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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Aug 27. 2024

독립과 매국의 길 '종로'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

종로를 거친 수많은 이들의 흔적을 따라서


종로는 ‘사람’이 만든, 그리고 만들어 가는 곳이다. 그래서 종로 곳곳에는 수많은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격변의 시기, 대한민국의 자주와 독립에 앞선 인물도 있으며 혹은 친일매국의 길로 들어선 이들도 있다. ‘종로’라는 한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며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던 이들의 흔적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새겨본다. 

이 코스의 배경이 되는 인왕산은 조선의 수도 한양의 서북쪽을 둘러싼 산이다. 과거 조선 초기에는 지위는 높지만,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왕실의 종친들이 터를 잡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던 지역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 근대에 이르러서는 권력을 가진 이들이 인왕산의 좋은 경치를 찾아 들어왔고, 국권을 빼앗긴 시절에는 친일매국 인사가 거창한 집을 짓기도 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인왕산 자락을 천천히 거닐며 둘러본다.

종로 ▶독립과 매국의 길
코스 거리: 3.7km
소요 시간: 2시간 30분


윤동주 문학관 – 윤동주 시인의 언덕 – 더숲 초소책방 – 수성동 계곡 – 윤동주 하숙집 터 – 박노수 미술관 – 통인시장- 이상의 집 – 홍건익 가옥 – 배화여자대학교 – 황학정



민족 시인의 자취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은 암울한 식민 시대에 태어나 민족을 사랑하고 독립을 열망하는 마음을 시로 표현한 민족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곳이다. 과거 용도 폐기된 수도가압장을 리모델링 해 꾸며 냈다. 수도가압장을 문학관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의 이미지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문학관 내부에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했던 젊은 시인, 윤동주의 작품과 서신, 유품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윤동주 시인은 식민지가 된 조국의 현실, 정체성이 모호한 국경 밖 경계인이라는 자신의 위치에 고뇌하며 그 생각을 시로 표현했다. 시를 통해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가 1년 동안 쓰지 않았을 때가 있는데, 전쟁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해, 1941년이다. 커져만 가는 고민 탓에 시를 쓰지 못했던 시인은 이후 자신의 커져만 가는 방황과 고민을 솔직하게 표현한 시를 발표하는데, 그 유명한 <서시>와 <자화상>이다. 



1942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곳에서 사촌이었던 송몽규와 함께 ‘조선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이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28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10년 공개된 윤동주 시인의 재판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일본 재판정에서 ‘조선 민족의 실력과 민족성을 키워 독립운동의 바탕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고, ‘조선 독립을 위해서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단호하고도 서정적인 감성은 여전히 그가 세상에 남긴 문학 속에 살아 숨 쉰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그의 발자취를 느껴 볼 수 있다.



윤동주문학관

주소: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19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8:00(휴게시간 13:30~14:0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Check Point
청운공원 윤동주 시인의 언덕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가장 먼저 <서시>의 시비가 눈에 띈다. 윤동주 시인이 서울에서 공부하던 때, 종종 이 일대를 친구들과 함께 거닐며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대표작이 바로 <서시>와 <별 헤는 밤> 등의 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서시>가 적힌 시비를 세울 당시, 윤동주 시인의 무덤이 있는 북간도 용정에서 가져온 흙을 이곳에 뿌렸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조망지점에 서서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본다. 그의 문학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하다.


청운공원윤동주시인의언덕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경찰초소의 재탄생
더숲 초소책방


인왕산 중턱에 위치한 책방 겸 카페. 이곳은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청와대 방호를 목적으로 건축되어 50년 넘게 경찰초소로 사용됐던 건물이다. 2020년에 리모델링을 통해 카페 겸 책방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벽돌로 된 초소 외벽 일부와 철제 출입문을 그대로 살려 냈다.



카페 외부에는 인왕산 경찰초소 난방용 보일러를 가동하기 위한 철제 기름탱크도 전시되어 있다. 원래 인공 축대 위에 있었는데, 축대를 철거하고 바위와 주변 자연을 복원하며 기억의 탱크 역할을 하도록 남겨 둔 것이다. 더숲 초소책방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밖에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책방 내부로 들어서면 통유리 너머로 남산타워를 필두로 한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과거 분단과 대립의 아픔을 상징했던 삭막한 공간이 지금은 인왕산에서 가장 여유롭고 생기 넘치는 책방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더숲 초소책방

주소: 서울 종로구 인왕산로 172
영업시간: 매일 08:00~22:00


▶Check Point
인왕산 자락길 건강산책로

인왕산 자락길 건강산책로는 노인, 어린이, 임산부 등 보행 약자가 모두 산림욕을 즐기며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무장애 산림산책로다. 무장애 여행지는 여행 중 어떠한 시설, 혹은 산책로를 이용할 때 장벽 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을 뜻한다. 더숲 초소책방(4기점)에서 인왕산 자락길 건강산책로 3기점 방향으로 내려가면 수성동 계곡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인왕산자락길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 179-1



진경산수화의 아름다움
수성동 계곡


인왕산 동쪽 자락, 깎아지른 듯한 높은 절벽 사이로 흐르는 계곡의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과거 수성동 계곡은 이러한 지형으로 인한 계곡과 크고 맑은 물소리로 유명세를 끌었다. 이러한 경치는 많은 사람들을 유혹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다. 



그는 경복궁과 가까이 위치한 수성동 계곡에 ‘비해당’을 지어 이곳에서 머무르며 풍류를 즐겼다. 계곡 중간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돌다리, 기린교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인왕산의 명승지를 그린 <장동팔경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성동 계곡을 바라보고 오른편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어느 아파트의 잔해가 보인다. 1971년 지어졌던 옥인동 시범 아파트의 흔적이다. 무려 9개 동에 달하는 대단지였는데 2008년 철거되고 계곡은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되었다. 



수성동계곡

주소: 서울 종로구 옥인동 185-3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하숙집


1941년 당시,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윤동주 시인은 자신이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이 살던 한옥집에서 하숙 생활을 했다. 수성동 계곡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당시 윤동주가 하숙했던 집터를 만날 수 있다.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지금까지 사랑받는 그의 대표작이 바로 이 하숙집에 머물렀을 때 쓰였다. 아쉽게도 현재 당시 하숙집의 원형은 남아 있지 않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이곳에서 자신의 시 19편을 모아 시집 3권을 만들었다. 3권 중 1권은 자신의 스승인 ‘이양하 교수’에게 건넸고, 다른 한 권은 하숙집 룸메이트였던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으며 마지막 한 권은 자신이 지녔다. 이양하 교수와 윤동주 시인이 지니고 있던 시집은 어려운 시절을 지나며 없어졌고, 현재 오직 한 권, 하숙집 룸메이트이자 후배였던 정병욱이 가지고 있던 시집만 남았다. 당시 정병욱은 징병을 가는 와중에도 고향 어머니에게 목숨같이 소중한 것이라며 시집을 맡겼다고 한다. 그가 소중히 보관했던 윤동주 시인의 시는 친구였던 강처중과 정지용 시인의 손을 거쳐 윤동주가 남긴 다른 시들과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윤동주하숙집

주소: 서울 종로구 옥인길 57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940m



1개의 공간, 2개의 이야기
박노수 미술관


아담한 2층 벽돌집, 2013년 개관한 박노수 미술관이다. 이곳은 서양화가 박노수 화백이 1973년 매입해 40여 년간 살았던 곳이다. 이후 박노수 화백은 집과 작품을 종로구에 기증해 지금은 종로 구립미술관이 되었다. 



사실 이 집에는 엄청난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다. 이곳은 1937년, 윤덕영이 딸과 사위를 위해 건축한 집이다. 윤덕영은 나라를 일제에 팔아넘긴 ‘경술국적’의 한 명, 매국노다. 윤덕영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의 큰 아버지인데, 1906년 동생 윤택영의 딸이 황후 자리에 오르자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후원하는 대동학회의 회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관민추도회(이토 히로부미 추도 행사)’를 발의하고 이토를 추도하는 제문을 낭독했다. 1910년 우리나라가 국권을 빼앗길 때 누구보다 앞장섰던 그는, 그 공을 인정받아 일본으로부터 후작의 작위와 함께 무려 46만원의 은사금을 받았다. 나라를 팔아먹은 돈으로 옥류동천의 위쪽, 옥인동 일대의 땅을 사들였고 그 땅에 한양의 아방궁으로 불렸던 ‘벽수산장’을 세웠다. 



벽수산장은 광복 이후 1950년 UN에 설립된 한국 문제 전담기구인 ‘언커크(UNCURK) 본부’로 사용되었고 1966년 화재 이후 방치되었고, 1972년에 완전히 철거됐다. 그러나 박노수 미술관은 그 명맥이 유지되었고, 현재는 고미술품, 수석, 고가구 등 천여 점의 풍부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1층은 온돌과 마루, 2층은 마루방 구조이며 총 3개의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주소: 서울 종로구 옥인1길 34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8:0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1,800원, 어린이 1,200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850m


▶Check Point
서촌마을

서촌은 경복궁 서쪽 지역을 뜻한다. 조선시대의 서촌에는 주로 의관이나 역관 등 중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특히 예술가도 많이 살았는데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를 포함해 이중섭 화가, 박노수 화백, 이성범 화가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골목골목 야트막한 600여 채의 한옥들이 줄지어 모여있다. 일부는 전시관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기도 한다. 서울에서 가장 오랜 서점인 ‘대오서점’, 50년 전통의 동네 중국집 ‘영화루’를 나긋하게 거닐고 있으면, 문득 상냥한 봄 같은 사람이 생각이 난다. 서촌은 그런 동네다.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곳.
 
주소: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45



기름떡볶이의 원조
통인시장


통인시장은 과거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효자동 인근의 일본인들을 위해 조성된 공설시장이었다. 6·25 전쟁 이후 서촌 지역에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 주변으로 노점과 상점이 가득 들어서며 지금의 통인시장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2012년부터는 엽전으로 시장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었는데, 이 시스템이 젊은 여행자들의 흥미를 자극해 이색 데이트코스로 손꼽히고 있다. 채소, 과일, 생선, 공산품 등 다양한 품목을 다루며 시장 곳곳에 먹거리가 가득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통인시장에서 딱 한 가지 음식만을 먹을 수 있다면 정답은 단연 기름떡볶이겠다. 고추장 혹은 간장으로 양념한 떡을 기름에 노릇하게 구워낸 음식이다. 바삭바삭하고 짭짤한 것이 떡꼬치와 맛이 비슷하다. 떡은 상당히 얇은데, 굵은 떡을 사용할 경우 양념이 싱거워지기 때문이다. 깔끔한 맛이 일품인 통인시장의 명물.



통인시장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5길 18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570m


▶Check Point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세종마을’은 실제로 세종대왕이 태어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근처에 과거 ‘금천교 시장’이라고 불리던 곳이 2011년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는 공식 명칭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비록 왕의 이름이 붙은 거리지만, 상당히 왁자지껄하고 가벼운 분위기의 맛거리다. 정겨운 반찬가게, 채소가게, 떡집부터 시작해 SNS에서 화제가 된 트렌디한 맛집들까지 가득하다. 그야말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종로 대표 먹자골목.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길 24



날개의 고향
이상의 집


1930년대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이 3살 때부터 20여 년 동안 살았던 생가의 일부다. 이상 작가의 본명은 ‘김해경’, 자식이 없던 큰아버지의 양자로 입양되어 이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과거 1,000여 평방미터가 넘는 큰 규모의 한옥이었는데, 현재는 일부만 남아 유리창과 콘크리트 벽, 기와가 지붕을 덮고 있다. 



이상은 어린 시절 그림과 글에 큰 재능을 보였지만, 쇠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압박 때문에 조선총독부 건축 기수가 됐다. 건축 기수로 일하며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시와 소설을 여러 편 발표했다. 주권을 빼앗긴 식민지의 땅에서, 애정 없는 가정에서 자란 그는 뒤틀리고 고단한 현실에서 느낀 불안과 공포, 자기분열, 자의식을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언어와 방식으로 표현했다. 27년, 짧은 그의 생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실내에는 이상의 흉상과 초상화가 있고 그의 작품을 연대별로 보관한 아카이브가 한쪽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팔만대장경을 모티브로 본 따 만들었다고 한다. 실내 왼쪽에 자리하는 육중한 콘크리트 검은 문틀을 밀면 어두컴컴한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오르면 환한 빛이 실내로 스며든다. 당시 어두웠던 시대상과 그가 처한 현실, 한 줄기 자유를 갈망하는 감정을 공간으로 표현해 낸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상의집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7길 18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7:00(브레이크 타임 12:00~13:0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300m



서촌의 정취
홍건익 가옥


홍건익 가옥은 여행자 누구나 한옥의 정취를 경험할 수 있도록 공공 개방된 서촌의 한옥이다. ‘홍건익’이라는 상인의 집이었던 이곳은 1936년에 지어진 근대식 한옥으로 대문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채로 구성된 큰 규모를 갖췄다. 서울에 남아있는 한옥 가운데 후원과 빙고까지 갖춘 유일한 곳이다. 전통 한옥과 근대 한옥이 절묘하게 섞여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시 민속문화재 33호로 지정됐다. 



홍건익 가옥의 신기한 점은 후원으로 갈수록 지대가 점점 높아진다는 점이다. 땅을 인위적으로 깎지 않고 언덕을 그대로 살려 지형적 특색을 살려 냈기 때문이다. 홍건익 가옥의 사랑채는 ‘서울한옥포털 홈페이지’에서 예약만 하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안채, 별채는 전시, 전통 클래스 등 액티비티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홍건익가옥

주소: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1길 14-4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8:0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지하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470m



여성 교육의 시작점
배화여자대학교


배화여자대학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98년, 조세핀 캠벨 선교사가 설립한 캐롤라이나 학당이 그 시초이다. ‘조세핀 켐벨’은 1897년 한국에 들어와 무려 23년 동안 조선의 여성 교육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다. 그녀가 설립한 학당이 1909년 윤치호에 의해 ‘배화’로 교명을 바꾼 것이 지금 이름의 유래다. 



배화학당에는 민족운동가 남궁억 선생이 1910년부터 1918년까지 교사로 재직하며 영문법, 조선의 역사 등을 가르쳤다. 직접 지은 역사책 <조선이야기>를 통해 민족의 자부심과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민족의식을 심어 주기도 했다.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배화학당 학생들은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받아 만세운동에 참여하려 했지만, 사전 검열에 걸려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3월5일 학생 연합 시위에 참여했고, 3월10일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굳건히 하여 1920년 3월1일 40여 명의 배화학당 학생들이 학교 뒤편 필운대에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현재는 배화여중, 배화여고, 배화여자대학교로 나뉘어 있다. 학교 휴무일인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에만 내부 방문이 가능하다. 



배화여자대학교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대로 1길 34
*지하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550m



국궁 1번지
황학정


황학정은 1898년, 대한제국 시기 고종의 명으로 지어진 정자다. 사실 본래 자리는 이곳이 아니라 경희궁이었다. 당시 고종은 국궁을 장려하기 위해 경희궁 회상전 북쪽 담장 근처에 황학정을 세우고 민간에 개방했다. 하지만 일본이 1910년 경희궁에 경성중학교를 세웠고 남아 있던 건물들을 학교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22년에는 경희궁 부지에 전매국 관사를 짓는다는 이유로 남아 있던 황학정이 일본에 의해 사직단 근처로 이전된다. 



사직단은 조선시대 땅과 곡식의 신에게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제를 지냈던 공간이다. 일본은 경희궁과 사직단 영역의 파괴라는 2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황학정은 여전히 국궁 1번지로 불린다. 본래의 장소가 아니긴 해도, 여전히 활을 쏘는 정자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학정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9길 15-32
*지하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740m


▶Chenk Point 1
국궁전시관

황학정 국궁전시관은 5개의 전시실, 국궁에 대한 자료를 관람할 수 있는 자료실, 영상실로 구성되어 있다. 5개의 전시실은 국궁의 1세트를 뜻하는 5발의 ‘1순’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의 궁술 역사와 문화, 활의 우수성을 보여 주는 다채로운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다. 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다양한 활을 관람할 수 있다. 전통 활쏘기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여 전통 국궁문화를 계승하고 국궁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곳.
 


황학정 국궁전시관
운영시간: 화~일요일 10:00~17:00,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지하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840m


▶Check Point 2
사직공원 체육시설

최근 화제인 일명 ‘산스장(산에 자리한 무료 체육시설)’ 열풍의 주역. 사직공원 체육시설은 사용료 없이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웬만한 헬스장 못지않은 다양한 기구가 준비되어 있다. 인왕산 사직공원 입구 출발점 근처에 위치한다.



사직공원 체육시설

주소: 서울 종로구 사직로9길 15-25
*지하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680m



글·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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