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은 나의 인생에서 또 한 번의 쉼과 멈춤을 주었다. 현재의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쉬어보는 것이다. 물론 쉬는 것이 그냥 편하게 휴식을 가지는 것이 아닌 아이를 돌봐야 하는 육아휴직이긴 하지만 빡빡한 직장생활을 잠시 멈추고 쉰다는 의미는 크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인생 중 몇 차례의 쉼과 멈춤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될 때쯤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몇 달을 입원하게 되었다. 그 바람에 2학년으로 진학을 못 하고 집에서 쉬었다. 그 시기 주로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고 나머지 시간은 여유롭게 빈둥거리며 놀았다. 특별히 뭔가를 하지는 않고 자전거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라디오랑 TV도 많이 듣고 보고 오락실도 가고 해외 친구와 펜팔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 그때 홀로 여러 가지 생각도 많이 하고 자유롭게 보냈던 기억이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가끔 조용히 홀로 있으려는 경향이나 간혹 가던 길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성향도 이때 몸에 밴 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그때 놀면서도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공부한 도움으로 다시 학교에 복학하여 수월하게 공부를 따라갈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복학생 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단점은 있었다.
두 번째 멈춤은 군대 제대하고 대학을 다닐 때였다. 전공은 적성에 안 맞는데 대학 졸업장은 따야겠고 하는 마음에 억지로 학비를 축내며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집안에 갑자기 우환이 생겨서 갑자기 학기 말에 짐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학기말 시험을 못 봐서 다 망쳐놓고 내려온 것이다. 학교도 다니기 싫은데 이참에 그만 다녀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우연히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공고를 보고 학교를 휴학해 두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1년간 쉼이 아닌 사서 고생을 하였지만 대학 때 잃어버린 열정을 다시 찾아서 돌아왔다. 그 기회로 체험기를 써서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책까지 낼 수 있었다. 또한, 그때 익힌 일본어를 무기로 새로운 분야로의 취업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
공직에 뜻을 두고 전력을 다해 공부했고 몇 차례 고배 끝에 합격하였다. 합격 후 망가진 몸을 추스르며 몇 달을 발령 대기 상태에서 쉬었다. 혼자서 동해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을 다녀왔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자고 일어나서 본 정동진의 일출이 기억난다. 또 강원도 내륙 깊숙이 들어가서 문화유적을 보러 다닌다고 해가 지기 전까지 미지의 땅을 밟고 돌아다닌 기억은 희미한 향수로 내게 기억되고 있다.
최근 처남이 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감과 비슷한 시기에 회사에 자기 계발 휴직을 신청하고 캐나다로 떠났다. 나의 그동안의 몇 차례의 쉼과 멈춤의 기억들과 겹쳐 보여서 남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용기 있게 떠날 수 있음에 그리고 자유로운 모습에 부러움도 느꼈다. 난 돈 많은 사람보다 자유로운 사람이 더 부럽다.
쉼과 멈춤은 긴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 되돌아보면 쉬는 것은 도태가 아니었다. 몸과 정신의 건강을 회복하고 열정을 다시 찾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힘을 보충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의 육아휴직은 아이와 나의 미래를 위한 보약이 될 것이다. 아이에게는 정말 중요한 심리적 안정감과 깊은 애착 관계를 형성하게 하고 평생의 동반자이면서 조력자인 아빠와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고 아빠인 나에게는 몸과 마음을 쉴 기회를 준다.
아이와 지내기에도 바쁜 시간이었지만 조금씩 혼자만의 시간을 활용하여서 해보려고 했던 것들이 있다.
운동 운동을 해보려고 해서 처음 수영을 하다가 아이 학교 일정에 맞추기 힘들어서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있는 뒷산 오르기로 종목을 바꾸었다. 시간 날 때면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고 시간 제약이 없어서 좋았다. 코로나로 인해 수영장이나 다중 체육시설 이용이 금지되면서 더욱 등산만 하게 되었다. 아이와 아내도 함께 가벼운 등산을 하며 가족애를 다졌다.
여행 여행을 좋아해서 아이와 차박 여행이나 당일 여행을 자주 갔고, 아이를 다른 가족이 봐줄 때는 잠시 여행을 다녀왔다. 이럴 때 잠시나마 아이와 떨어져서 진정으로 나를 되돌아보고 찾는 시간이 되었다. 아이와 캠핑을 나오면 아이도 좋아했고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우리가 없는 시간에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쉴 수 있어서 좋았다.
독서 맘에만 두고 있던 고전 읽기를 하려고 시도를 했다. 휴직한 직후 가장 열심히 했던 것 같고 겨울방학이 되고 코로나 사태로 이어지면서 아이와 계속 함께 지내게 되면서부터는 차분히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글쓰기 휴직 기간에 문득 아이와의 이 소중한 1년의 추억을 기록하고 싶어 졌다. 사진이나 동영상의 기록은 남겠으나 나와 아이 모두에게 정말 다시없을 이 시기의 일들을 글로 남기고 싶어 글을 적기 시작했다. 이 글이 내 뒤를 이어 ‘아빠 육아휴직’을 하게 될 또 다른 ‘아빠 휴직자’ 들에게 조그만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더욱 충실하고 보람찬 휴직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악기 연주 휴직을 하게 되면 내 용돈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꼭 사서 배우고 싶었다. 예전 직장에서 잠깐 연주 동아리에 가입해서 기타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 돈은 아이와의 차박 여행을 위한 각종 캠핑용품 구매에 쓰게 되었다. 그래서 기타 연주의 꿈은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 대신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면서 집에 아내가 학창 시절 쓰던 피아노를 처가에서 가져오게 되었고 나도 피아노를 아내와 아이의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하였다. 지루한 일상에서 악기 연주는 활력소가 되었다.
법륜 휴직을 하고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지만 고되고 힘들고 짜증이 나는 일은 그중에서도 있었다. 우연히 법륜 스님의 강의를 인터넷 매체에서 접하고 많은 위로와 깨달음을 얻었다. 휴직 기간 스님의 말씀으로 더 알찬 휴직 기간을 보낸 것 같다.
월든 고전 중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월든’을 읽고 그 내용 속의 삶을 동경해 왔다. 나도 소로처럼 진정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한 번은 살아보고 싶었다. 소로는 이 년간 호숫가에 집을 짓고 자급자족의 삶을 살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주적으로 삶을 살았다.
나도 한 번은 그런 삶을 살고 싶었는데 육아휴직은 가족과 연결이 되어있어서 내가 원하는 방식만의 삶은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육아휴직의 방식만 놓고 보자면 진정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산 일 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다만, 난 만족하고 행복했지만, 아이도 나의 방식이 만족스러웠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