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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Jul 19. 2018

[Interview] 바나나 팔아, 세상 끝으로

자전거로 미 대륙 20,000Km를 종단한 김훈호 씨

비좁은 안장에 엉덩이를 걸치고 악착같이 두 페달을 밟는다.
양발이 저릿저릿 아려 오더니 어느덧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시작에 열정 뿌리기


“열정으로 여행이 가능한가요?” 질문을 던졌다. 
“네, 그럼요.” 
확신에 가득 찬 훈호씨의 대답에 머쓱해져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 봤다.

2016년 5월27일, 훈호씨는 인천공항에서 알래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북쪽 끝에서 시작해 남쪽 끝, 아르헨티나까지 오직 자전거로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그는 339일 동안 15개국 2만 킬로미터를 달려 2017년 4월26일 세상의 끝,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 도착했다. 이 모든 것을 열정으로 이뤄 냈다고 하기에는 너무 벅찬 현실이지 않을까. 항공권 가격은 물론, 자전거는 어떻고. 한두 푼이 아닐 텐데…. 훈호씨가 말하는 ‘열정’이란 박 터진 흥부라도 되는 모양이다. 

그는 대학교 문턱을 24살에야 넘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시작이었지만 확실한 꿈이 있었다. 바로 ‘청소년 지도자.’ 그런 그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갑작스레 장기여행을 계획했다. ‘심연’에 빠졌었단다. 바쁘게만 살아왔던 그의 머릿속에는 항상 “왜?”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점점 커진 ‘심연’은 곧 그에게 ‘시작’을 가져다줬다. 별이 태어나려면 한바탕 혼란이 있어야 하듯 말이다. 훈호씨는 여행을 통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헌데, 당장 떠나려니 텅 빈 주머니가 문제였다. 그는 4년 동안 다녔던 학교 정문 앞에서 여행경비를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그에게 필요했던 비용은 무려 2,000만원. 그는 바나나에 전부를 걸었다. 노랗고, 긴 바나나 말이다. 그렇게 그는 열정의 바나남 ‘바나나를 파는 남자’이  되었다.  

© TheDigitalArtist, 출처 Pixabay


바나나를 든 남자


“아니, 도대체 왜 하필 바나나에요?(웃음)” 
누구나 다 같은 생각일 것이다. 
많고 많은 품목 중에 도대체 왜? 
훈호씨는 진한 콧수염을 씰룩거리며 멋쩍게 웃었다. 

“제가 진짜로 바나나를 좋아해요. 여행하면서도 엄청나게 먹었어요. 
그땐 정말 순수하게 돈이 벌고 싶어서 바나나를 팔았죠. 
김밥은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싸는 방법도 모르고.”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달릴 수 있는 북칠레 오야궤


훈호씨는 바나나를 팔기 위해 매일 아침 동아리 방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공수해 왔다. 처음 며칠 동안 오르락거리던 엘리베이터 한 구석에는 그의 한숨으로 항상 김이 서렸지만 날이 지날수록 흔적이 옅어져 갔다.

 “당연히 처음에는 창피하죠. 저도 사람이니까.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 주더라고요.” 실제로 그가 바나나를 팔아 통장에 남긴 돈은 70만원 남짓, 필요했던 목표치에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그때가 설 연휴였어요. 방 안에 조용히 앉아 생각해 보니, 바나나를 건넸던 기억보다 응원을 받았던 기억이 훨씬 많은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제 열정이 남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래서 곧장 제안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죠.” 

그는 부족한 여행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총 50개의 회사에 ‘저의 간절한 꿈에 함께해 주세요’라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제안서를 보냈다. 43개의 실패, 7개의 성공, 턱없이 부족했던 여행경비는 협찬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항공권부터 각종 장비까지, 모든 것이 차차 갖춰졌다. 바나나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제가 정의하는 열정은 삶을 변화시키고픈 열망이에요. 그 열망의 씨앗이 바로 바나나였던 거죠. 아마 지금은 돈을 준다 해도 다시 못할 것 같아요(웃음).” 실제로 바나나를 팔아 모든 여행경비를 마련한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 훈호씨는 바나나를 팔아 세상 끝으로 향했다. 

페루 어느 길 위에서 즐긴 따뜻한 그날 밤이 그립다


추억은 짠내를 타고


훈호씨가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때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으면 느껴지는 ‘여유’에 푹 빠져 버렸다. 대학생활 마지막 방학에는 친구들과 함께 50일 동안 동유럽 10개국을 자전거로 여행했다. 무려 3,500km나 되는 거리를 말이다. 비교적 치안이 안전한 국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나름 수월히 여행을 마쳤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불안정한 치안의 중남미 국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엘살바도르와 같은 국가들에서는 화재보다 살인범죄가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중남미 국가를 자전거로 통과할 때는 대부분 소방서에서 지냈어요. 



가장 안전한 곳이거든요. 정말 놀랐던 점은 소방관들이 하나같이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는 점이었어요. 마당을 내주기도, 심지어 본인들의 자리를 내주기도 했죠. 역시 여행의 매력은 사람들이라 생각했어요.” 소소하고, 고마운 인연들 사이에서 소울메이트 ‘레이’를 멕시코에서 만났다. “레이와는 꽤 오래 같이 여행을 했어요. 신기하게도, 그 힘든 상황에서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어요. 이 친구 덕분에 자전거 여행의 매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죠.” 

그가 느낀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불확실성’이다. 코스도, 숙소 그리고 사람도. 뭐든 본인의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하루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 가는 과정이 매력이란다. 해프닝이 자전거 여행의 전부인 셈이다. 

그렇다고 결과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그는 세상의 끝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 도착해 어떤 행동을 했을까, 또 어떤 음식을 먹었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초장부터 궁금해 견딜 수 없었기에. “우수아이아에 도착하니 뭐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끝났다는 사실에 눈물만 펑펑 흘렸죠.” 


그는 우수아이아로 향하기 며칠 전부터 킹크랩을 먹겠다고 다짐했다. 바닷물이 차가워 킹크랩 살이 단단하고 맛있기로 소문난 곳이었기 때문이다. “식당을 찾아다니니 대략 6~7만원이면 먹을 수 있었어요. 근데, 결국 못 먹었어요. 사실 안 먹었죠. 아끼고, 덜어 내는 자전거 여행을 오래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절약습관이 들어 버린 거죠. 어찌나 그 돈이 아깝던지. 가까운 마트에 들러 목살을 사다 구워 먹었어요. 그게 제 여행의 결말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련한데, 그 나름대로 여운을 가질 수 있어 소중한 추억이죠.” 훈호씨의 이야기에서 우수아이아 바다향기가 풍겼다. 진한 ‘짠내’ 말이다.  


캐나다의 쭉 뻗은 길 위에서 추억 한 장


여행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삶의 방향을 찾고자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온 훈호씨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달리고 있을까.  7월, 그는 4명의 청소년과 몽골일주를 떠난다. 자전거로 1,400km를 달린 후 말에 올라타고 700km를 이동할 계획이다. 그가 여행 중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선택한 방법이다. 

“자전거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가능해요. 고장이 나면 고칠 수 있고, 힘들면 쉬어 갈 수 있죠. 방향도 내가 정할 수 있어요. 반대로 말은 그렇지 않아요. 살아 숨 쉬는 생명체니까요. 조종이 아닌 교감을 해야만 하죠. 말에게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기대할 순 없어요.” 

그는 동행하는 청소년들에게 ‘익숙함을 버려야만 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단다. “그 친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기획한 게 아니에요. 단지,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여행으로 무엇이든 스스로 깨달고, 느끼길 바랄 뿐이죠. 제 꿈은 청소년들에게 여행으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뿐이니까요. 바나나를 사 주며 저를 응원했던 그들처럼.” 



훈호씨의 여행에 동행하는 이들은 모두 ‘비행’이라는 딱지가 붙은 청소년들이다. “저는 이 친구들이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 ‘아픈’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요.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거든요. 에너지는 넘쳐 나는데 그걸 어디에 쏟아야 할지 모르는 거죠. 이 친구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 바로 세상으로의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분명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에너지를 쏟게 될 대상을요. 제가 그렇게 변화를 경험했으니까요.”

훈호씨 역시 동행하는 청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방황하고 겉돌았다. 그러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뻥 뚫린 감정의 구멍을 메울 수 있는 위로를. 그리고 누구보다 바라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와 비슷한 청소년들이 ‘바나나’를 찾을 수 있기를. 그는 가까운 미래,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포천에 ‘모험학교’를 설립하고 싶단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한 이유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곧 떠날 몽골여행에서 훈호씨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리고 동행하는 이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그들이 타고 있을 말은 진한 갈색 털을 휘날렸으면 한다. 메마른 씨앗, 촉촉이 적셔 주는 대지의 색을 품고 있었으면 한다.  


우유니 사막에서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들다


훈호씨가 추천하는 아메리카 라이딩 코스


시애틀-샌디에이고 코스 
미국 서부 해안가를 따라 약 3,000km에 달하는 종단 코스다. 자전거로 미국여행을 계획하는 여행자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코스. 약 한 달 정도가 소요된다.  

볼리비아-칠레 코스  
정확히 말하면 우유니에서 북 칠레 구역을 넘는 구간을 추천한다. 전체적으로 색깔이 단조로운 황무지의 연속이지만 자연의 원초적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조금 힘에 부치는 구간이니, 라이딩에 익숙한 여행자들에게 추천한다.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코스  
바하 캘리포니아는 미국 캘리포니아 남쪽 국경을 넘어 있는 멕시코 지역이다. 약 1,500km에 달하는 라이딩 코스. 사막과 바다가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을 만나 볼 수 있다. 단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더위와 불안정한 치안에 유의해야 한다. 
  

열정여행가 김훈호는 2016년 5월 말에 한국을 떠나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전거로 2만 킬로미터를 달려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했다. 여행을 마친 그는 에세이 <젊음, 무엇이 있다>를 발간했다. 현재 그는 전공인 ‘청소년 지도’를 바탕으로 강연과 여행 기획을 통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있다. 
페이스북: youknowhunho   
인스타그램 why_change_u 

  
글 강화송 기자  사진제공 김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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