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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May 03. 2019

당신을 화나게 만드는
항공기 지연에 관하여


나날이 느는 비행기의 출발 지연과 연착 때문에 혈압 오를 일도 많아졌다.
정시운항 실적이 좋은 항공사만 골라타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정시운항 넘버 원 항공사가 꼭 바람직한 곳일까?      


항공에서도 코브라의 역설이


수십 년 무사고 운전자를 표방하는 사람으로서 고백하건대, 사실 내게는 새 차를 긁은 ‘전과’가 두 번이나 있다. 이 두 사고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주차장에서 일어났다. 둘째 두 건 모두 차 옆구리를 기둥에 긁었다. 마지막 셋째가 중요한데 급하게 차를 빼다 발생했다. 이후 모든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조급함이라 정의를 내리게 됐다. 갑자기 웬 조급함이냐고?



최근 비행기의 지연 운항으로 승객들의 불만이 늘고 있다. 연결편 지연, 승객의 늦은 탑승, 공항 사정, 하늘 교통 체증 그리고 기체 결함 등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항공 수요의 급증이다. 저비용 항공사의 맹활약도 한몫을 한다. 정비를 비롯한 비행기 운용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데 운항 수요는 크게 늘었으니 지연 요소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행기가 늦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버럭 성질부터 나게 마련이다. 분을 못 이기고 항공사 카운터 직원에게 폭언을 하거나, 심지어 기장을 호출해 항의하는 경우도 종종 뉴스에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시운항 월드베스트 항공사 TOP 10 리스트가 자랑스럽게 공개되며 마케팅에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곱씹어 볼 얘기가 있다. 



19세기 영국의 인도 통치 시절, 맹독의 코브라가 곳곳에 출몰하여 물려 죽는 사람이 늘어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총독부는 코브라를 잡아오는 이에게 두둑한 보상금을 걸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그런데 한동안 확 줄던 코브라가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줄지 않았다. 알고 보니 보상금이 짭짤한 수입이 되자 사람들이 집집마다 코브라를 키웠던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정책이 실패했다 싶은 총독부는 코브라 보상제를 당장 폐지했다. 그랬더니 더 많은 코브라가 날뛰었다. 더 이상 돈이 되지 않자 사람들이 사육하던 코브라를 아무 데나 내다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의도와 달리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코브라 역설(Cobra paradox)이다. 항공 분야에도 이 코브라 역설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스타 조종사의 비극


1977년 3월 27일 대서양 카나리아 제도 테레리프 섬의 로스로데오 공항. 공항은 크고 작은 비행기들로 북새통이었다. 작은 테러 소동으로 인근 공항이 폐쇄되는 바람에 주변 비행기들이 모두 이 비좁은 공항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테러 경계령이 해제되자 비행기들은 다시 이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짙은 안개 속 활주로에서 이륙하던 네덜란드 KLM의 보잉 747이 맞은편에서 이동 중이던 미국 팬암의 747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총 583명이 목숨을 잃어 단일 사고 중 최다 사망자를 낸 참사였다. 미비한 활주로 시설, 관제탑과의 통신 장애, 그리고 최악의 안개까지 여러 요인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고기인 KLM의 야콥 잔텐 기장의 조급함이었다. 



계속된 연착으로 그는 이미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더 지체하다가는 승객들을 이곳에 체류시켜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안 되고 관제사의 이륙 허가가 명확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륙을 시도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1만2,000시간을 넘게 비행한 KLM의 베테랑 조종사였다. 그를 이렇게 비이성적으로 만든 데는 회사도 한몫을 했다. 당시 KLM은 정시 운항을 회사 운영의 최우선 지침으로 두었다. 운항 지연 시 조종사들에게 벌점을 주었고, 이게 누적되면 조종사는 자격증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날씨 때문에 늦어져도 조종사가 책임을 져야 했다. 당연히 조종사들은 운항 지연에 대해 승객들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참사 이후 KLM은 물론 많은 항공사들이 달라졌다.



1982년 1월13일 미국 에어플로리다 90편 B737기는 눈이 내리는 워싱턴DC 공항에서 이륙을 준비 중이었다. 직전까지 폭설로 인해 공항이 일시 폐쇄되었고 이로 인해 공항은 한꺼번에 이륙하려는 비행기들로 난리 북새통이었다. 마침내 에어플로리다 90편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활주로까지 줄줄이 늘어선 비행기들로 출발은 계속 지체됐다. 기장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방빙(De-icing)* 작업을 한 지 벌써 한 시간이 다 되어 갔기 때문이다. 날개가 다시 얼어붙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미 세 시간 넘게 지체된 상황에서 방빙 작업을 위해 다시 돌아갔다간 또다시 이 긴 줄을 서야 했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돌아가지 않고 앞 비행기 엔진의 배기열을 이용해 날개의 눈을 녹이는 편법을 써서 해결한 채 그냥 이륙하기로 한다. 안타깝게도 이 편법은 실행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녹인 눈이 날개 사이 스며들어 다시 얼어붙었고, 날개가 얼어붙은 채 이륙한 비행기는 안타깝게도 포토맥 강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


승객이 갖는 또 하나의 불만은 지연에 대해 상황 설명과 승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확한 설명 없이 마냥 늦어지는 상황은 당연히 승객을 화나게 한다. 또 에어컨조차 켜주지 않는 덥고 답답한 기내에 갇혀 있으면 불만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유가 없지는 않다. 예를 들어 기체 결함인 경우, 정확히 어떤 부분이 왜 문제인지, 언제쯤 고쳐질지는 사실 항공사도 알기 힘들다. 또 여러 규정상 한 번 탑승한 기내에서 다시 내리는 문제도 그리 간단하지 않으며, 비행기의 특성상 에어컨도 자동차처럼 간단히 켤 수 있는 게 아니다. 항공사에게도 운항 지연은 여러모로 큰 손실이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정말 급한 것만 봉하려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대충 넘기고 가려는 항공사를 승객이 말려야 할 판이다. 그런데 만약 승객들까지 늦어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아마도 항공사들은 어지간한 문제에는 그냥 무리하게 운항하려고 할 것이다. 이 경우 최악의 대형 사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륙 후에 문제가 발생해서 회항이나 비상착륙의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의 손실이 생긴다. 항공사의 입장만을 대변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운항 지연의 잘잘못이 어디에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승객의 입장에서는 다음날 아침 뉴스 헤드라인에 비행기 사고의 당사자로 나오는 것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안전하게 목적지에 가는 것이 최우선이니 말이다. 생각해보자. 우리의 목적은 코브라를 많이 잡는 것이 아니다. 코브라에게 물리지 않는 것이다.     


* 방빙(De-icing) : 겨울에 비행기 날개에 눈이나 물기가 그대로 얼어붙지 않도록 이륙 전에 일종의 부동액을 뿌려주고 비행기 주요 부분은 얼지 않도록 히터를 켜주는 작업. 얼음이 형성되면 날개의 작동은 물론 날개의 형태가 달라져 공기역학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글 유호상  정리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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