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그곳, 아이치현.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
어딜 가나 모르는 것투성이.
발동하는 호기심을 무기 삼아 향토 음식을 먹었고, 오래된 골목길을 거닐었다.
여행을 마치고 공항에서 출국심사대를 지났을 때 깨달았다.
여행은 원래 이런 것이었음을.
나고야는 두 개의 고속도로가 동서와 남북을 잇고, 빌딩이 가득 들어선 대도시라는 점이 무색할 정도로 고요했다. 직장인들이 커피 한 잔을 벗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마저도 서정적이었다. 누군가는 자전거로 장을 보러 가는 중이었고, 또 누군가는 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일본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것만 같았다. 나고야 너머 아이치현의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오와 열을 맞추어 뻗어 나가던 공업 지대가 어느새 끝을 맺었다. 드넓은 평야와 잔잔한 바다가 펼쳐졌다. 각 마을의 역사, 이야기가 아이치 구석구석 스며 있었다.
과거부터 미래까지, 토요타 산업기술기념관
토요타 산업기술기념관은 지금의 토요타 자동차를 있게 한 역사적인 곳이다. 옛 공장 건물을 그대로 전시관으로 활용해 낡긴 했지만, 여전히 멀끔한 붉은 벽돌 건물은 우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사실 토요타 자동차는 자동직기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다. 창업자인 토요타 사키치(豊田佐吉)가 발명한 자동직기는 면직물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고, 이를 계기로 회사는 기반을 다지게 됐다고 한다. 이후 회사에 뿌리내린 도전정신은 그의 아들 토요타 기이치로(豊田喜一郎)에게 전해져, 결국 토요타 자동차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전시관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자동직기의 개발 역사를 보여주는 섬유기계관과 토요타 자동차의 발전 과정을 소개하는 자동차관. 섬유기계관에서는 토요타 자동직기 제작소가 어떤 기계를 만들었는지, 어떤 원리를 이용했는지 등을 보여 준다. 큐레이터의 설명이 끝나면 직원들이 자동직기를 직접 시연한다. 바로 100여 년 전에 만들어 활용했던 그 자동직기를. 시간에 노력을 더하며 점점 더 정교해진 건 물론, 더욱 다양한 면포를 생산하기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동차관은 자동차 마니아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쉐보레 자동차를 들여와 분해해가며 원리를 배웠던 초창기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기업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소개된다. 토요타 클래식 카와 현재 시판 중인 차량, 그리고 미래에 어떤 자동차를 만들 것인지도 설명한다. 일본을 넘어 세계 최고의 자동차 전문기업이 되는 과정까지 소중히 여기는 창업가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주소: 1-35, Noritake Shinmachi 4-Chome, Nishi-ku, Nagoya-shi, Aichi-ken
전화: +81 52 551 6115
오픈: 09:30~17:00(16:30 입장 마감) 월요일, 연말연시 휴관
입장료: 어른 500엔, 중고생 300엔, 초등학생 200엔
홈페이지: www.tcmit.org
꿈이 현실이 된 순간, 레고랜드 재팬
빨간 바탕에 흰색으로 쓰인 네 글자. 어릴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설레는 로고가 탑 꼭대기에서 손짓한다. 레고로 이루어진 세상, 레고랜드 재팬(Legoland Japan)이다. 어린 시절 방구석에서 이리저리 쌓으며 놀았던 바로 그 레고 말이다. 2017년 4월 나고야시에 문을 연 레고레드 재팬에는 7개 테마로 이루어진 40여 개의 어트랙션과 볼거리가 구비돼 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네모반듯한 블록을 수천 개씩 쌓아 만든 벽과 기둥, 그리고 둥근 머리를 가진 캐릭터가 인사를 건넨다. 중세 시대 옷을 입은 문지기가 다리 뒤에 숨어 코를 고는 모습은 익살스럽다 못해 리얼하기까지 하다. 각이 살아 있는 스포츠카가 도로 한쪽에서 경쾌한 엔진음을 내뱉으며 시선을 사로잡는 일은 예사. 거대 문어 크라켄(Kraken)이 사람을 잡아채 흔드는 장소를 지날 땐 괴물의 포효가 뒤통수를 때린다. 레고의 본고장 덴마크에서 그대로 옮겨온 듯한 레고팩토리는 블록이 만들어지는 실제 과정을 조망할 수 있어 인기 있다. 레고로 만들어진 롤러코스터를 타고 한껏 소리를 지르기도,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포토존을 찾아 포즈를 취해 보기도 한다. 일본의 주요 랜드마크를 레고 블록으로 재현한 레고 시티의 정교함에 반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본 것은 비밀이다.
주소: 2-1, Kinjofuto 2-Chome, Minato-ku, Nagoya-shi, Aichi-ken
오픈: 10:00~17:00(때에 따라 18:00 혹은 20:30에 폐장), 부정기적으로 화·수요일 휴관(웹사이트 참고)
입장료: 성인(13세 이상) 6,900엔, 어린이(3~12세) 5,300엔, 3인 가족권 1만9,100엔, 4인 가족권 2만4,400엔 (1일권 기준, 예매시 할인)
홈페이지: www.legoland.jp
나고야를 발아래에, 나고야 TV 타워(名古屋テレビ塔)
해가 저물어 가는 늦은 오후, 전망대에 올라가야 한다며 일행을 재촉했다. 나고야의 중심지인 사카에(栄)를 내려다보는 철제구조물이자 중계탑인 TV 타워가 그 목적지다. 히사야오도리 공원 한가운데에 180m 높이로 솟은 TV 타워는 나고야에서 가장 낭만적인 명소 중 하나. 1954년 일본에서 가장 먼저 지었다는 상징성과 함께, 100m 높이의 전망대에서 시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 2005년에는 등록문화재로도 지정됐다.
3층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한 후 엘리베이터로 전망대까지 이동했다. 오래된 시설이지만 갖출 것은 다 갖췄다. 전망대 끄트머리에 바짝 다가가자 나고야 시내가 발아래로 훤하게 펼쳐졌다. 남쪽으로는 오아시스21이, 북쪽으로는 나고야성이 고개를 내밀어 반갑게 인사한다. 고층빌딩 숲 사이로 노을이 스며들었다. 붉게 물들어 가던 하늘은 점점 짙은 파란색을 띠었고, 그마저도 점점 잃어 가기 시작했다. 이때만을 기다렸다. 마치 파도를 타듯 퍼져 가는 도시의 불빛이 나고야 전체를 화려하게 수놓는 그 순간을.
주소: 6-15, Nishiki 3-Chome, Naka-ku, Nagoya-shi, Aichi-ken
전화: +81 52 971 8546
오픈: 4~12월 10:00~22:00 1~3월 10:00~21:00, 연중무휴
입장료: 어른 700엔, 고등·대학생 600엔, 초·중학생 300엔, 65세 이상 600엔
*매주 주말과 공휴일마다 ‘스카이 워킹’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425개의 외부계단을 따라 전망대까지 오르며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홈페이지: www.nagoya-tv-tower.co.jp
중세 일본의 낭만에 취하다, 이누야마성
아이치현 북부를 지나는 기소강(木曾川)이 유유히 흐른다. 강을 사이에 두고 기후현 최남단의 가카미가하라시(各務原市)와 아이치현 최북단의 이누야마시(犬山市)가 서로 마주한다. 이누야마는 기소강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군웅들의 부침을 오롯이 간직한 마을이다. 전국시대 이후 수많은 세력이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기소강 위에 세워졌던 이누야마 성채가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거나, 주변으로 펼쳐진 노비 평야의 풍요로움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을 터. 그 수많은 부침에도 불구하고, 이누야마성은 여태껏 한 번도 파괴된 적이 없었다.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고 한다.
성문이나 성벽은 많이 사라졌지만 주변 마을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상가 건물들이 이어지는 거리에는 전통 화과자를 파는 카페나 자그마한 식당 등이 눈에 띈다. 언제부터 있었을까 싶은 구멍가게도 ‘영업 중’이라는 표지를 내걸고 있었다. 기모노를 입고 거리를 거니는 이들도, 인력거를 끌며 손님에게 마을을 소개하는 청년들에게도 웃음이 가득했다. 모진 역사를 견뎌 낸 마을이 이제서야 누리게 된 것들은 소박했지만, 이누야마의 모든 것들이 걸어온 발자취와 함께 빛나고 있었다.
주소: Kitakoken 65-2, Inuyama-shi, Aichi-ken
전화: +81 568 61 1711
오픈: 09:00~17:00(16:30까지 입장), 연말 휴관(12월29~31일)
입장료: 고등학생 이상 550엔, 초·중학생 110엔
홈페이지: www.inuyama-castle.jp
세토에는 고양이가 살지요, 마네키네코 박물관
여행자를 안내하는 표지판 위에 도자기로 만든 고양이가 생긋 웃는다. 버스정류장에도, 주차장에도 온통 고양이 그림이 가득하다. 여기도 고양이, 저기도 고양이. 팔을 들어 까딱까딱 흔드는 고양이 인형, 마네키네코(招き猫)의 천국에 당도한 곳이다.
사실 세토시(瀬戸市)는 마네키네코보다는 도자기 산업이 발달한 곳으로 유명하다. 일본어로 도자기를 뜻하는 세토모노(瀬戸物)에 지역 이름이 들어 있는 것만 보아도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도기를 굽는 데 필요한 양질의 흙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10세기경부터 도자기 생산지로 이름을 알렸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에서 넘어간 도공이 한몫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00여 년 전부터 세토의 도예가들이 도자기 형태의 마네키네코를 만들었다. 여태껏 나무를 주재료로 만들었던 것과는 느낌이 매우 달랐기에, 전국의 많은 마네키네코 애호가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다. 시내에 있는 마네키네코 박물관은 세토에서 생산된 것을 비롯해 전국에서 만들어진 마네키네코를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다. 약 5,000여 개의 전시품이 있으며,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자기 마네키네코를 판매하기도 한다. 바로 옆에서는 직접 마네키네코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주소: 2, Yakushi-machi, Seto-shi, Aichi-ken
전화: +81 561 21 0345
오픈: 09:00~17:00(16:30까지 입장), 매주 화요일(공휴일 제외)과 연말연시 휴관
입장료: 어른 300엔, 대학생 이하 200엔, 중학생 이하 무료(마네키네코 만들기 체험 600엔 )
홈페이지: www.luckycat.ne.jp
천 마리 여우가 지키는, 도요카와 이나리 신사
“엄청난 수의 여우를 볼 수 있을 거예요.” 가이드가 이야기를 꺼냈다. 이 도심에서 여우라니 동물원이라도 있는 건가 싶었던 찰나, 고풍스러운 신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도요카와 이나리 신사와의 첫 만남이었다. 적어도 200년 이상은 됐을 법한 대문을 지나면 신만이 걸을 수 있는 길이라던 신도가 본전(本殿)까지 이어진다.
그 옆을 조심스레 밟아가며 본전으로 다가갔다. 돌로 정성스레 깎아 세웠을 도리이(鳥居) 옆에 빨간 턱받이를 한 여우 석상이 매서운 표정으로 오가는 이들을 노려보고 있는 듯했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말이다. 신도 끝에는 거대한 규모의 본전이 그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농업을 관장하는 여신 이나리 오미카미(稲荷大神)를 모시는 곳이다. 예부터 농업은 곧 생산 활동을 의미하기도 했기에, 나중에는 공업이나 상업, 나아가 금전적인 성공을 관장하는 신으로도 그 개념이 확장됐다.
동전을 던진 후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이나리 오미카미에게 금전적인 성공을 빌었다. 새끼를 꼬아 만든 팔찌에 소원을 적어 착용해 보기도. 신사 내부를 굽이굽이 잇는 참배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고즈넉한 숲길이었다. 하얀 깃발에 붉은색으로 쓴 글귀가 바람에 나부꼈다. 신도들의 염원이 하나하나 담긴 채로. 모양새가 각기 다른 여우상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 신사를 찾은 신도들이 직접 만들어 봉납한 것들이란다. 수많은 여우상은 신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신도들의 염원을 지켜 내고 있다. 신사의 가장 깊숙한 곳에 이르자 눈앞에는 약 1,000여 개의 여우상이 마치 만화를 보는 듯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주소: 1 Toyokawacho, Toyokawa-shi, Aichi-ken
전화: +81 533 85 2030
홈페이지: www.toyokawainari.jp
고독한 미식가의 그 섬, 히마카지마
택시나 버스는 없다. 자전거를 타고 섬 한 바퀴 도는 것이 전부다.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회중시계를 전달하기 위해 배까지 탔던 것처럼. 히마카지마는 나고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섬이다. 모로자키항에서 소형 관광선을 이용해 20분이면 도착하는 이곳은 그야말로 섬마을의 정취가 가득한 곳. 자전거를 타고 섬을 노닐거나 마을 깊숙한 곳까지 이어지는 골목길을 그저 탐닉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아이치 사람들의 깊은 속살까지 만나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까.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 봤다. 섬의 가장자리를 따라 해안도로가 빙 둘러 이어진다. 바닷가의 낡은 창고 앞에서 만난 사내는 친구들과 먹고 남은 것이라며 생선회 몇 점을 즉석에서 썰어 내줬다. 그 옆 소나무에 걸린 그네는 바다를 향해 날아오르기에 적당해 보이기도. 귀여운 문어 모양의 건물은 마을 파출소란다. 신나게 달리다가 동쪽을 가리키는 문어 조형물을 만난다면 섬의 반대편에 도착한 것이다. 마을 어귀에 숨어 있는 카페를 방문하거나, <고독한 미식가>에 등장한 식당을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 가장 중요한 점은 가능한 느리게 여행하는 것이다.
모로자키코 페리 터미널(師崎港フェリー乗り場)
주소: Myojinyama-8 Morozaki, Minamichita-cho, Chita-gun, Aichi-ken
전화: +81 569 63 2035
오픈: 06:00~19:00까지 매 시간 1~2회 출항
요금: 편도 대인 700엔, 소인 350엔/ 왕복 대인 1,340엔, 소인 670엔
홈페이지: www.meikaijo.co.jp
나고야 Plus+
나고야메시名古屋めし
아이치현과 나고야를 중심으로 발달한 지역 특유의 요리들을 일컫는다. 전통적으로 유명한 것들과 최근 떠오르고 있는 것들을 아우르며, 아이치현의 ‘먹방’ 여행을 주도한다.
미소니코미 우동
지역 특산품인 아카미소(붉은 된장)를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요리 중 하나가 바로 미소니코미 우동(味噌煮込みうどん, 된장조림 우동)이다. 뚝배기를 닮은 도자기 그릇에 아카미소와 갖가지 재료를 넣고 찌개처럼 끓여 낸 뒤, 우동 면을 넣어 완성한다. 쌀쌀한 저녁이라면 든든한 미소니코미 우동 한 그릇 어떨까. 따스한 온기가 온몸을 감싸고 돌 테니.
히쓰마부시
히쓰마부시(ひつまぶし)는 민물장어를 3일간 굶겨 기름기를 어느 정도 제거한 뒤 양념해 굽는 요리다. ‘히쓰’라 불리는 나무그릇에 덮밥처럼 담아 내주는데, 이를 네 가지 방법으로 먹는 것이 재미있다. 장어와 밥만 먹는 첫 번째 방법, 잘게 썬 김과 와사비, 파를 넣어 비벼먹는 두 번째 방법, 녹차에 말아 먹는 세 번째 방법, 마지막으로 여태껏 먹었던 방식 중 가장 맛있는 방법으로 먹는 것까지. 나고야에서 민물장어 덮밥의 진수를 맛보자.
하브스 본점
도쿄, 오사카 등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카페가 있다. 하브스(HARBS)다. 밀 크레이프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수제 케이크를 판매하는 곳인데, 바로 나고야에 본점이 있다. 앤티크한 분위기에 달달한 케이크, 그리고 커피 한 잔으로 여행의 피로함을 풀어 보자.
주소: 6-17, Nishiki 3-Chome, Naka-ku, Nagoya-shi, Aichi-ken
전화: +81 52 962 9810
오픈: 11:00~21:00
홈페이지: www.harbs.co.jp
글·사진 김정흠 에디터 강수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