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야마, 모모타로와 함께 소도시 여행
단 한 번 여행으로 끝나는 여행지가 있고, 다녀온 후에도 눈길이 자꾸 가는 여행지가 있다. 오사카는 후자다. 도시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주변 여행지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여행자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맛과 멋, 마을과 도시, 에도시대부터 21세기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소도시들로 가 보자.
오카야마 (岡山·Okayama)
오사카에서 떠나는 당일여행, 첫 번째 추천 여행지는 오카야마(岡山·Okayama)다. 오사카에서 신칸센으로 45분이면 닿는 오카야마. 우리에게 익숙하진 않지만, 간사이와 규슈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인데다 일본 3대 정원인 고라쿠엔 등 볼만한 여행지가 모여 있다.
일본 다른 지역에 비해 날씨가 좋아 ‘햇살의 땅’이라고도 불린다. 다른 애칭은 ‘과일왕국’. 풍부한 일조량이 맛있는 과일을 키워 낸다. 오카야마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모모복숭아’인 이유다. 오카야마에 가면 복숭아 철이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모모’를 볼 수 있다. 복숭아 조형물부터 복숭아 과자, 복숭아 인형 등 앙증맞은 분홍빛이 ‘여기가 오카야마’라고 알려준다.
‘모모의 고장’ 오카야마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옛날 옛적 할머니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강에서 복숭아가 떠내려 왔다. 복숭아를 먹으려고 쪼개는 순간, 안에서 건강한 남자아이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아이가 모모에서 태어났다고 ‘모모타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모타로는 무럭무럭 자라,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꿩, 원숭이, 개와 함께 귀신을 물리치러 긴 여행을 떠났다. 이런 이야기의 마지막은 언제나 해피엔딩. 할머니가 만들어 준 수수경단 덕분에 모모타로는 결국 귀신을 퇴치하고 집에 돌아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일본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모모타로’다.
일본 사람들은 단순하지만 따뜻한 모모타로 이야기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JR 오카야마역에 가면 늠름하게 서 있는 모모타로 동상을 볼 수 있다. 매년 여름에는 모모타로 축제도 성대하게 열린다. 그래서 오카야마의 첫 번째 여행지는 모모타로 이야기를 품은 기비쓰신사다. 이곳은 모모타로의 모델로 알려진 기비쓰시코노미코토라는 인물을 기리는 사당이다.
기비쓰신사는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독특한 건축양식으로도 유명하다. 지붕 두 개를 합쳐 하나의 지붕으로 만든 건축 구조와 약 400m 길이의 목조 회랑을 가지고 있다. 또 기비쓰신사에는 솥에 쌀을 넣어 가열했을 때 울리는 소리로 길흉을 점치는 ‘나루카마’가 있다. 11월에는 3살, 5살, 7살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축하하는 시치코산(七五三) 행사를 위해 가족들이 많이 찾는다. 신사 안에는 모모타로가 그려진 애마소원팻말도 차곡차곡 겹쳐 있다. 소원 하나 빌어 보는 것도 좋다. 기비쓰신사 부근에 연못이 아름다운 고즈넉한 신사도 있으니 함께 둘러보자.
두 번째 코스는 가나자와의 겐로쿠엔, 미토의 가이라쿠엔과 함께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고라쿠엔(後樂園)이다.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근심을 먼저하고 즐거움은 나중에 누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원에 들어서면 확 펼쳐진 풍광에 마음이 시원해진다. 넓은 정원 안에 인공으로 만든 섬과 산이 있고 구석구석에는 물길이 흐른다. 정원 자체가 하나의 세계라고나 할까. 오카야마 영주들의 여유가 느껴진다. 고라쿠엔을 산책한 후에는 철교를 건너 오카야마성으로 향한다. 한가롭게 떠 있는 배가 해자에 두둥실 떠 있다. 오카야마의 특징을 살려, 오리가 아닌 복숭아와 두루미 모양으로 만들어 앙증맞다.
오카야마성은 첫인상이 남다르다. 까만색 외벽 때문이다. ‘까마귀 성’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까만색에 군데군데 금색이 칠해져 있다. 에도시대 성으로, 1945년 소실돼 1965년 재건했다고 하는데, 강렬한 색감 때문인지 현대적인 느낌이다.
오카야마성에서 여행자들이 잊지 않고 들르는 곳이 1층에 있는 오시로차야다.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일명 ‘코난 파르페’로 불리는 오시로 파르페를 맛볼 수 있다. 오카야마의 명물 과일이 아낌없이 들어 있다. 천수각 안에서는 일본 도자기인 비젠 야키 체험을 비롯해 여러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다. 영주나 공주 의상을 입어 보는 체험은 무료. 여유 있게 돌아보고 인스타그램용 사진도 남겨 보자.
흰 벽이 반짝이는 전통마을, 구라시키 미관지구
색다르게 오카야마현을 즐기고 싶다면, 구라시키(倉敷·Kurashiki) 미관지구를 추천한다. 에도시대부터 쇼와 초기까지 일본 전통가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지역으로, 하얀 벽과 앙증맞은 운하가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기분을 안겨 준다.
미관지구를 가로지르는 운하에는 고풍스러운 건물의 반영이 담겨 있다. 물이 출렁이면 마음도 덜컹인다. 열 명 남짓 탈 수 있는 나룻배에 몸을 싣고 흔들흔들 뱃놀이를 즐긴다. 뭉쳐 있던 가슴에 틈이 생기고, 옛 사람의 풍류가 스며든다. 운하에 길게 잎을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버드나무 아래에는 아마추어 화가들이 미관지구의 모습을 부지런히 스케치북에 옮기고 있다.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인력거를 타는 것이다. 환한 미소와 넘치는 힘으로 무장한 인력거꾼이 미관지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친절하게 설명도 해준다. 일본어를 모른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스마트폰 번역기로 친절하게 알려준다.
구라시키 미관지구 인력거 투어
요금: 30분 1명 7,000엔, 2명 9,000엔
홈페이지: www.ebisuy.com
인력거를 타고 미관지구 지형을 파악한 후에는 천천히 산책하듯 돌아보는 게 좋다. 눈길을 끄는 곳 중 하나는 담쟁이넝쿨로 싸인 아이비스퀘어다. 옛날 방직공작으로, 지금은 전시장과 카페, 도자기 체험장이 운영되고 있다. 미관지구를 걷다 사람들이 줄서 있는 가게를 발견한다면, ‘유린안’일 확률이 높다. 100년 넘은 전통가옥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로 활용하고 있는 집으로, 푸딩이 유명하다.
이름도 시아와세 푸딩(幸せ プリン)으로, 행복푸딩이다. 스마일이 그려진 푸딩만큼이나 메뉴판도 귀엽다. 그래서 유린안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가와이’ 외침이 돌림노래처럼 계속 떠오른다. 엉덩이 모양의 모모 쥬스와 밥에 생달걀을 넣고 간장을 뿌려 먹는 타마고 카케고항도 인기 메뉴다. 자그마한 푸딩과 귀여운 메뉴판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 표정을 보니, 역시 작고 확실한 행복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푸딩을 먹고 나서 한가롭게 거닐다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올 법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구라시키 미관지구에서 빠트리면 안 되는 오하라미술관이다. 일본 최초의 서양식 근대 미술관으로 모네와 고갱, 세잔, 피카소 등 세계적인 거장의 원작을 전시하고 있다. 구라시키는 도쿄나 오사카에 비하면 작은 도시다. 세계적인 작품이 일본 소도시에 걸려 있어 이유가 궁금했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변하기 위해서는 오하라 가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오하라 가문은 구라시키 지역 대지주로, 방적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오하라 가문은 고아원과 학교를 세우는 등 사회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불우한 환경의 학생을 지원하는 장학회도 설립했는데, 장학금을 받은 학생 중 하나가 오하라미술관 설립에 영향을 미친 고지마 토라지로다.
당시 오하라 가문을 이끈 인물이 오하라 마고사부로. 그는 고지마 토라지로의 평생 친구이자 지원자였다. 토라지로는 마고사부로의 지원으로 그림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또한 그의 후원으로 거장들의 작품을 하나씩 사들였다. 모네의 작품 ‘수련’도 토라지로가 직접 찾아가 구입한 작품. 1930년 문을 연 오하라 미술관은 토라지로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마고사부로의 헌사다. 거장들의 작품을 만난 감동만큼이나 마고사부로와 토라지로의 이야기가 긴 여운을 안겨 준다.
로가 살포시 앉은 듯, 신비로운 히메지성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효고현에 있는 히메지(姫路·Himeji)로 가 보자.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이름난 히메지성이 있기 때문이다. 히메지성은 다른 성과 비교불가다. 17세기 초 일본 성곽 건축을 대표하는 목조건축물로, 일본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7세기 이전 일본 건축물은 화재로 소실된 것이 많지만.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히메지성에는 보물이 많다. 국보만 해도 8가지다. 망루 27동을 비롯한 문과 벽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입구에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과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자로 인산인해다. 여행자들도 반바지 차림의 독일 여행자부터 히잡을 쓴 말레이시아 여행자까지 각양각색이다.
효고현에 있는 히메지성은 ‘까마귀 성’으로 알려진 오카야마성과 대조적으로 하얗다. 춤을 추며 서 있는 백로처럼 보여 ‘백로성’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하얗진 않았다. 베이지색에 가까웠다. 5년에 걸친 복구 작업 끝에, 2015년 새하얀 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히메지성은 영주 다이묘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세운 요새.
높이 솟아 있는 모습과 하얀 외관 때문에 더 우아하게 다가온다. 히메지성은 외부에 보이는 모든 표면을 회반죽으로 마감하는 ‘시로싯쿠이소누리고메즈쿠리’ 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석회와 건초, 해조 등 여러 재료를 사용해 고대부터 사용한 전통 공법을 계승한 것으로, 얇게 여러 번 덧칠해 두께가 3cm나 된다. 덕분에 불에 잘 타지 않고, 온갖 자연재해에서도 성을 보호할 수 있었다.
웅장함도 느껴진다. 멀리서 보아도 우뚝 솟은 대천수는 해발 91.9m 높이에 서 있다. 대천수 높이는 31.3m지만, 대천수를 세운 히메야마산 높이가 45.6m에 달하기 때문이다. 성 중심인 대천수 건물은 밖에서 보면 5층이지만, 실제로는 지상 6층, 지하 1층의 7층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건물 서쪽 기둥은 650년과 765년 노송나무를 붙였고 동쪽 기둥은 타이완산 노송나무라는 이야기, 센히메의 굴곡진 사연 등 긴 역사만큼이나 발길 닫는 곳마다 이야기가 넘친다.
천수각을 돌아보고 나오면, 혼마루가 나온다. 천수각의 아름다움을 한 품에 안을 수 있는 장소다. 히메지성은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한 <라스트 사무라이>를 비롯해 여러 영화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히메지성을 여행할 때 주의할 점 한 가지. 하늘에서 내려다본 히메지를 촬영하고 싶더라도 드론은 두고 갈 것. 2016년 드론이 천수각에 충돌, 비상이 걸렸다. 항공법 위반에 문화재를 손상했다가는 문화재보호법 위반까지 적용받게 될 수도 있다.
낭만을 만나다, 아름다운 고베의 하루
오사카에서 고베(神戶·Kobe)로 떠나는 당일여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커피와 케이크의 도시 고베. 1868년 서양 문물이 들어온 항구도시 고베는 도시 곳곳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고베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가는 지역은 기타노이진칸(北野異人館). 고베 개항 이후 외국인이 살던 집들로, 개화기 일본의 모습을 간직한 건축물이 줄지어 있다. 집이 도심에서 북쪽 언덕에 위치해, 기타노이진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타노이진칸의 중심은 기타노초 광장으로, 관광안내소가 있다.
광장 앞에 ‘풍향계의 집’으로 유명한 가자미도리 노야카타가 있다. 1903년 지어진 독일인 무역상의 집이다. 가까운 곳에 미국 총영사 저택이 있는데, 초록색 건물에 베란다가 인상적이다. 기타노이진칸 산책에서 스타벅스 기타노이진칸점을 빼놓을 수 없다. 1907년 지은 건물로, 서양인이 살던 목조주택을 리모델링했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건축물 덕분에 언제 가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고베 분위기를 진하게 느끼고 싶다면 고베 대표적인 상점가 모토마치로 향하자. 골목 안에 1952년 문을 연 에비앙 카페가 있다. 간사이 최초 사이폰 카페로, 숙련된 바리스타가 희귀한 알코올 램프를 사용해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다. 키 낮은 의자와 은발의 바리스타, 손으로 쓴 계산서가 쌍화차에 달걀 띄워 주는 구수한 다방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쉬폰케익과 치즈케익도 인기다.
어둠이 슬슬 내리면, 메리켄 파크에 갈 차례다. 백만불짜리 야경이 기다리고 있다. 메리켄 파크는 고베 개항 120주년을 기념해 만든 공원으로, 포트타워를 비롯해 고베 해양 박물관과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가 모여 있다.
고베의 랜드마크 포트타워는 높이 108m로, 일본의 전통 북처럼 생겼다. 밤이 되면 붉은 조명이 까만 밤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반짝이는 불빛이 바다에 떨어지면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포트타워의 야경을 보고 싶다면 하버랜드로 가는 게 좋다. 하버랜드에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 창가에 자리 잡고 고베 야경을 감상하다 보면, 행복에 젖어든 스스로를 보게 된다.
따끈한 온천의 위로, 아리마 온천
겨울에 떠나는 일본 여행에서, 온천을 빼면 왠지 섭섭하다. 그래서 오사카 당일여행지 추천 마지막 코스는 아리마(有馬·Arima)다. 롯코산 아래 자리한 아리마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중 하나로, 무려 1,300여 년 역사를 자랑한다.
따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지난 시간이 스르르 스쳐 지나간다. 새해에 일어날 재미있는 일을 상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역사적으로 많은 권력자들도 아리마 온천을 즐겼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아리마 온천을 좋아하는 부인과 함께 자주 방문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기자기한 골목길 탐색도 즐겁다. 낡은 일본식 집이 서 있는 언덕에 오르면, 아리마 특산물 중 하나인 센베 과자 공장이 나타난다. 아리마 센베는 퐁퐁 솟아오르는 탄산수에 밀가루를 풀고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해서 만든 과자로, 아리마 대표 기념품이다. 하얀 모자를 쓰고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을 몰래 구경하다 보면, 일본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기분도 든다.
글·사진 채지형 에디터 트래비
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JNTO, www.welcometojapan.or.kr/jr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