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이야기 02
소환 마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알아? 냄새와 맛이 그렇다?
해 질 녘 나무 타는 냄새를 맡으면, 나는 어린 시절 큰엄마가 저녁 준비하던 부엌의 아궁이 앞으로 순간 이동한다. 사촌 언니들 몰래 먹으라고 아궁이 속에 감춰뒀던 고구마 냄새, 솔가지와 가리비(불쏘시개로 사용하는 바짝 마른 낙엽을 거제도에서는 가리비라 한다)가 탁탁 타들어가는 소리와 냄새가 지금도 나는 듯하다.
또 물메기탕이랑 콩고물에 굴린 찰떡을 먹을 때 그렇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방학이 되면 거제도에 갔다. 겨울방학에는 군것질거리가 없으니 큰엄마의 특기인 찰떡을 많이 해주셨다. 찹쌀을 찌고, 찐 찰밥을 커다란 돌공이에 찧고, 콩가루에 굴려 금방 한 찰떡을 내 입에 넣어주시면, 세상에 그런 맛있었던 떡은 없다. 그래서 내가 떡을 좋아하나? 큰엄마는 우리가 떡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귀찮은 일이었을 것 같다. 새삼 챙겨주신 큰엄마가 고맙다.
지금은 부산에서 거제대교만 통과하면 차로도 거제도에 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부산항에서 배를 타야 했다. 배를 타려면 매표소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 다음 표를 끊고 또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야 승선할 수 있었다. 배에서 내려서는 산길을 세 시간 정도 걸어가야 큰엄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먼 길을 어른 없이 언니랑 나랑 둘만 갔다.
거제도 가는 길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어느 추운 겨울 저녁이다. 그때가 아마 언니가 6학년이고, 내가 3학년이었을 거다. 더 어렸을 수도 있다. 언니랑 나이로는 두 살 차이가 나지만 학년으로는 3학년이 차이 난다. 우리는 방학 때마다 거제도에 갔는데, 그때 어른이 데려다준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갔다. 그 시절 부모님은 우리를 믿었고, 세상도 지금처럼 험악하지 않았다.
분명 부산에서는 아침에 출발했는데 기억 속의 그 날은 도착하니 밤이었다. 겨울이라 날이 일찍 저문 것일 테다. 나는 날이 저물어도 별로 두렵지 않았다. 언니가 있으니까. 그냥 너무 추웠다는 기억뿐이다. 언니랑 둘이 한참을 어둑한 산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경운기 한 대가 오더니 태워 주겠다고 했다. 우리 먼 친척이 되신다고 하시면서.
언니와 함께 경운기를 탔다. 그런데 그 경운기가 얼마나 무섭던지. 신작로로 다니는 경운기지만 길이 지금처럼 아스팔트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길이라 어찌나 덜컹거리던지. 경운기 뒤에 달린 쇠를 잡아야 하는데 쇠가 얼마나 차갑던지 잡을 수도 없었다.
나는 울고 불며 떼를 쓰고 언니한테 내릴 거라고 했다. 하지만 언니는 끝까지 안 내렸다. 정말 언니가 현명했다. 언니는 나를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추운 날 밤에 걸어가면 귀신 나와.’
울퉁불퉁한 길보다 귀신 나온다는 이야기가 더 무서워서 참고 갔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는 울고 불며 난리 쳤던 기억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도 언니는 그때 경운기를 태워 준 분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분명 언니랑 그때 키 차이도 많이 안 났을 텐데, 기억 속의 언니는 어른처럼 큰 키에 난 아주 작은 어린애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의 키는 그렇다.
나는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나보다 나이 많은 여성에게 언니라 부르지 않는다. 다른 호칭을 사용한다. 세상에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진짜 우리 언니밖에 없다. 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나에게는 아주 커다란 존재다. 누구나 형제자매 중에서 그런 사람이 있을 거다.
겨울방학 즈음만 되면 괜히 떡집을 기웃거리게 된다. 오늘은 왠지 찰떡이 만들어 먹고 싶다고 언니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