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직접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서울에서 여수까지 차로 5시간.
이왕 고된 여정에 남해를 추가했다.
여수에서 낭만을 노래하고 남해에서는 봄바람을 실컷 들이켰다.
여수에 피는 꽃
그리운 사람 한 명쯤 마음속에 품고 산다는 건 축복이다.
열렬히 사랑했고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니까. 그러니 아픈 이름은 억지로 지우려 하지 말길. 언젠가 붉은 동백꽃으로 피어난다.
동백꽃은 여수의 시화다. 1월 말에 꽃망울을 틔워 3월에 만개한다. 당신이 이때 여수에 갔다는 건, 혹은 갈 것이라는 건 동백꽃을 만나기 위함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발걸음은 자연스레 오동도로 향하겠다. 오동도는 섬 모양이 오동잎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오동도에는 오동나무보다 동백나무가 더 많다. 따뜻한 남도의 기후가 200여 종의 상록활엽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는데, 특히 동백나무가 잘 자라 군락을 이뤘다.
섬이지만 가볍게 걸어서 닿을 수 있다. 또 0.12km² 크기의 아주 작은 섬으로 한 시간이면 충분히 꽃길을 걷는다. 오동도 꽃길에는 유난히 그리운 마음을 담은 시가 많다. 이유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오래전 어여쁜 부인을 둔 어부가 있었는데, 어부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간 사이 도적떼에 쫓기던 아내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창파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어부는 소리소리 슬피 울며 오동도 기슭에 부인을 정성껏 묻었다. 그런데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무덤가에는 동백꽃이 피어났다고. 그러니까 오동도에 피어난 동백꽃은 아내를 지키지 못한 지아비의 슬픔과 두 사람의 사랑 그리고 서로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동백꽃의 꽃말을 되뇌며 마저 걸었다.
낭만의 또 다른 이름
여수 그리고 밤바다. 두 단어의 조합은 낭만이라는 단어와 유의어로 통한다. 가수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는 전하지 못한 편지처럼 지금도 청춘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이순신광장부터 하멜 등대까지 이어지는 종포해양공원은 바다의 잔잔한 일렁임 위로 돌산대교를 내내 품고 있다. 천사 벽화마을도 여기서 멀지 않다. 높은 지대에 있는 벽화마을에는 간간히 루프톱을 갖춘 카페도 눈에 띈다. 이곳에서 여수 바다를 내려다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하지만 종포해양공원은 해가 질 무렵에 찾는 것이 좋겠다. 따뜻한 해의 여운이 사라지고 거리에 은은한 불빛 밝혀질 즈음 말이다. 여수시는 지난 2016년 종포해양공원 일대 약 200m를 ‘낭만 포장마차 거리’로 조성했다. 열댓 개의 빨간 옷을 입은 포장마차가 문을 열면 밤바다의 축제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삼합부터 선어회, 해물찜은 물론 이색적인 외국 요리까지 모였는데 가격도 부담 없이 착하다. 근처에서 버스킹 하는 청춘들의 음악도 훌륭한 안주가 된다. 이쯤 되면 알게 된다. 대체 이 거리를 왜 당신과 걷고 싶었는지.
남해로 독일 여행
남해에서는 그림 같은 집들이 흔한 풍경이 된다. 산 비탈길을 따라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다랭이마을과 붉은 지붕이 이국적인 독일마을은 심지어 바다마저 코앞에 두고 경관을 뽐낸다. 그야말로 바다가 보이는 그림 같은 집이다.
사실 젊은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다랭이마을보다 독일마을이 이름을 알렸다. 새하얀 건물에 주황색 지붕을 덮은 집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면 외국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한국에 정착한 독일인들이 모여 사는 곳인가 싶겠지만 틀렸다. 혹시 영화 <국제시장>을 봤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60~70년대 경제발전을 위해 우리나라 간호사와 광부들은 독일로 건너가 고된 노동을 하며 외화 벌이에 이바지했는데, 독일마을은 당시 조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교포들이 고국에서 노년을 보내고 정착할 수 있는 터전을 조성한 곳이다. 약 40채의 집들은 모두 독일에서 수입한 자재를 이용해 독일의 건축양식을 유지한 채 지어졌다. 드라마 세트장처럼 멋진 마을이지만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니 여행자의 예의는 잊지 말길.
마을 곳곳에는 독일에서 직수입한 맥주(편의점이나 마트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많다)와 소세지를 판매하는 카페가 재미를 더한다. 독일식 돈가스 슈니첼, 족발과 비슷한 학센 등 독일 요리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참, 카페는 꼭 테라스가 딸린 곳을 선택하길. 마을이 언덕에 위치한 덕에 봄바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제 기도가 들리시나요
여수와 남해를 묶어서 가면 좋은 이유. 이왕 남쪽까지 내려온 김에 함께 둘러보니 일거양득이요, 또 하나는 바로 우리나라 4대 관음성지 중 무려 두 곳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관음성지는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 그리고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과 남해 보리암이 속한다.
향일암은 ‘해를 향한 암자’라는 의미로 일출 명소로 꼽힌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가파른 경사의 언덕길에는 돌산의 특산물인 갓김치와 말린 조갯살, 각종 젓갈 등을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있다. 항아리에 큼직하게 썰어낸 배와 사과를 넣은 개도 막걸리는 한 잔에 단돈 천원. 안주로 갓김치 몇 조각을 내어주는데 이들의 궁합이 예사롭지가 않다. 그냥 지나치지 말라. 향일암까지 오를 때 필요한 힘의 원천이 된다.
전설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바위가 있는 이곳이 명당임을 알아챈 후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또 향일암까지 오르는 길에는 좁은 석문石門이 7개가 있는데 이 문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을 가져야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설이다. 사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곳곳에 신기하게도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바위가 종종 눈에 띈다. 그래서일까, 사찰 곳곳에는 돌로 깎아 만든 거북이가 무척 많다. 기도객들은 거북이 등 위에 동전이나 돌을 올려 작은 기도를 하기도 한다. 극락전 앞으로 원효 스님 좌선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불자들의 기도가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남해의 보리암도 원효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차량 진입이 불가한 흙길을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가파른 절벽 위에 아담하고 예쁘게 지어진 사찰에 닿는다. 바다를 지긋이 바라보며 서 있는 해수관음상이 보리암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해수관음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를 올리는 중생들이 상당하다. 불자는 아니지만 스님의 목소리를 따라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을 읊으며 행복을 기원했다.
밥도둑이 여기 있었네
전라도 어느 식당에서도 빠지지 않는 게 갓김치 아니던가. 그중에서도 갓김치는 돌산의 특산물이다. 톡 쏘는 청량감이 퐁퐁 샘솟는 김치는 집 나간 입맛을 되살리는 데 명약이다. 돌산 향일암으로 향하는 언덕에 갓김치를 판매하는 식당과 반찬가게가 즐비하다. 갓김치와 우거지국을 기본으로 내는 백반 정식에 공기밥 두 그릇은 문제도 아니다.
돌산 처갓집 갓김치
주소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11-3
문의 061 644 7949
메뉴 우거지 백반 8,000원 게장 백반 1만2,000원
남해의 별미 ‘멸치쌈밥’
지금껏 봐온 멸치는 잊으시길. 남해에서 잡는 멸치는 작은 생선 급이다. 멸치는 잡히면 금방 죽기 때문에 멸치회무침 같은 메뉴는 남해에서만 싱싱하게 맛볼 수 있는 별미 되시겠다. 새콤하게 무친 회무침에 막걸리 한잔은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 김치와 무를 넣고 양념한 멸치조림은 상추와 깻잎에 멸치 한 마리를 척 올려 장을 살짝 더해 먹으면 이 또한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단, 취향에 따라 비리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나로횟집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1136
문의 055 862 2166
메뉴 멸치쌈밥 2인 2만원
여수 해상케이블카
여수 해상케이블카는 2014년 12월 자산공원과 돌산공원 사이 1.5km를 건너는 구간에 설치됐다. 거북선대교와 돌산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녁에 운이 좋다면 야경과 함께 이사부 크루즈에서 터뜨리는 불꽃놀이도 감상할 수 있다. 긴 줄을 서야 할 수도 있으니 붐비지 않는 타이밍을 노릴 것.
주소 전남 여수시 돌산읍 돌산로 3600-1
문의 061-664-7301
요금 성인 왕복 기준 1만3,000원
취재협조 = 여행스케치 [낭만가득 여수 밤바다 해상케이블카+보물섬 남해 일주]
글·사진 = 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