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의 길, 더 이상 사람들을 위로할 수 없어요.

by 나무둘

상담실에서는 끝없이 인간의 고뇌를 마주합니다. 인간의 고뇌를 짊어지고 사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은 편치 않습니다. 그것이 한 인간의 고뇌가 아니라 다수의 고뇌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 인간의 고뇌도 깊이를 알 수가 없는데 많은 이들의 고뇌를 대신 지려는 사람의 고뇌는 얼마나 깊을까요?


한 성직자와의 첫 만남이 기억납니다. 그 신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한 말 또한 세속의 사람들이 할 만한 말은 아니어서 더욱 기억이 납니다.

“더 이상 사람들을 위로할 수 없어요.”

그의 외모는 깔끔했고 목소리는 기품이 있었고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고 단정했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첫 대면에서 ‘전구가 곧 나갈 듯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가로등’이 연상되었습니다. 곧 어둠에 삼켜질 지도 모르는 가로등. 웬만해서는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폭풍, 전야. 그의 눈빛은 잔잔하면서도 고독해보였습니다.


그가 상담에 온 것은 그가 몸담은 종교 안에서의 세력다툼 때문이었습니다. 성직자로 살아가면서 신의 대리자라고 할 만한 집단이 서로 갈라져 온갖 암투와 모함을 벌이며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진흙탕 싸움을 해대자 성직자로 살아가는데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진흙탕 싸움의 직접적인 대상자는 아니었으나 그는 종교집단의 신구 세력의 갈라진 틈바구니에 끼어서 애매한 자기 위치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차라리 그만두고 싶으나 이 정도의 일에 평생을 헌신하기로 한 자기의 신념을 꺾는다는 것도 쉽게 용납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심리상담은 표면에서 내부 깊숙이 증상의 원인을 찾아 들어갑니다. 마치 외부에서 레이저를 쏴 내부의 아픈 장기를 치료하듯이 심리상담은 증상을 이정표로 삼아 더 깊은 목표를 향해 깊숙이 들어갑니다. 내담자가 처음에 가져온 증상은 사실 내부에 잠복한 핵심을 가리키는 표지판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와의 치료 작업에서도 외부에 드러난 것이 내부로 이르는 통로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가 상담실에 가져온 환멸은 더 본질적인 마음의 균열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그는 점점 자기가 진정 신에 대한 믿음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상담이 다섯 달이 넘어 가면서 종교집단의 갈등도 어떻게든 봉합이 되어갔지만 그의 흔들리는 신념은 더욱 위태로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내적 세계에서 알 수 없는 대상과 홀로 분투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가 어떤 실제를 겪고 있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상담자가 속내를 먼저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이야기를 나누는데 좀처럼 제가 당신 안에 함께 있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당신도 혹시 그런 느낌이 드나요?”


그는 놀란 눈빛으로 상담자를 바라보면서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리고는 사실 그런 느낌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성직자의 길을 선택하기 전까지의 삶은 강인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한때 성직자의 길을 갔다가 돌아온 그의 아버지는 자기의 연약함을 탓하며 강인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집안의 생계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억척스러운 어머니는 다른 방식으로 강인함을 요구했습니다. 그런 부모의 영향 아래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그는 감정표현을 최대한 절제하고 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감정이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충격을 받아도 끄덕하지 않아서 별명이 ‘천하무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한 뒤 그가 말했습니다.

“저란 사람은 어쩌면 신에게도 안길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살아온 역사를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상담자의 말에 그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뇌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습니다. 시간이 흘렀고 더 이상의 대화는 없이 그 회기가 끝났습니다. 그 다음 회기, 또 그 다음 회기, 종교단체 스승에게도 고백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며 그의 마음은 점멸하는 가로등처럼 몹시 흔들렸습니다. 누군가에게 안겨 본 적이 없고, 안길 수도 없는 한 성직자. 그에게 더 이상 사람들을 위로할 가슴이 없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어느 날, 그가 고등학교 시절 쓴 일기장을 가져와 보여주었습니다.

‘천하무적. 하늘 아래 적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하늘과 싸우겠다.’


오래된 일기장에 쓴 글귀를 읽으며 그는 자기가 신과 싸우기 위해, 자기의 운명을 실험하기 위해 성직자가 된 것이라며 까마득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어떤 이유든 속세에 사는 사람이 자기 일생을 거는 성직자의 삶을 다 헤아릴 수 없는 법이었습니다. 상담자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고뇌를 짊어지기로 했던 거예요.”

할 말이 더 있어 보이는 그를 잠시 기다리자, 그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신이 이 고통을 봐서라도 안아줄 거라 생각했던 거예요.”

직접 안아줄 수는 없어 마음으로라도 한껏 그를 안아주었습니다.


그 후 일 년이 지났습니다. 그가 속한 종교단체와 상담센터가 협업하는 문제로 그가 상담실을 찾아 왔습니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그간의 변화를 짤막하게 전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애쓰지 않아요.

대신 내 고뇌를 내려놓으려고 해요.

그랬더니 신이 어느새 저를 안고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