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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Sep 30. 2019

인도에서 마시는 짜이 한 잔의 의미

인도가 세상의 일부인 것은, 
세상에는 기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믿지 않았던 기적을 믿게 되었다. 
인도에서 보았던 모든 것이 그 이유다.


우띠맨(우띠에 사는 남자)을 만났다. 그는 자신을 닐기리의 수호자로 소개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우띠맨의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우선 털모자. 우띠는 날씨가 선선하기 때문에 보온과 멋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 

원색 두툼한 점퍼, 아무래도 이것 역시 마찬가지. 바스락거리는 재질의 긴 바지까지 갖췄다면 우띠맨에 어느 정도 가까워진 줄 알았더니, 우띠에서 40년 이상을 살아야 한단다. 까다로운 조건에 불평을 늘어놓으니, 70년을 우띠에서 살았다는 우띠맨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란다.  


차밭, 집, 안개, 나무, 산이 전부. 우띠의 전경


우띠(Ooty)는 인도의 남쪽, 닐기리(Nilgiri) 산자락에 위치한다. 무려 해발 2,240m. 본래 명칭은 우다가만달람(Udhagamandalam)이지만 줄여서 우띠라고 부른다. 

과거 식민지였던 고산지대가 대부분 그렇듯 우띠의 시작은 역시나 영국인들의 휴양지였다. 겨울이면 영하 6도 정도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매일이 뜨끈한 인도에서 우띠는 천국이나 다름없을 터. 현재는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로 손꼽힌다. 



닐기리는 푸른 산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띠를 찾아 오른 닐기리는 푸르렀다. 온 천지가 차밭이다. 인도의 3대 홍차를 읊어보면 다르질링(Darjeeling), 아삼(Assam) 그리고 닐기리(Nilgiri)가 대표적이다. 모두 인도의 지역 이름이다. 



다르질링은 화이트 와인 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홍차의 샴페인’이라고도 불린다. 아삼의 경우 카테킨의 함량이 높아 묵직하고 떫은맛이 특징이다. 닐기리는 실론티(Ceylon Tea, 스리랑카 홍차)와 맛이 거의 같다. 기후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두손 가득 들어 올린 찻잎은 생기롭다


좀 더 깊은 닐기리의 맛을 찾아 우띠에 위치한 차 공장(Tea Factory)을 방문했다. 우띠맨이 한마디 거든다. "솔직히 공장보단 차밭을 돌아다니는 편이 훨씬 더 맛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걸?" 실제로 그랬다. 

사방에 널린 어느 차밭으로 향했더니, 까무잡잡한 여인들이 반긴다. 어린 찻잎만 손으로 애지중지 골라 딸 줄 알았더니만, 가차 없다. 작은 칼을 이용해 꽤 두꺼운 차나무 가지를 통째로 베어버린다. 그리곤 찻잎을 한 움큼 손에 얹어주더니 냄새를 맡고, 씹어 보란다. 상큼하고 신선하다. 



닐기리는 다른 지역 홍차에 비해 맛이 옅으며 부드럽고 깔끔하다.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스티, 밀크티, 레몬티 등 폭넓게 사용된다. 수많은 방법 중 최고는 역시 우유와 향신료를 섞어 마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짜이(Chai)’다. 일반적인 홍차는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부어 우린다. 짜이의 경우 오랜 시간을 펄펄 끓인다. 과거 식민지 시절 인도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은 홍차의 대부분이 영국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짜이는 질 좋은 홍차를 모조리 영국에 보내고 남은 하급 홍차를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인 셈인데, 대안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맛이 환상적이다. 


유리잔에 채워진 짜이는 조심해야 한다. 생각보다 뜨겁다


인도에서 짜이를 마신다는 것은 휴식을 뜻한다. 차를 따던 아낙도, 수다 떨던 우띠맨도, 지독하게 달라붙어 잔소리하던 릭샤꾼도 마찬가지다. 단 한 잔에 인도를 멈추고 걱정을 잊는다. 여행자는 떠나야 할 때를 잊는다. 달콤한 짜이를 맛본다면, 인도의 그 무엇도 스쳐 지나갈 수 없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인도관광청 www.incredibleindia.org


http://bit.ly/2or3x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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