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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범 Nov 19. 2023

따뜻한 마음의 도시, 타이중

나의 대만 아빠, 우롱차 그리고 눈

홍콩에서 출국하는 비행기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이어서 아무 생각 없이 가게 된 타이중. 타이베이는 많이 들어봤어도 타이중은(적어도 나에게는) 낯선 도시였다. 홍콩에서 타이중에 대한 정보를 조금 알아보고 올 심산이었으나, 홍콩 카우치서핑 호스트 형들과 밤새 떠들다 보니 정말 깨끗한 백지의 상태로 타이중에 도착했다. 새하얀 나의 타이중 페이지를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 채워준 것은,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을 가진 타이중의 사람들이었다.



타이중에서 카우치서핑 호스트를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홍콩에서의 거절들이 무색하게도, 타이중의 카우치서핑 요청은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할 수 있었다. 나의 두 번째 카우치서핑 호스트 켈빈 아저씨는 타이중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고 카우치서핑 호스트 전문가다. 직장을 은퇴하고 취미인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는 켈빈 아저씨는 본인이 거주하는 집과 그림을 그리는 스튜디오 두 개의 집이 있었는데, 그중 스튜디오를 카우치서퍼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스튜디오는 켈빈 아저씨의 손길이 닿은 다양한 그림 작품들과, 켈빈 아저씨의 마음이 닿은 수많은 카우치서퍼들의 흔적으로 가득 차있었다. 무려 100명이 넘는 여행자가 남기고 간 편지, 기념품들로 가득 찬 아저씨의 스튜디오에는 그의 경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행자들을 위한 아저씨만의 타이중 가이드북이 있었다. 타이중에서는 무엇이 유명한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어디를 추천하는지를 빼곡하게 정리해 놓은 종이에서 아저씨의 정성이 느껴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저씨는 왜 모르는 사람을 집에서 재워주는 걸까. 세계 각국의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제공해 주고, 이렇게 친절히 가이드까지 해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켈빈씨, 카우치서핑을 이렇게 길게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뭐예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나에게 전달한 아저씨의 대답은, 그리 거창하거나 대단한 대답은 아니었다.


"타이중에 온 사람들이 편하게 여행하고,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가서 더 많은 여행자들이 우리 도시를 찾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너 같이 어린 외국인 친구들과 얘기해 볼 수도 있잖아. 난 그걸로 충분히 숙박비를 받았다고 생각해."


소박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다. 켈빈 아저씨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카우치서핑이라는 커뮤니티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나는 참 매력적인 방식으로 여행하고 있구나' 싶었다. 아저씨의 호의에 보답하고자 아저씨가 궁금해하던 한국의 정치 이야기(당시 박근혜 스캔들이 한국을 시끄럽게 달구고 있었다), 한국과 대만의 군대 이야기, 사회 문제 이야기, 한국 청년의 삶 등 한국이었더라면 잘 모른다고 손사래 칠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저씨가 시계를 보시더니 갑자기 화들짝 놀라셨다. 와이프분이 퇴근하실 시간이라고 정류장으로 데리러 가야 한다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으면서도 아쉬우셨는지 10분이나 더 얘기하다, 가까스로 내일 다시 얘기하자는 말을 남기고 그제야 떠나셨다. 아마, 혼나셨을 것 같다. 켈빈 아저씨는 사교적이면서도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켈빈 아저씨가 추천해 준 루강으로 향하는 길, 밥시간은 멀었지만 배를 미리 채우고자 눈에 보이는 동네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의 중국어 수업이 이루어질 줄은 나도, 식당 아주머니도 몰랐을 것이다. 중국어와 대만어를 할 줄 모르는 나는 메뉴에서 아는 한자를 보고 그 음식이 뭐겠거니 유추해서 시키는 방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는데, 중국어도 못하면서 밥은 먹겠다고 애쓰는 외국인이 안쓰러웠는지 중국어로 메뉴 이름을 한 번 읊어주고 바디랭귀지로 묘사를 해주셨다. 그 새를 놓칠세라 나는 노트에 아주머니의 발음과 한자를 옮겨 적는다. 중국어를 못하는 나와, 영어를 못하는 아주머니의 기이한 중국어 수업. 식사 중에도 우리의 학구열은 막을 수 없었고, 나는 아주머니의 특별과외 덕분에 대만 여행동안 원하는 메뉴를 자신 있게 시킬 수 있었다. 외국인이 여행 와서 그 나라의 언어를 시도해 보는 모습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좋게 봐주는 것 같다. 가는 나라마다 적어도 인사말은 외워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중국어 수업은 루강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도 이어졌는데, 인포메이션 센터의 직원분이 영어를 아예 못하셨다. 말이 안 통하는 와중에도 손짓발짓을 다해가시며 어떻게든 가야 할 곳, 볼거리를 추천해 주시고 길도 알려주셨다. 아무리 직업이더라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에게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이란 짜증이 나거나 귀찮을 법도한데, 대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외국인에게 참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바보 같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 어쩌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은 나의 행복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최소한 잠깐의 웃음을 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루강, 동해대학, 펑지아 야시장, 일중야시장, 고미습지 등 아저씨가 추천해 준 장소들 덕분에 타이중에서의 며칠이 너무나 즐거운 일들로 가득 찼던지라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다. 타이중에서의 마지막 저녁, 아저씨를 만나기 위해 스튜디오로 빠르게 돌아갔다. 다행히 아저씨는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아저씨의 그림 얘기를 하다가, 우롱차를 끓여주셔서 얼떨결에 식전 티타임까지 가지게 되었다.


수다스러운 우리의 대화는 첫날처럼 주제가 시시각각 바뀌었고, 차를 몇 번이나 다시 우려냈다. 얘기를 하다 대만에서의 삶도 홍콩이나 한국처럼 녹록지 않음을 듣게 되었고, 아저씨의 고민을 듣다가 자연스레 내 인생에 대한 걱정들을 털어놓게 되었다. 나의 멍청한 고민들에 아저씨는 현명한 답을 하나 내주셨다. 아저씨의 현명한 답에도 불구하고, 멍청한 나는 여전히 새로운 고민들과 욕심들을 마주한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저씨랑 얘기를 하며 적어도 여행을 떠나온 내 선택을 평생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삶의 확신을 심어주는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다. 


대만은 높은 산을 제외하고는 눈이 잘 오지 않는다는 아저씨의 말에, '대만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 추운 겨울이 오지 않는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선물용으로 가져간 엽서 중에서 하얗게 눈이 쌓인 엽서에 편지를 써드렸다. 아저씨도 나도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아저씨는 아저씨의 스튜디오에서, 나는 앞으로 갈 나라들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수많은 여행자들을 만날 대만의 아빠가 편지 속의 눈을 볼 때마다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만에 눈이 내리면 한국의 아들을 꼭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 그림에 정답은 없어. 눈앞에 보이는 색이 초록색이라고 그림도 무조건 초록색으로 그려야 하는 건 아니야. 중요한 건 그림이 맞냐 틀리냐가 아니라, 그림을 그려보고 또 고쳐도 보면서 네가 그릴 수 있는 최대한의 그림을 그려내는 게 중요하지. 인생도 마찬가지야. 정답은 없어. 너는 지금 여행을 통해 충분히 경험하고 또 배울 수 있을 거야. 너는 똑똑한 친구니까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언제든지 차를 마시러 돌아오렴."

-2017년의 여행일기 中 우롱차를 마시며 켈빈 아저씨가 내게 해주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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