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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Feb 28. 2018

그 겨울,
파리 여행 해프닝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센 ‘파리’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겨울’이라는 낱말을 만나면 시너지가 폭발한다. ‘겨울의 파리’는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다. 겨울이라서 가능했던 그 겨울, 파리에서의 해프닝.  

환상을 가지고 겨울에 이 땅을 밟는 자들을 조소하듯, 파리의 겨울은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로 도도하게 여행자에게 말한다. “이래도 날 사랑할 수 있냐”고. 하지만 파리는 잠시도 실망할 틈을 주지 않는다. 시시때때로 눈을 홀리는 휘황찬란한 겨울 장식, 겨울 별미, 그리고 파리 그 자체의 매력까지. 겨울의 파리는 그야말로 팜므 파탈 같다.  

갤러리 라파예트 본관 옥상에 마련된 전망대에서는 파리 시내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파리가 빛의 도시가 되기까지 


잠시 파리의 겨울을 좀 더 불평해야겠다. 겨울의 파리는 비도 잦다. 그럼에도 파리 사람들은 우산 없이 비를 맞는다. 그 이유는 머지않아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비에 바람까지 부니 차라리 우산 없이 맨몸으로 비바람을 헤치고 파워워킹을 하는 편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해도 짧다. 10시가 다 되어야 ‘아침인가 보다’ 싶고, 오후 5시가 되면 해는 이미 온데간데없다. 

쇼윈도마다 5세 이하 어린이 전용 난간이 마련된 것이 재밌다

화려하다는 말보다는 오히려 흑백영화 같다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한 겨울의 파리는 어떻게 ‘빛의 도시(Ville Lumiere)’가 되었을까. 17세기 루이 14세 때 파리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각종 범죄의 온상이었다. 그래서 1대 치안 감독관은 아주 좁은 골목길까지 램프를 밝히고 횃불을 마련해 온 도시를 밝혔다. 등잔 밑까지 샅샅이 살피겠다는 범죄 타파의 의도가 세계 최초의 공공조명이 되어 파리를 더욱 환히 밝히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 외지 사람들이 ‘빛의 도시’라고 부르며 파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역사는 아이러니지만 흥미롭다. 


특히 겨울에 파리를 찾은 여행자들은 샹젤리제(Champs-Elysees), 각종 쇼핑지구의 대형 백화점, 파리의 랜드마크와 유적지를 비롯해 거리마다 섬세하게 장식된 조명을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 라파예트 1층에 마련된 아트 갤러리(Galerie des Galeries)도 흥미롭다. 다양한 컨템포러리 예술전이 열린다


100년을 이어 온 파리의 겨울 풍경 


‘100년을 이어 왔다는 게 고작 쇼핑몰과 쇼핑지구의 풍경인가?’ 라고 얕잡아 보면 큰코다친다.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와 쁘렝땅 오스만(Printemps Haussmann)은 프랑스 쇼핑의 성지라 일컬어지는 대표적인 백화점이다. 매해 겨울이면 사람들은 두 백화점의 겨울 장식이 어떻게 구현될 것인지 기대감에 들뜬다. 

두 백화점의 겨울 장식 전통이 언제부터인지 ‘썰’들이 난무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프랑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우울하고 어두웠기에 대형 백화점들이 앞장 서 밝고 신나는 겨울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느덧 이 성탄절 장식은 두 백화점의 자존심 싸움이 됐고 한 달 남짓한 이 특별한 성탄 쇼윈도 장식은 준비에만 1년이 걸린다고. 아쉽게도 갤러리 라파예트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은 지난해 12월31일까지 진행됐지만, 다시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상상하는 바탕그림으로 살펴보자. 

지난해 갤러리 라파예트 성탄 쇼윈도 장식은 누가 뭐래도 ‘역대급’이었다. 오페라 지구의 주요 건물 세 동을 차지한 갤러리 라파예트의 쇼윈도는 ‘1900년대 초반의’ 놀이 공원으로 꾸며졌다. 한 쪽의 배럴 오르간, 또 다른 쇼윈도의 대관람차 장식이 신나는 캐롤에 맞춰 움직인다. 선물을 향해 실제처럼 움직이는 롤러코스터 모빌까지 사람들의 시선이 떠나질 않는다. 

어릴 때부터 매년 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기다려 왔던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도 모두 영화를 보듯 성탄 쇼윈도 장식에 집중하느라 오페라 지구의 갤러리 라파예트 앞은 인산인해다.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돔형 지붕 아래 우뚝 선 크리스마스트리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갤러리 라파예트의 중심부를 장식한 5층 높이의 대형 트리는 온갖 사탕, 과자,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가득 매달고 천천히 회전했다. 형형색색의 마카롱과 도넛, 별사탕이 캐롤에 맞춰 위 아래로 움직이면 쇼핑을 하던 사람들도, 물건을 팔던 점원들도 옹기종기 난간에 서서 이 황홀한 크리스마스 쇼에 몰두했었다. 2018년에 펼쳐질 성탄 장식은 또 얼마나 진화할까?




디너 크루즈 타고 바라보는 겨울의 파리 


거리 전체를 화려하게 꾸민 파리의 겨울 장식은 주요 포인트에서 면밀하게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파리 시내의 주요 포인트를 도는 오픈 버스를 타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파리에는 다양한 2층 투어 버스가 운행되는데 그중에서 오픈 투어 버스(Open Tour Bus)는 1시간 30분 동안 크리스마스 라이트 투어(Christmas Lights Tour) 코스를 운행해 파리 시내의 크리스마스 장식만을 둘러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면 이어폰과 담요, 따뜻한 음료가 제공되며 이어폰을 끼면 9개의 언어로 파리 시내 주요 포인트의 설명을 크리스마스 캐롤과 함께 들을 수 있다. 

더 특별한 파리의 겨울을 느끼려면 세느강을 유람하는 디너 크루즈를 예약하자. 바또 파리지엥(Bateau Parisien)은 일반 유람선은 물론이고 디너 크루즈를 운영한다. 바또 파리지엥의 디너 크루즈는 식사를 즐기며 주변을 바라보기 좋게 통창으로 이뤄졌다. 에펠탑에서 시작해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세느강의 다리 풍경과 노트르담 성당, 오르셰와 루브르 등의 고풍스러운 건물부터 퐁피두 센터와 같은 현대적인 건물이 번갈아 등장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디너 크루즈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다시 에펠탑으로 향하는 2시간 30분의 코스로 식사와 파리의 풍경 감상을 함께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파리 버스 패스 
원하는 곳에서 내리고 탈 수 있는 버스 패스는 성인 기준 1일권이 33유로, 2일권은 37유로, 3일권은 41유로. 4~15세 어린이의 모든 버스 패스는 17유로로 동일하다. 참고로 크리스마스 라이트 투어 버스의 가격은 27유로. 

홈페이지: www.paris.opentour.com  


바또 파리지엥 
디너 크루즈는 오후 6시, 8시30분, 9시 세 차례 운행되며 좌석과 운행 시간에 따라, 서비스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1인당 69유로부터. 유람선은 15유로부터.  
홈페이지: www.bateauxparisiens.com 




겨울 낮의 성(城) vs 겨울 밤의 성 

이번 파리 겨울 여행이 내 얘기 같지 않고 남의 얘기만 같았던 건 바로 지나칠 정도로 호사스러운 성 때문이었다. 왕권을 신성시하여 왕이 살았던 궁 안에서의 활동이 현재에도 한정적인 동양과는 달리 프랑스의 성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선 다채로운 액티비티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잠시나마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허용된다.
보-르-비콩트성은 베르사유 궁전의 원형이 되었다


베르사유가 지닌 웅장함의 원형


파리를 에워싼 외곽 지역에는 수많은 성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성은 당연히 베르사유 궁전이겠지만 베르사유의 원형이 되었던 성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파리에서 50km 떨어진 맹시(Maincy)에 루이 14세 때의 재무상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는 보-르-비콩트성(Chateau de Vaux-le-Vicomte)을 건설했다. 푸케는 성의 부지를 1641년에 구입했고 1661년 완공했다. 보-르-비콩트성은 당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프랑스 최고 예술가들의 합작품이다. 

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 화가 샤를 르브룅(Charles Lebrun), 조경 예술가 앙드레 르 노트르(Andre Le Notre)가 이 웅장하고 휘황한 성을 만들었다. 당시의 모든 재력가와 권력자가 부러워했던 대단한 성은 루이 14세 프랑스에서 유행한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건축 스타일의 원형으로 당대 건축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  

푸케의 성은 프랑스 문화와 사회의 중심지가 됐다. 푸케는 이곳에서 루이 14세를 위한 성대한 연회를 열었는데 바로 이것이 루이 14세의 질투와 화를 불러일으켰다. 독직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니콜라 푸케는 국외 추방을 선고 받았으나 루이 14세는 푸케에게 종신형을 내렸다. 푸케가 정부의 돈을 횡령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이 14세는 보-르-비콩트성을 지었던 3인방, 루이 르 보, 샤를 르브룅, 앙드레 르 노트르를 불러 베르사유 성을 짓게 했다. 


보-르-비콩트성은 여러 주인을 거쳐 1875년 경매를 통해 알프레드 소미에(Alfred Sommier)에게 넘어갔다. 알프레드 소미에와 후손들은 보-르-비콩트성이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도록 복원에 힘썼다. 현재에도 소미에 가문의 후손인 비기에(Viguier) 가문이 성을 관리한다. 보-르-비콩트성은 1965년 프랑스 정부가 지정한 역사 기념물이 되었으며 1968년부터 일반 방문자에게도 개방됐다. 

언제나 ‘성은 박물관의 또 다른 이름’으로만 여겼던 내게 이번 여행에서 보-르-비콩트성을 방문했던 건 평생 기억될 역대급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성주의 초대를 받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곱게 꾸민 성의 곳곳을 함께 돌아보고 성 안의 주요 시설을 성주의 어린시절 기억과 프랑스의 역사를 총망라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돌아보는 특별한 가이드를 받았다. 그리고 꿈같은 만찬까지. 여행을 하고,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게 이렇게나 행복할 줄이야. 처음에는 요상한 행복감에 도취해 성 안을 활보하다가 문득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푸케도 그랬겠지. 이 아름다운 성을 혼자만 보기는 아까우니 사람들을 초대해 자랑하고, 왕까지 초대해 과시하다 참변을 당했겠지. 그리고 그 성에 초대받았던 사람들은 나처럼 감격에 겨워 호들갑을 떨며 성주에게 선택받은 우월감을 이리저리 자랑했겠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 다를 것이 없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다행히도 이 근사한 이벤트는 성주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성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인 레 샤르미유(Les Charmilles)에서는 조경 예술가 앙드레 르 노트르가 조성한 아름다운 정원을 바라보며 잊지 못할 만찬을 즐길 수 있다. 일정은 웹사이트에서 확인해야 하며 2018년은 5월5일부터 10월6일 토요일 저녁에 예약을 받는다. 5월에서 10월 보-르-비콩트성에서는 토요일 저녁마다 촛불 축제(Soiree aux chandelles)가 열리기 때문이다. 디너 코스의 가격은 59.50유로부터. 보다 캐주얼한 경험을 원한다면 셀프서비스 레스토랑 르 르레 드 레퀴뢰유(Le Relais de l’Ecureuil)나 샴페인 바, 피크닉 등을 신청해 일행들과 오붓한 성에서의 한때를 만끽하면 된다.  


보-르-비콩트성 찾아가기
파리 동역(Gare de L’Est)에서 베르뇌유 레땅(Gare Verneuil l’Etang)역까지 35분, 샤토 버스로 갈아타면 성 앞에 정차한다. 총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 
홈페이지: www.vaux-le-vicomte.com



당시 서민에겐 재앙, 현재의 관광객에게는 축복 


프랑스에서 가장 이름 난 성은 누가 뭐래도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일 것이다. 원래 베르사유 궁전은 루이 13세가 1623년에 사냥을 위해 만든 여름 별장으로 건설한 것을 루이 14세가 지금의 호화찬란한 궁으로 변모시켰다. 

푸케의 성에 대한 질투심으로 만들어진 만큼 왕의 궁전은 더 웅장해야만 했다. 만리장성이며 피라미드며 왕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세계의 유적지가 그러하듯 베르사유 궁전 역시 태양왕 루이 14세의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건설에는 무려 3만6,000여 명의 인부가 매년 동원됐다. 루이 14세, 루이 15세, 루이 16세와 왕실 가족들이 거주했고 1789년 혁명과 함께 왕실이 강제로 파리로 되돌아갈 때까지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의 구체제를 말하는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베르사이유 궁의 극에 달한 사치와 향락 생활은 왕의 아파트(Grands Appartements du Roi)에서 벌어졌다. 미로처럼 연결된 왕과 왕비의 주거 공간과 각각의 이름을 가진 6개의 살롱과 리셉션 역할을 했던 거울의 방까지, 지동설에 따라 국왕의 상징인 태양과 주변의 행성처럼 루이 14세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기 위해 공간을 배치했다. 

그중에서도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 주는 거울의 방(La Galerie des Glaces)은 벽과 천장이 거울로 된 길이 73m의 방이다. 너비 10.4m, 높이 13m의 스펙만으로도 ‘억’ 소리가 난다. 루이 14세가 친정을 한 17년을 기념하고자 정원을 향해 17개의 창문을, 반대편 벽에는 17개의 거울을 배열했는데 이 방에만 578개의 거울을 사용했다. 정원과 대운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루이 14세가 기상 후 미사를 드리러 가면서 이 방을 지나갔다고 한다. 을씨년스럽게 비와 눈과 우박이 내리는 창밖 풍경이 극도로 사치스러운 거울의 방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파티의 장면과 겹쳐지며 입맛이 씁쓸했다. 

예전에 베르사유 궁전이 한 사람과 그의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었다면 이제 이 성은 그 자체가 전 세계의 관광객을 위한 놀이터이자 테마파크다. 가브리엘이 설계했으며 루이 16세와 마리 앙뚜와네뜨의 결혼 축하연이 열리기도 했던 오페라(Opera)는 연중 끊이지 않는 공연 스케줄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루이 14세가 죽기 전 완공된 왕실 예배당(Royal Chapel of the Chateau)은 왕이 매일 아침 새벽 미사에 참석했고 프랑스 왕자들의 세례식과 루이 15, 16, 18세 등의 결혼식이 거행된 곳이다. 이 왕실 예배당에도 뮤지컬 스케줄이 빼곡하다.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압도적인 규모의 정원에는 ‘겨울여행(Voyage d’hiver)’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한창이었다. 현대 예술가 17명의 세계관, 감수성, 시(詩)를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감상하는 특별전으로 추위 속에서도 빛나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다.  


베르사유 궁전 찾아가기
RER C라인을 타고 베르사유 리브고슈(Versailles Rive Gauche)에서 하차. 
홈페이지: www.chateauversailles.fr 




매력만점! 겨울 파리의 실내 활동


비단 겨울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파리의 겨울은 실내 행사가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루브르와 오르셰를 필두로 박물관은 겨울 특별전을 준비하고 각종 콘서트, 뮤지컬, 공연이 파리 곳곳을 뜨겁게 달군다.
해가 짧고 날씨가 변덕스러운 겨울의 파리는 얼마나 실내 활동을 잘 즐기느냐에 따라 여행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모탕 모네 박물관에서는 특별전시 기간이 아니라도 지베르니의 수련 연못을 그린 모네의 후기 작품들을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다


모네처럼 살고 싶다 


마르모탕 모네 박물관(Musee Marmottan Monet)에는 1966년 모네의 아들이 기증했던 작품을 전시한다. 기존의 전시보다 더욱 폭넓고 깊이 있게 모네와 모네의 작품 세계, 모네와 함께 활동했던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까지 만날 수 있는 특별전시회가 지난  2018년 1월14일까지 펼쳐졌다. 전시는 모네의 초기 그림부터 미공개 작품, 그리고 1926년 86세를 일기로 지베르니에서 생을 마감했던 순간까지의 작품들을 총망라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특별전은 코로(Corot), 부댕(Boudin), 마네(Manet), 르누아르(Renoir), 카유보트(Caillebotte), 모리소(Morisot), 피사로(Pissarro) 등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모두 한자리에서 총 공개된 흔치않은 기회였다. 이름만 들어도 기라성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그린 모네의 초상화와 모네의 일기를 비롯한 소장품까지 전시 품목이 대단히 방대했다.

모네 이외에도 회화, 조각 분야의 다양한 인상파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모네 특별전

인상파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작품인 <인상, 일출>에서 ‘인상주의’라는 말이 생겼다. 모네는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의 원칙을 고수했으며 연작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폴 세잔(Paul Cezanne)은 빛의 변화에 기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하는 모네의 능력에 감탄하며 “모네는 신의 눈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모네는 태양이 뜨고 질 때까지 캔버스를 바꿔가며 하나의 대상을 그렸다. 하루 종일 빛을 바로 보면서 작업하느라 모네의 시력은 크게 손상돼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그럼에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선천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을 겸비했었던 모네였지만 그 위대한 시선은 어린 시절부터 여러 도시를 다니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미술관의 가이드는 “여행을 즐기고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부와 재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던 모네는 그의 나이 40대 중반에 첫 집을 지베르니에 마련합니다. 그 후부터 모네는 성공한 화가로 큰 재산을 모을 수 있었죠”라고 모네의 삶을 설명했다. 모네라고 고민과 번뇌가 없었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현재를 충실히 살고 삶을 즐기며 축적된 경험과 시각을 예술혼으로 풀어 낸 그의 인생이야말로 진정한 욜로(YOLO) 라이프의 표본이 아닐까. 모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전시를 관람한 후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마르모탕 모네 박물관 
주소: 2 Rue Louis Boilly ? M° La Muette  
홈페이지: www.marmottan.fr


디올이라는 견고한 세계

  
크리스찬 디올 하우스의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는 <크리스찬 디올, 꿈의 디자이너(Christian Dior: Couturier Du Reve)> 전시회가 2017년 7월5일부터 2018년 1월7일까지 파리 장식 미술관(Musee des Arts Decoratifs)에서 열렸다. 장식 미술관 개관 후 가장 큰 규모의 전시였다. 

패션, 그중에서도 오뜨꾸뛰르 패션이란 사치와 허영의 다른 이름이라고 몹쓸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 중 하나로서 이 디올 전시는 나를 깊이 반성케 했다. 크리스찬 디올 하우스의 창립자인 크리스찬 디올뿐만 아니라 후계자인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마르크 보앙(Marc Bohan), 지안프랑코 페레(Gianfranco Ferre),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디올 역사상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까지. ‘디올의 세계’, ‘디올의 정체성’을 확립한 디자이너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영감의 원천, 예술적 섬세함에 감탄치 않을 수가 없었다. 왜 패션이 예술이자 역사이고 패션 디자이너들이 세기의 아티스트로 추앙받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300벌이 넘는 꾸뛰르 드레스는 물론 디자이너의 삶과 친구들,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받은 예술가와 작품, 수백 점의 자필 문서와 편지, 디올 뷰티의 향수와 립스틱까지…. 3,000㎡에 달하는 광활한 미술관이 빼곡하다. 관람객의 동선에 빈틈 하나 주지 않기 위해 조성한 공간 연출과 조명, 빛과 음향까지 이곳은 나를 비롯한 관람객을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디올이라는 견고한 세계에 온전히 푹 빠지도록 노련하게 설계했다. 전시장의 끝을 장식한 ‘디올을 입은 스타들(Stars in Dior)’을 바라보며 ‘80주년 전시에서는 2017년 송혜교의 웨딩드레스도 이곳에 전시되는 건가?’ 하는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혼자 낄낄댔다.  


파리 장식 미술관
주소: M° Palais Royal Musee du Louvre  
홈페이지: www.lesartsdecoratifs.fr 



세계에서 가장 화끈하고 섹시한 쇼! 


키는 168~172cm, 유두간 거리는 21cm, 배꼽에서 치골까지 13cm…. 물랑루즈, 리도쇼와 함께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3대 쇼 중 하나인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무희의 신체조건이다. 지나치게 팍팍하지만 1년에 500여 명이 응모하고, 오디션을 통해 단 20여 명이 선발된다. 평균 3~6개월의 연습기간을 거쳐 무대에 오르는 댄서 1인당 1년 동안 500리터의 화장품, 300개의 립스틱, 720쌍의 속눈썹, 2,500켤레의 스타킹을 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몸무게를 체크하고 문신이나 성형은 금지다. 댄서들의 신분은 비밀이고 예명을 사용한다. 

1951년 프랑스 상류층의 유희에서 시작된 이 쇼는 글래머러스한 댄서들이 거의 전라나 아슬아슬한 속옷만을 입고 역동적이고도 유쾌한 춤을 춘다. 이때 여성의 몸은 캔버스가 되어 빛과 영상을 받아 하나의 작품이 된다. 늦은 밤에 펼쳐지는 까닭에 다소 몽롱했던 정신이 나체의 여인들이 등장하자 화들짝 깨어난다. 하이힐을 신고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맞는 칼군무에 “와우!”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의 곡선미와 함께 자연스럽고도, 전위적으로 어우러지는 영상과 빛의 조화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전위 예술가이자 여성 찬미자 알랭 베르나댕(Alain Bernadin)이 원작자인 <크레이지 호스>는 <태양의 서커스> 등의 안무를 맡은 필립 드쿠플레(Phillippe Decoufle)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실오라기같이 걸치는 속옷이나 뷔스티에, 가터벨트 등의 의상은 장 폴 고티에, 하이힐은 크리스티앙 루부탱과 협업했으며 때로는 칼 라거펠트, 파코라반, 엠마누엘 웅가로 등의 패션 디자이너와도 호흡을 맞췄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뮤직비디오 <허트(Hurt)>는 <크레이지 호스>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으며 비욘세는 그의 앨범에서 <크레이지 호스> 댄서들과 함께 촬영했다. 살바도르 달리도 <크레이지 호스>의 단골손님이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는 유명 인사들이 이 쇼를 찾아 영감을 얻고 팬이 됐다.  


크레이지 호스쇼 
주소: 12 Avenue George V , Paris
홈페이지: www.lecrazyhorseparis.com


파리 뮤지엄 패스(Paris Museum Pass) 
파리 박물관과 유적지 50곳 이상에서 사용 가능한 자유 이용권. 2일권, 4일권, 6일권이 있다. 
홈페이지: www.parismuseumpass.com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사진관 
스튜디오 아르쿠르(Studio Harcourt)


그럼 그렇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흑백 사진관이 파리에 있다. 스튜디오 아르쿠르는 1934년 오픈했다. 이곳에서는 1946년 <미녀와 야수> 영화 촬영 당시 사용했던 빛의 기법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기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전문 촬영 기법을 고수한 사진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됐다. 빛을 사용하는 기술이 뛰어나 전 세계 배우는 물론 정치인, 예술가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프랑스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을 정도라니 사진관이 프랑스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배우 이병헌씨의 얼굴이 반갑다. 

명성답게 스튜디오 아르쿠르는 쉽지 않다. 사진관은 촬영을 위해 일주일에 딱 세 번 문을 열고 1년에 딱 100번만 촬영한다. 사전 예약은 필수고 촬영 금액도 2시간에 무려 1,995유로로 어마무시하다. 그럼에도 이 사진관을 찾는 이유가 있다. 사진을 어느 한 사람의 한 순간을 담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사진 한 장에 한 사람의 인생을 담는 작업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가는 촬영에 앞서 모델과 긴밀한 대화를 유도한다. 모든 것은 모델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내는 데에 집중한다. 빛의 각도를 정한 후 다양한 시도를 통해 포즈와 표정 등을 끄집어 낸다. 그렇게 찍은 사진 중 사진가가 일부 사진을 정리해서 보여 주면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선택하면 된다. 1시간짜리 촬영도 있다. 빛의 작업이 약간 다르고 상반신까지만 촬영을 제한한다. 


스튜디오 아르쿠르는 확실히 콧대가 높다. 하지만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사진관임은 분명하다. 그동안 스튜디오 아르쿠르에서 사진을 찍은 이들이 사진관이 사라지는 것을 두고만 보진 않을 테니. 그런 의미에서 인생사진은 여기에서 찍는 게 맞다. 


주소: 6 Rue de Lota 75116 Paris 

전화: +33 6 12 04 30 03  
홈페이지: www.studio-harcourt.eu 


움직이는 파리를 바라보며 미식여행 
버스트로 노메(Bustro Nome)


음식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자부심은 바또 무슈(유람선)에 이어 버스로도 전파됐다. 버스트로 노메는 2층 버스를 그야말로 움직이는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것. 천장부터 2층 창문을 통유리로 만든 버스를 타고 파리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투어다. 개선문에서 시작해 샹젤리제 거리, 루브르 박물관 등 주요 스폿을 모두 지나쳐 돌아오는 데 약 2시간이 걸린다. 3년 전 서비스를 시작한 버스트로 노메는 한 발 빠른 일본 여행객들에게 인기라고. 버스트로 노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에펠탑이다. 에펠탑이 한눈에 보이는 포인트에 잠시 정차한다.

테이블은 모두 창가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 굳이 좋은 자리를 위해 일찍 나설 필요는 없겠다. 그런데 움직이는 버스에서 어떻게 식사를 하냐고? 버스는 평균 시속 10~20km 이내로 천천히 달린다. 또 테이블 각 자리마다 고정된 케이스가 설치돼 있다. 여기에 잔과 접시를 올려놓으면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점심 식사는 4코스 요리를 65유로부터 즐길 수 있으며 와인 페어링까지 추가하면 85유로다. 저녁 식사는 무려 6코스다. 100유로에 스타터 요리 2가지, 메인 요리와 치즈, 디저트까지 즐길 수 있다. 2잔의 와인까지 포함하면 130유로다. 요리 수준은? 잊지 말자, 여기가 파리라는 것을.  


주소: 2 Avenue Kleber 75116 Paris 

전화: +33 9 54 44 45 55  
홈페이지: www.bustronome.com



글·사진 신중숙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 관광청 kr.france.fr 파리 일드프랑스 관광청 www.visitparisreg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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