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 딸은 내게 용돈을 요구할 때 자기가 얼마나 돈이 없는지 돈이 없어서 얼마나 곤란한지를 말했다. 제 딴엔 미안한 마음에 그러겠지만 나 또한 여유 있게 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있다. 우리에게 돈은 서로에 대한 미안함일까? 문득 이걸 바로 잡고 싶어졌다.
어릴 때 같이 살던 외할머니와 엄마는 돈이 원수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내가 배운 돈에 대한 원망과 잘못된 생각, 불필요한 감정들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돈이 조금은 두렵고 종종 경제적으로 곤란해질까 봐 불안하다. 이렇게 돈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아이에게 왜곡되지 않게 돈을 가르칠 수 있을까? 마음을 가다듬고 우선은 아이에게 사과했다. 최근 지출이 늘어 불안감이 생겼고 그걸 드러낸 것 같아 반성했다. 우린 집중해야 할 곳이 있는 상황이라 적당한 선에서 알려준다는 게 앓는 소리를 해댄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돈에 감정을 붙이지 않는 법
돈은 죄가 없다. 그저 ‘유용한 도구’ 일뿐이며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자유를 준다. 돈에 미안함, 원망, 혹은 비굴함 같은 감정을 섞기 시작하면 돈이 우리를 조정하는 버튼이 된다.
"엄마가 돈의 사용처를 묻는 건 엄마의 계획과 관리차원인건고, 너도 100원도 없어서 뭘 못했다는 과장이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쓸지가 명확해야 한다."라고 얘기했다.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명확하다. 돈은 감정이 아니라 '필요'다. 감정이 든다면 감사와 성취 같은 좋은 쪽이어야 한다. 한정된 돈으로 필요를 채우기 위해선 '관리'라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돈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아이의 자존감을 해치는 대신,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쪼개고 활용할지 고민하는 '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에게 건네는 '건강한 경제관'을 위한 3가지 약속
아이가 돈 때문에 위축되지 않고, 돈을 다스리는 주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의 원칙들을 함께 나누려 한다.
1. "돈이 원수"가 아니라 "돈은 유능한 조수"다
돈을 원망의 대상으로 삼지 말자. 돈은 물질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게 하는 객관적 도구다. 부족하면 원망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더 모으거나 어떤 쪽으로 집중할지 전략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다.
2. 쪼개고 모으는 습관은 '평생의 무기'다
가진 돈이 적든 많든, 그것을 나누고 계획하는 습관은 평생의 자산이다.
소비용: 매달(혹은 매주) 꼭 써야 하는 지출과 당장 필요한 것을 위해
저축용: 미래의 더 큰 즐거움을 위해
비상용: 예기치 못한 상황을 위해
이 작은 분류가 아이를 돈의 노예가 아닌 관리자로 만든다.
3. '필요(Need)'와 '욕구(Want)'를 구분하는 힘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욕구'보다 '필요'에 집중해서 소비해야 한다. 잠시 돋보이기 위해 당장 무엇을 가진 자가 되기보다 더 깊이 만족하는 소비를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포기해 보는 경험이 아이의 경제적 회복탄력성을 키워준다.
결핍은 불행이 아니라 훈련이다
나도 넉넉히 주지 못하는 미안함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아이에게 돈을 대하는 담백한 태도를 물려주고 싶다. "돈 때문에 힘들다"는 말 대신 "이 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써볼까?"라고 묻는 부모가 되고 싶다.
돈은 감정이 아닌 필요다. 그리고 그 필요를 다스리는 습관은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