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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Oct 02. 2019

예술과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 시티 투어

도시 위를 걷는 낭만


뜻밖의 잘츠부르크 도심 숲속 탐험은 순전히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도대체 어디에서 찍었을까? 고풍스런 고성이 도도한 자태로 산꼭대기에 앉아 고색창연한 잘츠부르크를 내려다보았다. 아늑하고 평화로운 풍경, 금세라도 고성 위로 붉은 노을이 쌓이고 성당 종소리가 은은하게 도시를 감쌀 것만 같았다. 삼삼오오 도시를 즐기는 사람들…. 사진을 찍은 그 자리에서 두 눈으로 같은 풍경을 마주하고 싶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에서 묀히스베르크 전망대로 이어지는 숲속 산책로는 호젓하고 아늑하다


먼저 사진 속 도도한 고성으로 향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Hohensalzburg Castle)이다. 제법 높은 곳에 있어 잘츠부르크 구시가지 어디에서든 보인다. 오르는 길도 꽤 가파르지만 수고스럽지는 않다. 산악열차 푸니쿨라(Funicular)를 타면 5분이면 족하다. 1077년 당시 잘츠부르크를 통치했던 대주교가 방어 목적으로 세웠다는데, 워낙 견고하게 지은 덕분인지 지금도 원형을 거의 유지하고 있단다. 이제는 잘츠부르크 여행의 상징물로서 굳건하다. 성은 무기고와 대포, 고문실과 감옥, 전시실과 카페 등으로 빼곡했다. 내려다보면 잘츠부르크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도시를 관통하는 잘자흐(Salzach) 강을 경계선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마주했고, 거리와 건물과 사람들이 촘촘했다. 

사진 속 고성을 찍은 자리를 추적해보니 십중팔구 묀히스베르크(Monchsberg) 전망대였다. 도시로 내려가 전망대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작은 모험을 택했다. 고성에서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산 능선 길이 있을 것만 같았다. 없으면 어때, 되돌아오면 그만이지…. 잘츠부르크 첫 여행자의 막무가내 도전은 기어이 오붓한 도심 숲속 산책로를 발견해냈다. 

뜻밖의 도심 숲길 산책은 여유롭고 느긋했다. 도시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어쩌다보니, 숲길 끝자락 절벽 위에 선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in Salzburg)이 나타나더니, 그 앞으로 도시의 전경이 호쾌하게 펼쳐졌다. 사진 속 그 풍경이었다. 은발의 한 노년 부부가 그 풍경 속으로 스몄다. 고성을 품은 고도를 다정스레 내려다보는 노부부라니, 농익은 낭만이 와락 밀려왔다.     




도레미송 따라 도시 탐험


1965년작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을 다시 보고 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지만 신기하게도 영화 속 장면이 희붐하게나마 떠올랐다. 이래서 촬영지를 찾나 보군…. 미라벨 궁전과 정원(Mirabell Palace and Garden)에서였다.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장소 중 가장 대중적인 곳이다. 영화 속 마리아(Maria)가 트랩(Trapp) 대령의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 송’을 부르고 계단을 뛰어오르는 모습이 오버랩됐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 유명한 미라벨 궁전과 정원
미라벨 정원의 페가수스 상


이 바로크 양식의 궁전은 1606년 잘츠부르크를 통치했던 볼프 디트리히(Wolf Dietrich) 대주교가 지었다는데, 이제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통하는 관문이 됐다. 총총대며 영화를 추억하는 여행객들로 활기가 넘쳤다. 


미라벨 궁전 내부


잘츠부르크 여행은 곧 <사운드 오브 뮤직>을 만나는 여정이다. 도레미송을 부르며 산에서 피크닉을 즐겼던 도시 외곽의 운테스베르크(Untersberg)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세인트 피터스 묘지(St. Peter’s Cemetery), 묀히스베르크 전망테라스, 레지던스 광장(Residence Square)의 분수, 논베르크 수녀원(Nonnberg Convent), 트랩 대령 가족 합창단이 공연했던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 등 도심 곳곳에서 촬영지가 반겼다. 

촬영지만으로는 뭔가 아쉬워 사운드 오브 뮤직 월드(Sound of Music World)도 찾았다. 기념품점이자 뮤지엄이다. 마침 트랩 대령 가족의 최후 실존 인물로 2014년 99세로 별세한 마리아 폰 트랩의 생전 인터뷰 영상이 흘렀다.   


헬브룬 궁


헬브룬 궁(Hellbrunn Palace)은 그러잖아도 들를 참이었는데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라고 해서 더 반가웠다. 그러니까 시내에서 10km 정도 벗어났어도 여행객들이 꼭 찾나 보다. 영화에서 마리아와 트랩 장군이 키스를 한 팔각 유리 정자가 이곳에 있다. 


속임수 분수로 유명한 헬브룬 궁전의 전시실


헬브룬 궁전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1616년 대주교 마르쿠스 지티쿠스(Markus Sittikus)가 자신의 여름 별궁으로 지었다는데, 물의 정원에 있는 ‘속임수 분수’가 명물이다. 대주교는 익살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분수와 시설을 만들어 궁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짓궂은 물장난을 쳤단다. 

인형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갑자기 물벼락을 내렸고, 석조 테이블 의자와 바닥에서도 갑자기 물이 뿜어져 나왔다. 유쾌한 웃음도 함께 터졌다. 400년 전에 이런 분수를 설계했다니, 신기했다. 




모차르트의 도시니까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년)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식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도시니까. 


모차르트가 17살 때부터 7년 동안 살았던 모차르트 레지던스


모차르트 광장(Mozart Square)에는 1842년 세워진 모차르트 동상이 묵묵히 도시를 바라봤고, 그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Cafe Mozart)에는 여행객이 몰렸다. 그를 기려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2020년 100주년을 맞는다. 


모차르트 레지던스 지하 전시실의 편지와 모차르트의 것으로 추정되는 모발


벌써부터 100주년의 설렘과 흥분이 넘쳤다. 그가 세례를 받았고 오르간을 연주했다는 잘츠부르크 대성당(Salzburg Cathedral)은 경건하기 그지없었고, 카피텔 광장(Kapitel Square)의 커다란 황금구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젊은 모차르트라는 설도 있어 한참을 올려다봤다. 


모차르트가 세례 받은 잘츠부르크 대성당


압권은 그의 집이었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청년기까지 보냈다. 그가 태어난 생가(Mozart’s Birthplace)와 그가 빈으로 떠날 때까지 살았던 모차르트 레지던스(The Mozart Residence)는 모차르트 투어의 핵심 목적지다. 



생가는 잘츠부르크의 최대 번화가인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 Street)에 있어서 더 북적거렸다. 모차르트는 이곳에서 태어나 17살(1773년)까지 살았다. 5층 건물 중 3층과 4층이 박물관인데, 어린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바이올린과 건반악기, 악보와 초상화, 편지 등을 직접 봤다는 게 행운으로 느껴졌다.  


황금구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젊은 시절 모차르트라는 설도 있다


모차르트 레지던스에서는 더 큰 행운을 만났다. 모차르트는 17살 때부터 빈으로 떠날 때까지 7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Leopold Mozart)도 여기에서 1787년에 세상을 떴으니 모차르트 가족의 마지막 거처다. 이곳도 현재 모차르트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과분하게도 박물관 지하의 특별 전시실을 안내받았다. 



특별한 경우에만 공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음악 신동 모차르트가 그의 누이 나네를(Nannerl)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유럽 연주여행을 나섰을 무렵인 6~7세 때 작곡한 악보부터 전성기 때의 악보까지 단단한 유리전시대 안에 보관돼 있었다. 바라보노라니 노랗게 색 바랜 오선지 위 음표들이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했다.




조금은 색다르게 추억하기


색다르게 모차르트를 만났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중세 시대의 복장을 하고 오페라 공연을 펼치는 레스토랑에서 저녁 만찬을 즐겼다.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다. 잘츠부르크 구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세인트 피터 스티프츠켈러(St. Peter Stiftskeller)에서 열린다. 

803년부터 언급되기 시작한 중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천년식당이다. 유서 깊은 이곳에서 모차르트 시대의 의상을 입은 연주자와 남녀 오페라 가수가 모차르트의 유명 오페라 작품들을 선보였다. <마술피리(The Magic Flute)> 아리아를 시작으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식(The Marriage of Figaro)>, <돈 지오반니(Don Giovanni)> 등이 올랐다. 격식 높고 딱딱하지는 않았다. 촛불의 은은함 속에 예술이 일렁였다. 모차르트 가족도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모차르트의 누이 나네를이 1783년 10월 일기에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비가 심하게 내렸다고 썼다고 한다.


모차르트 디너 콘서트에서는 모차르트 시대의 복장을 한 연주자와 오페라 가수가 모차르트의 대표작을 선보인다


1500년대 중반, 잘츠부르크 시내에만 10여 개의 맥주 양조장이 있었을 정도로 잘츠부르크의 맥주 역사는 깊다. 몇몇은 지금까지도 수백 년의 역사를 잇고 있다. 잘츠부르크 맥주 애호가 중 한 명은 모차르트였다. 


스티글 브로이의 맥주 뮤지엄


스테른 브로이(Stern Brewery)의 역사는 15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단골 중 한 명이 모차르트였단다. 그 명성 덕분인지 식사와 맥주를 즐기는 이들로 실내외 테이블이 가득 찼다. 스티글 브로이(Stiegl Brewery)도 1492년부터 시작됐으니 모차르트가 즐겼을 법하다. 스티글 브로이는 맥주 테마 전시실과 기념품점, 레스토랑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아늑한 실내 분위기를 갖춘 가블러 브로이


좀 더 독특한 방식으로 맥주를 음미하고 싶어 아우구스티너 브로이(Augustiner Brewery)를 찾았다. 1621년 이후 400년의 역사를 지녔는데, 수도원에서 빚은 맥주에서 비롯됐다고 해서 수도원 맥주로도 불린다. 규모면에서도 압도적이었다. 실내에 900석, 실외에 1,400석을 갖췄다. 더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북적였다는 점이다. 독특한 맥주 판매 방식이 흥미로웠다. 잔을 고르고 잔 크기에 맞게 돈을 지불한 뒤 잔을 건네니 커다란 나무 맥주통에서 맥주를 따라줬다. 이러니 연거푸 마실 수밖에! 신시가지에 있는 가블러 브로이(Gabler Brewery)도 빼놓지 않았다. 모차르트를 추억하며, 프로스트(Prost)!

 
글 김선주 기자  사진 김정흠 
취재협조 잘츠부르크주관광청 www.salzburgerland.com, 한국사무소 02 773 6428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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