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스트의 여행을 기억하고 있는 기념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기념‘품’보단 ‘기념’품에 대한 이야기.
Egypt Cairo
이집트 전통의상
TMI 하나, 나의 옷장 운동복 칸을 열면 이집트 전통의상이 걸려 있다. 우리 부부는 이집트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당시 ‘칸 엘 칼릴리(Khan Al-Khalili, 이집트 최대 전통시장) 시장’에서 구입했다. 이집트에서는 흥정이 필수다. 일명 ‘후려치기’를 글로 배우길 상인이 제시하는 가격의 1/10, 아무리 인심 써도 1/7로 후려치라고 배웠으나 실전에서 써먹자니 대한민국 문화시민으로서 왠지 자신이 날강도처럼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민하던 이집트 전통의상을 상인이 처음 제안한 가격에서 1/2.5로 후려치고서는, ‘그래, 이 정도면 적당히 잘 깎고, 적당히 베풀었다’라고 생각하며 쇼핑을 마쳤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계산을 해 봤다. 당시 1EGP(이집트 파운드)는 한화로 약 41원. 나와 아내의 이집트 전통의상 각 1벌 + 아내의 스카프 1개 + 터번 1개를 구매했으니 총 2,500EGP, 한화로 대략 10만2,500원.
다음날, 사막 투어에 구입한 이집트 전통의상을 입고 갔다. 그곳에서 만난 가이드가 우리 부부의 옷을 보더니 가격을 물었다. 2,500EGP! 가이드는 땅이 꺼지는 듯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떨궜다. 원래 얼마인지 궁금하냐 묻길래 알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더 이상 마음에 상처를 입기는 싫었다. 그렇게 이집트산 명품(?) 의류를 입고 사막에서 둘만의 웨딩사진을 남겼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어느 블로그를 뒤적거리다가 2벌에 400EGP(한화 만원)에 샀다는 후기를 보았다. 우리 옷보다 10배 안 좋은 옷인가 보다.
▷유의민
본캐는 직장인, 부캐는 여행작가.
Egypt Dahab
여행자 싸인 티셔츠
좋은 기념품이란 무엇일까? 해외에서 구입한 나름 값비싼 제품들은 지금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물건을 다시 보았을 때 추억이랄 게 딱히 떠오르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좋은 기념품은 결국 무언가가 연상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념품은 이집트 다합에서 생겼다.
한 여행지에 오래 머물다 보면 만남과 이별이 생긴다. 소중한 그 순간들을 추억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사진과 동영상만으로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기 어려웠다. 평소 뭐든 소유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이 순간을 물질적으로 가지고 싶었다. 곧장 뭐라도 구입해야겠다며 다합에서 가장 큰 시장인 ‘아쌀라 마켓’으로 향했다. 팔찌, 목걸이, 마그넷 등 이곳을 기념하는 각종 기념품이 가득했다. 문제는 다 똑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하염없이 걷던 중 이집트의 대표 축구 선수인 ‘모하메드 살라’의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을 보는 순간 티셔츠를 사야겠다 다짐했다. 티셔츠를 사서 여행지에서 만난 모든 이들에게 싸인을 받아 기념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가장 먼저 마켓에서 가장 자주 만났던 상인에게 싸인을 받았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펜 하나를 꺼내 새로 온 여행자들과 몇 주간 동고동락한 여행자들에게 짧은 멘트와 싸인을 받아 티셔츠를 채워 갔다. 멘트는 대체로 연예인이 팬에게 적어 줄 법한 ‘행복하세요’와 한국에 돌아가서 먹어 줬으면 좋겠는 음식들, 나에게 쓰는 짧은 편지들이었다. 흰옷의 여백들이 서서히 채워질 때쯤 이젠 내가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한국에 돌아와 이 티셔츠를 보면 한 명 한 명 선명히 기억이 난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 많은 여행이 있을 것이고, 티셔츠는 점점 빼곡해져 갈 것이다.
▷천준현
호기심을 찾아 여행하는 여행자. 불확실한 여행의 재미를 아는 여행자.
Korea Seoul
타나카타츠야의 미타테 마인드 엽서
내가 어느 여행을 가든 꼭 구매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엽서다. 그곳에서 마주한 풍경, 어떠한 장면들이 담겨 있는 엽서는 부피가 크지 않을 뿐더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부담 없이 시간을 기념할 수 있는 최고의 기념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엽서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그때의 장면을 추억하며 몇 자 끄적이는 것이 취미다. 가장 최근 구입한 엽서는 ‘타나카타츠야의 미타테 마인드’라는 미니어처 라이프 전시회의 엽서다. 일상 속 물건들을 상상하지도 못한 미니어처 현실로 만들어 상상력을 자극했던 전시회다. 좋은 기념품은 결국 내가 누렸던 모든 시간을 회상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중하다.
▷임가원
한 가지의 단어로 수식하기엔 부족한, 취미 부자이자 여행자
Germany Hesse
오펠 동물원 펭귄 인형
내 여행의 동반자, 황제펭귄 인형 되시겠다. 이 인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 헤세(Hesse)주에 위치한 오펠 동물원(Opel Zoo)에서 구입한 녀석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바로 황제펭귄인데, 아쉽게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물을 영접하지 못했다. 이렇게 인형으로나마 그 상실감을 달래는 중이다. 다음 여행도, 아니 앞으로의 여행도 황제펭귄과 함께할 예정이다. 이렇게 함께하다 보면 언젠가 실제로 만나게 되겠지.
▶김유니나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이라는 가치관을 가진 낭만 여행자
Netherlands Amsterdam
반고흐 피규어 & 꽃피는 아몬드 나무 손거울과 휴대용 장바구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다. 골목골목 흐르는 크고 작은 운하들과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건축물들의 하모니는 가장 유럽다운 유럽의 풍경을 여행자에게 선사한다. 무엇보다 세기의 화가를 우리에게 선물한 나라이기도 하다. 바로 반 고흐. 돈이 없어 캔버스 양면을 사용하고 자신을 모델로 그려야 했던 가난한 화가. 사후에서야 높은 평가를 받게 된 비운의 거장 고흐. 그의 세계 최대 컬렉션을 소장한 ‘반 고흐 박물관’이 이곳 암스테르담에 있다.
얼마 전 이곳을 10년 만에 다시 찾았다. 그의 작품 세계로 흠뻑 빠질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명화 해바라기 컬렉션, 고흐 초상화 등 최고의 작품들을 한곳에서 가득 만날 수 있었다. 남프랑스부터 그의 일생을 따라 여행을 하고 온 터라 작품 하나하나가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다.
작품 감상을 끝내고 기프트숍을 들르는 건 필수 코스. 여행일정이 많이 남지 않았다면 이것저것 신나게 담아 왔을 텐데. 최대한 부피가 작고 가벼운 기념품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첫 번째가 현재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플레이모빌의 반 고흐 피규어다. 현지에서는 몇 유로 되지 않지만, 이것도 해외 직구로 구하려면 몇 배나 되는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내가 고흐 작품 중에 가장 좋은 하는 그림이 ‘꽃피는 아몬드 나무’다. 이 작품은 고흐가 생레미 정신병원 입원 당시 동생 테오의 아들 탄생 소식을 듣고 조카를 위한 선물로 그렸던 그림이다. 아몬드 나무는 새로운 삶의 시작과 생명의 탄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기존의 고흐 작품과는 다른 차분한 붓터치와 밝고 부드러운 하늘 색감이 따뜻함을 전한다. 이 작품이 담긴 원형 손거울과 휴대용 장바구니를 기념품으로 구입했다. 반 고흐 박물관에서 구입해 온 이 기념품들은 아직도 사용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이희진
혼행예찬을 부르짖는 자칭 ‘혼행전문가’. 나홀로 세계도시 300여 개를 탐험한 직장인 여행가
China Xiamen
푸젠성 난징 토루 건축물 미니어처
이 여정의 발단은 중국 푸젠성 샤먼(Xiamen, 廈門)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본 사진 한 장이다. 흙으로 빚은 거대하고 둥그런 몸체에 짧은 기와지붕을 얹고 앙증맞은 창문을 여기저기 낸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진. 중국 하카(客家)족의 전통 가옥으로 일명 ‘토루’라고 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건축물인 데다가 무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데, 샤먼까지 왔으니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다짐했다.
샤먼에 내려서는 곧장 토루가 모여 있다는 난징(南靖)현의 ‘운수요’라는 마을로 향했다.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까까머리 청년이 내게 ‘곧 춘절인 데다가 워낙 먼 거리라 대중교통편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발 벗고 나서 주었다. 직업군인으로 복무 중이었던 그 청년은 ‘대국인으로서의 태도’라며 나를 샤먼 북역까지 데려다 주었고 기차표 예매까지 도와 줬다. 하차할 ‘화안’역에서 운수요 마을까지 갈 수 있는 콜택시를 예약해 가격 흥정까지 도맡아 줬다.
운수요 마을의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새 어스름이 깔려 있었다. 까까머리 청년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짐을 내려놓고 저녁 식사에 앞서 마을 구경부터 나섰다. 산세가 수려한 운수요 마을에는 맑은 개천이 시원하게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크고 튼튼한 몸통에 사방으로 뻗어 나는 가지가 그림 같던 용수 나무의 세월이 마을을 지켜 준 듯했다. 저기 토루가 보인다. 그 뒤로는 푸른 차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산에 구름이 걸리고 물이 흐르니 노래가 절로 난다는 마을 이름(운수요)의 의미와 같이, 콧노래가 절로 났다.
토루에 시선을 고정하고 구불거리는 길을 따로 나섰다. 난징 토루는 우렁이(田螺, 전라)를 닮은 지형에 가운데가 깊이 파인 구덩이 모양의 토루 5개가 있다는, ‘전라갱(田螺坑) 토루군’이 가장 유명하다. 5개의 토루는 중국 고대에서 중시한 5행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의미한다. 가운데 위치한 토루는 사각형이고 그를 둘러싼 토루들은 원형이라, 반찬 넷과 탕 하나가 있다며 ‘4채 1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원형 토루에 먼저 닿았다. 성인 키 다섯 배는 됨직한 높이에 양팔을 펼쳐 백번은 세어 봐야 한 바퀴를 돌 것만 같은 둘레다. 황토빛 흙으로 투박하게 빚은 몸체에 까맣고 짧은 지붕 처마를 둘렀다. 창문은 처마 바로 아래에만 뚫려 있다. 거대한 규모의 토루에 문은 단 하나. 처마 끝에 달린 붉은 등은 토루에 사는 사람들이 들고남을 뜻했다. 각자 집에 돌아오면 붉은 등을 켜서 귀가를 알렸고 확인이 되면 대문을 닫아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곳곳을 살폈다.
5개 층으로 나누어진 공간, 빙 둘러싼 복도를 따라 널어 둔 빨래가 바람에 날렸다. 큰 솥과 국자 등 주방 도구가 있어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공간이었다. 마당에는 뚜껑을 덮어 둔 우물이 있다.
어둑한 저녁에 본 토루는 붉은 등이 강렬했다면, 아침 햇살 아래서 마주한 토루는 갈색빛 나무 난간과 복도의 기둥이 눈에 띄었다. 흙집인데 7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찌 이토록 건재할 수 있을까. 구조와 역학에 비결이 있다. 담장은 아랫층이 1.8m로 가장 두텁고, 윗충으로 올라갈수록 일정하게 얇아지게 해 안정적으로 하중을 떠받쳤다. 복도 기둥도 3층과 4층은 시계 방향으로, 5층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15도씩 기울어져 균형을 잡고 지진과 침식을 이겨 냈다. 갖가지 토루를 층층 누비고 다니며 부지런히도 사진을 찍었지만, 이 모든 기억을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간직하고 싶었다.
아까부터 은근히 내 곁을 맴돌며 미소를 띠고 서 있던 아주머니에게서 푸젠성 토루 건축물 미니어처 하나를 구입했다.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낯선 땅에서 만난 모든 인연과 눈에 담은 풍경, 삶의 시간과 이야기가 들리는 건축물의 이야기가 이 작은 토루 미니어처에 담겨 있다. 지금까지 나의 책장 구석을 지키는 푸젠성 토루 건축물 미니어처는 먼 타국에서 씩씩하게 여행했던 나를 격려하는 표상이자, 여행길에 만나 추억을 선물해 준 모든 이들을 기억하는 물건이다. 그런 게 기념품 아니겠나.
▷권라희
건축, 예술, 프리다이빙. 그녀의 여행을 대표하는 3가지의 키워드다.
Peru Cusco
에케코 인형
내가 가장 애정하는 기념품은 불가사의로 남아 있는 잉카 문명의 중심지, 쿠스코에서 만났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돌담길이 하나 있다. 이 돌담길은 철기문화도 없던 시절에 쌓았는데, 종이 한 장 들어가기도 힘들 정도로 그 정교함이 감탄스럽다.
고산지대라 조금만 오르막을 걸어도 숨이 턱턱 막히지만, 양옆에 늘어선 알록달록한 기념품들을 보는 재미에 나는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게로 들어갔다. 현지에서 만들어 내는 수공예품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익숙한 언어로 점원이 말을 걸어 왔다. ‘필요한 것 있으세요?’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했다. 이 먼 곳에서 우리나라 말을 하는 페루 학생과의 만남이라니. 특별한 인연이었다. 학생은 우리에게 페루의 가정집에 하나씩은 있다는 ‘에케코(Ekeko) 아저씨’를 소개해 주었다. 양어깨에는 날개를 달고 있고, 가슴에는 집, 차, 돈, 옥수수 등을 가득 가지고 있는 모습이 독특했다. 가정에 재물, 명예, 사랑, 음식 등 좋은 것들을 가져다주는 ‘풍요의 신’이라고 한다.
그렇게 에케코 아저씨와 함께하게 됐다. 지금도 그를 보며 쿠스코에서 걸었던 미스터리한 돌담길을, 한국어를 하던 그 친절한 학생의 목소리를, 그리고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가수 존박의 노래를 떠올리곤 한다.
▷정자영
여행과 캠핑을 너무 좋아하는 세계 여행자, 그리고 캠퍼.
Indonesia Ubud
오션 브리즈 인센스 & 거북이 인센스 홀더
인도네시아 길리 트라왕안 섬에서 일주일은 꿈만 같았다. 바다거북과 속도를 맞춰 유유히 바닷속을 헤엄치기도, 별이 쏟아지는 해안가에서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길리에서의 순간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기념품을 찾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다음 목적지인 발리 우붓으로 향했다. 우붓에 도착해 우연히 들어간 어느 소품숍, 그곳에서 거북이 모양의 인센스 홀더를 만나게 됐다. 가게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눈길이 끌렸다. 거북이 모양인 데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늘색. 이건 내 것임이 틀림없었다. 단돈 3만5,000루피아(한화 약 3,000원)에 행복을 샀다. 그리고 근처 인센스숍에서 ‘오션 브리즈(Ocean Breeze)’라는 이름의 인센스를 찾았다. 그 뜻을 직역하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길리를 추억하기에 이보다 좋은 향이 있을까? 집으로 돌아와 인센스를 피우며 여독을 풀고 있으니, 비로소 완벽한 여행의 마무리다. 길리 트리왕안 섬을 기억하기 위해 우붓에서 찾은 향기다.
▶고지혜
자유롭게 여행하며 일하는 프리랜서 마케터.
Japan Tokyo
도쿄 지브리 뮤지엄 드로잉 포스터
지브리의 역사를 줄줄 읊는 정도의 헤비 덕후는 아니다. 지브리의 창작을 존경하고, 집요한 미감을 사랑할 뿐이다. N년째 입덕(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함) 중인 증거품(?)으로 도쿄 뮤지엄에서 구매한 한정 포스터를 소개한다. 오직 이곳에서만 살 수 있으니 기념의 의미는 충분하다.
뮤지엄 3층엔 기프트숍과 별개로 책을 읽고 구매하는 리딩룸이 있다. 포스터는 여기서 구매했다. 여행지에서 뭘 많이 사는 타입은 아닌데, 지브리 뮤지엄 내부가 그려진 포스터는 보자마자 꼭 갖고 싶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디자인한 공간 이미지를 그의 그림으로 소장할 수 있다니, 나의 창작 욕구에도 불을 지펴 줄 것 같았다.
다만 판매 여부가 확실치 않아 직원에게 포스터를 구매할 수 있냐 물었고 약 1만원에 포스터와 책자 2권을 받았다. 한 권은 사진으로 된 소개집이며, 다른 한 권엔 미야자키 감독의 손그림과 미술관 설계 내용이 담겨 있다. 합리적인 구성이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무엇이 본품이고 사은품인지는 잘 모르겠다(책자가 본품이고 포스터가 증정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누군가에겐 소소할지 몰라도 이 기념품이 특별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도쿄 지브리 뮤지엄은 내부 사진 촬영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그 의도대로 전시에 집중하기는 성공했지만, 기록의 부재가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이날을 추억할 방법을 고민하다 포스터를 집 벽면에 걸어 두었다. 애니메이션 속 세상에 들어선 듯 마구 들떴던 기분과 경험을 수시로 상기하며 현생에 자극을 받기도 한다. 지브리를 좋아하는 이라면 도쿄 뮤지엄도, 책과 포스터도 적극 추천한다.
▷지예지
프리랜서 사진작가이자 에디터. 모험과 여행을 즐기는 낭만주의자
France Paris
2024 파리 올림픽 포스터
2024년 3월의 프랑스는 올림픽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었다. 공식 후원사인 브랜드 매장에는 올림픽 엠블럼이 눈에 띄게 붙어 있고 파리 시청 외관은 올림픽 예고편 그 자체였다. 내가 이 시기에 맞춰 프랑스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한 가지 계획. 바로 ‘2024 파리 올림픽 포스터’ 구입하기. 2024 파리 올림픽 포스터는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인 ‘위고 가토니(Ugo Gattoni)’의 작품이다.
위고 가토니는 디테일 장인이다. 섬세하게 여러 요소를 하나의 작품 속에 채워 넣는데 이번 올림픽 포스터가 그렇다. 2,000여 시간에 걸쳐 완성된 이번 포스터 안에는 올림픽과 패럴림픽 종목이 구분 없이 모두 들어갔다. 이는 올림픽 패럴럼픽 포스터 역사상 최초다. ‘하나의 올림픽과 하나의 패럴럼픽이 함께 하나의 위대한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포스터 안에는 이번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 클라이밍과 스케이트보드, 서핑, 브레이킹도 포스터 안에 포함됐다. 세계여행 목표가 ‘최대한 미술관과 갤러리 많이 가기’인 내겐 너무나도 완벽한 기념품이다.
사전에 포스터 구입처를 알아봤을 때 오르세 미술관 기념품숍에 가면 포스터를 살 수 있다고 했다. 마침 오르세 미술관을 가기 때문에 순조롭게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오르세 미술관에 방문하니 컬러 버전 포스터는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상태였다. ‘Sold out’, 이 참담한 글자를 보고 깨달았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도시인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리는데 재고가 여유로울 리가 없는 거다. 그제서야 파리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라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실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건 200% 운이었다. 당시에 파는 가게가 그곳에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몇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다. 작품에 깔려 있던 사람처럼 지친 몸이 되어 눈에 보이는 출구로 나갔다. 방향을 따질 체력이 없었다. 오전에 오랑주리 미술관을 갔다가 루브르 박물관을 갔더니 미술 세계에 단단히 취해 드러눕고 싶어졌다. ‘파리에서 하루에 미술관을 2곳이나 가려고 했다니. 어? 그런데 여기는 백화점이랑 연결되어 있네? 신기하군. 여기로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나? 몰라 일단 가…음?’ 갑자기 올림픽 공식 굿즈 스토어가 등장했다. 운명의 그림을 만난 것처럼 가게 안으로 들어섰고 키링, 티셔츠 등을 지나 드디어 마주한 건 재고가 10개 남짓 남아 있는 포스터였다. 심봤다! 이번 올림픽 포스터는 하나의 작품을 2개로 쪼개 판매하는데 그중 에펠탑이 있는 포스터를 계산대로 들고 갔다.
그렇게 얻게 된 포스터, 최고의 소장 가치를 자랑하는 기념품이다. 포스터는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매번 조심스럽게 다뤄져 무사히 한국에 귀국했다. 방 선반 위에 세워져 있는 디테일 장인의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 기념품숍에서 맛봤던 좌절을, 루브르 박물관에서 방전됐다가 포스터를 보고 흥분하게 된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송현서
여행과 캠핑을 너무 좋아하는 세계여행자, 그리고 캠퍼
China Shanghai
판다 인형
최근 그야말로 바오 패밀리 열풍이 한창이다. 이 열풍이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굳이 오픈런을 감행하면서까지 푸바오의 실물을 영접하러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물론 바오패밀리는 귀엽다).
내가 판다에 빠졌을 땐 따로 있었다. 2014년, 중국 상하이를 찾았을 때다. 마음속엔 판다 기념품을 사고 말겠다는 의지가 들끓던 와중이다. 당시에도 판다라는 동물에 관심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중국에 왔으니 중국을 대변할 만한 기념품을 찾다가 우연히 ‘뚠뚠한’ 판다 인형을 파는 곳을 찾아냈을 뿐. 심지어 중국 전통의상인 치파오를 판다가 입고 있는 게 아닌가! 안 살 이유가 없었다. 혼자였다면 아무 때나 사러 다녀왔겠지만, 상하이 여행은 나를 포함해 ‘장정 넷’이 함께했다.
그중 제일 험상궂게 생긴 주제에 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 쓰는 내가 주변에 관광지라곤 없고 외곽에 떨어져 있기까지 한 판다 인형 가게에 들러 보자 설득해야 하는 상황. 역지사지의 기지를 발휘해 ‘너희의 취향을 깊이 공감해 전자기기 매장 쇼핑을 함께해 주겠다’라고 사탕발림을 했다(난 전자기기에 흥미가 전혀 없다). 쪽수로도 3대 1의 수세였던 터라 저녁으로 먹은 훠궈도 내가 계산했다. 그리하여 판다 인형 기념품숍 방문을 일정에 끼워 넣을 수 있었다.
지하철역에서부터 매장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었는데, 십 분간 가시방석이 깔려 있는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미리 봐둔 인형만 사고 나가려는데 웬걸, 지쳐 있던 표정의 친구들 얼굴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집에 데리고 오면 내쫓을 거라고 엄포를 놓던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었달까. 막상 보니 사르르 녹아 버리고 만 것이다. 매장을 나오는 우리 손엔 귀여운 인형이 잔뜩 들려 있었고, 내 품에는 그토록 바랬던 판다가 안겨 있었다.
▶김수환
‘페른베(Fernweh)’라는 필명을 삼아 여행에 대한 동경을 적어 가길 꿈꾼다.
글·사진 트래비스트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