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살 무렵, 어린 아기였던 나는 강원도의 차가운 바닷물에 빠질 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보는 눈이 있어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른도 소스라치게 놀랄 물의 온도에 아이가 잠겼으니 무서울 만도. 하지만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나는 그저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고 한다.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 단순히 고통을 느끼지 못했던 것일까 생각해보지만, 그 때 이후의 숱한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내가 통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주 울지도, 떼를 쓰지도 않고 얌전하기만 했던 아이였음은 분명하다. 친척들도, 동네 이웃들도 어린 시절 나를 어둡고, 칙칙하며 귀염성이라곤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라고 쑥덕이곤 했으니.
본래의 성격은 자라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무 살의 5월,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다 갑자기 차도에 튀어나온 꼬마를 보고 급정거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앞바퀴는 지면에서 떨어져 튀어 올랐고 나는 그대로 자전거에서 날아올라 아스팔트 바닥에 추락했다. 갑작스레 떨어진 몸을 지탱한 부위는 턱과 손목. 찢어진 턱과 손바닥 사이로 자갈과 모래 등이 박혔다.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모여든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생각밖에 없었다. 한 아주머니께서 다가와 얼굴에서 피가 난다고 걱정스레 일러주셨다. 전신의 근육 상태는 처참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드리고, 넘어져 핸들이 90도로 꺾여버린 자전거를 끌고 내려왔던 길을 그대로 올라가 집에 들어갔다.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갈 수 있는 병원은 응급실뿐이었다. 주말 근무 중이셨던 부모님께 태연하게 상황을 알리고 택시를 잡았다. 간호사분은 턱 근육이 터졌으니 근처 대학 병원에 가서 살을 꿰매야겠다고 말씀해주셨다. 간단한 소독을 마치고 대학 병원에 가서 여덟 시간가량을 조용히 기다리다 턱에 열두 바늘을 꿰맸다. 다음 날 두 팔이 딱딱하게 굳어버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쿨한 척, 태연한 척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얼음장 같은 바닷물에 놀라지 않던 아이는 터져버린 근육에도 그저 무표정을 유지하는 청년이 되었다. 타고난 기질에 자라온 환경과 삶의 경험들이 더해져 나는 더더욱 표현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늘 솔직하여 감정을 쉽게 드러내 타인과 잦은 불화를 겪는 엄마와 언제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를 강조하시던 샐러리맨 아빠 사이에서 내게 감정이라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슬프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끄적일 뿐이었고, 울음이 나오려 하면 잽싸게 이불에 들어가 숨죽이며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떨굴 뿐이었다. 화가 나는 순간에는 안간힘을 다해 분을 삭이고 무표정을 유지하다 혼자 남겨졌을 때야 비로소 볼을 마구 씹고 주먹으로 침대 매트리스를 쾅쾅 쳐댈 뿐이었다. 웃는 표정을 보이면 만만해 보일 거란 생각에 즐거운 상황에서 입꼬리를 올리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느끼곤 했다.
하지만 가면의 유통기한은 평생에 걸친 것이 아니었다. 현재의 나는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으며, 화를 내고 싶을 때는 적당히 화난 얼굴을 할 수 있다. 스무 해가 넘도록 감정을 꼭꼭 숨겨오며 얻은 결실은 그리 매력 있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제때 하지 못하게 되었고, 불만을 쉽게 표하지 않는 성격 탓에 소위 주변인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으며, 진정 내가 추구하는 모습을 찾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감정을 말한다는 것이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동일한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조용하고 감정 표현이 서툴렀지만, 내게는 나만의 확고한 가치관과 정신세계가 존재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사람의 따스함이 좋았고 잔정이 많았으며, 꿈과 희망이 가득했다. 단지 말과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나의 내면과 감정이 내게 그렇게나 소중한 것이라면, 그것을 감춰두기보다는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실재하는 것이 되었을 때 수치스러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긴 시간 내면의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이 나의 마음, 그리고 타인의 마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울음이 필요할 땐 슬픔을 있는 힘껏 토해내고, 화가 날 땐 분노의 이유를 삭이지 말 것이며, 기쁠 때는 온 마음을 다해 웃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 혹여 나와 같은 동굴에 갇혀 있는 자가 있다면, 겁이 나더라도 한발씩 천천히 걸어 나오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