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일지 5. 결정

심리상담사인 내담자가 쓴 편지

by 나무둘

선택, 고통, 책임, 직면, 회피 등등. 머릿속에 구름처럼 떠도는 단어들을 바라보다가 무엇을 적을지 한참 동안 결정을 못했어요. 둥실둥실 떠다니는 단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신이 멍해져요. 한 테두리에 있긴 한데 주변부만 훑어대고 있는 적확하지 않은 단어의 구름. 마음의 소리가 들려요. 이것도 저것도 내 심장의 중심에 꽂히는 단어가 아니리고. 결정을 못한 채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느니 이런 생각이라도 적는 게 낫겠다고 생각이 들어요. 일단 키보드를 두드려 보아요. 무엇을 적을지 결정을 할 수가 없구나. 이럴 땐 어떻게 결정을 하지?


글을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으니 갑자기 선생님 칼럼이 생각나요.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긴 글. 스크롤 압박이 상당한 글들을 한 번에 적으신다고 하셨죠. 머릿속에서 정리를 끝내고 자리에 앉아서 한 번에 타이핑하고 끝내신다면서요. 제가 글을 써 본 바에 의하면 매우 의심이 가고 부럽기도 한 방법이에요. 무엇을 적을지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승전결을 다 결정을 해놓은 상태에서 적는다니. 무슨 조화로 그런 게 가능하죠? 상담을 잘하면 글도 그렇게 쓰게 되는 건가요?


가만 보니 지금까지 적은 글에 ‘결정’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 있네요.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마음에 불이 반짝 들어와요. 심장의 중심부에 가까이 다가온 느낌이에요. 좋아요. 이 편지의 주제는 ‘결정’으로 결정했어요.


결정은 참 어려운 거 같아요. 어떤 면에서 심리적인 고민의 대부분은 결정의 문제예요. 내담자들도 결정의 갈림길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 묻잖아요. 이게 나을까요? 저게 나을까요? 결정을 못 내리겠어요. 상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저 또한 선생님의 내담자로서 상상해 보아요. 만약 지금 이 순간이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이었으면 어땠을까. 결정을 도통 못하고 맴돌고 있는 저에게 선생님은 뭐라고 하셨을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결정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 아닌가요?’ 대뜸 떠오르는 선생님의 반문이에요. 오래 만난 내담자이니 돌아갈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직구를 던지실 거 같아요. 결정을 안 하는 것, 맞아요. 저도 이제 능숙한 내담자이니 자문자답해 봅니다. 제 멋대로 상상한 선생님의 반문을 붙잡고 잠시 내면으로 들어가 보아요. 무엇 때문에 결정을 안 하고 있었을까. 독백 편지일 뿐인데도 지난 편지들보다 못한 글이 나올까봐 두려웠어요. 상담사가 마음의 언어를 적확하게 포착하지 못한다고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웠어요. 상담사가 되어 가지고 자기 마음에 대해 그렇게밖에 표현 못하냐고 한 소리 듣고 창피를 당할까봐 두려웠어요. 이런 변변찮은 속마음을 누군가 알아차릴까봐 두려웠어요.


사실은 여기까지 쓰고 잠시 멈추고 산책을 다녀왔어요. ‘두려움은 실체가 없다, 사실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두려움은 도리어 전진하라는 신호일 수 있다.’라고 내담자에게 말하곤 했거든요. 저의 명언에 얼굴이 화끈거려서 얕은 탄식을 내뱉고 나갔다 왔어요, 오전 내내 모니터만 쳐다보면서 도대체 무엇을 한 건지. 내면에 몇 시간을 집중해 끄집어 낸 것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라 기막힐 두려움이라니.


막상 나갔더니 세상에나 날씨가 정말 좋더라고요. 야트막한 뒷산으로 가는 길. 싱그러운 햇빛. 눈에 걸리는 게 없는 파란 하늘. 햇살을 가르며 반짝이는 초록 나뭇잎. 깊은 안정감을 주는 짙은 황토색 땅. 하늘과 나무와 땅의 완벽한 조화. 방금 전까지 먹구름에 휩싸인 듯 모니터 앞에서 끙끙거리고 있었던 제 모습과 너무 대비되어 허탈하게 웃었어요. 시원한 바람에 실린 맑은 공기는 또 어찌나 상쾌하던지. 적정 산소 농도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당연히 비 온 뒤 싱싱해진 화초처럼 기분이 좋아졌지요.


그 덕인지 자주 가던 뒷산인데 새로운 코스도 발견했어요. 항상 의문이었거든요. 저기 있는 벤치 두 개로 통하는 길은 도대체 어디야? 가지 않던 길로 아무 길로나 가 보자. 어떻게든 밟아보지 않은 길을 찾아서 가 보았어요. 그랬더니 생각보다 쉽게 길이 찾아졌어요. 마치 기다려다는 듯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벤치 두 개. 갑자기 뱃속부터 웃음이 차올라 터졌어요.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때 머릿속이 환해지며 든 한 생각. ‘그래, 제 3의 길이다!’


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결정하지 않는 것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요?


모니터 앞에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좋은 주제를 골라내는 선택지 밖에 없었어요. 주제어를 머릿속에서 굴리고 있었을 때 저는 덫에 사로잡힌 거예요. 이 중에서 무언가를 골라야만 한다는 강박에 빠졌던 거죠. 이것일까 저것일까. 선택지에는 흑과 백 밖에 없었어요. 인생에는 회색지대가 무수히 많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양자택일의 매트릭스에 빠져있었던 거예요.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제 3의 길. 인생의 수많은 고민들은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결정을 유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라서 문제예요. 산책하면서 넓어진 시야로 보니 가끔은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최상의 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 아니면 저것을 반드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지 몰라요.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지요. 0과 1의 선택지만 있는 디지털은 인간이 만든 인공 문명이잖아요. 원래 자연 세계에서는 그 어떤 것도 그렇게 단순하게 나누고 쪼갤 수 없어요. 아날로그로 움직이는 자연 세계에서 0초와 1초 사이를 명백히 가르는 눈금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수평선을 보면 어디서부터 바다고 어디서부터 하늘인지 알 수 없듯이. 연결된 완전체처럼 존재하는 흐름이 있을 뿐이죠. 그것이 시간이 되었든 공간이 되었든 인간이 분류하고 명명하기 전에는 나뉠 수 없이 이어진 유장한 흐름일 뿐이에요. 여기서부터 이것, 저기서부터 저것인 세상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상세계지요.


제가 그 매트릭스에 빠져 있었던 거예요. 매트릭스 영화에서처럼 빨간 약과 파란 약 사이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처럼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죠. 사실은 빨간 약도 파란 약도 선택하지 않고 매트릭스 영화를 안 보는 선택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모피어스가 미간에 힘을 주며 골라 보라고 했을 때 ‘꼭 지금 결정해야 하니?’하며 영화를 끌 수도 있는 거죠. 그러고 나면 매트릭스가 됐든 매트릭스 영화가 됐든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요?


단어를 고르고 있었을 때 글을 써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어요. 그 전제조차 탈피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거예요. 지금은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혁명적으로 매트릭스를 벗어날 수도 있는 거죠.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지금 이렇게 술술 쓰고 있는 걸요. 이도 저도 아닌 길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심리상담 중에도 이도 저도 아닌 길은 늘 환영받고 있어요. 상담이 아무 말 없이 침묵 속에 빠질 때가 있잖아요. 침묵하고 있는 내담자에게 이렇게 묻곤 하지요. 그 침묵 속에서 내적으로 어떻게 머물고 계시나요? 그때 심리상담사는 빨간 단어, 파란 단어 중에 고르라고 하지 않아요. 침묵을 섣불리 깨지 않아도 된다고 충분히 머물러 보자고 하지요. 오히려 침묵도 소중한 언어라고 하잖아요. 상담의 본질이 이야기를 하며 고민을 푸는 거라면 침묵은 이야기가 전혀 되고 있지 않은 위기 상황인데도 상담사는 제 3의 길인 침묵을 존중해요. 이렇게 일상에서 수도 없이 빤히 보고 있던 이치에 얼마나 까막눈이었던 건지. 새삼 놀라면서 방금 또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어요.


두려움에 내몰려 밖으로 나갔던 길. 그 경험이 없었다면 이만큼의 글도 쓰지 못했겠죠. 여전히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지도 몰라요. 글은 둘째 치고 이런 홀가분한 깨달음도 얻지 못했을 거예요. 모니터에 결박된 세계에서 푸른 자연의 세계로. 한 발짝 나섰을 뿐인데 별안간 샹그릴라에 도착한 듯 해방됐던 느낌. 그 자리에 데려다 준 것이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네요. 두려움은 정말 전진하라는 신호였어요. 그 상태에서 글은 무슨,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셔 봐. 저를 등 떠민 고마운 두려움이에요.


이제 오늘 경험을 정리해 보아요.


결정해야 한다는 큰 압박이 있을 때는 더 큰 맥락에서 보자. 나에게는 결정할 자유도 있고 결정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결정하지 않는 것도 주체적으로 하면 그것도 결정력 있는 거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한때 이런 광고 문구가 유행했지요. 그 말을 본떠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미 결정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결정도 안 내리자. 그것이 뜻밖의 해결책에 가장 가까울 수도 있으니.’


이 단어를 쓸 것인가. 저 단어를 쓸 것인가. 글을 쓸 것인가. 글은 안 쓸 것인가. 다른 결정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니 마지막으로 결정해야 할 게 남았네요. 다음 상담을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 오늘의 귀중한 깨달음대로 더 큰 맥락에서 제 3의 길을 택합니다. 이도 저도 아닌 뜻밖의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내담자는 침묵합니다.