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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Sep 06. 2017

1박으로도 충분!
강원도 패키지여행

아내와 함께 강원도 패키지여행
오길 참 잘했다, 그치?

아내와 함께 처음으로 국내 패키지여행을 했다. 
그도 좋았지만 ‘운전의 굴레’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여행에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설레었다. 
아내와 함께 한 홍천·속초·양양·인제 1박2일 패키지여행 이야기!
낙산사 홍련암


두근두근 패키지 ‘함께 또 따로’

1박2일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줄 관광버스는 서울역과 신길역에서 손님들을 태우고 마지막 집결지인 잠실종합운동장역으로 온다. 손님은 많을까, 어떤 사람들일까, 가이드는 친절할까…. 국내 첫 패키지여행이어서 그런지 아내는 재잘재잘 궁금증을 토해낸다. 

1박2일을 함께 보내니 당연히 ‘멤버 구성’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서로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각자의 여행을 즐기는 ‘함께 또 따로’이니 걱정 말라고, 마치 ‘프로 패키저’인양 조언해줘도 소용없다. 우리 버스를 찾아 가니, 이제 갓 30대에 접어들었을 것 같은 젊은 남성이 반긴다. 가이드의 서글서글한 인상이 아내는 마음에 드나보다. 

관광버스는 이미 손님들로 빼곡하다. 가벼운 눈인사와 목례로 1박2일 동행자들과 처음 대면한다. 여고 동창인 것 같은 한 무리의 아줌마 손님들은 자기네 이야기에 빠져 우리에게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다행이다 안도하며 우리 자리에 안착! 오전 7시30분, 버스 출발과 함께 1박2일 부부 패키지여행도 시작이다.

“소지품은 버스에 두고 내리셔도 안전합니다. 이렇게 몇 번을 말씀드려도 꼭 무거운 가방 꼬박꼬박 들고 내리는 손님들이 계신데요. 이분들 문제가 뭔지 아세요? 정작 여행 끝나고 집에 가실 때는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린다는 거예요.”


가이드 입담이 좋다. 삼촌, 이모, 어머니, 아버지 대하듯 모시겠다는 말에 모두들 껄껄 흡족한 표정이다. 가이드 농담에 까르르 까르르, 나중에는 진지한 얘기에도 웃는다. 왜 웃지? 손님들 모습이 더 재미있어 따라 웃는다. 웃다보니 아침을 주겠단다.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아침을? 김밥을 주겠구나 싶은데, 플라스틱 접시에 위생비닐을 씌우더니 가이드가 손수 밥과 너덧 가지 찬을 담는다. 낯선 아침식사를 아내는 신기한 듯, 당황스러운 듯 바라본다. 정작 접시는 먼저 비운다. 후식처럼 한 마디 던진다. 맛있는걸!  

수타사는 성덕왕 7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버스는 항상 까무룩 잠드는가 싶을 때 멈춘다. 첫 번째 여행지 홍천 수타사다. 성덕왕 7년(708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공작산에 안긴 모습이 중후하고 기품 있다. 1658년에 건립된 누각인 홍회루 앞에는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준다는 설명문이 딸려 있다. 홍회루와 마주한 대적광전은 수타사의 중심 법당이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내부 모습에 카메라 버튼을 살짝 누른다. 원통보전 건물도 구경하고 마당을 거닐다가 스님께도 인사한다. 

수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생태 숲 산책길

우리 팀 말고도 수타사를 찾는 이들이 많아 복작대는 느낌마저 들지만, 아랑곳없이 천년고찰 이곳저곳을 누빈다. 일행이 모두 사라진 것을 눈치 채고서야 걸음을 재촉한다. 계곡 길과 생태 숲을 산책하라던 가이드 말이 그제야 스친다. ‘수타사 산소길’이라고 부른다. 푸른 숲과 녹색 정원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오랜 만의 산책 덕분일까, 아내가 슬며시 손을 잡는다.      




내 입맛대로 게릴라식 여행


다시 버스 안, 속초로 향한다. “아침은 급한 대로 허기만 달랜 거고요, 진짜 식사는 점심이죠. 강원도 황태구이 정식으로 준비했어요!” 황태로 유명한 인제 용대리 부근을 지나치는 순간을 가이드는 놓치지 않는다. 

미시령 터널을 빠져나오니 오른편으로 설악산 울산바위가 삐죽삐죽 솟구친다. 오른편 울산바위가 제대로 보일 리 없는 버스 왼편 좌석 손님들의 조바심을 예상했다는 듯, 버스는 미시령촬영휴게소에 멈춘다. 그곳에서 울산바위는 모두에게 공평해 다들 흡족한 표정이다. 

황태구이

그 만족감은 황태구이 정식이 이어받는다. 식당 메뉴판을 보니 1인당 1만2,000원. 안 그래도 한 상 빼곡히 차려진 황태구이 밥상에 입맛이 돌던 차에 가격도 제법이어서 얼른 젓가락을 든다. 4인용 식탁을 함께 한 다른 노부부 일행이, 젊은 부부가 이렇게 여행도 다니고 보기 좋다, 그러며 살뜰하게 챙겨준다. 못 이기는 척 계속 황태구이를 탐한다. 

바다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낙산사

황태구이로 배를 채운 버스는 속초를 떠나 양양으로 달린다. 낙산사, 1,300여년 전 671년에 의상대사가 세운 고찰이다. 2005년 이곳을 삼킨 화마가 아직도 원망스럽지만 온전히 재건된 모습에 그나마 안도한다. 워낙 대지가 넓다보니 가이드는 미리 관람 코스를 설명하고 집합지와 시각을 주지시키고는 사라진다.

각자들 자유롭게 2시간을 낙산사에서 보낸다. 패키지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다들 자기 입맛대로 ‘게릴라식 여행’을 즐기니, ‘세미 패키지여행’ 쯤 되겠다. 2년 전이었나, 다른 계절에 찾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낙산사는 파란 하늘을 덮고 푸른 바다를 끼고 맑게 빛난다. 

(좌)동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해수관음보살의 크기는 16m (우) 꿈이 이루어지는 길 양 옆으로는 크고 작은 돌탑이 쌓여 있다


원통보전의 칠층석탑은 묵직한 아름다움으로 우뚝하고, ‘꿈이 이루어지는 길’ 양 옆으로는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 모여 돌탑으로 솟는다. 화마에도 끄떡없었던 높이 16m의 거대한 화강암 해수관음보살은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중생의 안위를 염원한다. 

보타전 내부의 황금빛 관음상은 여전히 화려하고, 동해와 맞닿은 의상대 자태도 변함없이 꼿꼿하다. 의상대를 지나 낙산사 깊은 안쪽 홍련암으로 향하는데, 아내가 다시 손을 잡는다. 손잡은 김에 ‘바다를 바라보며 쉬어가는 곳’에 앉아 한참 바다를 응시하니, 애틋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여행은 사는 재미, 말려지나!


“저는 강원도 토박이래요, 5년 넘은 자연산 도라지 가루래요. 기관지에 아주 좋드래요. 가래도 사라지고 기침도 멈추고 그러드래요.”


정차 중인 버스로 불쑥 한 사나이가 올라오더니 도라지 가루를 판매한다. 가이드가 가만 놔두는 걸 보니 아는 사이이거나 지역민 돕기 차원이다. 맛보라며 티스푼으로 조금씩 나눠준다. 기침 가래에 특효라더니 오히려 버스 여기저기서 마른기침이 연막탄처럼 터진다. 콜록 콜록. 물에 타 마셔야 할 가루를 그냥 툭 털어 넣으니 기침이 터질 수밖에. 기침해대는 모습이 서로 우스운지 웃음바다다. 덕분에 너도 나도 한 통에 1만원씩 치른다. 기침이 잦은 딸이 떠올라 지갑을 연다. 여행은 먹는 재미 다음에 사는 재미 아니겠느냐며 한 통 더 사려는 아내를 말린다. 

말린다고 말려지는가! 속초에서 아내는 ‘사는 재미’를 작정한다. 추억이 서린 대포항에서 건어물을 사자며 성큼성큼 앞장선다. 말끔하게 현대화된 대포항이 얼굴을 내민다. 20여 년 전 둘이 연애할 때 처음 만났던 대포항 얼굴은 아니다. 어부들이 배를 대고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팔던 그 수수했던 대포항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내는 추억을 잃은 듯 물건 살맛도 잃는다. 

(좌)아바이 마을과 중앙시장을 잇는 편도 200원의 갯배 (우)마을에는 <가을동화>의 두 주인공인 송혜교, 송승헌의 동상 이 있다


아바이 마을과 중앙시장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갯배를 타보자고 조른다.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송혜교가 타 유명해진 속초의 명물 그 갯배다. 갯배는 아바이 마을과 중앙시장을 잇는다. 편도 200원. 갯배를 움직이는 쇠줄을 전용기구로 당겨보려다가 힘들 것 같아 그만둔다. 한 남자가 서툰 솜씨 탓에 삐끗 휘청거리니 갯배 선장이 면박을 준다. 그것도 못하냐고. 안 하길 잘했지. 거대한 황소동상을 지나 시장으로 들어간다.

회부터 길거리 음식까지 주전부리 가득한 속초 중앙 시장 ,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닭강정집


인산인해! 시장답다. 지하로 내려가니 수산시장, 고르기만 하면 회든 매운탕이든 찜이든 식당으로 대령한다. 인파만큼 많은 먹을거리에 저녁 메뉴 고민만 커진다. 아바이 순대를 먹을까, 닭강정을 먹을까, 아니면 회? 그도 아니면 이것저것 길거리 음식…. 고민만 하다가 2시간 자유시간을 모두 축낼 것 같아 초초하다.
닭강정은 포장해 가서 펜션에서 맥주랑 먹으면 되지, 아내의 제안에 무릎을 친다. 

강단 있게 결정한다. 갯배 선착장 앞 생선구이 집이다. 생선구이에 막걸리를 곁들이니 여행 오길 잘했다 싶다. 식당에서 따로 파는 가리비젓갈과 깻잎절임을 한 통씩 주문한다. 나중에 보니 우리만 두 손이 무거운 게 아니다. 숙소에 도착하고 보니 다들 많이 사오길 잘했다 싶은 표정이다. 설마 했지만, 가이드 말대로 숙소 주변은 그야말로 ‘없을 무’다. 해발 1,000m에 가까운 오지 아니던가. 굳이 꼽자면, 산, 밭, 나무, 별 정도다. 강원도 인제의 깊은 산 속 오지마을답게 별이 가깝고 초롱초롱하다.




곰의 배 대신 들꽃 살랑살랑


‘오지마을 부녀 이야기’로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는 식당 겸 펜션 주인 아주머니가 차린 아침식사는 건강식단이다. 집에서 만든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고 텃밭에서 막 따온 상추며 고추, 각종 산야채 나물을 반찬으로 채운다. 아침인데 과식이다. 곰배령을 올라야 하니 든든하게 먹어둬야지, 합리화한다. 

빼곡한 숲이 만들어낸 그늘 덕분에 여름에도 시원하다


곰배령, 인제 점봉산 능선에 있는 고개다. 해발고도 1,164m. 곰이 배를 하늘로 드러내고 누운 모양이라서 이름이 그렇단다. 곰의 배는 끝내 보이지 않는다. 이곳은 산림유전자원보호지구여서 입산이 아예 통제된 적도 있다. 지금도 하루에 300명씩만 예약제로 허용한다고 한다. 

아침 일찍 서둘렀는데도 이미 입구는 등산복 차림의 인파로 줄이 길다. 하루에 300명만 받는다더니, 딱 봐도 500명은 넘어 보이는 걸, 여기저기서 입산 인원 제한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가이드 왈, “이곳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이곳 숙박시설에 숙박한 사람들은 추가로 허용해 줘서 그래요.” 실제 몇 명까지 허용하는지 관리인에게 물으니 귀찮다는 표정만 돌아온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곰배령 트레킹. 산림유전자원보호지구여서 허가된 길로만 트레킹을 해야 한다

오르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볼 만하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아내가 달래도 기분이 나쁘다. 기대는 할 만하다. 숲이 빼곡해 햇빛이 제대로 뚫지 못한다. 점심으로 받은 산야초 주먹밥을 먹다가 한기에 그만 겉옷을 입을 정도다. 

곳곳에서 낯선 나무와 야생초를 볼 수 있는 곳

트레킹 코스는 그 자체로 거대한 식물원이자 정원이다. 들메나무, 층층나무, 난티나무, 쪽버들나무, 노린재나무, 음나무, 피나무, 시나무, 거제수나무, 까치박달, 서나무, 청시닥나무…. 낯선 나무가 동행하니 신선하다. 참꽃마리, 얼레지, 말나리, 모데미 풀, 복수초, 매발톱꽃, 초롱꽃, 둥근 이질풀, 노루오줌…. 시기별로 들꽃이 피고 지고 야생초가 자라고 시든다. 4km 1시간30분의 트레킹, 호젓한 산책이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곰배령, 어디가 곰의 배라는 것인지 쉽게 찾아낼 수는 없다. 그저 이 높은 곳에 이렇게 너른 들꽃 풀밭이 펼쳐진다는 게 곰의 배보다 더 궁금하다. 풀밭에 나란히 앉아 이름 모를 들꽃을 마주하니 바람이 살랑대며 얼굴을 간질인다. 여행 오길 참 잘했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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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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