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양양 여행을 계획할 땐 양양에서 유명한 먹을 것들을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양양은 물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알려진 양양 송이가 가을 양양 특산물 음식의 대표주자라면, 자연산 섭국은 오래 전부터 양양사람들이 집에서 끓여먹던 음식이다. 대를 이어 말아내고 있는 막국수 냉면, 아이 간식 어른들 술안주로 자리 잡은 닭강정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초가을에 1박2일 온가족 여행을 그렇게 다녀왔다.
양양에 도착하자마자 송이전골을 먹으러 갔다
일기예보는 정확했다. 전국 가을비, 양양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탔다. “송이버섯마을 가주세요” 양양의 첫 번째 가을 음식은 단연 송이요리다. 양양 가을 음식 여행 식당 목록 첫 번째가 송이버섯마을이었다.
송이버섯마을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월리 339 송이버섯마을
송이전골이 중심 요리여서 한우 불고기가 곁들이 요리로 밀려났다. 한우가 송이에게 밀려난 것이다. 송이와 한우가 함께 들어가는 요리도 있었지만 송이와 한우의 고유 맛을 해칠까하여 따로 먹기로 했다.
송이전골이 나왔다. 전골이 끓기 전에 송이를 날로 한입 베어 물고 씹었다. 이른바 ‘송이회’. ‘송이회’로 양양의 가을을 영접했다. ‘가을산’을 통째로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그날 하루 종일 그 향이 코끝에서 맴돌았다.) 송이전골은 금세 동났다. 송이전골이 바닥을 드러내고서야 한우 불고기가 조명을 받았다.
그 좋다는 표고버섯에 튀김가루를 입혀 튀긴 이른바 ‘표고탕수’, 표고버섯초절임도 반찬으로 나왔으나 송이와 한우 불고기에 밀려 식구들 젓가락이 뜸했다. 반찬으로 나온 표고 요리의 80%는 표고버섯을 좋아하는 내가 다 먹었다.(나는 표고버섯을 날로 썰어 참기름소금장에 찍어 먹는 이른바 ‘표고버섯회’도 좋아한다.)
다음 목적지인 양양전통시장까지 1.5km 정도 거리, 택시 부르기는 가깝고 걷자니 비가 오고, 하지만 고민할 것 없이 하나 같이 ‘배부르니 걷자’로 마음이 뭉쳤다. 비에 젖는 남대천을 보며 걸었다. 양양전통시장 부근 커피 파는 곳에 잠시 머물며 이후 동선을 상의했다.
양양전통시장을 구경하고 단양면옥 막국수를 먹다
양양전통시장은 상설시장이지만 5일장이 서는 날이면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모인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가는 날은 장날이 아니었다. 장터에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과일 파는 아주머니는 장날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신다. 양양 사과가 맛있다시길래 만원어치 사서 배낭에 넣고 장구경에 나섰다.
양양시장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남문5길 9
여느 전통시장과 크게 다를 게 없었는데, 수산물가게가 모인 장골목에 걸린 문어들이 바닷가 전통시장의 흥취를 살리고 있었다. 이골목저골목 누비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을 지나게 됐다. 그 골목에는 장칼국수집이 많았다. 장칼국수는 이번 여행 음식 목록에 없었다. 여행 계획 단계에서 미처 눈여겨보지 못한 음식이었다. 현지에서 만난 장칼국수의 유명세에 당혹했으나 과감하게 포기했다. 양미리와 도루묵 요리를 파는 식당도 몇 집 있었는데, 다행이 양미리와 도루묵은 겨울이 제철인 음식이어서 겨울 양양 여행 때 먹을 음식 목록에 장칼국수와 함께 저장해두었다.
장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다음 음식을 영접키로 했다. 시장 주변에 있는 송이닭강정과 단양면옥 막국수. 송이닭강정은 포장해서 숙소로 가져가기고 하고, 단양면옥 막국수를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식구들이 아직 배가 꺼지지 않았다고 하여 혼자 식당으로 향했다. 그동안 식구들은 송이닭강정을 사고 장구경을 더 하기로 했다.
단양면옥은 대를 이어 하는 집이다. 함흥회냉면, 함흥물냉면, 회비빔막국수, 물막국수, 수육, 차림표에 적힌 음식이다. 현지 사람 몇몇 분은 함흥회냉면을 추천했지만, 회비빔막국수를 시켰다. 이번 여행 음식 목록을 정할 때부터 그랬다. 가자미회가 고명으로 올랐다. 오래된 작은 주전자에 담아낸 육수를 조금 부어 비볐다. 식당의 역사를 품은 관록 있는 맛이 막국수에 담겼다. 식당을 소개한 오래 전 글에는 막국수와 삶은 돼지고기가 어우러진 맛이 일품이라고 적혀있었다. 냉면 맛도 보통이 아니란다. 그 옆에는 만화가 허영만 씨가 출연하는 ‘백반기행’ 액자가 걸려있었다. 백반기행에 소개된 모양이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막국수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 무렵 식구들이 송이닭강정을 손에 들고 식당으로 찾아왔다.
단양면옥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남문6길 3
송이닭강정과 물치항에서 떠온 회로 저녁을 먹다
송이닭강정은 닭강정집 이름이다. 궁금해서 전화를 했는데, 닭강정에 송이가 들어간 건 아니었다. 양양이 워낙 송이로 유명한 곳이어서 닭강정집 이름을 송이닭강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닭강정 맛 평가는 유명하다는 닭강정집은 찾아가서 먹고 있는 둘째가 맡았다. ‘정말로 닭강정 같은 닭강정맛’이 둘째의 ‘한 줄 맛 평가’였다. 갖은 양념과 향신료, 소스 등이 어우러진 요즘 닭강정 시장에서 오랜 만에 맛본 정통 닭강정이라며 근래에 보기 드물게 입에 맞는 닭강정이라는 부연 설명도 곁들였다.
송이닭강정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양양로 57 송이닭강정
단양면옥에서 막국수를 먹은 내 몫의 닭강정만 남기고 우리는 바로 택시를 불러 회를 뜨러 물치항으로 달렸다. 물치항회센터 정보는 비를 맞고 남대천을 건너 양양전통시장에 도착해서 들렀던 커피 파는 곳에서 일하는 현지 사람께 얻은 정보였다. 시장 주변에도 회를 파는 곳이 있는데, 이왕 서울서 오셨으니 항구 바람도 쐬시라며 물치항을 일러주신 것이다.
비는 그쳤다. 먹구름과 하얀 구름이 바다 위 하늘에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낸 자리에 빼꼼 파란 하늘이 비치기도 했다. 아내가 흥정하는 사이 나는 건물 밖에서 물치항과 항구의 바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닭강정에 이은 제2차 저녁 식사를 회로 마쳤다. 나는 식구들이 배불러서 남긴 회 몇 첨과 내 몫의 닭강정으로 저녁을 먹었다. 어둑어둑한 낙산 해변으로 나가 해질 때까지 거닐었다. 내일 새벽 일출을 기대하며.
남대천과 바다가 만나는 합수지점, 투망을 던지는 사람의 아침
낙산 해변에 숙소를 정한 이유는 일출 때문이었다. 흐린 밤을 걱정했지만 새벽은 갰다. 해변의 미명으로 걸어 들어갔다. 파도소리와 바다의 작은 불빛도 좋았다. 바다 공기 바다 바람 바다의 어둠 모두 좋았다. 수평선 한쪽에서 빛이 샌다. 카메라를 준비했다. 해가 막 바다로 떠오르기 전이 하루 중에 가장 차다. 햇빛이 바다에 퍼지기 시작하면 새들도 날기 시작한다. 일렁이는 파도가 보인다. 해는 시시각각 다른 색의 빛을 하늘과 바다에 뿌린다. 소원을 빌었다. 그러고 싶었다. 수평선으로 떠오르는 해를 그냥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도 자꾸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있었다.
햇빛 기둥이 너울대는 바다에 빛으로 길을 낸다. 그 길을 가로질러 일터로 나가거나 돌아오는 배들이 힘차게 달린다. 새들이 그 하늘을 난다.
그 무렵 바다 한쪽에서 한 사람이 바쁘게 몸을 놀린다. 그쪽으로 걸었다. 그 사람이 있던 곳은 남대천 강물과 낙산의 바다가 만나는 곳이었다. 강물이 이름을 버리고 바다가 되는 그곳은 그 자체로 높아보였다.
낙산 바다가 고향인 그 사람은 바다로 투망을 던지고 있었다. 회귀하는 연어가 걸릴 때도 있지만 오늘은 참게와 학꽁치가 걸렸다고 했다.(그때가 9월말이었고, 10월부터는 금어기라서 물고기를 못 잡는다고 한다.) 연어는 이 마을 사람들이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물고기라는 말을 잇는다. 잠시 바다를 바라보더니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며 바다를 향해 투망을 또 던졌다.
낙산 바다가 고향인 그 사람과 해가 더 높이 떠오를 때까지 이야기 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늦은 아침을 먹었다.
집집마다 끓여 먹던 섭국
맑고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낙산 해변 백사장을 다 걷고 낙산사로 올라가 낙산사 이곳저곳을 누비며 구경을 하고 내려와 택시를 탔다. 양양 음식 여행 목록 중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음식은 자연산 섭국이었다. 섭은 홍합을 일컫는 강원도 사투리다.
기실, 자연산 섭국을 이번 음식 여행의 목록에 넣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첫째와 둘째가 요새 유행하는 음식 하나 정도는 넣어야 한다며 꽤 설득력 있는 의견을 냈던 것이다. 하지만 홍합을 좋아하는 아내와 처음부터 섭국은 꼭 먹어야 한다는 나의 뜻도 강했다. 결국 아이들의 양보로 겨우 목록에 오른 섭국이었다. 식당은 옛뜰로 정했다.
옛뜰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손양면 동명로 289
옛뜰의 섭국은 어죽처럼 걸쭉했다. 산골에서는 냇물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푹 고아 갈아서 어죽을 만들어 먹는데, 여기서는 물고기 대신 자연산 섭을 넣는 것이다.
큰 뚝배기 가득 나온 섭국을 개인접시에 담아 먹는다. 한 접시에 등줄기가 후끈거렸다.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섭국을 소개하는 식당 안내판에 30년 전통의 숙성 혼합장으로 국물을 냈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사전에 조사할 때는 알지 못했던 섭비빔밥도 한 그릇 시켜 같이 먹었다.
다음 여행지로 정한 하조대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연세 지긋하신 기사님께 섭국을 먹었다는 얘기를 꺼내니, 옛날에는 섭국을 파는 식당은 없었고 집집마다 섭국을 끓여먹었다시며 집마다 섭국 맛이 달랐다는 말씀도 덧붙이신다. 기사님 집에서는 옛날부터 섭국을 걸쭉하게 끓여 드셨다고 한다.
가을 양양 음식 여행 목록의 마지막 요리인 섭국까지 다 먹었으니 사실상 이번 여행은 섭국을 다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을 때 끝난 것이다. 하조대 구경은 덤이었다.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