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직접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계절의 초입이면 이곳에서는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계절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초속 5cm로 떨어지는 벚꽃도, 귀를 간질이는 파도소리도 모두 간절했으니, 슬며시 찾아온 봄을 맞이하러 부산으로 향했다.
105년을 지켜온 부산의 자랑
올해로 105주년을 맞은 송도해수욕장은 1913년 대한민국 최초의 공설 해수욕장으로 개장해 신혼 여행지로 오래도록 명성을 떨쳤다. 부산의 대명사인 해운대와 광안리에 비해 800m로 비교적 작은 규모지만 돌섬인 거북섬과 고래상 등 볼거리가 풍부해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해수욕장 끝자락에서 거북섬 사이를 이어주는 송도구름산책로는 해상에 데크를 만들어 바다 위에 서 있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까지, 발밑에 일렁이는 바다를 보며 한껏 신이 나 있었다. 특히 구름다리를 건너는 도중에 놓인 ‘행운의 자리’는 이곳의 하이라이트로 장수와 건강, 행운을 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구름다리를 지나 다다른 거북섬에는 자손을 번창하게 해준다는 ‘다산이’라는 이름의 거북동상이 놓여있다. 이제 막 신혼부부가 된 듯 한 모습의 커플이 부끄러움을 애써 감추며 거북이 동상의 머리를 번갈아가며 매만졌다.
거북섬 반대편 해수욕장에서 다다라 암남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올랐다. 왼편으로 바다를 끼고 오른편으로 난 절벽에 바싹 붙어서 오르는 산책로는 해안절경을 만나기에 제격이다. 암남공원 해안산책로는 송도해안볼레길이라고도 불리며 산림욕을 즐기는 동시에 바다와 맞닿은 기암괴석을 조망할 수 있어 특히 인기인 산책코스다. 나무데크뿐만 아니라 코스 중간중간 흔들다리와 스카이워크가 마련돼 있어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바다에서 가까이 반사되는 빛을 받아 일렁이는 숲의 풍경도 놓치기 아까웠다. 산과 바다, 해가 어우러진 산책로는 좌우를 거듭 둘러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바다와 바다 사이 1.62km
굳이 걷지 않아도 케이블카를 이용해 암남공원을 향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다 위를 아찔하게 오가던 케이블카는 송도해수욕장의 동편 끝과 서편 끝자락을 연결했다. 본래 1964년 첫 선을 보였던 송도해상케이블카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1988년 운행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후 송도해수욕장이 관광지로 다시 부상하자 지난해 정비를 통해 총 1.62km 길이의 송도해상케이블카는 운행을 재개했다. 암남공원에 다다르기 위해 비행과 트레킹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설렘과 두려움을 반씩 안고 케이블카에 올랐다. 최대 86m 높이까지 올라가는 해상케이블카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기에 최적의 명소였다. 바다가 반짝거릴 때의 감탄과 덜컹거릴 때의 괴성이 뒤섞인 유쾌한 비행은 생각보다 짧았다.
영화 <변호인> 성지순례길
영화의 도시인 부산을 즐기는 방법은 분명하다. 바로 영화 속에 등장했던 촬영지를 방문하는 ‘성지순례’다. 이미 영화팬들 사이에서 <변호인>과 <범죄와의 전쟁>의 촬영지로 이름난 흰여울문화마을은 영도의 봉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몇 개의 계단을 거쳐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좁다란 골목 사이를 갈지(之)자로 걸음을 옮겨가며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자 뉘엿거리던 해가 불그스름한 색채의 이불로 바다를 덮었다. 제 몸으로 석양을 반사시키는 흰여울마을 한가운데에서 넘실거리는 흰 파도와 햇살에 닿아 붉게 빛나는 바다를 목전에 두고 걷고 또 걸었다.
영화 <변호인>에서 최순애(김영애 역)와 진우(임시완 역)의 집으로 나왔던 촬영지는 이제 마을 안내소가 돼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도 ‘Welcome to 흰여울길’이라고 쓰인 벽 아래에서 누렁이가 여행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흰여울길 곳곳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벽화와 포토 존이 마련돼 있어 어색함과 풋풋함을 간직한 젊은 커플들이 골목과 바다를 배경으로 저마다의 추억을 기록하고 있다.
만개한 분홍색 꽃 뒤로 마을 주민 아지매들이 운영한다는 ‘흰여울 점빵’이 보였다. 점집도 빵집도 아닌 그저 작은 가게라는 귀여운 자기변호가 가게 앞 안내문에 손 글씨로 적혀 있다. 바다에 매료돼 쉼 없이 걷다 보니 흰여울 점빵에서 파는 달달커피가 몹시 당겼다. ‘따신 것’은 1,000원, ‘차븐 것’은 1,500원이었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달달커피로 목을 축이며 걸음을 이어가니 ‘배들의 주차장 묘박지’라는 곳에 다다랐다. 흰여울마을 앞바다에는 커다란 선박들이 바다 위에 섬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부산항에 찾아오는 대형 선박들이 머무르는 곳이란다. 한해의 끝인 12월 31일 자정에는 이 배들이 일제히 뱃고동을 울려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교향악을 연주한다고 한다.
마을에서 나오니 마을이 보이네
흰여울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300m 떨어진 곳이 절영해안로의 시작점이다. 80년대 포크가수 시인과 촌장의 노래처럼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듯, 마을 안에서 미처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색상의 벽과 지붕이 한눈에 들어왔다.
절영해안로의 ‘절영’은 영도의 본래 이름인 ‘절영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끊을 절(絶)과 그림자 영(影)이 합쳐져 그림자마저 끊길 정도로 섬에 빨리 달리던 말이 많다는 뜻이다. 이곳의 산책로는 바다와 맞닿아 있다. 파도가 바위에 부닥치는 소리를 음악 삼아 거닐다 보면 눈앞에 아른거리던 영도대교가 금세 가까워진다. 미세먼지 한 점 없는 맑은 날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아쉬움이 남을세라 바다 위로 멀리까지 펼쳐진 낙조의 풍경을 눈에 아낌없이 담고 또 담았다.
부산내음 물씬 풍기는 자갈치시장
대부분의 구도심이 도시재생을 통해 자구책을 모색해 나가는 반면, 자갈치시장이 자리한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는 아직도 굳건하게 도심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오히려 중심 도심인 서면이나 신도심인 해운대보다 부산지역의 색채를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어 관광객이 부산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풍겨오는 바다내음과 그 신선함을 자랑이라도 하듯 진열된 해산물들을 보고 있으면 새삼 부산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갖가지 횟감을 늘어놓은 자갈치시장에서의 산책은 친근한 사투리로 다가오는 호객마저 반가워진다. 시장 골목을 오가며 바다내음을 한 움큼 맡은 뒤에야 식사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큰 도로를 건너 자갈치시장 맞은편에는 BIFF거리가 조성돼 있다. 부산 청년들과 이방인들이 한데 뒤섞여 분주하게 오가던 거리는 생동감이 넘쳤다. 널찍한 도로에는 고소한 향기를 원 없이 뽐내는 씨앗호떡부터 아기자기한 기념품 노점상까지 눈과 코를 붙잡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넘쳤다. 바다의 향과 젊음의 생기가 느껴지는 이곳이 바로 부산이구나, 남포동 한복판에서 어렴풋이 다가온 단상이었다.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부산의 맛
자갈치시장에서 주어지는 두 번의 자유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다. 부산에서 먹고 가지 않으면 혼쭐이 난다는 부산의 대표 음식 3선을 골랐다.
1. 부산하면 밀면, 밀면하면 부산
부산하면 밀면, 밀면하면 부산이더랬다. 그 탄생은 냉면의 아류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당당히 부산의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은 밀면은 부산 안에서도 그 종류가 다양하다. 자갈치시장 뒤편에 자리한 가야밀면은 현재의 부산밀면을 정형화시킨 원조격의 밀면집으로, 개금밀면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밀면전문점으로 꼽힌다. 70년대 전통을 그대로 고수해 백설탕을 자작하게 뿌리는 가야밀면은 ‘단짠(달고 짠맛)’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돼지와 소뼈에 12가지 한약재와 함께 넣어 하루 이상 끓여내는 육수는 얼큰한 국물 맛을 보장한다. 여기에 마늘과 양파 향이 어우러져 자극적이면서 얼큰한 양념과 옥수수 전분이 가미된 찰진 면의 식감은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게 만든다.
2. 부산하면 돼지국밥 아잉교
이미 전국권 음식이 된 돼지국밥이지만, 그래도 원조는 역시 부산이다. 허영만 화객이 <식객>을 통해 ‘소 사골로 끓인 설렁탕이 잘 닦여진 길을 가는 모범생 같다면 돼지국밥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반항아 같은 맛’이라고 비유할 만큼 돼지국밥은 진득한 향과 맛을 자랑하는 음식이다. 사골의 풍미가 가게 밖 골목까지 은은하게 퍼질 정도로 진한 부산의 돼지국밥은 그 모양과 맛도 부산을 닮았다. 오랜 시간 삶았다는 걸 시위라도 하듯 돼지 내음이 가득했던 돼지국밥은 그 맛도, 양도 모두 넉넉했다.
3. 식사로도, 반주로도 좋을 물회
부산에 왔다면 필히 회를 맛보아야 했다. 하지만 회를 곁들여 잔을 주고받을 일행이 없으니 대안이 필요했다. 마침 더위가 찾아와 새콤달콤한 물회가 절로 떠올랐으니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붐비는 사람들을 뚫고 주문한 아까무스(눈뽈대) 물회는 기존에 먹었던 여타 물회와는 달리 국물이 자작했다. 아까무스는 붉은끼가 돌아 ‘적어’라고 불리기도 하는 생선이다. 자잘하게 썰린 아삭한 아까무스 회에 양념장과 설탕을 아낌없이 넣어 완성된 물회는 한 끼 식사로도, 안주로도 훌륭했다.
취재협조 투어2000 [빛나는! 부산을 좋아해 부산 1박2일]
글·사진 전용언 기자 eon@trave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