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첫날부터 속세를 떠나 템플스테이로 사찰에 들어갔다.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게 참된 조언이나 귀감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대적 요구사항이라는 타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다. 보통 직업의 이름을 가진 꿈은 ‘나는 친구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상황처럼 서로 눈치 보며 함께 떠밀려 내려가는 상황일 수 있다. 누군가는 이 묘한 관성을 ‘스크립트’라고도 하고 ‘매트릭스’라고도 한다. 잠시라도 이런 영향에서 벗어나 생각해보고 싶었고, 템플스테이만 한 게 없다는 생각에 떠났다.
내가 간 사찰은 딱히 휴대전화를 반납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목표는 의도적 고립이었으므로 전화를 끄고 가방 속에 넣어놨다. 그렇게 숙소에 처음 들어가 느낀 감정은 온 세상이 노이즈 캔슬링된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온 세상이 고요했다. 각종 엔진, 휴대폰 알림, 층간 소음 그 어떠한 큰 자극이 없었다. 우리는 음악이나 메시지 같은 자극에 기쁨을 얻기도 하지만 사실 그 반대가 더 많다. 자극에 노출되면 신경이 쓰이고 집중력을 소모하게 되기 마련이다. 어떻게 그런 엄청난 자극들 속에서 살았나 싶었고 그런 자극들을 잘라냈다는 홀가분함과 후련함 속에서 엄청난 자유를 느꼈다.
자유란 무엇일까? 아무 의무감도 목적도 없이 결과만 기다리는 수능 끝난 고3 겨울방학의 상태를 자유라고 해야 할까? 인간은 본래 머무르고 안주하기를 좋아한다. 개인마다 삶의 목표는 다르겠지만 그 목표를 향하는 길이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유보다는 방만에 훨씬 가깝다. 진정한 자유는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을 지지해야 하며 정확한 형태를 갖춰야 한다. 이런 형태를 갖춘 자유를 계획과 규칙이라고 한다.
템플스테이는 휴식형과 체험형이 있다. 체험형은 말 그대로 스님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 보는 형식으로 3시 기상부터 9시 취침까지 스케줄을 함께한다. 휴식형은 이를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사찰에 머물기만 한다. 내가 간 사찰은 휴식형만 있었지만 나는 거의 모든 스케줄에 참석했다. 하루 3번의 예불(예배), 3번의 공양(식사), 1번의 참선(명상), 포행(산책)과 차담(스님과의 티타임)이 정확한 시간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 계획들 덕에 방만하지 않은 하루들을 살게 된다. 이 사이 시간에 내 생각과 독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저자극의 단절된 환경과 규칙적인 삶 속에서 여유를 갖고 목표를 향해 매진한 2박 3일은 진정한 자유와 휴식을 스스로에게 선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