재 육거리종합시장 안 새마을금고 앞 사거리 땅 속에는 옛날 청주읍성 남문 밖 물길을 건너던 남석교가 묻혀있다. 충북대학교 박물관 야외전시장과 청주대학교 박물관 앞 화단에 가면 남석교의 부속물인 석구상 돌기둥을 볼 수 있다.
청주대학교 박물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대성로 298 청주대학교
조선시대 백성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남문 밖 시장과 골목에 지금은 우리의 서민들이 또 그렇게 살고 있다.
오동나무 꽃 핀 그늘 아래 낡은 이층 건물은 빈집이다. 양철로 담벼락을 세운 고물상 골목 안에도 오동나무가 하늘 높은 곳에서 꽃을 가득 피웠다. 누구는 꽃 중에 왕을 모란이라고 하지만, 꽃의 제왕은 오동나무꽃이다. 푸르른 오월, 연둣빛 신록으로 뒤덮인 산, 한 그루 오동나무에서 피어난 보랏빛 꽃들로 산이 황홀하다. 그런 오동나무가 남주동 오래된 마을 골목에서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있다.
오동나무꽃 핀 남주동 낡은 집들이 만든 골목을 걸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도 더러 보였다. 골목이 끝나는 마을 빈터에 들풀이 아무렇게 자라고 그 한쪽에 흙벽 나무가 드러난 집이 보인다. 간신히 걸려있는 옛 식당 간판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 같다. 황토색 칠한 높은 벽 골목은 이국적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인도하고, 그 골목을 지나 도착한 다른 골목에는 금가고 떨어진 회벽 담장에 그려진 담쟁이 넝쿨이 벌써 단풍으로 물들었다. 조선시대에서 대한민국까지 걸었던 남주동 오래된 동네 어느 날 하루의 기록.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