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이 꼭 로맨틱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MZ식 허니문, 이집트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어쩌다 이집트행
모든 예비부부의 숙제, 과연 신혼여행 준비는 도대체 언제부터 해야 좋을까. 정답은 없지만 대개 결혼 3~6개월 전부터 준비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우리 부부, 불과 결혼 한 달 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후다닥 결정했다. 어디를 가도 좋다는 그녀와 어디든 가고 싶어 결정 장애에 걸려 버린 나의 작품이다. 다양한 후보군을 놓고 숙소와 비행기를 알아보며 비교만 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 일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당장 결혼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일단 둘 다 안 가 본 곳, 한국 여행객이 별로 없는 곳, 물가가 한국 대비 저렴한 곳, 관광과 휴양을 모두 할 수 있는 곳, 이왕이면 아프리카. 이 모든 조건 끝에 이집트가 남았다. 우리 부부는 이집트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Pyramid
이집트의 목적, 피라미드
이집트를 찾는 여행자의 첫 번째 목적은 거의 같다. 세계 7대 불가사의, 피라미드를 보는 것. 우리 부부 역시 피라미드가 이집트 여행의 90% 이상 지분을 차지했다. 신혼여행 중 어떤 변수가 생기든, 피라미드만이라도 보고 온다면 이집트 여행의 목적을 이룬 셈이다.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자(Giza)’로 이동한 이유다.
카이로 국제공항은 그야말로 무질서한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다. 서둘러 빠져나오는 게 심신안정에 좋다. 공항에서 택시로 약 1시간 남짓 달리면 ‘기자’에 도착한다. 기자는 이집트 북부에 있는 교외 도시다. 애벌레 같은 꼬부랑글씨,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가 난무하는 혼돈의 상황 속에서도 기자에 입성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던 건, 멀리 보이는 피라미드 덕분이다. 서울 롯데타워나 도쿄 스카이트리같이 빼빼 마르고 뾰족하기만 한 건축물에 비해, 넙죽하고 육중하다. 그야말로 웅장함 그자체. 직선거리로 약 1km 반경, 달리는 택시 안에서 바라본 피라미드의 첫인상이다.
Pyramid of Djoser
인류 최초의 피라미드,
조세르의 피라미드
우리 부부가 피라미드를 코앞에서 마주하게 된 건 이튿날이다. 피라미드는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이 그 크기만큼이나 어마어마하다. 그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하려면 역시 일일투어밖에 답이 없다. 이집트에는 한국말이 제법 유창한 이집션 가이드들이 진행하는 일일투어 상품이 많다. 우리 부부는 그중 후기가 가장 많은 가이드를 선택했다. 믿을 건 한국어 후기뿐. “기자 피라미드 보기 전에 사카라 피라미드를 먼저 볼 거예요. 그래야 피라미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사카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피라미드는 매끈한 정사각뿔 모양이지만 사카라 피라미드는 3단 케이크처럼 다단으로 쌓아 올린 계단식 피라미드다. 아랍어로 ‘직사각형 벤치’를 뜻하는 벽돌식 단층 무덤인 ‘마스타바’를 층층이 쌓아 만들었다. 모양은 달라도 1km 반경에서부터 웅장함을 뽐내는 것을 보니 피라미드는 과연 피라미드다.
피라미드는 사후세계를 믿었던 고대 이집트 시대 ‘파라오(고대 이집트 통치자이자 왕)’들의 무덤이다. 각 피라미드마다 왕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보통 사카라 피라미드라고 하면 고왕국 시대 이집트 제3왕조 두 번째 파라오인 ‘조세르의 피라미드(Pyramid of Djoser)’를 뜻한다. 모든 피라미드의 조상님으로, 인류 최초의 피라미드다. 조세르 피라미드 코앞에 서면 그저 크다는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벽돌 하나하나, 전부 크다. 사카라 피라미드도 이 정도인데 기자 피라미드는 얼마나 더 크다는 것일지. 기자 피라미드는 최고 높이 147m, 아파트로 치면 약 50층 높이에 달한다. 밑변 길이가 대충 학교 운동장 한 바퀴(230m) 정도 되는 셈이다. 가이드를 따라 조세르 피라미드 남쪽에 위치한 ‘우나스 피라미드(Pyramid of Unas)’로 향했다.
Pyramid of Djoser
주소: Pyramid of Djoser, Badrshein, Giza Governorate 3352001, Egypt
운영시간: 매일 08:00~17:00
요금: 성인 사카라 지역 전체관람 300EGP, 조세르 피라미드만 관람 150EGP
Pyramid of Unas
벽화의 시작, 우나스의 피라미드
우나스는 이집트 제5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우나스의 피라미드는 반드시 내부를 관람해야 한다. 외부는 공사장에 공사가 끝나고 남은 돌덩이들을 무더기로 쌓아놓은 것처럼 생겼다.
피라미드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 플립형 핸드폰처럼 허리를 반으로 접고 걸어야 할 만큼 좁디좁은 통로를 지나면 비로소 허리를 펼 수 있는 ‘현실(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무덤 속의 방)’에 도착한다. 사방팔방으로 온갖 희한한 상형 문자들이 사방 가득 도배되어 있다.
‘피라미드 텍스트(Pyramid Texts)’라 불리는 이 상형 문자는 사후세계에 있을 파라오의 부활을 돕기 위한 종교적인 주문서다. 일종의 주기도문인 셈. 피라미드 텍스트는 우나스의 피라미드에서 최초로 시작됐고 이것이 전통이 되어 이후 만들어진 피라미드에도 벽화나 문서로 기록이 남겨지지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시대에 따라 형태는 조금씩 달라졌다.
우나스 피라미드의 또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벽에 플래시를 비춰 보면 알 수 있다. 현실의 벽면 일부가 ‘알라바스타(Alabaster)’라고 하는 반투명 돌로 되어 있어 빛을 비추면 빛이 통과되면서 밝아진다. 인증숏을 찍는 사람들이 플래시를 키고 찍는 이유가 단순히 어두워서만은 아니다.
Pyramid of Unas
주소: Pyramid of Unas, Badrshein, Giza Governorate 3352001, Egypt
운영시간: 매일 08:00~17:00
Great Pyramid of Giza
삼부자의 무덤, 기자 대피라미드
사카라에서 다시 기자로 이동해 드디어 피라미드 중의 피라미드, 기자의 대피라미드와 마주했다. 다시 이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정말 크다. 보통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기대보다 피라미드가 더 크다. 정말 크고, 또 크다.
그런데 이렇게 큰 피라미드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제일 큰놈이 하나 있고, 그보다 조금 작은놈 하나, 또 그보다 더 작은놈 하나, 이렇게 총 3개의 피라미드가 있다. 사실 3개 말고도 주변에 사카라 피라미드와 같은 계단식의 작은 피라미드와 마스타바(긴 네모꼴의 분묘 형식)들도 여럿 보인다. 이처럼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하나의 단지를 이루고 있어 이곳을 ‘기자 피라미드 콤플렉스’, 혹은 ‘기자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죽은 자들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공동묘지인 셈이다. 참고로 모든 피라미드가 파라오의 무덤은 아니다. 일단 우리에게 친숙한 세모 반듯한 모양의 커다란 3개의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이고, 그 옆에 위치한 계단식 피라미드는 왕족의 무덤, 주변의 돌무더기 같은 마스타바는 귀족의 무덤이다.
3개의 피라미드는 이집트 고왕국 시대 제4왕조 때 3대에 걸쳐 고대 이집트를 통치했던 파라오들의 무덤이다. 가장 큰 것이 제4왕조 1대 파라오, 쿠푸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Khufu), 두 번째가 쿠푸왕의 아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Khafre), 마지막이 쿠푸왕의 손자이자 카프레왕의 아들인 맨카우레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Menkaure)다. 단연 가장 거대한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돌 하나의 높이가 대충 성인 키 정도인데 하나당 무게가 약 2.5톤이다. 무려 230만여 개의 돌이 사용되었다. 현대 건축기술로도 쉽지 않았을 법한 일을 기원전 3,000년에 해냈다 하니,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탄생이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내부 입장권은 조금 비싼 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수박의 겉만 핥을 순 없다. 속는 셈 치고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섰다. 피라미드 내부는 오름의 연속이다. 초입을 지나 대회랑까지 오르는 통로는 직립보행보다 사족보행이 훨씬 수월하다. 대회랑에 도착하면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계단 지옥. 사실 지옥이라 할 만큼 계단 높이가 높거나 개수가 많지는 않았는데 환풍구라고는 작은 틈새 하나 없는 벽돌 속이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 온다.
계단 지옥의 끝에는 쿠푸왕의 석관이 있는 방이 있다. 달랑 석관만 있다. 이유인즉슨, 쿠푸왕의 피라미드 발견 당시 이미 도굴꾼들에게 모조리 훼손된 상태였다고. 비록 쿠푸왕의 미라는 없지만, 파라오의 기운은 충분히 받고 간다고 정신 승리하며 기자의 대피라미드 투어도 마무리.
Great Pyramid of Giza
주소: Giza Pyramid Complex, Al Haram, Giza Governorate 3512201, Egypt
운영시간: 매일 07:00~18:00
요금: 성인 기준 입장료 360EGP(각 피라미드 내부 입장료 미포함), 쿠푸왕 피라미드 내부 입장료 600EGP
The Desert of Baharia
사막에서 보내는 하루,
바하리야 사막투어
이집트는 국토의 95%가 사막이다. 이집트에서 사막을 안 간다는 건 이집트를 5%밖에 보지 못한다는 말. 95%의 이집트를 위해 사막투어를 신청했다. 자고로 신혼여행은 아끼지 않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방법. 예비 남편이라면 새겨들어야 한다. 무조건 하는 게 남는 거다.
대표적인 이집트의 사막으로는 시와(Siwa)와 바하리야(Bahariya)가 있다. 모두 아프리카 대륙 최대 사막인 사하라(Sahara) 사막의 일부다. 둘 중 비교적 카이로와 가까운 바하리야를 선택했다. 가이드는 ‘사하라’로 운을 떼더니 본격적으로 썰을 풀기 시작했다.
“보통 한국인들이 사하라 사막이라 부르는데 아랍어로 사하라가 사막이에요. 그래서 사하라 사막이라고 하면 사막사막이에요. 그냥 ‘사하라’ 혹은 ‘사막’이라고 하면 돼요!” 이어서 바하리야 사막. 바하리야는 아랍어로 바다를 뜻한다. 즉, 바하리야 사막은 아주 먼 옛날 바다였던 곳이다. 흑사막, 크리스털사막, 백사막까지 총 3개의 사막이 있는데 1박2일 동안 3개의 사막을 모두 체험할 예정이다. 각 사막에서의 지형적 특색을 살린 인증숏 촬영과 액티비티도 준비되어 있단다.
첫 번째는 흑사막. 이름처럼 까맣다. 생애 첫 사막을 영접했는데 까만 사막이라니. 그렇다고 온통 까만 모래만 있는 건 아니고, 황량한 모래벌판 곳곳에 흡사 제주도의 오름을 닮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봉우리를 중심으로 까만 모래가 집중적으로 쌓여 있다. 꼭 재를 흩뿌려 놓은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오래전 화산이 터지고 용암과 화산재가 굳어져서 만들어진 사막이란다. 어쩐지 모래가 거칠더라. 가이드의 진두지휘 아래 인증숏을 남기고는 크리스털사막으로 이동했다.
크리스털사막 역시 화산 폭발로 인해 생긴 사막 지형이다. 유리의 주원료라 할 수 있는 이산화규소가 다량 함유된 해안 규사(해안에 있는 규소가 함유된 모래)가 화산이 폭발하면서 높은 온도로 가열되어 융해된 후 다시 냉각되어 형성된 것. 바하리야 사막이 과거 바다 혹은 바닷가였다는 흔적이자 증거다. 크리스털사막의 크리스털은 햇빛이 없으면 그저 삐쭉 빼죽한 모양의 날카로운 반투명 돌이지만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 빛나는 크리스털의 반짝임은 가이드의 사진첩으로 대신해야 했다.
다음 코스인 백사막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우리에게 친숙한 곱디고운 모래사막이 나왔다. 갑자기 기사님이 타이어를 교체하더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초 같은 드라이빙 실력을 뽐낸다. 울퉁불퉁하고 급경사가 많아 좌로 쏠리고, 우로 쏠리고, 통통 튈 때마다 머리가 천장에 닿고, 입으로는 모래가 들어온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감탄사, 욕과 비명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한창 텐션이 올라 있는데 내리막길 앞에서 차가 멈췄다. 이제 샌드보드로 환승할 시간. 야심 차게 선발로 출발한 1차 시도의 결과는, 꽈당! 생각보다 중심 잡기가 어렵고 속도도 빠르다. 오기로 가득 찬 독기 어린 눈으로 출발한 끝에 드디어 성공. 원리는 눈썰매와 비슷하다. 단지 눈이냐 모래냐의 차이. 정말 재밌는데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무거운 보드를 질질 끌고 모래 언덕을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것. 발목까지 푹푹 꺼지는 모래 탓에 웬만한 등산만큼이나 힘들다. 최소 10번은 더 타고 싶었으나 3번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여기서 신혼여행 팁 하나. 예비남편들, 힘든 건 무조건 먼저 나서서 도와줘야 한다. 모른 척하면 평생 간다. 신나도 잊지 말자, 이건 ‘신.혼’여행이다
백사막으로 가는 길에는 들러야 할 곳이 하나 있다. 아가밧 계곡(Valley of Agabat). 지구지만 지구가 아닌 곳이다. 아가밧 바위로 불리는 기이한 모양의 큰 바위들이 오름처럼 솟아 있어 CG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아가밧 계곡 초입의 파노라마 전망 스폿에서 바라보면 혹 아주아주 거대한 스크린이 앞에 있어 UHD(초고화질) 영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보면 볼수록 참 신기하다. 실제로 ‘아가밧’은 아랍어로 ‘신기하다’라는 뜻이다.
바하리야 사막투어의 마지막 사막이자 베이스캠프인 백사막은 모래사막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인 듯한 모습이다. 물론 눈은 아니고 석회암이다. 석회암이 사막 전체에 깔려 있고 곳곳에 커다란 바위 형태로 널려 있다. 석회암은 주로 조개껍질이나 산호와 같은 해양 환경으로부터의 퇴적물로 만들어진다. 백사막은 바하리야 사막이 과거에 바다였다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증거다. 실제로 조개 화석 등이 발견되기도 했단다. 백사막의 커다란 석회암 바위들은 돌조각 공원에 온 것처럼 각자 두서없지만, 개성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오랜 시간 바람을 맞아 깎인 결과다. 치킨바위와 버섯바위가 유명한데 백사막의 단골 포토존이다.
백사막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새벽에 펼쳐지는 우주쇼, 별구경하기 좋은 곳이라는데 새벽녘 날씨가 흐려지는 덕분에(?) 아침까지 숙면했다. 쏟아지는 별을 보지는 못한 대신 다음 날 아침, 쏟아지는 비를 맞았다. 사막에도 비가 내린다니. 어쩌면 별보다 더 희귀한 시간을 누린 것일지도.
The Desert of Baharia
주소: Al Wahat Al Bahriya, Al Farafra Rd, Al Wahat Al Baharia Desert, Egypt
Black Desert
6P2J+P9R, Al Wahat Al Bahriya - Al Farafra Rd, Al Wahat Al Baharia Desert, Giza Governorate 3060001 이집트
Cairo
혼돈의 도시, 카이로
카이로는 이집트의 수도다. 북아프리카를 통틀어 가장 큰 도시기도 하다. 아프리카 대륙 북동쪽, 위치상으로 유럽, 중동과 맞닿아 있어 아프리카와 다른 대륙 간의 가교 역할을 한다. 북아프리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보니 카이로를 북아프리카의 수도라고도 부른다. 아랍연맹 본부가 카이로에 있어 아랍의 수도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대륙은 아프리카지만 이슬람 문화권에 언어도 아랍어를 사용하니 사실상 아랍 국가나 다름없는 데다 실제 이집트의 공식 국호도 ‘이집트 아랍 공화국’이기에 별명이 아니라 본명이라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카이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혼돈’이다. 공항에서부터 호갱님을 낚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사람들이 들러붙는다. 가까스로 뿌리치고 밖으로 나오면 KF94 마스크가 그리워지는 탁한 공기가 반갑게 맞아 준다. 도로에는 무질서한 질서가 있다. 핸들을 돌릴 때는 클랙슨 하나면 충분하다. “빵빵빠아아앙” 내가 먼저 가겠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양보를 해주는 건 아니어서 차들은 서로 닿을 듯 말 듯, 차선이 무색하게 뒤엉킨 채로 도로 위를 달린다. 창문 열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지만 신기하게도 접촉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다 살짝 스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냥 한번 쳐다보고 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차가 다가와도 멈추지 않고 제 갈 길 간다. 차도 크게 개의치 않고 브레이크를 밟기보다는 핸들을 움직인다. 한 가지 반가운 건 우리나라 차들이 많다. 대부분이 어린 시절 추억 속에 있는 운전면허 1종이 필요한 1990년대 모델이다. 택시 기사 왈, 현대와 기아가 최고란다.
도심인 나일강 주변을 벗어나면 곳곳에 짓다가 만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무도 안 살 것 같은 건물인데 빨래가 널려 있다. 유리창 없는 베란다에 사람이 보이는 걸로 봐선 분명 사람 사는 집인데 말이다. 사연인즉슨, 이집트에서는 완성된 건물에는 세금을 부과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겉은 미완성으로, 내부만 갖추어 놓고 사는 집이 많단다. 실제로 사막투어 때 잠시 들른 운전기사 집도 그랬다. 겉은 공사가 덜 끝난 듯했으나 안은 대리석 바닥에 화장실엔 최신식 좌변기와 세면대까지 깔끔했다.
카이로 거리를 걸을 땐 정신을 단디 차려야 한다. 특히 여행자에게 친근한 척, 친절한 척, 웃으며 접근하는 사람을 조심할 것. 이집트에서는 목적 없는 호의는 없다고 보면 된다. 열에 열은 기념품숍 영업직원이거나 도움에 대한 팁을 요구한다. 상인에게는 흥정이 필수다. 무조건 10분의 1로 가격 후려치기를 할 것. 설마 10배를 불릴까 싶지만, 이집트가 가격 정찰제가 확립되지 않은 국가이다 보니 그때그때 다르고 상인들 마음대로다.
카이로 타워
قصر النيل, Gezira St, Zamalek, Cairo Governorate 11567 이집트
혼돈의 카이로가 부담스럽다면 가급적 나일강에서 멀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 나일강 중간, 카이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카이로 타워가 있는 ’게지라섬‘ 일대 도심은 유럽식 신시가지와 가깝고 카이로 내에서 부유한 동네에 속해 고급 체인 호텔들이 많다. 나일강을 보며 호캉스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인류에게는 문명의 시작을, 이집트인들에게는 지금의 카이로를, 여행자에겐 힐링을. 그 옛날 이집트를 여행했던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Hurghada
홍해를 품은 지상낙원, 후루가다
잊지 말자.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으로 이집트를 온 것이다. MZ도 지친다. 이젠 쉬어야겠다.
‘후루가다’는 카이로에서 동남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이집트 대표 휴양지다. 모세가 기적을 일으켰던 홍해를 끼고 수많은 고급 리조트 단지가 늘어서 있다.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이집트 휴양지라 하면 배낭여행자들의 3대 블랙홀 중 하나이자 다이버들의 성지로 알려진 ‘다합(Dahab)’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 다합은 윈드서핑과 다이빙 스폿으로 유명한 작은 시골 마을이고 과거부터 꾸준히 이집트의 최대 휴양지는 후루가다였다. 해외의 다른 휴양지 대비 물가가 낮아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 사람들과 이집트 부호들이 즐겨 찾는다. 연인, 부부, 가족 등 다양한 부류의 여행객들은 단 하나의 목적으로 후루가다에 온다. 휴양. 리조트에서 삼시 세끼를 먹고 종일 수영을 하거나, 선베드에 누워 낮잠을 자거나, 바에서 술을 마신다.
홍해라 하면 으레 빨간 바다를 떠올릴 텐데, 홍해라는 이름은 물이 빠지면서 붉은 산호초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바다가 붉게 보이는 데서 유래됐다. 실제로 보통의 홍해 바다는 여느 바다와 다름없는 푸른색이다. 절기상 겨울인 11월부터 2월까지 해수욕이 가능할 정도로 따듯하다. 수심이 얕고 파도가 거의 없어 아이들도 풍덩 빠져 놀기에 부담이 없다. 홍해는 물이 맑고 햇빛이 강해 위에서도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물속에 들어가면 가시거리 확보가 잘 돼 바닷속의 바닥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홍해 바닷속은 우주선 없이 갈 수 있는 지구 밖 행성이다.
휴양에 마사지가 빠지면 섭섭하다. 즐긴 만큼 몸을 잘 풀어 줘야 한다. 리조트 내 마사지 숍을 방문해도 좋지만, 이왕이면 해변에서 받는 걸 추천한다. 홍해를 보며 마사지를 받고 있노라면 온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스르륵 잠이 온다. 후루가다에 있는 내내 혼돈의 연속이었던 카이로와 같은 나라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후루가다는 이집트지만 이집트가 아니다. 홍해를 품은 지상낙원이다.
Hurghada
주소: Hurghada, Red Sea Governorate 84511, Egypt
Editor’s Tip
이집트 여행이 편해지는 3가지 방법
Tip 1 가격 후려치기
먼저 패를 보이면 안 된다. 가격 제안은 항상 상인이 먼저, 후려치기는 그 뒤에. 일단 1/10 가격으로 선공을 한다. 안 통하면 인심 써서 1/7까지는 봐 주자. 그 이상은 비추천. 보통 상인이 제안하는 가격의 7분의 1이 합리적인 수준이다. 합의를 보지 못하면 그냥 나가면 된다. 팔 의향이 있으면 잡을 것이고, 안 잡으면 그대로 다른 가게로 가면 된다. 시장은 넓고 가게는 많다.
Tip 2 밑장 빼기 주의
현금 거래시 종종 밑장 빼기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카드 마술을 하듯 몰래 빼고서는 돈을 덜 줬다며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래서 현금을 건넬 때는 지폐 한 장 한 장, 동전 하나하나씩 세어 가며 건네자. 부작용으로는 밑장 빼기를 하지 못한 억울함(?)에 생뚱맞게 팁을 요구할 수 있다. 끝까지 긴장을 놓지 말자.
Tip 3 길 쉽게 건너는 방법
눈치만 보면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한다. 길을 건너려는 현지인 옆으로 따라붙자. 여행자들은 절대 모를 그들만의 규칙을 따라 건너면 된다.
글·사진 유의민 에디터 강화송 기자, 곽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