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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국내여행

생각을 비우고 마음껏 걷고 싶을 때,
염하강철책길

by 트래비 매거진

바람이 더 강해지기 전에 길을 나섰다.
생각을 비우고 이야기를 담았다.


02.jpg?type=w1200 염하강 곁을 따라 걷는 길. 철책 너머 풍경이 더욱 아련하게 느껴진다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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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14km
소요시간│4시간
주요코스│대명항→김포함상공원→덕포진→쇄암리쉼터→원머루나루→김포CC→문수산성 남문


DMZ 접경지역인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에 걸쳐져 있는 평화누리길은 총 12코스로 구성돼 있다. 김포시에 속한 1~3코스 중 1코스 염하강철책길을 걸었다.


평화누리길1코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쇄암리




지도가 없어도 괜찮아


하루가 다르게 공기가 차가워지고 있었기에. 맘껏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종종 듣기만 하던 ‘평화누리길’을 검색해 본 연유는 그러했다. 완연한 겨울이 오기 전에 양껏 한 번 걸어 볼 요량으로.

DMZ 접경 지역인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에 걸쳐진 평화누리길은 총 12코스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중 김포시에 속한 1코스를 택한 이유는 꽤 단순했는데, 강변을 따라 쭉 뻗은 길이 명료해 보였기 때문이다(평소 소문난 길치다). 겨울에 성큼 가까워진 어느 날, 염하강철책길 트레킹은 그렇게 시작됐다.


01.jpg?type=w1200 길을 안내하는 리본 그리고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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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항에서 시작되는 평화누리길 1코스 입구


코끝에 맴도는 비릿한 바다 내음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명항에서부터 문수산성 남문까지 이어지는 염하강철책길은 말 그대로 염하강 옆 철책을 따라 펼쳐져 있다. 강 너머 강화도를 바라보며 걷는 동안 ‘경기둘레길’이라고 적힌 리본과 곳곳의 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사실 이 표식들이 아니더라도,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직진 코스다. 지도에 그리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건 곧 별다른 생각 없이 걷기에 딱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풍경 따라 흐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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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이라고 적힌 알록달록한 입구처럼, 길은 꽤 다채롭게 이어졌다. 몇몇 조형물이 설치된 길 초반부를 지나자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장면을 달리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박자박 흙길을 밟고 있다면, 덕포진이다.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가 벌어졌던 역사 속 바로 그 장소. ‘지역이 좋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항구’라는 뜻을 가진 덕포에 ‘진(鎭)’이 붙게 된 건 조선시대, 서구 열강들에 맞선 군영이 설치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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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현장, 덕포진


서해를 지나 한양으로 가려는 서구의 배들을 물리치는 데 있어 물살이 강한 덕포의 손돌목은 최적의 입지였다(조선시대 총 106척의 배가 이 지점에서 침몰했다고 전해진다). 치열했던 격전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총 15대의 포대, 포를 쏠 때 필요한 불씨를 보관했던 파수청의 터는 1980년대 초 복원 및 발굴된 것들이다.


04.jpg?type=w1200 이따금 탁 트인 장면이 머릿속 생각을 비워 낸다


걸음을 옮겨 가기 전에 손돌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겠다. 고려시대, 손돌은 몽골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피난을 가던 고려 고종의 배를 몰던 뱃사공이었다. 험한 물살에 배가 흔들리자 위협을 느낀 왕은 손돌의 목을 베었는데, 죽음 앞에서도 손돌은 물 위에 바가지 하나를 띄우고는 이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거라고 일렀다고. 강화도에 잘 도착한 왕은 자신의 행동이 성급했음을 깨닫고 손돌의 장사를 거하게 치른 후 사당을 세웠다. 지금도 여전히 손돌의 기일인 음력 10월20일 진혼제가 치러지고 있다. 파수청 터 옆에는 손돌묘가 오롯하게 자리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손돌목이 손돌목이 된 사연이다.



06.jpg?type=w1200 죽음 앞에서도 충심을 발휘했던 손돌의 묘




길 끝에 찾아온 평화


반 정도를 걸어왔을까. 유난히 살랑대는 억새가 눈에 들어온다. 물 위엔 자잘한 윤슬이 마구 흩뿌려지고 있었다. 무리를 이룬 철새들의 인기척만이 들려 올 뿐, 고요한 길은 말없이 이어졌다. 오랜 세월 부침 끝에 찾아온 평화다. 삼국시대부터 6·25 전쟁 때까지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은 염하강에서 더 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때, 남과 북을 나누는 철책이 세워졌다.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길은 청명하게 남았다. 멸종위기의 동물과 도시에선 쉬이 볼 수 없는 야생식물들이 이곳에 살아간다.


06-1.jpg?type=w1200 2011년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세워진 조형물, ‘꿈꾸는 염하강’


09.jpg?type=w1200 평화누리길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문장


강화대교가 보이는 걸 보니 끝이 머지않은 듯했다. 조금만 더. 코스의 종착지인 문수산성 남문에 발 도장을 찍는 것으로 약 4시간의 트레킹을 마무리했다. 수차례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동안 머리는 서서히 가벼워졌다. 그리고 비로소 평지에 안착했을 때, 마음은 잔잔하고 평온했다. 염하강이라는 테마를 떠올린다면 다소 필연적인 수순이긴 하다.



08.jpg?type=w1200 강화도가 내다보이는 강, 그 위에 윤슬




염하강철책길 주요 SPOT


김포함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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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간 바다를 지키다 2006년 퇴역한 상륙함 내부를 전시장으로 개조했다. 대명항 부두에 정박해 있는 LST-671운봉함은 1944년 미국의 메사추세츠주 퀸시에서 만들어진 후 여러 전쟁을 겪고 돌아왔다. 전시관에서는 직접 해군이 되어 보는 안보 체험을 할 수 있다.


김포함상공원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항1로 110-36




부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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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돌묘를 지나 걷다가 보이는 무인도. 전쟁 당시 군사적 요충지였던 섬 안에는 성터가 남아 있다. 염하강을 타고서 한강에 떠내려 왔다는 전설에 의해 부래도(浮來島)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부래도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문수산성


12.jpg?type=w1200 문수산성 남문


1694년, 숙종 20년에 강화도 입구를 지키는 목적으로 축조된 문수산성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과의 격전지였다. 평화누리길 1코스의 종점이자 2코스의 시작점이다.


문수산성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산36-2



글·사진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김포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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