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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Mar 21. 2017

예루살렘의 진짜 삶을 만나다

예루살렘에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 
올드시티의 성벽 안에 흐르는 지난 3,000년의 시간, 
그리고 성벽 밖에 흐르는 현재의 시간.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는 예루살렘의 두 시간을 
쉼 없이 넘나들었다.  

알록달록한 우산 조형물로 꾸며진 예루살렘 다운타운의 살로몬 거리(Salomon St)


예루살렘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도시기도 하다. 사진은 예루살렘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인 비르기타씨 집에서 촬영한 작품


뉴시티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귀여운 우체통. 예루살렘의 다채로운 매력을 대변하는 듯하다

 



New City 뉴시티
100년의 변화가 담긴 거리 

올드시티를 나와 겨우 몇십 발자국 걸었을 뿐인데 풍경이 뒤바뀌기 시작한다. 예루살렘의 최고 번화가인 시온 광장(Zion Sq)과 벤 예후다 거리(Ben Yehuda St)에 들어서자 거리에는 세련된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하다. 공터에선 젊은이들이 거리공연을 하고, 조형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골목 구석구석은 자유로운 복장의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수천년의 시간을 단 몇 분 만에 뛰어넘은 기분이다.


예루살렘의 올드시티와 뉴시티가 극명하게 나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스만 제국이 16세기에 지은 두꺼운 성벽도 한몫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뉴시티가 형성된 것이 아주 최근 일이기 때문이다. 올드시티의 규모는 고작 1km2.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이 작은 공간이 예루살렘의 전부였다. 그러나 인구가 점점 늘면서 공간 부족, 위생, 집값 상승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자 성벽 밖으로 도시를 확장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당시 이 땅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도 한몫했다. 결국, 예루살렘 내 외국인의 토지소유를 허용하면서 유럽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성벽 밖에는 학교, 병원, 관공서 등이 지어졌고, 러시아 조계와 같은 새로운 공동체들이 만들어졌다. 


자파로드(Jaffa Rd)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하네빔 거리(HaNeviim St)’가 나온다. 선구자의 길이라는 뜻의 이 거리에는 지난 100년간 뉴시티에 벌어졌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끌벅적한 시온 광장 주변과는 반대로 차분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하네빔 거리는 뉴시티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독특한 것은 건축양식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도시가 확장되면서 들어온 다양한 국적과 종교,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 거리에 둥지를 틀고 각자의 방식으로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서양의 양식이 혼합된 타보르 하우스(Tabor House)와 이슬람 양식의 티코 하우스(Ticho House)다. 티코 하우스는 현재 박물관으로도 사용되고 있는데, 예루살렘의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보석 같은 곳이기도 하다.  


유쾌한 마하네 예후다 시장의 상인. 그의 특이한 웃음소리에 상점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마하네 예후다 시장은 밤이 되면 완벽한 나이트 라이프 성지로 변신한다




마하네 예후다 시장
예루살렘의 진짜 삶이 여기에 

예루살렘이 심각하고 진중한 도시라고만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그 아무리 길고 장엄한 역사를 가진 도시라도 현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법이다. 생동감 넘치는 예루살렘의 오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마하네 예후다(Mahane Yehuda) 시장이다. 긴 아케이드와 양쪽으로 펼쳐진 골목 사이로 각종 상점과 아기자기한 카페가 빼곡히 들어찼다. 화려한 색감의 향신료와 먹음직스러운 치즈는 물론 신선한 과일과 생선, 질 좋은 고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안식일을 준비하기 위해 쇼핑을 나온 유대인 할아버지는 물건 값을 깎느라 정신이 없다. 손사래를 치다가도 이내 덤까지 얹어 주는 상인들에게서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물가가 파리보다 비싸다는 예루살렘에서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를 위로하는 것도 마하네 예후다 시장이다. 갓 구워 나온 빵이나 샤와르마(Shawarma), 중동식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 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하네 예후다 시장을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두 번은 방문해야 한다. 이왕이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인 금요일 낮이면 좋겠고, 또 다른 한 번은 반드시 밤이어야만 한다. 예루살렘 최고의 나이트라이프가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통의 마하네 예후다 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화려한 색감의 향신료와 과일들, 고소한 빵 냄새, 왁자지껄한 흥정 소리는 오감을 자극한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시장 골목 구석구석에는 개성 넘치는 바와 레스토랑이 숨어 있다


텔아비브(Tel Aviv)라면 몰라도 예루살렘과 나이트라이프라니, 게다가 시장이라니,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토요일 밤 10시, 시장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의구심은 사라져 버렸다. 견과류와 과일들이 놓여 있던 좌판은 바 테이블로 변신했고, 채소 상자들이 놓여  있던 자리는 야외 테이블과 의자가 꿰찼다. 왁자지껄한 상인들의 호객 소리 대신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팝송이 귓가를 울린다. 국적, 나이 상관없이 모두가 한데 섞여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마하네 예후다 시장이 원래부터 밤의 성지(?)였던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밤이 되면 건장한 성인 남자도 오길 꺼려하는 위험한 곳이었다. 그러나 상인과 주민, 정부가 합심하여 허름한 시장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창고를 개조해 에스프레소와 디저트를 파는 카페를 만들고,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갤러리와 숍들도 들였다. 밤에는 각종 음악 행사를 추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밤의 성지를 넘어 예루살렘을 방문하면 반드시 와야 할 진짜 ‘성지’가 됐으니 말이다. 마하네 예후다 시장을 향한 예루살렘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은 엄청나다. 시장 투어를 담당했던 가이드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시장에서 벌어진 가장 흥미로운 일을 이야기해 드리죠. 나는 마하네 예후다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도 저 카페 앞에서 만났습니다. 우리 아이도 이곳이 고향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요? 마하네 예후다 시장은 그냥 시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곳은 우리 예루살렘인들의 삶 그 자체입니다.”


다음날 아침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 올리브산에 올랐다. 전망대에 서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예루살렘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빛나는 황금빛 돔, 미로 같은 올드시티의 골목들, 굳건한 성벽, 그를 둘러싼 뉴시티의 네모반듯한 건물들까지. 이곳에서 바라보는 예루살렘은 아무런 소리 없이 조화롭고 아름답기만 하다. 예루살렘은 ‘평화로운 도시’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지금까지 예루살렘이 지나온 시간은 분명 평화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래로 가는 예루살렘은 부디 예루살렘답기만을 바라본다. 



글·사진 Travie writer 고아라  에디터 고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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