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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Apr 10. 2020

독서의 즐거움, 쾌락 독서

나의 편식 독서 이야기

'쾌락 독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 독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야기를 적다 보면 얼추 '연식'이 나올 수도 있으니.. 어떤 이는 공감 가지 않는 내용이 될 수도 있겠군요~




나의 독서 여정에 대한 TMI. 


돌이켜보면, <편식 독서>가 시작된 것은 사회에 나와서부터지 않을까 싶네요.


어린 시절 친척 집에서 박스째 얻어온 만화책으로 한글을 배웠고, 그 뒤 론 위인전, 한국사 등의 전집(아마도 계몽사)까지 꺼내 읽었죠. 그마저 다 읽어갈 무렵부턴 혼자 다닐 만한 나이가 되어 주말마다 종로에 나가는 게 가장 즐거운 행사가 됐습니다. 


당시 종로는 참 신기한 세상이었습니다. 종로 3가엔 멀티플렉스(서울극장)라는 게 생겼고, 바로 옆엔 피카디리와 단성사도 있었죠. 종로 2가엔 시사영어(현 YBM) 지하에 뮤직랜드와 그 옆엔 SKC Plaza(CD와 뮤직비디오를 주로 팔던 곳)가, 종로 1가엔 종로서적과 영풍문고, 광화문의 교보문고까지... 영화, 음악, 책 등 문화가 풍요롭게 흘러넘치는 곳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책을 가려 읽진 않았습니다. 비닐로 싸여 읽을 수 없는 만화책은 포기하고, 소설, 시, 에세이... 이문열, 공지영, 양귀자, 최영미, 원태연, 이인화, 코난 도일, 시드니 셀던 등등.. 매주 신문에 발표되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 세어 보는 것이 큰 재미였죠.  


대학에 들어가니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친구들도 더 이상 다방구나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지 않았고, 매일 부대찌개 하나 놓고 소주를 마시며 시국과 인생을 논했습니다. 그땐 책도 공부도 다 시시하게 느껴졌죠.


군대를 다녀오고, 어쩌다가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급하게 마케팅과 자기 계발 서적을(만) 읽게 됐죠. 원래 전공이 경영인데, 되려 학교 다니면서는 잘 안 읽던 책들 뒤늦게 숙제처럼 해치웠습니다. 너 자신이 브랜드가 돼라라던가, 마케팅 불변의 법칙, 데이비드 아커 같은.. 


그 뒤 한참 동안 팽팽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돈 한 푼 안 나오는 인문이나 문학 책을 읽는다는 한가한 짓으로 같더군요. 그렇게 지독한 '독서 편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여유. 


쾌락 독서는 바로 그때 이후로 손에 대지 않던 에세이집입니다. 읽었다 해도 누군가의 성공 비결 같은 거? 독서 모임을 하게 되면서 다른 이들이 읽는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됐죠. 


저자의 독서 취향은 그야말로 광범위합니다. 소설, 에세이, 시, 순정만화까지 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필독 도서 추천하는 책은 절대 아니고..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저자의 여러 가지 생각의 깊이가 느껴지는 부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좋은 책을 읽을 때면 머릿속에서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읽다 멈추기를 반복하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발견하면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귀퉁이를 접기도 한다.

지나고 보면 바로 이 멈추었던 순간들이 독서 경험의 핵심이다.
수동적으로 내 감각 속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고 마는 것들은 흔적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은 내 것이 된다.

<쾌락 독서> 티브이, 인터넷과 책의 차이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어서 좋다'라는 말이 과거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킬링타임'이란 거죠. 흔히 예능 같은 것들은 멍하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한정된 시간을 왜 죽일까? 한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도 퇴근하고 돌아오면 잠을 줄여서까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보상 심리?) 


회사에서 승진을 하고, 이런저런 압박이 많아지면서.. 한동안 저도 책을 안 읽게 됐습니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는 책을 들고 있을 뿐, 페이지는 절대 스스로 넘어가질 않으니까요. 집중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 즉 '워밍업'이 필요 없는 것들에 '몰입(?)'하게 되니 우리는 점점 자극적이고, 짧은 시간 내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것만을 찾습니다. 두툼한 책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들입니다. 




사람은 책을, 책은 사람을... 


앞서 이야기한 대로, <쾌락 독서>는 책의 요약이나 추천도서를 나열한 책이 아닙니다. 책과 사람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죠. '미래에 없어질 직업 00가지'처럼 다가올 미래에 대해 공포감을 갖는 이들에게 저자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합니다. 


미래를 바꾸는 방법은 현재의 사회부터 바꾸는 것이다.
미래의 사회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쓸모'가 없어진 인간을 어떻게 대우할지 궁금하면
지금 이 사회가 탑골공원에 앉아 있는 노인과
편의점의 알바 청년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면 된다.

미래의 눈부신 과학 발전이 낳을 부가 어떤 방식으로 분배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의 분배 구조를 보면 된다.
더 먼 미래에 인공지능 또는 그와 결합한 신인류가 평범한 인간들을 어떻게 취급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가 소수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면 된다.

<쾌락 독서> SF는 인류의 미래가 아니라 현재


현재의 우리는 우리 옆에 있는 누군가에는 박하게 대하면서 미래를 걱정합니다. 당장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미래를 위해 아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과연 미래의 누구를 위해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는 부분은 두 딸과 유럽 여행을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숙제처럼 어린 딸들을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데리고 다니다가 문득 지쳐 있는 딸들을 보고 자책합니다. 그리곤 아무 놀이터에나 가서 싫증을 느낄 때까지 놀게 내버려 두죠.


서울에도 있는 놀이터인데 시간이 아깝지 않았냐고?
서울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 때는 내가 없었다.
머나먼 이국이지만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있다.

게다가 덤으로 어딘지는 모를 작은 동네지만 멀리 알프스가 보이고,
동네 개천은 물이 맑아 물고기가 헤엄치고 백조가 떠다닌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쾌락 독서> 여행과 책, 그리고 인생 1



꼭 그게 여행이 아니라도, 무언가 숙제처럼 의무감에 해치울 때가 많습니다. 독서도 그렇죠. 어떤 어떤 책은 꼭 읽어야겠다.라는 생각들, 안 읽으면 경쟁에서 밀릴 것 같아 사두었다가 책장에 그대로 꽂혀 있는 무수한 자기 계발서들.. 이제는 책을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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