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밭의 기억을 담다
인도에서는 어느 장소엘 가나 이방인을 향한 강렬한 눈빛이 따라오곤 했다. 관심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어찌나 부담되던지.
그러다 한 번 용기를 내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라고 물었는데, 웬걸. 마법의 문장인 것이다. 이 한마디에 강렬한 눈빛은 호기심이 담긴 반짝이는 눈빛으로 변하고, 사람들은 세상 환한 미소로 답해 줬다.
초록 차밭에서 만난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전에 딴 차 수확량을 확인하러 줄을 서던 이들은 일터에 등장한 낯선 여행객을 향해 우선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또 한 번 통했다. 이후 여인들은 차를 따면서도, 점심 도시락을 꺼내면서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카메라에 담긴 모습이 신기한지 까르르 웃어 보였다.
어색함이 가신 후에야 아쌈 홍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은 중국의 차 나무를 가져와 인도에서 재배했지만 다즐링(Darjeeling) 지역을 제외하고는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홍차 부자의 꿈, 그 해결책은 다른 곳에서 발견됐으니 바로 아쌈 지역이다.
예부터 아쌈 지역의 부족민들은 재래종 홍차 잎으로 차를 우려먹었고, 이를 발견한 영국 소령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에 의해 아쌈에서의 본격적인 홍차 재배가 시작됐다. 개성이 뚜렷한 아쌈 홍차는 주로 블렌디드 티(Blended Tea) 베이스로 사용되는데, 인도에서 흔히 마실 수 있는 밀크티에도 아쌈이 들어가 훌륭한 향과 맛을 낸다.
차밭을 봤으니 이제 홍차를 쇼핑해 볼까. 아쌈 홍차에서는 스모키한 몰트 향 혹은 오래된 나무 향이 난다고 했는데, 가게에서 집어 든 홍차 잎에서는 그보다는 흙냄새가 강했다. 그리고 초록의 향. 방금 차밭에서 마주한 장면들이 홍차 잎에 녹아들어 있었다. 쇼핑백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그럴 듯한 핑계를 대자면 말이다.
안개 사이로 맞이한 아침
카지랑가 국립공원
Kaziranga National Park
풀잎에 맺힌 이슬이 사라지기 전, 카지랑가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회색 안개가 낀 오늘의 숲은 어제의 초록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노란 햇살은 안개의 묵직함을 당해 내지 못한 듯, 풀숲 사이에 스멀스멀 잠들어 있다. 고요했다.
자리를 잡느라 덜컹거리는 사람들의 소란에도 코끼리의 시선은 안개의 끝을 향해 있다. 새벽 사파리는 코끼리 라이딩에서 시작됐다. 바톰(Batom). 오늘 우리를 인도해 줄 코끼리의 이름이다. 잘 부탁한다는 어색한 손길에 바톰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는 아무도 닿은 적이 없을 것 같은 풀숲 사이를 무심한 듯 헤쳐 지나갔다.
사파리는 바톰의 발걸음 소리로 가득 찼다. 첫 번째 정적을 깬 건 코뿔소의 인기척이다. 누가 봐도 단잠에 취한 것 같았는데, 그 잠을 깨워 버린 미안함에 마음속으로나마 사과를 건넸다. 두 번째 정적을 깬 건 멧돼지다. 졸졸 쫓아오는 모습에 코끼리를 향한 짝사랑인가 싶었는데, 이런 반전이. 멧돼지가 좋아한 건 바톰이 아니라 바톰의 똥이었다. 멧돼지는 코끼리의 똥을 즐겨 먹는다고. 난생 처음 듣는 먹이사슬 구조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 계속 졸졸 따라오는 멧돼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바톰의 쾌변을 바라는 것뿐.
이후 몇 마리의 노루와 마주친 후 숲속의 산책이 끝났다. 여전히 회색빛이 감도는 길에서 바톰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꽤나 근사한 아침을 맞이했노라고, 순간순간 차올랐던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은 한동안 마음속에 머물 예정이라고. 몇 번이고 쓰다듬고 쓰다듬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홍차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세계에서 가장 큰 외뿔 코뿔소의 주요 서식지, 뱅골 호랑이 출몰지, 550여 종의 아름다운 새들의 안식처. 다양한 수식어를 자랑하는 이곳은 인도 북동부 브라마푸트라강(Brahmaputra River) 남쪽에 위치한 카지랑가 국립공원이다.
카지랑가 국립공원은 특히 유럽인들에게 남아시아의 매력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덕분에 사파리 체험 관련 프로그램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전에는 주로 코끼리 라이딩 사파리, 오후에는 지프 사파리가 진행된다. 햇살의 온도가 수그러지는 시간. 지프 차량에 올라 국립공원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 밖으로 뱉지 못할 탄성을 삼켰다.
외뿔 코뿔소를 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마주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잠자리의 날개가 외뿔 코뿔소를 감쌌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주는 존재라니, 스스로의 위대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식사에 열중하는 외뿔 코뿔소가 멋짐을 한껏 자랑했다.
그때 드라이버의 전화기가 울렸다. 알 수 없는 힌디어 대화의 마지막에 그는 ‘타이거’를 외쳤고, 그 후로는 과속이 시작됐다. 엉덩이가 튕겨져 나갈 만큼 몇 번의 탕탕거림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불평을 늘어놓지 않고 오히려 상기된 얼굴로 “타이거! 타이거!” 노래를 불렀다. 이미 호랑이 출몰지역은 차 여러 대가 점령한 상태였다. 모두가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핸드폰 카메라는 스탠바이를 마쳤다. 침묵이 이어졌다. 호랑이를 발견한 레이저가 “사라졌어!”라고 외치기 전까지는.
호랑이를 발견하지 못한 아쉬움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브라마푸트라강 언저리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동물들에게서 호랑이의 긴박함 대신, 평화가 묻어났다. 그거면 충분했다. 시간의 복잡함에 엉켜 버린 현실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보송보송한 평화로움. 인도가 마지막으로 안겨 준 따스한 홍차 같은 시간이었다.
FOOD
인도에서는 실제로 다양한 커리를 접할 수 있다. 향신료의 천국답게 여러 종류의 향신료가 커리에 들어가는데, 들어가는 향신료와 부재료에 따라 각기 다른 맛으로 입을 즐겁게 한다. 커리는 주로 로티(Roti)라고 불리는 빵 혹은 쌀밥과 함께 먹는다.
커리가 아닌 인도의 다양한 음식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인도의 가정식 백반 ‘탈리(Thali)’를 추천. 탈리는 힌디어로 동그란 접시를 의미하며 보통 쌀밥과 함께 커리, 콩 수프, 샐러드 등이 쟁반 모양의 그릇에 담겨 나오는 식이다. 백반집마다 반찬이 다르듯, 음식점마다 탈리를 내놓는 차림이 다양해 먹는 재미가 있다.
RESTAURANT
바트반 레스토랑 Bhatbaan주소: Bogorijuri, P.O. Kohora, Kaziranga National Park, Assam - 785109
전화: +91 95953 33333
글·사진 정영은 에디터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인도관광청 www.incrediblein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