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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범 Nov 16. 2023

홍콩의 집과 한국의 집

닮았으면서도 다른 청년주거

 "안녕하세요. 여행자인데, 집 좀 쓸 수 있을까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터무니없는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당장 나라도 대답은 '아니'라고 정해져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가 있다.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은 처음 보는 사람들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하고, 우리 집을 다른 여행자에게 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모인 여행 커뮤니티다.


카우치서핑을 접했을 때, 참 순진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었던 친구나 심지어 가족에게도 배신당하는 사회에서, 처음 보는 낯선 이방인을 뭘 믿고 우리 집에 들일 수 있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커뮤니티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여행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아이디어 자체도 꽤 매력적이었다. 여행지에 위치한 집에서, 그것도 현지인과 함께 지내며, 다른 문화를 무려 공짜로 체험할 수 있다니! 예산의 제약도 심하고, 랜드마크만 찍는 여행은 피하고 싶었던 나에게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첫 카우치서핑은 마치 내 첫 여정처럼 장황했고 서툴렀지만, 여느 처음이 그러하듯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도착한 나는 짐을 잠시 맡기고 하이킹을 하기 위해 드래곤스 백(Dragon's back)으로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 오를 때마다 빨라지는 심장소리처럼,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마치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부드럽게 날아다니는 바람을 통해 몸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내리쬐는 햇살이 내 여행을 축복해 주는 기분마저 들었다.


저 멀리서 흘러오는 파도 소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날, 나는 그렇게 길을 잃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고, 여행 또한 그러하다. 정상으로 올라가서 바다를 내려다볼 때만 해도 금방 내려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도를 보고도 길을 못 찾는 '심각한 길치인 나'를 간과하고 있었다.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인터넷 없는 여행'을 택했던 나는 볼 수 있는 지도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내려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물론 죽지야 않겠지만,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면서도, 길을 잃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 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걸어온 삶의 길도 그러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는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나는 어떠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그 어느 것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한 상태로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살아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걷다 보니 해변이 나왔다. 살랑거리는 바닷바람을 느낄 새도 없이 물부터 찾았다. 아침부터 굶어서 배가 고픈 것보다, 극심한 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길거리 좌판에서 얼음물을 사서 바로 목으로 들이부었다(나는 이 경험 뒤로는 여행길을 나설 때면 물부터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갈증을 해소하고, 표지판을 둘러보니 셱오(Sheck O) 비치였다.


나의 위치를 모르고 목적성을 상실한 채 떠나는 길은, 그 길이 아무리 편하고 잘 닦인 길일지언정 끝없고 고통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는, 길을 잃기 위해서는 헤매는 것을 담담하게 즐기고,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산에서 방향을 잃고 물도 먹을 것도 준비하지 않아 힘들었던 것처럼, 내가 살아온 길 또한 목적성을 상실하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길만 따라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우치서핑 호스트와의 약속에 한참이나 늦어버린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뒤로한 채 바다를 쳐다볼 겨를도 없이 다급하게 남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은 항상 서툴지만, 그래서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나의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만나기까지는 10번의 거절이 있었다. 나중에서야 안 거지만, 이러한 거절은 비일비재하고(시간이 맞지 않는다던가, 남성 서퍼는 받지 않는다던가 하는 등 제각기 타당한 이유들이 있었다), 지체하지 말고 나 또한 여러 명의 호스트에게 비슷한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것을 몰랐던 나는 꽤 긴 시간 동안 정성 들여 메시지를 보낸 10명 정도의 호스트에게 거절을 경험하고, 가까스로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홍콩 친구에게 수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목적지 홍콩에서 첫 번째 호스트인 리키를 만났다. 리키의 첫인상은 "키가 엄청 크네"였다. 와이파이를 찾아 남청역을 오르락내리락하던 나를 향해, 나보다 10cm는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준? 안녕 난 리키야"

"레이 호우! 난 준이야. 늦어서 정말 미안해!"


리키와 가볍게 악수를 하며 어색하지 않은 척,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처음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낯설고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고맙게도 그 어색함을 깨준건, 나의 어눌한 인생 첫 광둥어 인사에 환하게 웃어주던 호스트 리키였다. 리키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 그의 큰 보폭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졌던 집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홍콩에서 응급실 레지던트로 생활하는 리키는 두 명의 고등학교 친구들과 방 세 개짜리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사실 방은 세 개였지만, 우리나라 원룸의 반의반토막 같은 느낌이었다. NGO에서 노숙자들을 돕는 일을 하는 모, 투자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답게 밤늦은 시간 슈트를 입고 나타난 청랍판. 의심 반, 걱정 반으로 시도했던 나의 카우치서핑이 첫 이륙을 성공한 순간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에게도 나는 첫 카우치서퍼였다. 얼마 전 방을 빌리기 시작했는데, 2층 침대 두 개를 만들고 나니 자리가 하나 남아서 시작하게 됐다는 그들의 카우치서핑. 방이 좁아서 미안하다는 그들의 말에, 나는 리키가 사 온 에그타르트를 하나 집어 들며 길바닥에서 구해주어 고맙다며 능청스럽게 손사래를 친다. 그렇게, 우리의 첫 대화 주제는 공교롭게도 "집"이 되었다.




홍콩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만큼이나 참 바쁘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 10시-11시는 기본으로 넘어야 들어오던 형들. 화장실은 샤워기와 변기가 거의 붙어있고, 주방은 따로 공간이 없어 화장실 바로 앞에, 통로는 테이블 하나와 의자하나가 들어가면 딱 맞는 집. 남자 셋이 생활하기에는 사실 비좁은 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너무 비싸다 보니 셋이 겨우 같이 살아야 임대료를 낼 정도라고 말하는 형들에게 한국의 "전세"라는 개념은 매력적으로 들렸던 것 같다. 매매가보다 낮은 가격에 보증금을 내고, 별도의 월세가 없이 생활하는 전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반짝이던 형들.


집이란 참 아이러니한 존재다. 우리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저 잠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집 바깥에서 하루 온종일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홍콩에서의 삶이 영화 "중경삼림" 같이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주는 아름다운 홍콩의 밤은 그들에게는 그저 일상이고 퇴근길일 뿐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모습을 한 그들의 삶의 방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을 권태로 만들고, 젊음을 소비하며 살아가게 만든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젊음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간밤의 이야기와 함께 나누던 고민들이 무색하게도 해는 뜨고 다시 진다. 고통과 괴로움은 어제의 것으로 남는다. 매일 같이 대화를 나누던 우리의 찰나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다. 함께 먹었던 시장의 음식, 함께 걷던 출근길, 기타를 치며 같이 부르던 노래, 각자의 자리에서 가지고 있던 고민들은 여느 젊음이 그러하듯 시간과 함께 희미해져 간다. 새로운 해가 뜨면 그들은 직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젊음을 소비한다. 어떠한 시각으로 보면 참 슬픈 일이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있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비록 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더라도, 오늘의 젊음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방향을 잃고 무작정 걷던 길 끝에 바다가 날 반겼던 것처럼. 그렇게, 나의 첫 카우치서핑 호스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다음 여행지를 향해 비행기에 올랐다.



저는 카우치서핑을 처음 이용하였고,
저의 첫 호스트 형들에게도 저는 첫 게스트였어요.
처음은 항상 서툴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사실 걱정 반, 기대 반이었어요.
한국에서도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지도 않고,
또 남을 나의 집에 들이지도 않을 텐데.
우리나라도 아닌 곳에서 그런 행동을 하려니
아 이건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형들 덕분에 첫 단추를 잘 꿰었어요.

새벽까지 나눴던 서로의 살아온 얘기들.
우리나라처럼 바쁜, 어쩌면 우리보다 더 바쁜 것 같은
홍콩에서 20대로 산다는 건, 형들을 보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항상 노력하며 사는 형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이 참 많았어요.

우리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서, 언젠가 다시 만나요.

- 2017년의 여행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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