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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Mar 21. 2017

예루살렘 올드시티로의 시간여행

예루살렘에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 
올드시티의 성벽 안에 흐르는 지난 3,000년의 시간, 
그리고 성벽 밖에 흐르는 현재의 시간.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는 예루살렘의 두 시간을 
쉼 없이 넘나들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 유대인 구역. 더운 날씨에도 정통 유대인 복장인 검은색 코트(카프탄)와 중절모(스타라이멜)를 입고 있는 모습은 그들의 굳건한 신앙을 보여 준다


안식일 아침, 시온 게이트 근처에서 만난 유대인 꼬마들
성묘 교회 내부 모습. 크리스천들은 예수가 죽은 뒤 눕혀졌다고 전해지는 돌판 위에 키스를 하며 경의를 표한다





Old City 올드시티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모든 것인 도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한국의 계절은 겨울의 문턱에 다다랐지만, 이곳은 여전히 온화한 햇살로 가득하다. 사막을 연상케 하는 상앗빛의 거리에는 서로 다른 복장의 사람들이 걷고 있다. 히잡을 쓴 회교도 여인은 눈인사를 건네며 지나가고, 머리에 키파(Kippah), 유대인들이 평상시에 쓰는 모자를 얹은 꼬마들은 책가방을 메고 골목 사이로 뛰어간다. 검정 옷에 구레나룻을 길게 늘어뜨린 정통 유대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트램 정류장을 기웃거린다. 


숙소를 나와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거대한 성벽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8개의 성문 중 하나인 자파 게이트(Jaffa Gate)에 들어서자 도시의 오래된 얼굴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올드시티는 유대인 지구, 무슬림 지구, 크리스천 지구, 아르메니안 지구까지 총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구역마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양새나 풍경도 다르지만, 이들 사이에 물리적인 장벽은 없다. 책장 넘기듯 살랑살랑 걷다 보면 자연스레 구역이 변화함을 느낄 뿐이다. 신비로운 아르메니안 구역을 가로질러 유대인 구역으로 진입한다. 돌담 위로 색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거미줄처럼 엉킨 고즈넉한 골목들로 검정 코트와 중절모를 쓴 랍비들이 걷고 있다. 고대의 어느 날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기분이다.  

올드시티에서 만난 귀여운 가족
유대교의 최고 성지인 통곡의 벽과 이슬람교의 성지 황금 돔 사원은 벽 하나를 두고 나뉘어 있다
16세기 오스만에 의해 건축된 올드시티의 성벽
올드시티 크리스천 구역의 골목. 네 구역 사이 물리적 장벽은 없지만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어느덧 발걸음은 유대교 최대 성지인 통곡의 벽(Wailing Wall)에 닿는다. 그 뒤로는 이슬람교의 성지인 황금 돔 사원(Dome of the Rock)의 모습도 보인다. 예루살렘은 유대인, 그리스도교인, 무슬림 모두에게 각별한 땅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 종교의 성지가 바로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세 종교의 공통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서 출발한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증거로 모리아산(Mount Moriah)에 올라 바위 위에서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고, 이에 감복한 하느님은 그의 자손에게 축복을 내린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인 이삭과 이스마엘 중 누가 축복받은 아들이냐는 것.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정부인의 자식인 이삭을, 이슬람교는 첩식인 이스마엘을 각각 하느님께 축복받은 자신의 조상이라 믿는다. 배다른 형제의 갈등이 두 종교의 기나긴 분쟁의 씨앗이 된 셈이다.


현재 황금 돔 사원이 있는 성전산(Temple Mount)이 바로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모리아산이다. 유대인에게는 3,000년 전 다윗왕이 유대왕국을 세운 이후 솔로몬왕과 헤롯왕에 의해 건립된 제1, 2 유대성전이 있던 자리기도 하다. ‘통곡의 벽’ 또한 로마군이 침략했을 당시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성전의 서쪽 벽(Western Wall)을 뜻한다. 그리스도교인에게 예루살렘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곳이다. 고난의 길이라 불리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와 마찬가지로 성전산은 예수의 수많은 행적이 담긴 거룩한 성소다. 

무슬림에게도 이곳은 양보할 수 없는 땅이다. 그들에게 성전산은 이스마엘의 후손이자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모하메드가 천국으로 승천한 장소다. 638년 이슬람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유대성전이 있던 자리에 황금 돔 사원과 엘 악사 모스크(Elaksa Mosque)를 건설하면서 메카,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교 3대 성지가 되었다.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올리는 유대인 소녀들
화려한 색감의 천과 시샤(물담배)에서 이슬람의 정취가 짙게 풍긴다
올드시티의 어느 상점. 성모가 그려진 아이콘, 유대교 촛대, 이슬람 풍 카펫이


통곡의 벽 가까이 다가선다. 유대인들은 경전에 고개를 파묻은 채 몸을 앞뒤로 격렬하게 움직이며 기도를 한다. 주먹을 꽉 쥐고 흔들다가, 울음이라도 터진 듯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낯설지만 간절함이 느껴진다. 소망이 담긴 쪽지가 가득 박힌 통곡의 벽 위로 황금 돔 사원이 햇살에 반짝인다. 


올드시티의 모든 것들은 평화롭게 공존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한 민족과 종교 간의 전쟁은 수천년 동안 이어져 왔다. 유대성전을 로마군이 불태웠고,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성전 자리에는 모스크가 세워졌고,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면서 도시는 수백년간 피로 점철되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팔레스타인과의 영토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예루살렘은 모두에게 성스러운 땅인 탓에 모두에게 비통한 땅이 되었고, 그래서 그 어느 곳보다 평화를 갈망하는 땅이 되었다. 

벽으로 분리된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기도를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하늘로 향하는 것이 아니던가. 단 며칠을 머무는 여행자가 수천년의 시간을 버텨 온 예루살렘의 의미를, 이 토양 위에 서린 수많은 일을 이해할 수는 없다. 


통곡의 벽의 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슬림 구역으로 이어진다. 향 연기가 피어오르는 골목 사이로 아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문득 영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발리안이 예루살렘은 어떤 곳이냐 묻자 살라딘은 이렇게 대답한다. “예루살렘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다.” 알 듯 말 듯한 미묘한 감정을 안은 채 올드시티를 떠난다.  

예루살렘은 모두에게 성스러운 땅인 탓에 모두에게 비통한 땅이 되었고, 그래서 그 어느 곳보다 평화를 갈망하는 땅이 되었다. 벽으로 분리된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기도를 하지만,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하늘로 향하는 것이 아니던가. 



글·사진 Travie writer 고아라  에디터 고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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